0. 기본 데이터
- 이름: 앨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 출생-사망: 1852년 12월 9일 ~ 1931년 5월 9일
- 국적: 미국
- 출생지: 폴란드
- 주요 수상: 노벨 물리학상(1907년)
1. 성장 과정
'앨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은 1852년에 '프로이센(Preussen)' 왕국의 '스텔레노(현재의 폴란드령)'에서 태어났다. 마이컬슨인 2세 무렵인 1854년에는 가족이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성장한 앨버트는 1873년에 해군 학교에 입학했다. 학생 시절에는 광학이나 음향학 등 물리학에서 우수학 성적을 보였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군함 근무를 거쳐, 해군 소위가 되어 배에서 내렸다. 그 후에는 모교에서 강사로 물리학과 화학을 강의했다. 그리고 강사를 하던 1877년 무렵에, 자신의 일생의 과업이 되는 광속 측정을 시작했다.
1. 독일에서 간섭계를 이용해 측정을 시작하다.
'마이컬슨'은 처음에 '레온 푸코(Leon Foucault, 1819~1869)' 회전 거울을 사용하는 방법을 개량한 방법으로 광속을 측정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 그가 얻은 광속의 값은 초속 29만 9853km였다. 이것은 현재 알려져 있는 29만 9792.458km와 첫 3자리가 일치하는 무척 정확한 값이었다.
그 후 마이컬슨은 '간섭계(interferometer)'라는 장치를 사용해 광속을 측정하게 되었다. 어떤 장소를 동시에 출발한 완전히 같은 두 빛이 다른 거리를 같은 속도로 왕복하거나, 같은 거리를 다른 속도로 왕복하면, 왕복에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생긴다. 출발할 때 겹쳤던 빛의 파동의 마루의 위치가 돌아왔을 때 조금 달라진다. 파동의 마루의 위치가 다른 두 빛의 파동이 겹치면 '간섭(interference)'이 일어나, '간섭무늬(interference fringe)'라는 줄무늬 모양이 생긴다. '간섭계(interferometer)'는 이 '간섭무늬'를 측정하는 장치이다.
1881년에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던 마이컬슨은 베를린의 연구소에서 간섭계를 이용한 광속 측정 실험을 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베를린을 지나다니던 각종 교통 기관의 영향으로 지면의 진동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빛의 간섭무늬가 흐트러져서 제대로 관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포츠담(독일 브란덴부르크 주의 주도)'에 있는 천문대의 지하실로 간섭계를 이동시켰다. 간섭계는 진동에 매우 민감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100m을 사람이 걸어가기만 해도 그 진동 때문에 관측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2. 몰리와 공동으로 역사적 실험에 나서다.
1881년, '마이컬슨'은 그때까지 얻어진 간섭계를 통한 광속 측정의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에테르 바람'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에테르의 존재가 부정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에테르의 존재를 강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실험 결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82년에 마이컬슨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그는 '클리블랜드 대학(Cleveland Stae University)'의 교수가 되어 광속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했다. 1885년부터는 같은 클리블랜드 대학의 교수이던 '에드워드 몰리(Edward Morley, 1838~1923)'와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1887년에 역사적인 광속 측정 실험인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에테르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3. 노벨 물리학상을 받다.
1905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에테르의 존재가 부정되었다. 이로써 '마이컬슨-몰리의 실험' 결과도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었다. 1907년에 마이컬슨은 간섭계를 이용한 일련의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미국인으로서는 최초의 과학 부문 수상이었다. 그는 그 후에도 간섭계를 사용해 '오리온자리(Orion)'의 항성 '베텔게우스(Betelgeuse)'의 지름을 정확하게 측정하였다. 또 달이나 태양의 인력에 의한 지구의 변형인 '지구 조석(terrestrial tide)'을 측정해 지구의 견고한 정도를 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이컬슨은 1931년 5월 9일에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4. 갤러리
4-1. 앨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5-2. 다른 과학자들과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