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종교가 득세해 중세 유럽에 암흑기가 찾아왔다.
- 유럽에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 유럽이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쇠락한 문명들'
- '4가지 힘'의 작동원리를 알아낸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 4번의 과학혁명
1. 종교가 득세해 중세 유럽에 암흑기가 찾아왔다.
고대의 왕국들은 오직 군대에 의해 그 흥망이 좌우되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위대한 장군들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제단 앞에 제물을 바치고 승리를 기원했으며, 바이킹족도 토르 신의 영감 어린 지시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거대한 사원을 지어 전쟁의 신에게 헌정하곤 했다. 그러나 거대 문명의 흥망성쇠를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서기 1500년대에 화성인이 지구를 방문하여 지구에 퍼져 있는 모든 문명을 답사한 후, "앞으로 어떤 문명이 지구를 지배할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다른 문명이 지구를 지배할 수는 있어도 유럽 문명만은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은 종교가 크게 득세한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동양을 대표했던 중국 문명은 수천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왔다. 다들 알다시피 종이, 화약, 나침반 등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발명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며, 고대 중국의 과학자들 또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강력한 힘으로 대륙을 통일하여 오랜 세월 동안 평화로운 삶을 누려왔다.
유럽의 남쪽에서 일어난 '오스만제국(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던 국가)'도 유럽을 위협하며 긴 세월 동안 번영을 누렸다. '이슬람 문명'은 대수학을 발명했고 '광학'과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분야에서 찬란한 업적을 남겼으며, 예술적인 안목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은 과거 한때 과학교육의 세계적인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시기에 유럽인들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처형하는 등 종교적 근본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특히 서부 유럽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거의 1000년 동안 쇠퇴일로를 걸어오면서 '중세 암흑기'로 빠져들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대부분의 기술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처지였다. 로마제국이 쌓아온 지식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종교는 과학의 발전을 억압했으며, 남은 것은 매사를 옥죄는 종교적 도그마뿐이었다. 여기에 저항하면 당장 잡혀가 고문을 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게다가 유럽의 도시들은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렸다.
2. 유럽에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20세기가 되자 상황이 정반대로 달라져,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것은 유럽에 과학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깨달음의 물결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외부와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었고, 이것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년경~1468년)'의 인쇄기 덕분에 전 유럽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천 년 가까이 위세를 교회는 지배력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성서 해석을 주로 가르치던 대학들도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의 물리학과 '존 돌턴(John Dolton)'의 화학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예일대학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유럽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유럽 전체를 지배할 만한 절대 강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학은 순수학문적 기능 외에 새로운 전쟁무기와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었으므로, 각국의 군주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과학과 공학을 장려했다. 그 결과, 유럽의 과학과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3. 유럽이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쇠락한 문명들'
한편, 중국과 오스만제국의 찬란했던 문명은 점차 그 빛을 잃어갔다. 이슬람 문명은 수백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맡으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유럽의 교역 대상이 신대륙과 동양으로 옮겨가면서 중동을 거쳐가는 상인들이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에는 교역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1405년에 중국 명나라의 '영락제(명나라의 3대 황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함대를 조직하여 전 세계로 파견했다. 이 시기에 총 일곱 번에 걸쳐 함대가 파견되었는데, 그 규모는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이 함대는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까지 도달하여 값진 보물과 식량, 그리고 희귀한 동물들을 싣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명왕조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나무로 깎은 아프리카 기린이 축제 행렬에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황제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이 전부인가? 중국에 대적할 만한 제국이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인가? 바깥세상에서 가져온 보물이라는 것이 고작 신기한 음식과 동물들뿐이란 말인가? 후속 황제들이 바깥세상에 흥미를 잃으면서 중국의 함대는 점차 쇠퇴해갔고, 결국 중국은 빠르게 발전하는 서방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오스만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모두 정복한 후,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 수백 년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ad)'는 공식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했던 이슬람 문명은 회교 학자들이 코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종교와 무관한 지식을 '반-이슬람'으로 취급하면서 쇠퇴일로를 겪어왔다. 회교 지도자들이 과학, 수학, 의학 등 반드시 습득해야 할 올바른 지식을 외면한 채, 이슬람식 교훈과 율법만을 가르치는 바람에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Ummah)'와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동양과 유럽의 운명이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자명하다. 유럽은 과학과 기술을 장려했고, 이슬람과 중국은 과거의 영화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은 문명의 번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원동력이다. 별생각 없이 과학기술의 힘을 무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거기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최신 과학기술을 무시한다면, 당신의 경쟁자가 먼저 과학기술을 습득하여 승자로 등극할 것이다. 조선도 과학 기술을 천시했기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4. '4가지 힘'의 작동원리를 알아낸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유럽이 수백 년의 암흑기를 이겨내고 1500년대 이후의 역사에서 중국과 이슬람 문명을 앞지를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유럽인들이 이 세상을 '우주를 지배하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세상을 '우주를 지배하는 4가지 힘'이라는 렌즈로 통해 바라보았는데, 기계장치, 로켓, 폭탄에서 별과 은하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것은 이 4가지 힘으로 설명된다. 이 '4가지 힘'들의 작동원리를 가장 먼저 밝혀낸 덕분에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4-1. 중력
첫 번째 힘은 모든 것을 붙잡아놓는 '중력(Gravity)'이다. 태양이 폭발하지 않고 태양계의 행성들이 지금과 같은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힘은 '전자기력'으로, 도시의 밤을 비추고 발전기와 엔진을 작동시킨다. 세 번째 힘과 네 번째 힘은 '약한 핵력(약력)'과 '강한 핵력(강력)'으로, 원자 중심부에 있는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을 결합시키는 힘이다. 이 힘 덕분에 태양을 비롯한 밤하늘의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각 힘의 비밀을 알아낼 때마다 인류의 역사는 크게 변했고,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십분 활용했다. 뉴턴은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는데, 달은 왜 지구로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질문을 떠올렸다. 당시 23세이던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힘과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것이 같은 힘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미적분학(calculus)'이라는 새로운 수학을 개발하여 행성과 달의 궤도를 완벽하게 계산해 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뉴턴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안했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물체의 움직임을 '힘(Force)'으로부터 계산하는 역학 체계를 구축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뉴턴역학(고전역학)'이다. 이로써 인류는 영혼이나 악마, 유령과 같은 추상적 관념에서 벗어나 측정 가능하고 잘 정의된 힘을 이용하여, 만물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공학자들은 뉴턴역학 덕분에 모든 기계의 작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증기기관과 증기기관차가 탄생했다. 역학에 관한한 뉴턴의 법칙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중력에서 시작된 뉴턴의 체계적 사고는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여, 훗날 유럽을 강타한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4-2. 전자기력
19세기의 유럽에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와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이 있었다. 이들은 두 번째 힘인 전자기력의 정체를 이론적으로 규명하여, 20세기 전기 혁명의 기초를 닦아놓았다. 그 후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947~1931)'은 뉴욕 맨해튼 남쪽의 '펄 스트리트(Pearl Street)'에 발전소를 지어놓고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본격적인 '전기 혁명'의 서막을 열었다.
만약 외계인이 우주에서 지구를 목격한다면, 지구인이 전자기학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챌 것이다. 현대인은 전기를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가끔 정전이 일어나면 전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곤 한다. 전기가 없으면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쓸 수 없고, 온갖 조명, 엘리베이터, 냉장고도 작동하지 않는다. 전기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고스란히 19세기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4-3. '약력(약한 핵력)' 과 '강력(강한 핵력)'
유럽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핵력(약력과 강력)'도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우리는 별의 일생과 에너지원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을 이용하여 MRI, CAT, PET 등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서 의료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핵력(Nuclear Force)'은 원자의 내부에 숨어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다스리는 힘이다. 앞으로 인류는 핵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핵융합에너지(Nuclear Fusion Energy)'를 제어하여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핵의 불구덩이 속에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5. 4번의 과학혁명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과학(Science)'은 '부(Wealth)'를 창출하는 '가장 훌륭한 엔진'이다. '옥스퍼드 경제 역사 사전(The Oxford Encyclopeida of Economic History)'에는 '1780년 이후에 영국과 미국이 이룬 경제성장의 90%는 자본축적이 아니라 기술혁신이 가져온 결과이다.'라고 적혀 있다. 과학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당장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항상 같은 속도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적인 발명품(증기기관, 전구, 트랜지스터, 스마트폰 등)'이 출현하면 급속하게 발달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체기에 접어든다. 또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므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5-1. 첫 번째 과학혁명
경제에 처음으로 영향을 준 기술은 '증기기관'이었다. 특히 '증기기관'을 장착한 '증기기관차'는 전 유럽에 걸쳐 '산업혁명'을 견인했고, 그 결과 유럽 사회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당시 증기기관은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서, 그것을 기반한 사업을 벌이면 누구나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돈은 결코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새로운 투자처들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지만, 어리석음으로 인해 투기적인 대상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1800년대 초에 증기기관과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신흥자본가들은 런던 증권거래소의 철도사업 관련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그러나 철도회사들이 증권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거품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전문기자 '버지니아 포스트렐(Virginia Postrel, 1960~)'은 100년 전에 철도회사들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철도사업에 과도한 투자가 몰리면서 엄청난 거품이 형성되었고, 결국은 1850년 런던 증권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그 후로 런던 증시는 대략 10년 정도에 한 번씩 소규모 붕괴를 겪었다.
철도사업은 증권시장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1880~18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첨단과학의 상징이었던 증기기관이 1800년대 중반에 부를 창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전성기를 맞이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세기 미국의 철도사업은 커다란 붐을 일으켰다가 거품이 터지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철도 기반사업이 구축되어 대륙횡단철도가 구축될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물자 운송비가 크게 절감되었다.
5-2. 두 번째 과학혁명
하지만 이와 비슷한 순환 과정이 그 후에도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면, 커다란 시련을 겪은 후에도 자본가들이 정신을 차린 것 같지는 않다. 어리석고 한심한 이 자본가들은 거품 위에 올라타 올라가는 가격 속에서 흥분하고 광기에 빠졌다. 어쩌면 인간의 광기는 본성이며, 그것은 멈출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투자자 '찰리 멍거(Charles Munger, 1924~)'는 '인간의 광기는 멈출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19세기 초에 미국에 전기와 자동차 열풍이 불어닥쳤을 때에도 거의 동일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에디슨이 전기사업을 시작하면서 공장과 각 가정에 전기가 공급되었고, 포드 사의 '모델-T(1908년에 출시된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전기와 자동차는 엄청난 부를 창출하여, 수많은 백만장자를 낳았으며, 자본이 뉴욕 증권시장으로 흘러들어 또다시 거품경제를 일으켰다. 모든 상황이 1850년의 영국과 판박이었지만, 사람들은 80년 전의 교훈을 잊은 채 사람들은 광기에 휩쓸렸다. 1900~1925년 사이에 무려 3000개의 자동차 회사가 등록되었을 정도로 자동차 사업은 성황을 이루었지만, 사실 이 시장에서 많은 회사들은 자신의 사업을 지탱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1929년의 어느 날 한계에 이른 거품이 터지면서, 미국은 대공황의 긴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전기사업이 안정된 궤도에 오른 것은 대공황이 수습된 후인 1950~1960년대였는데, 이것도 철도사업의 경우와 비슷하다.
5-3. 세 번째 과학혁명
20~21세기의 인류는 컴퓨터, 레이저, 인공위성, 인터넷, 전자공학 등으로 대변되는 과학혁명을 겪고 있다. 이번에도 첨단 기술이 엄청난 부를 창출하여 수많은 억만장자를 만들었고, 자본이 흘러들어가 또 한차례 거품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증권시장이 아닌 부동산으로 집중되었다는 점만 빼면, 모든 상황이 과거와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부동산 시세가 최고조에 이르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 시작했으며, 부동산 과격이 천정부지로 뛰다 보니 대출금의 규모가 집값이 올라야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커졌다. 비양심적인 은행가들은 모기지론을 남발하면서 거품을 더욱 부채질하여, 결국 2008년에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거품 사태를 과거에 겪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
5-4. 네 번째 과학혁명
그런데 2008년 경제 위기가 지나서야 세계적 규모의 통신망이 구축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정보혁명의 절정기는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면 네 번째 과학 혁명은 언제, 어떤 형태로 다가오게 될까?
네 번째 과학혁명은 아마도 '인공지능(AI)'과 원격 통신(Remote Communication)', '나노기술(Nano Technology)', '생명공학(Bio Technology)' 등이 어우러진 형태일 것이다. 이 기술들은 지금 당장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이로부터 엄청난 부가 창출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네 번째 과학혁명'에서는 부디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