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최초의 거짓말 탐지기
- MRI 거짓말 탐지기
- 거짓말 탐지기 무용론
- 거짓말 탐지기의 부작용
1. 최초의 거짓말 탐지기
1-1. 최초의 거짓말 탐지기 '마술 당나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백 년 전에 인도의 한 사제가 역사상 최초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의심이 가는 용의자를 '마술 당나귀'와 함께 밀폐된 방에 가둬놓고, 용의자에게 당나귀의 꼬리를 잡아당기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당나귀가 무슨 소리를 내면 용의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고, 당나귀가 조용히 있으면 사실을 말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마을의 원로들이 용의자 모르게 당나귀의 꼬리에 미리 검댕을 칠해놓았다.)
잠시 후 용의자가 밖으로 나오면, 대부분의 경우에 당나귀가 울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용의자의 손에 검댕이 묻어 있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용의자에게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면 다 밝혀진다'고 겁을 주는 것이 실제 거짓말탐지기보다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1-2. 현대식 '마술 당나귀'
현대식 '마술 당나귀'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튼(William Marston, 1893~1947)'이었다. 그는 1913년에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순간적으로 혈압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미국 국방성은 이 아이디어를 수용하여 '거짓말 탐지 연구소(Polygraph Istitute)'를 설립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도 혈압과 거짓말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당시 범죄자들을 심문할 때 손목을 잡고 질문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범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는 반사회적 인물에게는 거짓말 탐지기도 소용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구 소련으로부터 거액의 공작금을 받고 CIA 요원의 명단과 국가기밀을 누출시킨 이중간첩 '앨드리히 에임스(Aldrich Ames)' 사건이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CIA의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린리버 킬러(Green River Killer)'로 알려진 희대의 연쇄살인마 '게리 리그웨이(Gary Ridgway)'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50명이 넘는 여인들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았지만, 거짓말 탐지기로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2. MRI 거짓말 탐지기
2-1. fMRI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하다.
MRI 스캔을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사람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다니엘 랭글벤(Daniel Langleben)'이다. 그는 199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거짓말에 서툴다는 기존의 속설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진실을 감추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다소 떨어질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니엘 랭글벤'은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먼저 진실을 말하는 두뇌 기능을 차단한 후,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추정했다. '구체적인 거짓말을 할 때에는 자신이 그것을 사실로 믿어야 한다. 따라서 거짓말은 상당한 양의 두뇌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은 '결코 만만치 않은 생산활동'이라는 것이다.
'다니엘 랭글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짓말 실험을 여러 번 실행하면서 거짓말을 할 때 '전두엽(고도의 사고가 진행되는 부분)'과 '측두엽', '대뇌변연계(감정을 일으키는 부분)' 등을 비롯한 두뇌의 특정 부분이 눈에 띄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뇌대상회(모순을 해결하거나 반응을 억제하는 부분)'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니엘 랭글벤'은 학생들에게 카드를 나눠주고 카드의 숫자를 말하게 하는 식으로 실험을 거듭하여, 자신이 개발한 '거짓말 탐지법'이 99%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기술에 관심을 보인 투자자들이 두 개의 벤처회사를 설립하고 공공기관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그중 한 회사인 '노라이 MRI(No Lie MRI)'사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어떤 의뢰인에게 새로운 거짓말탐지기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작업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 회사 측에서는 그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fMRI로 스캔을 실시한 결과 그는 방화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2-2. 'MRI 거짓말 탐지기'는 '구식 거짓말 탐지기'보다 나은가?
'다니엘 랭글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뇌파를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면서 그의 기술이 '구식 거짓말 탐지기'를 훨씬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훈련을 거치면 심박수나 땀의 분출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뇌파의 패턴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지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 끔찍한 테러행위로부터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비관론자들은 실험에서 보여준 높은 적중률을 인정하면서도, fMRI는 거짓말을 직접 탐지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두뇌의 활동을 감지할 뿐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몹시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 진실을 말한다면, fMRI는 거짓말 반응을 보일 것이다. fMRI는 불안한 심리상태를 감지하는 장치이므로 이런 부작용을 막기는 힘들다.
2-3. MRI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
거짓말을 할 때 '인와전 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이라는 곳이 활성화되어 MRI에 쉽게 감지되기 때문에 MRI를 '거짓말 탐지기'로 사용할 수 있다. 거짓말이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허위사실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그 거짓말의 결과까지 생각해야 하므로 진실을 말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따라서 fMRI로 여분의 에너지 소모량을 측정하면, 진술의 진위 여부를 어느 정도까지는 판단할 수 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는 90%가 넘는다고 한다. 인도의 법정에서는 이미 fMRI 테스트 결과를 '법정 증거'로 채택했고, 미국에서도 fMRI가 증거로 제출된 몇 건의 재판이 진행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fMRI를 거짓말탐지기로 사용하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법정에서 증거자료로 쓰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분야의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정확도를 높이려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 자체를 탐지하는 것이 아니라, 심박수나 땀 분출량의 변화를 측정하여, 진술자가 긴장한 정도를 판단하는 도구이다. 반면에 두뇌를 직접 스캔하면 두뇌의 활동량이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는데, 이 데이터와 거짓말의 상관관계가 법정에서 참고할 정도로 믿을 만한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fMRI의 정확도와 적용 한계를 규명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3. 거짓말 탐지기 무용론
2003년에 '미국 과학 아카데미(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는 그동안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쓴 사례를 비롯하여 '거짓말 탐지기'의 폐해를 일일이 지적하면서 '거짓말 탐지기 무용론'을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거짓말탐지기는 사례로 보면 '피의자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라는 사실밖에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사람의 두뇌를 직접 들여다보면 어떨까? 사람의 두뇌를 직접 들여다보면서 거짓말을 탐지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의 '피터 로젠펠드(Peter Rosenfeld)'였다. 그는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EEG 스캔을 수행한 끝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P300-뇌파' 패턴이 사실을 말하는 사람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300-뇌파'는 보통에서 벗어난 신기한 것을 봤을 때 주로 발생한다.
4. 거짓말 탐지기의 부작용
일부 평론가들은 '텔레파시(Telepathy)' 같은 진정한 '거짓말 탐지기'가 발명되면 오히려 사회 전체가 불편해질 것이라며, fMRI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미래에 제한적 형태의 텔레파시가 생활화되었을 때에도 도덕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타인의 전화 통화 내용을 허락 없이 녹음하는 행위가 불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타인의 생각을 당사자의 허락 없이 기록하는 것도 불법행위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을 적극 반대할 것이다. 사실 사람의 생각은 다분히 불안정하고 위선적이기 때문에, 남의 생각을 읽는 행위가 법으로 허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 적당한 거짓말은 사회의 윤활유 같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거짓말이 사라지면 삭막한 세상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예컨대 나의 직장상사나 '선배', '배우자', '연인' 등에게 쏟아부었던 온갖 찬사들이 거짓말로 들통난다면, 나의 평판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적중률 100%짜리 거짓말탐지기가 사용화된다면 '가족 간의 비밀'이나 '숨겨진 감정', '억압된 욕망', '비밀스러운 계획' 등 차라리 모르면 편했을 온갖 정보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과학 평론가 '데이비드 에드워드 휴 존스(David Edward Hugh Jones, 1938~2017)'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원자폭탄처럼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법정 바깥의 세상에 이 장치가 보급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4-1. '거짓말 탐지기'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톰 크루즈(Tom Cruise, 1962~)'가 출연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에서는 '그냥 놔두면 틀림없이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있는데, 그가 아직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체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미래에는 '범죄를 저지르려는 생각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4-2. '거짓말 탐지기'와 영화 '토탈 리콜'
또 정보나 보안부서의 요원들이 법에 구애받지 않고 강제로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체포된 테러리스트들의 생각을 읽어서 '범죄 계획'을 읽어내는 것이 과연 합법적일까? 특정한 목적으로 사람에게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것은 합법적일까? 영화 '토탈 리콜(Total Recall)'의 주인공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는 자신의 기억이 진짜인지, 아니면 인공적으로 심어진 것인지를 놓고 시종일관 고민에 빠진다. 당분간은 이런 질문들이 단순한 흥미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사람의 생각을 읽는 기술이 상용화되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