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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에 관한 역설

SURPRISER - Tistory 2021. 10. 3. 05:49

0. 목차

  1. 공리주의의 딜레마
  2. 애빌린의 역설
  3. 뉴컴의 역설
  4. 기펜의 역설
  5. 합성의 오류

1. 공리주의의 딜레마

 '공리주의(Utilitarianism)'란 개개인의 '공리(이익, 쾌락, 행복 등)'를 합쳐 그 총합이 최대가 되도록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사상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주장한 사상이다. 그러나 '공리주의'를 받아들이면, 다음과 같은 딜레마가 발생한다. 공리주의에 따라 아래 예시에서 공리의 총합을 계산해 보자.

1-1.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을까?

 심장병에 걸린 A 씨와 간질환에 걸린 B 씨가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의 생명은 위태롭다. A씨는 뛰어난 연구자로 몇 년만 더 연구하면 난치병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뛰어난 인재이다. B씨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한 예술가로 수년 후면 역대급 예술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 사람이 오래 살면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 또한 계속 살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건강한 간과 심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A씨와 B씨는 건강한 심장과 간을 얻기 위해 '낯선 사람'을 뇌사상태에 빠트렸다. 그리고 의사에게 이 사람의 간과 심장을 자신들에게 이식해달라고 의뢰했다. 이식 수술을 거부하면 'A씨', 'B씨'가 죽고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도 어차피 죽는다. 의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이식 수술을 거부하면 'A씨', 'B씨', 뇌사 상태가 된 '낯선 사람'까지 모두 죽으므로 살리는 생명의 수를 공리로 가정하면 공리의 합은 0이 된다. 반면 이식 수술 제안을 받아들이면 공리의 합은 2가 된다. 게다가 이들이 앞으로 이룩할 업적까지 생각하면 공리의 합은 2를 훨씬 넘어선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이식 수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공리주의가 부정된다면 어떤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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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광차 문제(Trolley Dilemma)

 '공리주의 딜레마' 문제 중에는 아주 유명한 '광차 문제(Trolley Dilemma)'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광차(광석을 실어 나르는 뚜껑 없는 화차)를 '자율 주행 자동차로 바꿔서 이야기를 진행할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율주행 자동차의 앞에는 5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대로 직진하면 5명의 생명이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려 자동차의 방향을 바꾸려고 했다. 근데 방향을 바꾸려는 곳에는 1명의 사람이 있었다. 방향을 바꾸면 1명이 죽고 그대로 가면 5명이 죽는다. 어떤 선택을 해야 도덕적으로 옳을까?

 이번에도 공리주의의 원칙에 따라 생각을 해보자. 이번 예시에서 공리의 총합은 구할 수 있는 생명의 수로 생각할 수 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나는 자동차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판단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까?

1-3. 공리주의에서 도덕적인 옳음을 판단할 수 없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공리주의에서 도덕적인 옳음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공리주의를 반대하면 다수결을 취하는 '민주주의(Democracy)'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Capitalism)'에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공리주의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 애빌린의 역설

 조지워싱턴대의 '제리 B. 하비(Jerry B. Harvey)' 경영학과 교수는 자신의 논문인 '애빌린의 역설과 경영에 대한 다른 고찰(The Abilene Paradox and Other Meditations on Management)'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언급했다.

 어느 여름날, 한 가족이 선풍기 앞에서 한가롭게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장인어른이 "애빌린에 저녁 식사나 하러 갈까?"라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갑시다. 그렇게 해요."라고 받았다. 남편은 애빌린까지 가려면 오래 걸리고 무더위에 운전할 생각이 걱정됐지만, 장인과 아내의 눈치가 보여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장모님도 가고 싶어 하시면 좋겠네요." 라고 대답했다. (참고로 애빌린은 집에서 85km 떨어진 마을이다.) 그러자 장모도 "물론 나도 가고 싶단다. 애빌린에 가본 지 꽤 오래됐거든" 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가족은 곧바로 애빌린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애빌린으로 가는 차 안은 더웠고, 오랜 시간 동안 먼지에 시달려야 했으며, 도로는 정체에 휩쓸렸다. 애빌린에 도착했을 때에는 식당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가족은 지칠 대로 지쳐서 4시간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후, 장모님이 "사실 나는 집에 있고 싶었지만 세 사람이 애빌린에 가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라고 먼저 말을 꺼내셨다. 그러자 남편도 "저도 애빌린에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도 "저도 당신을 위해 간 거예요. 이렇게 더운 날 바깥에 나가길 원하는 건 미친 거라고요."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인도 "다들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그냥 제안해 본 것뿐이야"라고 털어놓았다. 누구 하나도 나가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모두 애빌런에 가는데 찬성했다는 사실에 가족은 난처해했다.

 이처럼 집단의 구성원의 의사와는 전혀 다르게 자기 의견과 상반된 결정에 동의하고 일이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애빌린의 역설(Abilene's paradox)'이다. 어떻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이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것은 구성원들은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다른 결정에도 마지못해 동의하게 되서 생긴 해프닝이다. 인간은 자주 집단의 경향에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사회적인 불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에, 개인은 그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군중심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실제로 '애빌린의 역설'에 빠진 조직나 기업들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애빌린의 역설에 빠진 조직이나 기업들은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합리적으로 목적을 추구하지 못해 도태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면 '애빌린의 역설'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빌린의 역설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집단 사고에 따른 '동조(同調)' 행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3. 뉴컴의 역설

 1960년대, 물리학자 '윌리엄 뉴컴(William Newcomb)'은 '뉴컴의 역설(Newcomb's paradox)'이라고 불리는 사고 실험을 하나 제안하였다. 사회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 '윌리엄 뉴컴'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문제 형태로 공개하였고, 이후 수학자이자 대중 저술자인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유명 잡지에 기고하면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문제가 되었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장치가 발명되었다. 이 장치를 사용하면 당신이 어떠한 행동을 할지 매우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이 장치를 만든 회사는 이 장치의 정확성을 보여주기 위해 게임을 하나 진행하였고, 당신은 이 게임에 참가하기로 했다. 게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방 안에는 100만 원이 들어있는 투명한 상자와 속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상자가 놓여있다. 당신은 '검은색 상자만 열기', '양쪽 상자를 모두 열기' 중에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열린 상자 속에 있는 돈을 받는다. 단, 이 게임의 주최자는 장치로 당신의 생각을 스캔해 당신이 검은색 상자만 열지, 양쪽 상자를 모두 열지 예측하고 상자 내의 내용물을 결정할 수 있다. 게임의 주최자는 당신이 양쪽 상자를 모두 열 것으로 예측되면 검은색 상자 내부를 비워두고 검은색 상자만 열 것으로 예측되면 검은색 상자에 1억 원을 넣어둔다. 주최자가 예측에 따라 상자안에 돈을 넣어두고 방을 떠나면 당신은 방 안으로 들어가 선택을 해야한다. 당신은 이전에 참가한 여러 번의 참가자들을 봐왔고, 주최자의 예측이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최자가 게임을 속이는 일 또한 없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 선택 1 - 검은색 상자만 열기: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장치는 매우 정확하므로 검은색 상자만 열어 1억 원을 가져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패러독스를 고안한 물리학자 '윌리엄 뉴컴(William Newcomb)' 자신도 검은색 상자만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2. 선택 2 - 양쪽 상자 모두 열기: 투명한 상자 안에 100만 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장치가 예측하지 못했을 경우, 양쪽 상자를 모두 열면 총 1억 100만 원을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장치가 예측에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100만 원을 확정해서 가져갈 수 있다. 또 예측이 어떻게 되었던 간에 주최자는 검은 상자 속의 내용을 이미 결정했으므로 검은색 상자 속에 1억 원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따라서 검은색 상자만 열든 양쪽 상자를 모두 열든 이미 결정된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뉴컴의 역설

4. 기펜의 역설

 보통은 상품 가격이 오르면 상품의 수요가 줄고 상품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어난다. 이 사실은 직관적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할까?

 하루에 고기와 감자를 합쳐 6개를 먹는 가족이 있다고 하자. (편의상 그냥 개수 단위를 '개'로 통일) 가족 구성원들은 가능하면 고기를 더 많이 먹고 싶어 한다. 고기와 감자를 구입하는 예산은 하루당 1000원이다. 첫째 날, 마트에서 '고기 1개에 300원', '감자 1개에 100원'에 팔고 있었다. 그래서 고기 2개와 감자 4개를 구입했다. 둘째 날, 마트에서 가격이 인상되어 '고기 1개에 400원', '감자 1개에 120원'에 팔고 있었다. 그래서 '고기 1개와 감자 5개'를 구입했다. 감자의 가격은 전날보다 인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감자의 구입 개수는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19세기 후반에 기근이 발생했을 때, 위와 같은 이유로 감자의 가격이 상승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요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 모순은 영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기펜(Robert Giffen, 1837~1910)'이 발견해서 '기펜의 역설(Giffen's Paradox)'이라고 한다. 또 위의 예시와 같이, 가격이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수요량이 늘어나거나 가격이 내렸는데도 수요량이 줄어드는 물품을 가리켜 '기펜재(Giffen goods)'라고 한다.

- 고기 감자
1일째 고기 2개 (300원×2개=600원) 감자4개 (100원×4개=400원)
2일째 고기 1개 (400원×1개=400원) 감자5개 (120원×5개=600원)

5. 합성의 오류

 어느 날 아버지가 가족에게 '불경기로 월급이 줄었으니 이제부터는 가능한 대로 절약하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월급이 줄었으니 지출을 억제해 가정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절약이라는 행위가 가정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한 걸까? 그러한 일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생길 수 있다.

 불경기일 때 각 가정이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가정에 남기려고 가능한 대로 소비를 억제했다고 하자. 그러면 상품 매출이 감소해 기업은 실적 부진에 빠진다. 그래서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고, 그 결과 월급이 줄어서 각 가정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고 한다. '절약의 역설'과 비슷한 역설에는 '저축의 역설'이라는 것도 있다. 불경기로 각 가정이 수입을 저축으로 돌림으로써 소비가 감소해 '절약의 역설'과 같은 악순환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로 보면 저축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시적 시점'에서 보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 '거시적 시점'에서 본 경우에는 예기치 못한 결과가 되는 것을 경제학 용어로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한다. 합성의 오류가 생길 수 있는 예는 가정의 절약과 저축 이외에도 '기업의 인원 삭감'이나 '관세 장벽에 의한 국내 산업 보호' 등 경제 세계에 많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