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잔 다르크(Jeanne d’Arc)
- '과종교증'은 '측두엽 간질'과 상관관계가 있다.
- 종교적 체험하기
1. 잔 다르크(Jeanne d’Arc)
글도 읽을 줄 모르는 한 시골 소녀가 왕의 기사를 찾아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면서 왕세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너무나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조국 프랑스가 워낙 위태로운 상황이었기에, 그 기사는 소녀에게 소규모 군대를 내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전의를 상실한 군인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아가 대승을 거두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로, 그녀는 지금도 역사상 가장 신비롭고 매혹적인 인물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녀는 조국 프랑스를 구하고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백년 전쟁(1455년부터 1485년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 말기에 프랑스는 북부지역 대부분을 영국군에게 내어주고, 왕세자가 대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등 한마디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바로 이 시기에 '오를레앙(프랑스어: Orléans)'에서 온 한 소녀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군대를 지위하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왕세자는 그녀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군대를 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녀는 영국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삽시간에 프랑스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전의를 거의 상실했던 프랑스군은 시골 소녀의 영웅담에 사기충전하여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그 덕분에 왕세자는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샤를 7세(Charles VII)'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왕과 귀족들에게 배신당하며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영국인들은 그녀가 프랑스의 상징이자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인물임을 잘 알았기에, 제거할 것을 염두에 두고 공개재판에 넘겼다. 그 후 몇 번의 심문 끝에 결국 그녀는 종교적 이단이라는 판결을 받고, 19살의 어린 나이에 화형에 처해졌다.
1-1. 잔 다르크는 '정신분열증' 환자였는가?
그 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가들이 이 놀라운 10대 소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과연 그녀는 예언자였을까? '성녀(Saintess)'였을까? 혹시 정신 나간 소녀는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현대 정신의학과 신경과학을 이용하여 '잔 다르크'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잔 다르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가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들었다는 주장은 아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잔 다르크'가 '정신분열증'을 앓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녀가 들었다는 '신의 목소리'가 환청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2. 잔 다르크의 심문 기록
물론 이 의견에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재판 기록에 의하면, '잔 다르크'는 법정에서 매우 논리적인 언변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사실, 당시 영국 재판관들은 그녀를 심문하면서 '신학적인 함정'을 파놓고 있었다. 예컨대 '그대는 신의 은총을 받은자인가?'라고 묻는 식이다.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하면 이단자가 되고, 'no'라고 답하면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자백하는 꼴이 된다. Yes라고 말하면 이단자가 되는 이유는 자신이 신의 은총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어떤 답을 하건 그녀는 유죄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잔 다르크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아직 신의 은총을 받지 않았다면 앞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미 은총을 받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받기를 원합니다." 당시 재판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녀를 심문하던 재판관들은 이 한마디에 모두 바보가 되었다." 잔 다르크의 심문 기록은 매우 특이하고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192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자신의 희곡 '성녀 조안(Saint Joan)'에서 잔 다르크의 재판 기록을 그대로 재현했다.
1-3. 잔 다르크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는가?
그런데 최근 들어 '잔 다르크'가 '측두엽 간질(Temporal lobe epilepsy)'을 앓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은 가끔 발작을 일으키지만, 개중에는 자신의 신념에 더욱 큰 확신을 느끼면서 '모든 것의 배후에는 어떤 섭리나 영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 증세를 '과종교증(hyperreligiosity)'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환자들은 모든 사건의 배후에 심오한 종교적 의도가 있다고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신과 교류한다고 주장했던 과거의 예언자 가운데 상당수가 측두엽 간질 환자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과종교증'은 '측두엽 간질'과 상관관계가 있다.
역사에 등장하는 예언자와 순교자, 그리고 한 종족을 이끌었던 지도자 중 일부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 '잔 다르크'가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에 백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천사장 '미가엘(Michael)'과 알렉산드리아의 '성 캐서린(Saint Katherine)', 그리고 '성 마가렛(Saint Margaret)'과 '성 가브리엘(Saint Gabriel)' 등 여러 천사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믿음이 너무도 확고하여, 프랑스 군인들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최근에 발견된 현상이 아니다. 1892년에 출간된 정신질환 관련 교과서에도 '종교적 감정'과 '간질병'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최초로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사람은 보스턴 재향군인병원의 신경과학자인 '노먼 게슈빈트(Norman Geschwind, 1926~1984)'였다. 그는 왼쪽 측두엽에서 전기신호가 과도하게 흐르는 간질 환자들이 종종 종교적 체험을 겪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1975년에 '뇌에 전기 폭풍이 불어닥치면 종교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신경화학자 '라마찬드란(1922~2001)' 박사에 의하면, 측두엽 간질 환자의 30~40%가 과종교증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을 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져 범우주적인 신의 존재를 느끼기도 한다. 예컨대 그들은 '선생님, 저는 드디어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신도 뜻도 이해가 갑니다. 이 우주에서 저의 위치가 어디인지, 이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측두엽 간질 환자들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그 누구보다 확고하게 믿는 경향이 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측두엽 간질 환자들은 신념이 너무 확고하여, 의사들도 혹시 다른 차원이나 평행우주를 보고 온 게 아닌지 듣는 사람도 헷갈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측두엽 간질 환자들을 분석한 끝에, 이들이 일상적인 단어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신(God)'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고 결론지었다. '과종교증'과 '측두엽 간질'의 상관관계가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3. 종교적 체험하기
3-1. 신의 헬멧
심리학자 '마이클 퍼싱어(Michael Persinger)'는 '경두개 자기 자극술(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을 적절히 이용하면 종교적 체험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퍼싱어' 박사는 뇌의 특정 부위에 '자기장(Magnetic Field)'을 방출하는 헬멧을 피험자에게 씌워주고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 헬멧을 '신의 헬멧(God Helmet)'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피험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부분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위대한 존재를 느꼈다고 대답했다. 뇌에 3분 동안 자극을 받은 피험자들은 그때의 느낌을 어떤 신성한 존재의 '현현(Manifestation)'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다만 개인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하나님이나 부처님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자비로운 존재나 경이로운 우주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이 효과는 헬멧만 쓰면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으므로, '종교적 체험'은 '인간의 뇌'와 어떻게든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3-2. 신 유전자
일부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게 종교적 성향을 부여하는 '신 유전자(God gene)'의 존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과거에 대부분의 집단이나 사회는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종교적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이 우리 게놈 안에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초기 인류 사회에서 종교가 생존확률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에는 전쟁과 자연재해가 빈번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은 생존과 직결하는 문제였고, 그 원천이 종교였다는 것이다.
3-3. 자기장을 이용하여 '종교적 신념'을 바꿀 수 있을까?
'마이클 퍼싱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기장(Magnetic Field)'을 이용하여 피험자의 '종교적 신념'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MRI 스캐너를 이용하면, 종교적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에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기록할 수 있을까?
'몬트리올 대학교(University of Montreal)'의 '마리오 뷰리가드(Mario Beuregard, 1962~)' 박사는 '카르멜 수녀회(1860년 이스라엘의 카르멜산에서 창립된 수녀회)'의 수녀 중 지원자 15명에게 헬멧을 쓴 채 MRI 스캐너에 들어가게 했다. 이들은 모두 신과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수녀들이었다. 원래 '마리오 뷰리가드' 박사의 목적은 수녀들이 신과 교류한다고 느낄 때, 뇌의 상태를 MRI로 찍는 것이었다. 하지만 MRI 스캐너 내부는 '자기 코일(Magnetic Coil)'을 비롯한 온갖 기계장치로 뒤덮여 있어서, 종교적 체험을 하기에는 그리 적절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수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과거에 겪었던 종교적 체험을 기억해 내는 것뿐이었다. 실험에 참가했던 한 수녀는 '신은 내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실험으로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MRI 스캐너 안에 들어갔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뇌 부위 | 뇌 부위의 역할 | 해석 |
미상핵 | 사랑의 감정과 학습능력을 관장하는 부위 | 수녀들은 조건 없는 사랑을 느낀다? |
뇌도 | 몸의 감각과 사회적 감각을 느끼는 부위 | 수녀들은 신에게 다가가면서 다른 수녀들과 유대감을 느낀다? |
두정엽 | 공간지각력을 관장하는 부위 | 수녀들은 신의 물리적 존재를 느낀다? |
'마리오 뷰리가드(Mario Beuregard)' 박사는 활성화된 뇌 부위가 너무 많아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뇌에 신호를 보내서 과종교증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을 증명하는 데에는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수녀들이 느꼈던 종교적 체험이 두뇌 스캔 데이터에 반영된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수녀들의 종교적 믿음에 영향을 주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수녀들은 '신이 내 머릿속의 라디오에 강림하셔서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며 자신의 신앙심을 재확인했다. 실험에 참가한 수녀들은 한결같이 '신이 인간의 뇌에 신성한 안테나를 만들어서 그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결론지었다. 뇌에서 영성을 찾을 수 있다면, 무신론자들은 종교라는 것이 '신성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수녀들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뇌를 스캔한 데이터가 신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확고한 '무신론자'로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도 자신의 종교관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의 헬멧'을 직접 써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과종교증은 측두엽 간질로 유발될 수 있고, 자기장을 통해 그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뇌에 자기장을 걸어서 종교관을 바꾸게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