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동(Teleportation)'이란 시간 및 거리와 무관하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나 물체를 순식간에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기는 '순간이동(Teleportation)'이 실현된다면, 현대 문명과 국가의 운명은 송두리째 달라질 것이다. 일단 자동차, 선박, 기차 등 현재 운용되고 있는 모든 운송수단과 이와 관련된 산업들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것이다. '순간이동'이 가능해지면 교통지옥을 뚫고 갈 필요도 없고, 생필품을 사러 시장에 갈 필요도 없다. 또 몸을 순간이동시키면 되므로, 휴가지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상관없다. 순간이동은 전쟁의 규칙도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아군의 병력은 적진의 후방으로 전송하여 급습을 시도하는 것을 물론이고, 적군을 순간이동으로 납치할 수도 있다.
0. 목차
- 양자역학에 의하면 '순간이동'은 가능하다.
- EPR 실험
- 양자적 얽힘에 의한 순간이동
- 양자적 얽힘이 없는 순간이동
- '순간이동'과 '양자컴퓨터'
- 인간은 오래전부터 '순간이동'을 상상해왔다.
1. 양자역학에 의하면 '순간이동'은 가능하다.
'아이작 뉴턴(Issac Newton, 1643~1727)'의 고전역학에 의하면 '순간이동(Teleportation)'은 불가능하다. 뉴턴의 물리학은 모든 물체가 작고 단단한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어떤 물체든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으며, 물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양자역학(Quantum Theory)'에 의하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1-1. 양자 도약(Quantum Leap)
고전역학은 200년 이상 동안 전 세계 물리학자들의 세계관을 지배해 오다가, 1925년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와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를 비롯한 양자역학의 창시자들에게 권자를 물려줘야 했다. 이들은 원자의 기이한 성질을 연구하던 중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이로부터 원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이 무렵에 일어났던 물리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리켜 '양자 도약(Quantum Leap)'라고 한다.
양자역학과 가장 인연이 깊었던 사람은 비엔나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였다. 그가 유도한 '슈뢰딩거 파동방정식(Schrodinger Wave Equation)'은 모든 입자들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방정식으로서, 지금도 물리학과 화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원리적으로는 '화학(Chemistry)'도 '슈뢰딩거의 방정식'에 기초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와 관련된 논문을 통해 '지난 세월동안 파동으로 간주되어왔던 빛이 입자적 성질을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빛을 '광자(Photon)'이라 불리는 에너지 덩어리로 간주하면 빛과 관련된 다양한 현상들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20년에 '슈뢰딩거'는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즉, 전자와 같은 입자들이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처음 지적한 사람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였는데, 그는 이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노벨상을 받았다.
1-2.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어느 날 '에르빈 슈뢰딩거'는 물리학자들을 모아놓고 입자의 파동성을 설명하다가 동료 물리학자인 '피터 디바이(Peter Debye)'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전자가 정말 파동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파동방정식을 만족하는가?" 뉴턴이 미적분학 체계를 완성한 뒤에 물리학자들은 파동의 행동양식을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슈뢰딩거'는 '피터 디바이'의 질문을 받은 후, 전자의 파동성을 서술하는 '파동 방정식(Wave Equation)'을 유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달에 슈뢰딩거는 휴가를 떠났고, 학교로 되돌아왔을 무렵에는 그 유명한 파동방정식이 완성되어 있었다. 19세기 중반에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마이클 패러데이'의 역장 개념을 도입하여 빛의 행동양식을 서술하는 '맥스웰 방정식'을 유도했던 것처럼, '에르빈 슈뢰딩거'는 '루이 드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에서 출발하여 전자의 파동성을 서술하는 '파동방정식'을 유도해낸 것이다.
'슈뢰딩거'는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 원자에 자신의 방정식을 적용했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전의 물리학자들이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알아낸 '수소 원자들의 다양한 에너지준위'가 자신의 파동방정식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다. 또한 그는 '닐스 보어'가 제안했던 원자모형이 틀렸다는 것도 알아냈다. '보어의 원자 모형'에 의하면 전자는 원자핵의 주변을 빠른 속도로 공전하고 있지만,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는 원자핵을 에워싼 파동의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
'슈뢰딩거'의 발견은 저 세계 물리학계에 일대 충격을 던져주었다. 갑자기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전자의 궤도를 구성하는 파동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실험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에너지 준위(Energy Level)'를 이론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3.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그런데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전자(Electron)'가 파동으로 서술된다면, 대체 무엇이 파동으로 나아간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처음으로 답을 제시한 사람은 '막스 본(Max Born, 1882~1970)'이었다. 그는 파동 주체가 '확률(Probability)'라고 생각했다. 이 확률 파동은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입자임이 분명하지만, 그 전자가 발견될 확률은 슈뢰딩거의 파동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특정 지점에서 파동 값이 크다는 것은 그 지점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양자역학에 '확률'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전에 물리학자들은 '행성', '혜성', '대포알' 등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궤적은 아무런 오차없이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계에 내재하는 불확정성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확고한 진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이전에 상식으로 통하던 기본 법칙들이 전혀 맞지 않는다. 전자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으며,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도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가히 혁명적이었고 논쟁의 여지가 다분했지만, 어쨌거나 그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불확정성 원리' 덕분에 화학 법칙을 비롯한 수많은 수수께끼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전자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화학의 기초 원리이기도 하다. 태양계 모형에 의하면, 전자는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원자핵 주변을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하지만 태양계 모형과 실제 원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주 공간에서 두 개의 태양계가 충돌한다면 모든 질서가 붕괴되면서 행성들은 머나먼 우주로 흩어질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원자가 충돌하면 안정적인 분자가 형성되면서 전자를 공유하게 된다.
화학 교과서에서는 이 현상을 '문질러서 넓게 퍼진 전자'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두 개의 원자를 연결하는 축구공과 비슷하다. 하지만 공유된 전자는 결코 두 원자 사이에 퍼져 있지 않다. 이 축구공은 넓게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원자와 이웃한 원자의 경계 부근에서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면서 결합 상태를 유지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도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전자 덕분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하고 있다. 만약 양자역학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몸은 당장 소립자단위로 분해되고 말 것이다.
1-4. 양자 점프(Quantum Jump)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기이한 사건이라고 해도 발생 확률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처럼 기이하면서도 심오한 양자이론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유쾌한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은하르 빠르게 여행하는 수단으로 '무한 불가능 비행(Infinite Improbability Drive)'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것은 '초공간(Hyperspace)'을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별과 별 사이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놀라운 장치'로서, 발생 확률이 지극히 낮은 사건을 강제로 일어나도록 만든다는 양자역학적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가까운 별로 이동하고 싶으면 '몸이 분해된 후 그 별에서 재조립될 확률'을 높이면 된다. 이 간단명료하고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바로 '순간이동(Teleportation)'이다.
'양자 점프(Quantum Jump)'는 원자 규모의 세계에서는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을 인간과 같은 크기의 거시적 물체에서 양자 점프를 느낄 수는 없다. 우리 몸속의 전자들도 '양자 점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수가 너무 많아서 전체적으로 평균을 내면 양자적 효과가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세계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순간이동'은 원자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거시적 물체가 자연적으로 순간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하려면 우주의 나이만큼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2. EPR 역설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법칙을 이용하여 '공상과학소설'이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덩치가 큰 물체를 인위적으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킬 수는 없을까? 놀랍게도 현대 과학의 답은 '가능하다.'로 판명되었다. '양자 순간이동'의 핵심은 1935년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그의 연구 동료였던, '보리스 포돌스키(Boris Podolsky), '네이선 로젠(Nathan Rosen)'이 발표했던 논문에 명시되어 있다. 이들은 물리학에 도입되 확률의 개념을 추방하기 위해, 'EPR 역설'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EPR이라는 역설의 명칭은 논문 저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1. 양자 얽힘
두 개의 전자가 동일한 '모드(Mode)'로 진동하면, 다시 말해 '결맞음(Coherence)' 상태에 있으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도 파동적 동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두 전자가 몇 광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들 사이를 탯줄처럼 연결해 주는 '슈뢰딩거 파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이 파동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중 한쪽 전자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정보의 일부가 '즉각적으로' 다른 전자에게 전달되는데, 이것을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고 한다. 곁맞은 진동을 하고 있는 입자들은 이와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맞음 상태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는 두 개의 전자를 상상해 보자. 모든 전자는 회전처럼 팽이처럼 자전하고 있는데, 이 특성은 '스핀(Spin)'이라는 물리량으로 표현되며, '스핀'의 방향은 '업(up)'과 '다운(down)'으로 구별할 수 있다. 두 전자의 총 스핀 값이 0이고 한 전자의 스핀이 '업(up)'이라면, 다른 전자의 스핀은 자연히 '다운(down)'으로 결정된다. 양자이론에 의하면 관측을 행하기 전에, 전자의 스핀은 업이나 다운이 아니라, 업과 다운이 섞여있는 희한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관측이 행해지면 '파동함수(Wave Function)'가 붕괴되면서 '업'과 '다운' 중 하나로 결정된다.
이제 둘 중 한 전자의 스핀을 관측하여 '업'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나머지 전자를 보지 않아도 스핀이 다운이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두 전자가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해도,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이 밝혀지는 순간 두 번째 스핀은 즉각적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두 번째 전자의 스핀에 관한 정보가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셈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전자의 파동함수가 결맞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양자적으로 얽힌 상태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통해 두 전자의 파동함수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 한쪽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영향이 즉각적으로 다른 쪽에 전달된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원거리 유령 작용(spokky action at distance)'라고 불렀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이 논리를 이용하여 양자역학이 틀린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가 '국소적(local)'이어서 우주의 한 부분을 교란시키면 그곳을 중심으로 영향이 파급되어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근본적으로 '비국소적(nonlocal)'인 특성이 있으며, 한 곳에 가해진 교란은 다른 곳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이 '원거리 유령 작용'이 말도 안되는 결과라고 치부한 것이다. 이리하여 평소에 양자역학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2-2. 벨의 실험
아인슈타인의 'EPR 실험'은 양자역학에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1964년에 물리학자 '존 벨(John Bell)'이 EPR 역설을 실험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학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 실험은 흔히 '벨의 실험'이라고 부르지만 'EPR 실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EPR이었고, 그 진위 여부를 검증한 사람은 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EPR식 실험을 수행하면 두 전자의 스핀 사이에 어떤 '산술적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중요한 것은 이 '산술적 관계'가 어떤 이론을 채택했는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만약 '숨은 변수 이론(아인슈타인 등이 양자역학을 해석한 방법)'이 옳다면, 두 전자의 스핀은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존 벨'의 실험 결과에 따라 '양자역학'의 진위 여부가 결정되는 운명적인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존 벨'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 정교한 실험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는 양자역학의 완벽한 승리였다.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 양자역학이 옳다는 것이 계속 증명되었다.
1980년에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알랭 아스펙(Alain Aspect)'과 그의 동료들은 칼슘 원자에서 방출된 광자의 스핀을 13m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감지기로 관측하여 다시 한번 양자역학이 옳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 '정보(information)'가 정말로 '광속(Speed of Light)'보다 빠르게 전달됨을 확인한 것이다.
1997년에는 11km 간격으로 설치된 감지기를 이용하여 동일한 실험이 실행되었는데, 이들 모두 양자역학이 옳다는 쪽으로 결론지어졌다. 어떤 특정한 형태의 정보는 정말로 빛보다 빠르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2-4. 'EPR 전송장치'로 '유용한 정보'를 보낼 수는 없다.
그러면 우주의 한계속도를 천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이 틀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전달되긴 했지만, 그 정보라는 것이 무작위적이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우주 반대편에 있는 전자의 스핀이 '다운'이라는 것은 유용하지 않은 정보이다. 전자의 스핀은 측정할 때마다 무작위로 달라지기 때문에, 'EPR 전송 장치'는 '무작위 신호(Random Signal)'만을 전송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빛보다 빠르게 보낼 수는 있으므로, 우주 반대편에 있는 은하의 정보를 즉각적으로 수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유용한' 정보를 이런 식으로 교환할 수는 없다. 이런 방법으로는 예컨대 '모스부호'나 '실제 메시지', '주가 지수',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전달할 수는 없다.
존 벨'은 이 결과를 '베텔스만(Bertelsman)'이라는 수학자의 경험담에 종종 비유하곤 했다. 베텔스만은 매일 아침마다 한쪽 발에는 초록색 양말을, 다른 쪽에는 푸른색 양말을 신고 나가는 버릇이 있었는데, 양말의 좌우 관계는 때마다 무작위로 결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이 그의 왼쪽 발에 푸른색 양말이 신겨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면, 당신은 그의 오른쪽 발에 신겨 있는 양말의 색상 정보를 '빛보다 빠르게' 접수할 수 있따. 그러나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정보를 이런 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알아내는 것'과 '전송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벨의 실험(EPR 실험)'이 빛보다 빠른 정보 입수를 허용한다고 해도, 텔레파시를 빛보다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는 것으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우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2-5. 우주적 연결망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과 '우주 저편에 있는 원자'들은 '우주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에 있다. 우주의 모든 만물은 빅뱅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탄생했으므로,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모종의 '우주적 연결망(Cosmic web)'을 통하여 우주 저편에 있는 원자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입자들은 천문학적 거리에 걸쳐 일종의 탯줄과 같은 '파동함수'로 연결되어 있는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 한쪽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다른 한쪽에 그 영향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며, 한 입자에 관한 정보가 알려지면 다른 입자의 정보도 즉각적으로 알려진다.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한 쌍의 입자들은 그들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다 해도 마치 하나의 물체처럼 행동한다.
빅뱅이 일어날 때 모든 입자의 파동함수는 결맞음 상태에 있었으므로, 이들은 130억 년이 지난 지금도 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파동함수의 일부와 교란되면 파동함수의 일부도 영향을 받게 된다.
3. 양자적 순간이동
3-1. 순간이동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1993년이 되자, 이 모든 상황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IBM의 과학자 '찰스 베넷(Charles Bennett)'은 EPR 실험을 이용하여 원자 규모에서 순간이동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입자에 내재되어 있는 모든 정보를 전송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그 후로 물리학자들은 '광자(photon)'를 비롯한 세슘 원자 하나를 통째로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DNA 분자나 바이러스 등도 순간이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적 순간이동(Quantum Teleportation)'은 EPR 실험의 기이한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 환상적인 기술은 두 개의 원자 A와 C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목적은 원자 A에 내재된 정보를 원자 C에게 전송하는 것이다. 여기에 C와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또 하나의 전자 B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즉, B와 C는 결맞음 상태에 있다. 이제 A와 B가 접촉하여 A의 정보가 B에게 전달되면, A와 B는 양자적으로 얽힌 관계가 된다. 그런데 B와 C는 처음부터 얽힌 관계였으므로, 위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자 A의 정보가 자동으로 원자 C에게 전달된다. 이로써 A와 C는 완전히 동일한 원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A가 C로 순간이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자 A에 들어있는 정보는 파괴되기 때문에, 일단 순간이동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의 복사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A는 더 이상 A가 아니다. 이는 곧 사람을 순간이동시킬 때, 원본에 해당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 담겨 있는 모든 정보가 다른 곳에 전송되었으므로, 반드시 죽었다고는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원자 A가 원자 C로 직접 이동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원자 자체가 이동한 것이 아니라, '스핀(Spin)'이나 '편광(Polarization)' 등 그 안에 담겨 있는 정보가 이동한 것이다. 물론 원자 A가 분해되었다가 C가 있는 곳에서 재조립된 것도 아니다. A에 담겨 있는 정보만 C로 이동한 것이다.
3-2. 광자를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순간이동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여러 연구팀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 1997년에 인스브루크 대학의 연구팀이 최초로 자외선 광자를 양자적으로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998년에는 칼텍의 연구팀이 더욱 정교한 실험으로 '광자(Photon)'를 순간이동시켰다.
2003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과학자들이 광케이블을 이용하여 광자를 약 2km 거리까지 순간이동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파장이 1.3mm인 광자를 순간이동시켜서 파장 1.55mm 짜리 광자를 얻어냈는데, 이들 사이는 기다란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실험에 참여했던 '니콜라스 기신(Nicolas Gisin, 1952~)'은 "아마도 내가 죽기 전에 원자가 아닌 분자가 순간이동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커다란 물체를 이동시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2004년에는 '비엔나 대학(University of Vienna)'의 물리학자들이 다뉴브강 지하에 깔려 있는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광자를 600m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케이블은 다뉴브강 바닥의 하수구 밑을 따라 총 800m 길이로 매설되어 있었으며, 전송 및 수신장치는 다뉴브강의 양쪽 가에 설치되었다.)
3-3. 원자를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까지는 순간이동의 대상이 광자에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실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광자를 이동시키는 기술만으로는 실질적으로는 물체를 순간이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에 광자가 아닌 '원자(Atom)'를 양자적으로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하여, 현실적인 순간이동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표준 기술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 and Technology)'의 물리학자들은 세 개의 '베릴륨 원자(Be, 원자번호 4번)'를 양자적으로 얽힌 상태로 만든 후 한 원자의 물리적 특성을 다른 원자로 전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의 실험 결과는 '네이처(Nature)'지에 소개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후에 다른 연구팀도 동일한 방법으로 칼슘 원자를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3-4. 거시적인 물체를 순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2006년에는 드디어 거시적인 물체의 순간이동이 구현되었다. 코펜하겐에 있는 '닐스 보어 연구소(Niels Bohr Institute)'와 독일의 '막스 프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의 물리학자들은 수조×조 개의 세슘 원자로 이루어진 기체와 '광자빔(light beam)'을 얽힌 상태로 만든 후, 레이저 펄스에 담긴 정보를 약 45cm 떨어져 있는 세슘 원자로 전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연구에 참가했던 '유진 폴치크(Eugene Polzik)'는 '역사상 처음으로 빛과 원자 사이의 양자적 순간이동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였다.
3-5. 해결해야할 문제
양자적 순간이동의 응용분야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 첫 번째 문제는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원본에 해당하는 물체가 파괴되기 때문에 여러 개의 복사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오직 하나의 복사본만을 만들어낼 수 있다.
- 두 번째 문제는 양자적 순간이동에도 상대성이론이 적용되기 때문에 물체를 빛보다 빠르게 이동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물체 A를 물체 C로 이동시키려면 이들을 연결하는 B라는 매개체를 통해야 하는데, B가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동 과정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
- 세 번째 문제는 양자컴퓨터가 직면했던 문제와 동일하다. 즉, 순간이동과 관련된 모든 물체들이 양자적 결맞음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주변 환경에 의해 교란되면 순간이동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류는 바이러스를 통째로 순간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4. 양자적 얽힘이 없는 순간이동
2007년에는 일단의 물리학자들이 '양자적 얽힘이 없는 순간이동법'을 제안하여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양자적 순간이동(양자적 얽힘이 있는 순간이동)'에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양자적으로 얽힌 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문제가 일거에 해결됨으로써 순간이동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호주의 브리즈번에 있는 '양자 원자 광학연구센터(Australian Research Council Centre of Excellence for Quantum Atom Optics)'에서 순간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물리학자 '애스턴 브래들리(Aston Bradley)'는 5000개의 입자들을 '양자적 얽힘' 없이 순간이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애스턴 브래들리'는 자신의 기술이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순간이동에 거의 근접했다고 주장한다.
'브래들리'는 자신이 고안한 순간이동을 기존의 양자적 공간 이동과 구별하기 위해 '고전적 순간이동(Classical Teleportation)'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고안한 순간이동은 '양자 얽힘'과는 무관하지만, 여전히 양자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전적 순간이동'이란 명칭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4-1.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을 사용한다.
'애스턴 브래들린'의 순간이동은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물질인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BEC: Bose-Einstein condensate)'을 이용한 것이다. 자연에서 온도가 가장 낮은 곳은 우주 공간으로서, 현재 약 3K 정도이다. 이것은 빅뱅이 일어났을 때 방출된 에너지의 잔해로서, 지금도 우주 전역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나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의 온도는 10-15K에 불과하다. 이런 온도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만 가능하다.
어떤 물질의 온도를 절대온도 0K에 가깝게 낮추면 구성원자들이 '바닥 상태(최저에너지 상태)'로 떨어지고, 이들 모두가 동일한 '모드(Mode)'로 진동하게 된다. 즉, 온도가 극히 낮아지면 원자들이 자연스럽게 '결맞음(Coherence)' 상태로 통일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모든 원자들의 파동함수가 하나로 겹쳐진다. 따라서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은 모든 원자들이 동일한 모드로 진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처럼 행동한다.
이 신기한 물질은 1925년에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사티엔드라나드 보즈(Satyendranath Bose)'에 의해 예견되었으나,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95년에 와서야 MIT 공과대학의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
4-2.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을 이용한 순간이동의 원리
브래들리와 그의 연구 동료들이 고안한 '순간이동 장치'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루비듐(Rb, 원자번호 37번)'을 초저온으로 냉각 시켜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BEC)' 상태로 만든 후, 또 다른 루비듐으로 이루어진 '물질빔(Material Beam)'을 BEC에 주사한다. 그러면 빔 속에 있는 원자들이 최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면서 여분의 에너지가 '광펄스(Light Pulse)' 형태로 방출되는데, 이것을 광섬유 케이블로 전송한다. 놀랍게도 이 '광선빔(Light beam)'은 '원래의 물질 빔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물질 빔의 모든 원자의 위치와 속도 정보)'를 담고 있다. 이것이 다른 BEC를 때리면, '광선빔'이 다시 '물질빔'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순간이동법은 '양자 얽힘'과 무관하지만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 방법은 BEC의 특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실험실에서 BEC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게다가 BEC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매우 기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BEC를 관측하면, 놀랍게도 원자 규모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양자적 행동양식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 물리학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4-3. 원자 레이저
'BEC(보즈-아인슈타인 응축물)'를 이용하면 '원자 레이저(Atom Laser)'를 만들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레이저(Laser)'는 결맞음 상태에서 진동하는 광자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장치이다. 그런데 BEC에서는 광자가 아닌 원자들이 동일한 진동을 하고 있으므로, 이로부터 원자들로 이루어진 결맞는 빔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기존을 레이저를 대체하는 '원자 레이저(Atom Laser)'나 '물질 레이저(Matter Laser)'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레이저의 상업적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므로, 원자 레이저가 상용화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러나 BEC는 절대온도 0K 근처의 극저온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상용화되기는 어렵다.
4-4. 순간이동 기술은 언제 실현되는가?
그러면 사람을 순간이동시키는 기술을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복잡한 분자 정도의 정보는 순간이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DNA 분자나 바이러스의 순간이동도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순간이동시키는 것도 원리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광자(Photon)'의 진동과 원자의 진동을 일치시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최첨단 기술에 속한다. 그러므로 사람과 같은 거시적 물체를 양자적 결맞음 상태로 만드는 것은 한동안 그림의 떡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적인 물체를 마음대로 순간이동시키려면 적어도 수백 년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5. '양자컴퓨터'와 '순간이동'
'양자적 순간이동(양자적 얽힘에 의한 순간이동)'의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의 개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두 기술을 동일한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컴퓨터를 밀어내고, 세계 경제도 양자컴퓨터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양자컴퓨터의 상업적 응용을 염두에 두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1.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훨씬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컴퓨터는 모든 계산을 0과 1로 이루어진 '비트(bit)' 단위로 수행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 사이의 숫자로 이루어진 '큐비트(Qubit)'를 사용하기 때문에 계산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예컨대 원자 하나가 자기장 속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 보자. 원자는 팽이처럼 회전하고 있으며, 스핀은 '업(up)'이나 '다운(down)'를 향하고 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원자의 스핀은 '업(up)' 또는 '다운(down)'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원자의 스핀은 '업(up)'과 '다운(down)'의 합으로 표현된다. 팽이에 비유하자면 오른쪽으로 돌고 있으면서 왼쪽으로 돌고 있는 셈이다. 양자역학에서 모든 물체는 '모든 가능한 상태의 합'으로 표현된다.
이제 스핀의 방향이 모두 동일한 원자들이 자기장 속에서 줄을 지어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에 레이저빔을 쪼이면 원자가 빔을 튕겨내면서 일부 원자의 스핀이 바뀌게 될 것이다. 레이저빔과 반사된 레이저빔의 차이를 관측하면 스핀의 변화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양들을 양자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5-2. 결맞음 상태를 구현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용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제작하려면 수백~수백만 개의 원자들이 동일한 모드로 진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결맞음 상태를 문제만 해결되면, 순간이동과 양자컴퓨터가 모두 가능해진다. 하지만 결맞음 상태를 실험실에서 구현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게 결맞음 상태를 만들었다고 해도, 아주 미세한 진동이 개입하면 원자의 결맞음 상태가 순식간에 붕괴되어 양자컴퓨터를 망가뜨릴 것이다. 이것은 '순간이동'과 '양자컴퓨터'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6. 인간은 오래전부터 '순간이동'을 상상해왔다.
6-1. 성경에서의 '순간이동'
'순간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빌립(Philip)'이 '가자(Gaza)'에서 아스돗(Azotus)'으로 순간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에티오피아의 실권자)'가 말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겠느냐." 그리하여 '병거(전쟁에 쓰이는 수레)'를 잠시 멈추고' 빌립(Philip)'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들어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물에서 올라갈 때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다. 그 후로 내시는 빌립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사라진 빌립은 '아스돗'에 홀연히 나타나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카이사리아(Caesarea)'에 도착했다. -사도행전 8장 36~40절-
6-2. 마술에서의 '순간이동'
마술에서도 순간이동이 자주 나온다.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고, 옷소매에서 카드를 꺼내고, 동전을 사라지게 한 후 누군가의 귀에서 사라진 동전을 꺼내기도 한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코끼리를 사라지게 하는 마술도 있다. 몸무게가 수 톤이나 나가는 코끼리를 철창 속에 가둬놓고 천으로 덮은 뒤 마술봉을 살짝 휘두르면 순식간에 코끼리가 사라진다. 관객들에게는 마치 코끼리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 황당무계하여 할 말을 잃는다.
물론 진짜로 코끼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마술의 트릭은 거울에 있다. 코끼리가 갇혀 있는 우리는 여러 개의 넓적한 창살로 만들어져 있는데, 각 창살 면에는 얇고 기다란 거울이 부착되어 있고 모든 창살은 회전문처럼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마술을 시작할 때는 관객에게 거울이 보이지 않도록 모든 창살을 정렬해 놓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관객의 눈에 코끼리가 보인다. 그러나 거울이 부착된 창살을 일제히 45° 돌리면, 관객들은 우리 속에 있던 코끼리 대신 빈 공간을 보게 된다. 코끼리는 여전히 우리 속에 있지만, 거울에 비친 영상 때문에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6-3. '순간이동'을 다룬 최초의 공상과학소설
'순간이동'을 다룬 최초의 SF소설은 '에드워드 페이지 미첼(Edward Page Mitchell, 1852~1927)'이 1877년에 발표한 '몸 없는 인간(A man Without a Body)'일 것이다. 한 과학자가 고양이의 몸을 원자 단위로 분해한 후, 전신을 통해 전송하는데 성공한다. 이 실험에서 자신감을 걷은 그는 자신의 몸을 전송하다가, 배터리가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머리만 전송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6-4.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도 '순간이동'에 심취한 작가였다. 그는 한동안 '셜록 홈즈' 시리즈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을 죽여 버렸다. '마지막 사건' 편에서 셜록 홈즈가 그의 정적인 '모라이어티' 교수와 함께 폭포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열광적인 팬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아서 코난 도일'은 결국 주인공을 되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추리소설에서 셜록 홈즈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챌린저 교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시리즈를 집필했다. '셜록 홈즈'와 '챌린저 교수'는 위트와 날카로운 눈썰미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지만, 사실 두 인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셜록 홈즈'는 냉정하고 논리적인 추리로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반면, '챌린저 교수'는 순간이동이 난무하는 불가사의한 암흑의 세계를 추적하는 것이 주특기 이다.
1927년에 발표된 소설 '파쇄 기계(Disintegration Machine)'에서 '챌린저 교수'는 사람을 분해한 후 다른 장소에서 재조립하는 기계를 발명한 한 남자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 기계를 손에 넣은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분해할 수 있다. 결국 '챌린저 교수'는 '파쇄 기계'를 발명한 당사자를 기계 속에 넣고 분해한 후 재조립하지 않는다.
6-5. 영화 '파리(The Fly)'에서의 '공간 이동'
1958년에 개봉된 영화 '파리(The Fly)'에서는 순간이동이 잘못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 과학자가 '순간이동' 장치를 발명한 후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데, 이동 장치 속에 파리가 한 마리 들어와서 파리와 함꼐 전송된다. 순간이동에 성공한 과학자는 처음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그의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이 파리의 몸과 섞이면서 점차 파리를 닮은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1986년에 '제프 골드브럼(Jeff Goldblum, 1952~)' 주연으로 리메이크되었다.
6-6. 영화 '스타트렉'에서의 '순간이동'
본격적으로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TV 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스타트렉'의 작가인 '진 로든베리(Gene Roddenberry)'가 '스타트렉' 시리즈에 순간이동을 도입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어 있다고 한다. 드라마의 내용상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Enterprise)'는 여러 행성을 여행하면서 수시로 이착륙을 해야 하는데, 제작 예산이 부족하여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모든 장면은 '파라마운트(Paramount)'사의 스튜디오 안에서 촬영되어야 했으므로, '진 로든베리'는 번거로운 이착륙 대신 모선을 공중에 띄워놓은 채 승무원을 '순간이동'시킨다는 해결책을 떠올린 것이다.
그 후로 과학자들은 '순간이동'의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누군가를 순간이동시키려면 그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전자의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의 비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스타트렉'의 제작진들은 궁리 끝에 '하이젠베르크 보정기(Heisenberg Compensator)'라는 도구를 순간이동에 도입하여, 양자역학적 효과를 상쇄시킨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하이젠베르크 보정기'도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스타트렉'에 쏟아진 과학자들의 비판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