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 사이에는 어떤 경계선이 있을까? 바이러스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세포와 바이러스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생기지 않는 경우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세균보다 큰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세포(Cell)'는 생명을 지탱하는 메커니즘이며, '바이러스'는 생명이 아니라는 종래의 정의가 흔들리고 있다.
0. 목차
-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
- 바이러스의 정의를 흔드는 신종이 발견되었다.
- 바이러스가 먼저인가? 세포가 먼저인가?
- 유전자의 수평 이행
- 인간 게놈 가운데 약 8%는 '바이러스의 잔해'
- '생명의 정의'에 관한 통일된 견해는 없다.
1.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
'바이러스(Virus)'라고 하면, '병원체(숙주에 기생하여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바이러스는 수천 종 이상 발견되었으나, 연구되고 있는 것은 주로 사람이나 가축에 병원성을 보이는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Virus)'라는 말도 라틴어의 '독(Poison)'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현재 알려져 있는 것은 '숙주(바이러스에 기생하는 생물)'에 해를 끼치는 바이러스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이러스는 오히려 소수이고, 병원성을 가지지 않고 있는 바이러스도 많이 존재한다. 인류는 아직 바이러스 가운데 극히 소수만을 알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몇 종의 바이러스가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면 도대체 바이러스란 도대체 무엇일까? 바이러스는 생명일까, 아니면 단순한 물질일까?
대장균 같은 '세균(핵을 갖지 않은 단세포의 원핵생물)'과 바이러스를 비교해 보자.
- 유전: 세균과 바이러스는 모두 '유전자(유전 정보를 담당하는 실체)'로 '핵산(Nucleic Acid)'이라는 고분자를 이용한다. 그러나 세균을 포함한 '세포성 생물(세포를 가지는 생물)'은 유전자로서 DNA를 사용하며, 바이러스에는 유전자로서 DNA를 사용하는 'DNA 바이러스'와 RNA를 사용하는 'RNA 바이러스'가 있다. 유전자로서 RNA를 이용하는 것은 바이러스뿐이다.
- 구조: 바이러스는 핵산 주위를 단백질의 껍질이 덮은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그 바깥쪽에 '인벨롭(Envelope)'이라는 막을 가진 것도 있다.
- 크기: '바이러스(Virus)'와 '세균(Bacteria)'의 차이 중 하나는 크기이다. 많은 세균이 크기 1μm 정도인 데 비해, 바이러스는 보통 그 10~10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세균은 광학 현미경으로 볼 수 있으나, 바이러스는 지나치게 작아서 일반적으로 광학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다. 바이러스를 보려면 '전자 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1-1. 증식 방식
증식 방식도 중요한 차이이다. 일반적으로 세균은 단독적으로 세포 분열로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단독으로 증식할 수가 없고, 숙주인 세포에 기생해야 비로소 증식할 수 있다. 이 점을 중시해, 바이러스를 생명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과학자들도 많은 것 같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세포 안에 침입해, 세포의 시스템을 빼앗는다. 그리고 세포에 스스로 '부품'을 만들도록 해, 수천 개의 자손을 만들어 낸다. 이때 병원성을 가진 바이러스는 숙주인 세포를 파괴한다.
'에이스 바이러스(HIV)' 등이 속하는 '레트로 바이러스(Retro Virus)'는 '역전사 효소'를 이용해 증식한다.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란 RNA에서 DNA를 합성하는 효소이다. DNA에서 RNA를 합성하는 것은 '전사(Transcription)'라고 한다. '레트로 바이러스'가 숙주의 세포에 감염하면, 바이러스의 RNA가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그 후 바이러스의 'RNA'와 '역전사 효소'에서 바이러스 유래의 DNA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숙주 세포핵 안에 있는 DNA에 편성된다. 이 시점에서 레트로 바이러스는 숙주인 DNA와 일체화한다.
숙주인 DNA에 편성된 바이러스 유래의 DNA는 '프로바이러스(Provirus)'라고 한다. 이 프로바이러스의 유전 정보에서 레트로바이러스의 부품이 만들어진다. 프로바이러스 상태의 바이러스는 단순한 핵산 분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을 보아도, 바이러스는 세포를 가진 세포와는 크게 다르다.
특징 | 바이러스 | 세균 |
유전 | DNA 또는 RNA | DNA |
구조 | 단백질 껍질이 덮은 구조, 그 바깥에 Envelope라는 막을 가진 것도 있음 | 세포성 생물 |
크기 | 0.02~0.3μm 정도 | 0.2~10μm 정도 |
증식 방식 | 숙주에 기생해 증식 | 단독 증식 |
2. 바이러스의 정의를 흔드는 신종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를 살펴보았으나, 이 기준을 애매하게 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이코플라스마(Mycoplasma)' 등의 소형 세포성 생물보다 큰 '미미바이러스(Mimivirus)'이다.
2-1. 미미바이러스의 크기
'미미바이러스'는 알려져 있는 것 중에 최대의 바이러스이며, 크기는 무려 0.65μm나 된다. 미미바이러스는 2003년, 단세포생물인 아메바에 감염하는 바이러스로 발견되었다. 실은 1992년에 이미 발견되 있었으나, 당초에는 세균이라고 생각되었다. 꽤 컸다는 점과, 세균의 분류에 사용되는 염색 방법인 '그람 염색법(Gram Staining Method)'으로 염색하는 등으로 판단했을 때 바이러스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여과기(Filter)'를 통과하기 때문에 '여과성 병원체'라고도 하지만, '미미바이러스'는 필터를 통과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여과기(Filter)'의 구멍 크기는 약 0.2μm정도이다. 광학 현미경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2-2. 미미바이러스의 유전자 수
바이러스는 증식하는 데 숙주인 세포를 이용하므로, 일반적으로 유전자의 수가 적어도 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유전자에서는 하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감기 바이러스는 8개의 유전자만 가지고 있으며, D형 간염 바이러스에 이르면 1개의 유전자만 가진다. 한편, '세포성 생물' 가운데 게놈 크기가 가장 작은 부류에 속하는 '마이코플라스마'는 269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미미바이러스(Mimvirus)'의 게놈 크기는 마이코플라스마의 약 2배나 된다. 미미바이러스가 가진 유전자 후보의 수는 911개이며, 이것은 종래 바이러스의 최댓값의 2배 가까운 수이다.
게다가 미미바이러스는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등 바이러스의 증식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세포성 생물만 가진다고 생각되었던 유전자를 다수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전자가 어떤 형태로 미미바이러스에 이용되고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 밖에도 미미바이러스는 '세포성 생물'에 가까운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의 연구 진전이 주목되고 있다.
3. 바이러스가 먼저인가? 세포가 먼저인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약 38억 년 전에 탄생한 공통의 선조에서 진화해 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바이러스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바이러스의 기원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으나, 30억 년 이상 전에는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생물은 크게 '진핵생물', '진정세균(일반적인 세균)', '고세균(열수나 강산성 등의 환경에 서식하는 세균)'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 그룹 모두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 바이러스에는 단백질의 입체 구조 등에 유사성이 있으며, 공통의 선조 바이러스가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세 가지 생물 그룹이 갈라진 약 30억 년 전에는 이미 바이러스가 존재했다고 보인다.
어떻게 바이러스가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이 있다.
- '바이러스'가 '세포성 생물'보다 먼저 탄생했다는 설명
- '바이러스'가 '세포성 생물'보다 나중에 탄생했다는 설명
3-1. RNA 월드 가설
'바이러스는 세포성 생물보다 먼저 탄생했다.'는 설명은 생명 탄생의 유력한 가설인 'RNA 월드(RNA World)' 가설과 관계되어 있다. 현재의 세포성 생물은 DNA를 유전자로 이용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생물이 탄생하기 전에 RNA만을 이용해 자기 증식하는 원시 생명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RNA 월드 가설'이다. RNA 생물은 그 후 현재의 '레트로바이러스'가 가진 것 같은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를 사용해 DNA를 만들었다. 그 결과, 유전자의 역할을 RNA에서 DNA로 건내져, 현재로 이어지는 'DNA 월드'가 탄생했다고 생각된다. '바이러스'가 '세포성 생물'보다 먼저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레트로 바이러스'가 'RNA 월드'를 전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RNA 월드 가설'에는 반론도 있다. 세포 없는 바이러스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의 바이러스는 숙주 생물의 시스템을 매우 잘 이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포성 생물 이전에 바이러스가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연구자도 많은 것 같다.
3-2. '레트로트랜스포존'이 바이러스의 기원이다?
'RNA 월드 가설'보다 더욱 유력하다고 간주되는 것은 '바이러스가 세포성 생물보다 나중에 탄생했다'는 설이다. 이 설은 우리들 세포 안에도 있는 '움직이는 유전자'인 '트랜스포존(Transposon)'과 관계하고 있다. '움직이는 유전자'란 DNA 분자 안에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DNA 단편이다. '움직이는 유전자'의 일종인 '레트로트랜스포존(Retrotransposons)'은 먼저 거푸집으로 해서 RNA를 만들고,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과 같은 DNA 단편을 만들어 낸다. 이 복제된 DNA 단편이 분자 외의 장소에 삽입된다.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이른바 'copy and paste(복제와 붙임)'로 자기 자신을 복제를 게놈 안에 증식해 간다. '레트로트랜스포존(Retrotransposons)'과 '레트로 바이러스(Retro Virus)'는 모두 '역전사 효소'를 가지고 있는 등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이 설에서는 '바이러스'는 '움직이는 유전자' 세포 밖으로 나가는 성질을 획득한 결과 탄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3-3. 바이러스에는 여러 가지 기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세포성 생물'보다 먼저 탄생했는지 나중에 탄생했는지는 아직 확실히는 모르지만, 위에 소개한 어느 쪽 설도 '바이러스와 '세포성 생물'이 친척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러나 미지의 바이러스가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되며, 바이러스 세계의 전체 모습은 파악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바이러스 종의 진화 계통에 관해서는 아직도 미지의 부분이 많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단일의 공통 선조가 있는지도 확실히 모른다. 어쩌면 바이러스에는 여러 가지 기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4. 유전자의 수평 이행
2003년에 인간 게놈의 해독이 완료되었으며, 현재는 다양한 생물의 게놈 데이터도 축적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게놈을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유전자는 이제까지 부모에게서 '수직 방향'으로 전해진다고 생각되었으나, 다른 생물종 사이에서도 '유전자의 수평 이행'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감기 바이러스'는 '조류'나 '포유류'에 감염한다. 바이러스는 종을 넘어 감염하므로, 이런 경우 '유전자가 '수평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고조보리 다카시' 교수는 다수의 컴퓨터를 연결해 약 200종의 세균 게놈을 모두 적용시켜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랬더니 세균 게놈의 약 15%가 종을 넘어 '외부'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병원성 대장균 O157의 독성은 이질균 독성의 유전자가 대장균에 '수평 이행'해 생겼으리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유전자의 수평 이행'에 대해서는 아직 수수께끼가 많으나, 바이러스가 매개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숙주 세포에 들어간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과정에서 숙주의 유전자를 끌어들여, 그 바이러스가 다른 종의 생물에 기생했을 때, 외래성 유전자를 새로운 숙주의 게놈에 조합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바이러스를 매개로 한 '유전자의 수평 이행'이 생명 진화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바이러스가 숙주 유전자를 끌어들인 예로는 '암 유전자'가 유명하다. '암을 일으키는 어떤 종의 바이러스가 가진 암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가 숙주의 게놈 안에서 발견되었다. 세포의 증식 등에 관계하는 숙주의 유전자를 바이러스가 끌어들여 이용하고, 숙주의 세포를 암화하는 것이다.
5. 인간 게놈 가운데 약 8%는 '바이러스의 잔해'
인간 게놈의 분석 결과에 의하면, 인간 게놈 가운데 약 8%는 '바이러스의 잔해'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기원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예컨대 바이러스의 유래의 DNA가 숙주의 게놈 안에 조합되었을 때, 어떤 실수로 증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원인이 생각된다.
우리 몸 안에 바이러스의 잔해가 있다고 들으면,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이러스의 잔해도 있다. 이것은 '인간 내재성 레트로 바이러스(Human Endogenous Retrovirus)'라고 하며, 사람의 게놈 안에 조합되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전해진다. 이제는 인간 게놈의 일부가 된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5-1. 태반의 형성에 바이러스가 관여하고 있다.
사람의 '태반(모친과 태아를 묶는 조직)'의 형성에는 '인간 내재성 레트로 바이러스(Human Endogenous Retrovirus)'의 유전자가 사용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알게 되었다. 이 유전자는 원래 바이러스의 '인벨롭(Envelope)'에 있는 '신시틴(Syncytin)'이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이다. 태반을 만들 때 다수의 세포를 융합시켜야하는데, 그때 '인간 내재성 레트로 바이러스'스에서 유래한 '신시틴'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2000년에 알게 되었다.
태반의 형성에 이용되는 '인간 내재성 레트로 바이러스(Human Endogenous Retrovirus)'의 예는 이른바 좋은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 연구는 병원체로서의 연구였으며, 좋은 바이러스가 있다는 견해는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바이러스의 새로운 측면을 좀 더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게놈 속의 바이러스의 잔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아, 앞으로의 연구 진전이 기대된다.
6. '생명의 정의'에 관한 통일된 견해는 없다.
'생명의 정의'에 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치하는 견해가 없으며, 바이러스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나누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화적으로도 '세포성 생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