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턴의 '우주관'
- 뉴턴의 '우주관'이 낳은 역설들
- 아인슈타인의 '우주관'
- 우주론의 탄생
- 아인슈타인 방정식과 '우주의 미래'
1. 우주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아이작 뉴턴'
1-1.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단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에 이 세상은 단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며, 영원히 그 모습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세상은 영원불멸한 정적인 무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제외한 모든 천체들은 하늘에서 완벽한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그들 역시 지금의 운동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고 믿었다.
어쩌다가 하늘에 '혜성(Comet)'이라도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것이 왕의 죽음을 예견하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1066년에 영국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혜성이 나타났을 때, '해럴드(Harold)' 왕이 이끌던 색슨족의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더 이상의 진군을 포기했고, 그 덕분에 '윌리엄(Willam)'의 군대가 영국을 장악하여 새로운 국가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이 혜성은 1682년에 또 한차례 영국에 나타나났는데, 이때에도 전 유럽이 공포에 휩싸였다. 평범한 농부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오만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대체 저 혜성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왕은 과연 저 불길한 혜성으로부터 안전할 것인지 등 의문을 떠올렸다.
1-2. 프린키피아
뉴턴이 중력 법칙을 발견한 것은 '페스트(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가 전 유럽을 휩쓸던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으므로,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모든 대학은 휴교에 들어갔고, 뉴턴은 학교를 떠나 고향이 '울즈소프(Woolsthorpe)'에 머물면서 전염병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뉴턴은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장차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하나의 질문을 떠올렸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이, 달도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그는 천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과와 달, 그리고 행성들이 중력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하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현상을 서술할 만한 수학이 없어서, 뉴턴은 '미적분학(calculus)'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를 직접 개발하여, 사과와 달의 운동을 설명하였다.
당시 부유했던 아마추어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Edmund Halley, 1656~1742)'는 자신이 발견했던 혜성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혜성의 운동을 관장하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뉴턴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혜성은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하는 힘의 영향을 받아 타원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혜성의 궤적을 망원경으로 관측해왔는데, 혜성의 운동에 중력 법칙을 적용하면 타원궤도가 자연스럽게 얻어집니다. '에드먼드 핼리'는 확신에 찬 뉴턴의 대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대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뉴턴은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간단하게 말했다. "그야, 계산을 해봤으니까 알죠." '에드먼드 핼리'는 전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혜성의 비밀을 중력의 법칙'으로 밝혀낸 뉴턴의 천재성에 그저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발견한 혜성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된 '에드먼드 핼리'는 사비를 들여 뉴턴의 새로운 이론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뉴턴은 '에드먼드 핼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687년에 전설적인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출판했다. 이 저서는 '프린키피아(Principia)'라고도 불린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이 한 편의 논문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신비와 경이의 대상이었던 천체의 운동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잡게 되었다. 그 후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는 유럽인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당대의 우주관을 대표하는 논문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혀나갔다.
혜성의 타원 궤적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한번 나타난 혜성이 다시 나타나는 시기도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더 '에드먼드 핼리'는 과거의 기록을 뒤져서 1531년, 1607년, 1682년에 나타났던 혜성이 모두 같은 혜성이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1066년에 영국의 역사를 바꿔놓았던 정체불명의 물체도 바로 이혜성이었다. 당시 이 혜성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관측되었으며,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도 이 혜성을 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에드먼드 핼리'는 이 혜성이 1758년에 다시 나타난다고 예견했고, 그의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에드먼드 핼리'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자신의 예견을 확인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1785년 성탄절에 나타난 혜성을 바라보며, '에드먼드 핼리'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확신하면서 '핼리혜성(Halley's Comet)'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1-3. 뉴턴의 법칙으로부터 산업혁명과 근대화가 촉발되었다.
뉴턴의 대표작인 '프린키피아'에는 천체를 비롯한 모든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역학 법칙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법칙들은 훗날 다양한 기계와 증기기관 등을 발명하는 원천이 되었고, 이로부터 유럽의 산업혁명과 근대화가 촉발되었다. 즉, 인류가 이룬 현대 문명의 상당 부분이 '뉴턴의 법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에 있는 초고층 건물과 수많은 다리들, 그리고 우주선들은 모두 '뉴턴의 법칙'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뉴턴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운동 법칙만이 아니다. 그는 '천체들을 지배하는 법칙'과 '지구에서 일어나는 법칙'이 완전히 동일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간파함으로써, 기존의 세계관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체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2. '뉴턴의 법칙'이 낳은 역설들
하지만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우주의 생성과정에 대하여 다양한 역설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주는 얼마나 큰가? 우주는 무한한가 유한한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유서 깊은 질문이었다. 로마시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든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무한히 뻗어있다. 만약 우주에 끝이 있다면 어딘가에 경계가 있어야 하고, 이는 곧 우주의 바깥에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주를 이루는 모든 차원들은 아무런 방향성도 없고, 그 외부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된 바가 없으므로 우주는 끝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뉴턴에 의하면, '우주가 유한하다는 주장'과 '우주가 무한하다는 주장'은 모두 어떠한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우주의 유한이나 무한을 가정하면, 아주 간단한 질문조차도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아이작 뉴턴'조차도 자신의 중력에 풀리지 않은 역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1. 벤틀리의 역설
1692년, 성직자였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 1662~1742)'는 뉴턴에게 한 통을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뉴턴이 고민하던 문제가 정중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리처드 벤틀리'는 우주가 유한하건 무한하건 간에, 뉴턴의 중력이론은 우주의 처참한 종말을 필연적으로 예견하고 있다고 보았다. 우주가 유한하면 중력에 의해 '모든 별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면서 뭉개지는 우주'가 될 것이고, 우주가 무한하면 임의의 물체를 온 사방에서 당기는 힘 또한 무한할 것이므로 '별들이 사방으로 찢어지는 우주'가 될다고 본 것이다.이로써 '리처드 벤틀리'는 뉴턴의 중력이론을 우주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역설적인 결과를 최초로 지적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언뜻 보면, '리처드 벤틀리'는 이 한 통의 편지로 뉴턴을 곤경에 몰아넣었을 것 같다. 하지만 뉴턴은 한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리처드 벤틀리'의 논박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뉴턴은 무한하면서도 균일한 우주의 개념을 선호하고 있었으므로, 우주가 정적이라는 가설을 어떻게든 옹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하나의 별이 무한히 많은 다른 별들에 의해 당겨지고 있다면, 그 힘들은 서로 상쇄된다. 모든 별들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적인 우주가 유지된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한다는 가정하에서 벤틀리의 역설을 피해가려면, 이 우주가 무한하면서 균일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뉴턴은 이런 논리로 '리처드 벤틀리'의 논박을 피해 갔지만, 이런 궁색한 변명으로 만족할 리는 없었다. 뉴턴은 벤틀리에게 "저의 논리에 틀린 점은 없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뉴턴이 생각했던 '무한하면서 균일한 우주'는 카드로 쌓아올린 집처럼 불안정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논리는 겉으로 보기엔 안정된 것 같지만, 약간의 장애를 만나면 곧바로 와해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이론이었다. 이런 아슬아슬한 우주에서는 별 하나가 조금만 요동을 쳐도 주변의 균형이 연쇄적으로 와해되어 결국, 우주 전체가 하나의 중심을 향해 붕괴된다. 뉴턴은 '신의 전능한 힘'이 이런 대형 사고를 막아주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음과 같이 편지를 마무리했다. "태양과 항성들이 중력에 의해 한 지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전지전능한 신의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2-2. 올베르스의 역설
우주가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론들은 '벤틀리의 역설'뿐만 아니라 더욱 난해한 역설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 1758~1840)'가 처음으로 제기했던 이 역설은 '밤하늘은 왜 검게 보이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17세기 초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무한히 크고 균일하다면, 어떤 방향을 바라봐도 그곳에는 무한히 많은 별들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임의의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 관측자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무한히 긴 직선을 그리면 무한개의 별이 이 직선과 만나게 된다. 그러면 관측자의 눈에는 무한한 양의 빛이 도달해야 하고, 따라서 밤하늘은 엄청나 빛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는 수백 년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올베르스의 역설'은 언뜻 보기엔 간단한 것 같지만, 그 속 사정이 매우 복잡하여, 오랫동안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을 괴롭혀왔다. '올베르스의 주장이 역설로 간주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한히 큰 우주에서 무한히 많은 천체로부터 발생한 중력이나 빛이 서로 더해지면 무한히 강한 위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후로 수백 년 동안 이 역설에 대한 해결책들이 제시되었지만, 설득력 있는 해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요하네스 케플러'도 이 역설 때문에 골머리르 앓다가, 결국 우주가 유한하다는 속 편한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우주가 유한한 크기의 껍질 안에 들어 있으면, 유한한 양의 빛만 우리의 눈에 들어오므로 '올베르스의 역설'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3. 아인슈타인의 '우주관'
3-1. 절망의 시기에서 간신히 탈출한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의 운동 법칙과 중력 법칙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과학은 약 250년이 지나서야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도약의 중심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국립 공과대학 '폴리테크닉 연구원(Polytechnic Instituete)'의 학사과정을 1900년에 마친 후 마땅한 취직자리를 얻지 못해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지도교수가 그의 자만심 강하고 오만한 자세를 싫어하여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에 교수의 강의가 신통치 않다는 이유로 종종 수업을 빼먹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이 실패자라고 여겼으며, 부모에게 학비를 받아쓰는 것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심지어는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당시 아인슈타인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나 때문에 행복한 적이 거의 없었어. 특히 내 학비를 대기 위해 정말로 어려운 생활을 해오셨지. ...지금 나는 무위도식하면서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짐만 될 뿐이야. ...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물리학으로 취직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보험회사를 첫 번째 직장으로 택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직장 상사와 말다툼을 하고 결국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여자친구였던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가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아이가 사생아로 태어난다는 생각에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게다가 그 무렵에 아버지가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면서 아인슈타인은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들을 인생의 낙오자로 여겼다. 1901~1902년은 아인슈타인의 평생을 통틀어 최악의 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친구였던 '마르첼 그로스먼(Marcel Grossman, 1878~1936)'이 아인슈타인을 스위스 '베른(Bern)'에 있는 특허청의 하급 사원으로 추천해 주면서, 아인슈타인은 절망의 시기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3-2. 광속으로 빛을 따라가면 어떻게 보일까?
사실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은 혁명적인 물리학 이론이 탄생하기에 그다지 적절한 장소는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은 특허 관련 서류들을 일찍 정리한 후에, 의자에 편히 앉아 생각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론 번스타인(Aaron Bernstein)'의 '자연과학 입문서(People's Book on Natural Science)'를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아론 번스타인'은 '전깃줄을 타고 전송되는 '전보를 똑같은 속도로 따라가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빛과 동일한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만약 광속으로 빛을 따라간다면 빛은 정지해 있는 전자기장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기학에 관한 '맥스웰 방정식(Maxwell's Equations)'에 의하면 빛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소년 아인슈타인은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따라가면 빛은 정지 상태의 파동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정지된 빛'을 본 사람은 없으므로, 이 논리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2-3. 고전 물리학에 커다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다.
20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물리학은 '아이작 뉴턴'의 '역학 및 중력 이론'과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의 '전자기학 이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1860년대에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Ligth)'이 진동하는 '전기장(Electric Field)'과 '자기장(Magnetic Field)'의 혼합체라는 간파하여, 고전 전자기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서로 상충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의 '해(solution)'에서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맥스웰의 방정식에 의하면 빛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진행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고 해도, 그 값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광속은 모든 '관성계(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준 좌표계)'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당신이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거나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을 때, 또는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혜성에 올라타고 있을 때도 당신이 바라보는 빛의 속도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측자가 제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해도, 앞서가는 빛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예컨대, 우주 공간을 표류하고 있는 우주비행사가 빛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비행사는 우주선의 출력을 빛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만약 이 광경을 지구에 있는 관측자가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빛과 우주선이 거의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빛과 속도 경쟁을 하고 있는 우주비행사의 눈에는 빛이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광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우주선이 정지해 있을 때나, 부지런히 달리고 있을 때나, 빛의 속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운동 상태가 다른 두 사람이 동일한 사건을 관측했을 때,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턴의 고전역학에 의하면, 우주선은 빛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이 문제이지, 일단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기만 하면 먼저 출발한 빛을 따라잡는 것은 오직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주선의 속도가 빛보다 느리다고 해도, 빛을 따라가면서 측정한 빛의 속도가 느리게 나타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누가 측정하건 간에 항상 동일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고전 물리학의 근간에 커다란 오류가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3-4. 시간이 절대적인 양이 아님을 선포하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 기존의 물리학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대혁명의 전조가 되는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신중한 사고를 펼친 끝에 '시간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빠르가로 흐른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관측자의 운동 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흐른다. 다시 말해서,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절대적인 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뉴턴은 시간이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한 속도로 흐르고 있으며, 지구에서의 1초는 화성이나 목성의 1초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같다고 생각했다. 뉴턴의 시간은 범우주적으로 동일한 절대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우주의 각 지점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이었다.
뉴턴이 생각했던 우주라는 무대에서 모든 배우들은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임의의 지점까지 거리도 마음만 먹으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이 무대에서는 임의의 지점까지 거리도 마음만 먹으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으며,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범우주적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각기 다른 빠르기로 가는 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대 위에 올라온 시계를 범우주적으로 '동기화(Synchronized)'시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한순간에 시간을 일치시킬 수는 있지만, 배우들의 시간을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으므로 시간은 곧바로 통일성을 잃게 된다. 무대감독이 '정오에 리허설을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정오라는 시간은 배우들마다 각기 다른 시점으로 인식된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발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관측자의 운동 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물체의 길이, 질량, 에너지 등도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달리는 자동차는 이동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다. 그리고 속도가 빠를수록 수축되는 정도도 커진다. 이 현상은 흔히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Lorentz-FitzGerald Contraction)'이라고 불린다. 또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질량이 증가한다. 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시간은 느리게 가다 못해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며, 길이는 0으로 줄어들고 질량은 무한대가 된다. 물론 이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빛을 제외한 어떤 물체도 광속과 같거나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3-5.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변환될 수 있다.
뉴턴이 중력 법칙을 발견하여 '하늘의 법칙'과 '지상의 법칙'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한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시간(Time)'과 '공간(Space)'을 '시공간(Spacetime)'이라는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양임을 간파하여, 이들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물체의 속도가 빠를수록 질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운동에 의한 에너지 물질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에너지(Energy)가 '질량(Mass)'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반대의 현상도 가능하다.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면 '질량'은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를 그 유명한 공식 E=mc2(E=에너지, m=질량, c=광속)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식에 의하면 극소량의 질량이라고 해도 일단 에너지로 변환되기만 하면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에어지와 질량을 연결하는 비례상수인 c2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E=mc2이 알려지고, 오랜 세월 미지로 남아 있던 별의 비밀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별의 내부에서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매 순간마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밝은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별의 비밀은 '모든 관성 기준계에서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단 하나의 원리로부터 풀린 셈이다.
3-7. '상대성 이론'으로 '중력'을 이해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기존의 상식과 너무나도 다른 사실을 주장하고 있었으므로, 물리학자들은 납득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들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중력에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그는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양자이론을 창시했던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한 문제에 미친 듯이 몰두해 있는 아인슈타인에게 이런 조언을 했을 정도였다. "여보게, 이건 오랜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연구는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명심하게. 그리고 만일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도 자네 말을 믿지 않을 걸세."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중력이론이 뉴턴의 중력이론과 상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뉴턴의 이론에 의하면, 중력은 우주 전역에 걸쳐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즉,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중력이 전달되는 데에는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인슈타의 생각은 뉴턴과 달랐다.
푹신한 매트리스를 가만히 누르고 있는 볼링공을 떠올려 보자. 공이 없을 때 침대의 표면은 평면이었지만, 볼링공이 놓인 자리는 움푹 패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링공을 향해 조그만 쇠구슬을 굴려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구슬은 똑바로 진행하지 못하고 볼링공의 주변을 공전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구슬의 속도가 적당히 빠르면서 볼링공과 정면충돌을 하지 않는 경우의 이야기다. 구슬의 속도가 느리면 그냥 패인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며,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궤적에 약간의 변형을 겪으면서 볼링공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뉴턴은 구슬이 적절한 거리를 두고 볼링공의 주변을 공전하는 것은 볼링공이 구슬에게 어떤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봤을 땐 굳이 '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구슬의 궤적이 휘어지는 것은 볼링공에 의해 매트리스의 표면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이런 경우에 당기는 힘 같은 것은 작용하지 않는다. 구슬의 궤적이 변한 이유는 그냥 구슬이 놓여 있는 표면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구슬을 지구로, 볼링공을 태양으로 대치시키고 매트리스 면을 우주 공간이라고 생각해 보자. 여기에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태양의 중력 때문이 아니라 태양이 지구 근처의 공간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논리를 통해 '중력(Gravity)'라는 것이 우주 전역에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인력'이 아니라, 질량에 의해 공간이 휘어지면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에 의한 부산물로 해석함으로써, '상대성 이론'과 '중력'을 조화롭게 연결시킬 수 있었다.
4. 우주론의 탄생
4-1. '일반 상대성 이론'은 훗날 모든 우주론의 초석이 되었다.
1915년에 아인슈타인은 훗날 모든 우주론의 초석이 될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Relativity)'을 완성하였다. 이 놀라운 이론에 의하면, 중력은 우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독립적인 힘이라,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은 단 한 줄의 방정식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이 막강한 방정식을 이용하면 질량과 에너지의 분포상태에 따라 시공간이 휘어지는 정도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질량이 클수록 시공간은 더욱 심하게 휘어진다. 이로써 '아이작 뉴턴'이 그랬던 것처럼,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우주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4-2. 벤틀리의 역설과 마주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꿈을 실현하려면 필연적으로 '벤틀리의 역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에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정적이면서 균일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우주 전역에 걸쳐 먼지와 별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아인슈타인이 얻은 답은 항상 '역동적인 우주'였다. 아인슈타인도 200년 전에 '리처드 벤틀리'가 마주쳤던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중력은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하므로, 별들은 결국 중심부를 향해 뭉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우주는 파국적인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역동적인 우주'은 20세기 초의 천문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정적인 우주'와는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현대물리학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꾼 아인슈타인이었지만, 그 역시 우주가 움직인다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는 뉴턴과 마찬가지로 우주가 정적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4-3. 아인슈타인은 정적인 우주를 위해 '우주상수'를 추가했다.
우주가 정적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는 믿음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어떻게든 자신의 방정식으로부터 '정적인 우주'를 유도할 수 있어야 했다. 1917년, 결국 그는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라는 새로운 항을 추가하여 난처한 상황을 피해가기로 했다.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를 첨가하면 '반중력(Antigravity)'이 도입되면서 우주의 파국적인 종말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우주상수'는 '밀어내는 중력(반중력)'을 생성시키고, 이것이 중력과 서로 상쇄된다면 우주는 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중력이 정확하게 상쇄되도록 우주상수의 값을 임의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정적인 우주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잡아당기는 중력은 암흑물질이 생성한 반중력과 정확하게 상쇄된다.
하지만 당시 물리학자들은 임시방편으로 떠올린 우주상수를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불편한 존재로 여겼다. 그 후로 70년 동안 우주상수는 학자들에게 '부모 없는 고아' 취급을 당하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98년에 우주팽창이 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주상수'는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후보로 다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4-4. 무한히 크면서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만족한다.
1917년에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빌렘 드 지터(Willem de Sitter)'는 '무한히 크면서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주'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만족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가 얻은 해는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진공, 즉 '우주상수'만으로 이루어진 우주였는데, 만약 이런 우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밀어내는 쪽으로 작용하는 반중력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어야 한다. 물질이 전혀 없는 우주라 해도, 그곳에 있는 '암흑 에너지'가 우주를 팽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빌렘 드 지터'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물리학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정적이면서 그 안에 물질이 존재하고 '빌렘 드 지터'의 우주는 동적이면서 물질이 전혀 없다. 아인슈타인의 우주에서 우주상수의 역할은 중력을 상쇄시켜서 정적인 우주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드 지터의 우주에서 우주상수는 팽창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5. 아인슈타인 방정식과 '우주의 미래'
'일반 상대성 이론'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우주론(Cosmology)'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편, 다양한 물질 분포에 대해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를 구한 사람은 러시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로 프리드만(Aleksandr Friedmann)'이었다. 그가 가장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인 것은 1922년이었는데 1925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의 업적은 최근까지도 거의 잊혀져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일련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방정식들은 풀기가 너무 어려워서 종종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알렉산드로 프리드만'은 '우주는 역동적이라다.'와 '우주 공간은 등방적이고 균질하다.'는 두 개의 가정을 추가해 방정식을 단순화 시켰다. '등방적(isotropic)'이란 말은 한 지점에서 어떤 방향을 바라봐도 모두 똑같다는 뜻이고, '균질하다(Homogeneous)'는 말은 우주의 모든 지점에서 밀도가 균일하다는 뜻이다. '알렉산드로 프리드만'의 가정을 수용하면,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매우 간단한 형태로 변환된다. 프리드만의 해를 좌우하는 요인은 다음 3가지 변수로 요약될 수 있다.
- H: 우주의 팽창 속도를 좌우하는 상수. 오늘날 이 상수는 '허블상수(Hubble's constant)'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허블은 우주의 팽창을 최초로 예견했던 천문학자이다.
- Ω(오메가): 우주의 평균밀도
- Λ(람다): 빈 공간과 관련된 에너지, 또는 암흑에너지
그동안 우주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H(허블상수)', 'Ω(오메가)', 'Λ(람다)'의 값을 정확하게 결정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 이 3개의 상수들은 서로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주의 미래'를 좌우하고 있다. 예컨대, 빅뱅 이후로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지만, 천체들 간의 중력이 팽창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밀도인 'Ω(오메가)'는 우주의 팽창을 저지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지표면에서 수직 방향으로 던져진 돌멩이를 생각해 보자. 일상적인 조건에서 위로 상승하는 돌멩이는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바다 결국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나 돌멩이를 아주 빠르게 던지면 아래로 되돌아오지 않고 돌멩이는 지구 중력권을 영원히 탈출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는 빅뱅에 의해 팽창을 시작했지만 '물질(Ω)'이 팽창을 저장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서는 '우주 공간에 진공 에너지가 전혀 없다(Λ=0)'고 가정하자. 그리고 Ω는 '우주의 밀도'를 '임계밀도'로 나눈 값으로 정의하자. (참고로 우주의 임계밀도는 1m3당 수소 원자 10개 정도이다.)
5-1. Ω<1(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작은 경우)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작은 경우,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의 총량이 원래의 팽창을 저지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구의 질량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위로 던져진 돌멩이는 중력권을 탈출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우주는 대책 없이 팽창하다 절대온도 0도에 거의 접근했을 때 총체적으로 얼어붙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되다 보면 결국 우주는 초저온 상태가 되고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면서 이른바 '빅 프리즈(Big Freeze)'라 불리는 일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알렉산드로 프리드만(Aleksandr Friedmann)'은 Ω의 값에 따라 각기 시공간의 '곡률(휘어진 정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Ω가 1보다 작으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게 되는데, '알렉산드로 프리드만'은 이 경우에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까지도 무한대로 팽창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우주를 '열려 있는 우주(Open Universe)'라고 한다. 즉 시간과 공간이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알렉산드로 프리드만'은 몇 가지 계산을 수행한 끝에 이러한 우주가 '음(-)'의 곡률을 갖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음의 곡률을 갖는 대표적인 도형으로는 말안장이나 트럼펫의 표면을 들 수 있다. 이런 도형 위해서는 평행선은 만나지 않으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보다 작다.
5-2. Ω>1(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큰 경우)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큰 경우, 우주 공간에는 물질들이 행사하는 중력이 충분히 커서, 우주는 어느 시점에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되기 시작한다. 지구의 질량이 충분히 크면, 위로 던져진 돌멩이는 중력권을 탈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우주의 온도는 다시 올라가고 별과 은하들은 서로 가까워진다. 이런 식으로 수축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우주는 초고온 상태가 되고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면서 이른바 '빅 크런치(Big Crunch)'라 불리는 일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Ω가 1보다 크면, 우주는 다시 작은 점으로 수축하며, 시간과 공간은 유한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알렉산드로 프리드만'의 계산에 의하면 이런 우주는 '양(+)'의 곡률을 갖는다. 이런 도형 위에서는 평행선은 서로 만나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보다 크다.
5-3. Ω=1(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같은 경우)
마지막으로 우주의 평균밀도와 임계밀도가 같으면, 우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종말의 중간상태를 절묘하게 유지하면서 영원히 팽창하게 된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것은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의 예견과 일치한다. '알렉산드로 프리드만'의 계산에 의하면 이런 우주의 곡률은 0이다. 이런 도형 위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