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에는 작은 물질에도 막대한 에너지가 감추어 있음을 나타낸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이 놀라운 결과를 '특수 상대성 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으로부터 유도해 냈다. 아인슈타인이 만들어 낸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든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E=mc2'를 어떻게 유도해냈을까?
0. 목차
-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 1905년
- 1905년 6월 논문 - 특수 상대성 이론
- 1905년 9월 논문 - E=mc2
- 실험에 의해 E=mc2이 증명되다.
1.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 1905년
'E=mc2'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1905년에 유도되었다. 스위스의 도시 베른의 특허국 직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은 26세이던 그 해, 생애에서 가장 특별한 시기를 맞았다. 노벨상의 수상 이유가 된 '광양자 가설',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혁명을 가져온 '특수 상대성 이론', 그리고 'Emc2'등 현대 물리학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다섯 논문을 연달아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1905년을 '기적의 해(Miracle Year)'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업적들이 축적된 과학의 역사에서, '뉴턴의 1666년'과 '아인슈타인의 1905년' 단 두 해만이 과학사에서 '기적의 해'로 불리고 있다.
- 1905년 3월 논문 '광양자 가설': 빛을 입자로 보는 '광양자 가설'을 제창하고, '광전효과'라 불리는 현상의 메커니즘을 규명하였다.
- 1905년 4월 논문 '분자 크기의 새로운 결정법': 용액의 점성과 '아보가드로수'로부터, 용액에 포함된 분자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다고 논했다. 아인슈타인의 박사 논문이다.
- 1905년 5월 논문 '브라운 운동 이론': 19세기에 발견된 '브라운 운동(액체 중의 미립자의 불규칙 운동)'이 물 분자와 미립자의 충돌에 의해 일어난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분자나 원자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의 증거가 되었다.
- 1905년 6월 논문 '특수 상대성 이론': '광속도 불변' 등을 전제로 하고,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측하는 입장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도했다.
- 1905년 9월 논문 'E=mc2': '특수 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결론의 하나로, '에너지와 질량의 등가성(에너지와 질량은 같다는 것)'을 유도했다.
2. 1905년 6월 논문 - 특수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이 '1905년 9월에 발표한 논문(E=mc2을 발표한 논문)'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발표한 연구의 결과, 매우 흥미로운 결론을 얻게 되어 아래에 서술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먼저 발표한 연구'란 1905년 6월에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6월 논문에서 '쓸 것을 다 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있다는 깨닫고, 9월 논문에서 발표했다. 결국, E=mc2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속편'인 셈이다.
그러면, 본편에 속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이란 어떤 이론일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원리'의 두 가지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시간과 공간에 관한 혁명적인 이론인 '특수 상대성 이론'을 완성시켰다.
2-1.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법칙'
- 상대성 원리: '상대성 원리'란 특별한 기준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아인슈타인은 정지한 사람인 보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보든, 모든 물리 법칙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 광속도 불변의 원리: 두 번째 원리인 '광속도 불변의 법칙'은 '광속(빛의 속도)'은 언제나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아인슈타인은 16세 무렵부터 '빛의 빠르기로 빛을 추격하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를 시속 80km로 추격하면, 차는 시속 20km로 보인다. 이처럼 속도는 어떤 기준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빛(Light)'만은 예외라고 생각했다. 정지한 사람이 보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보든, 광속은 언제나 일정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광속도 불변의 원리'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원리를 성립시키면,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직관과 어긋나는 결론이 나온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1초가 다른 사람에게는 2초나 3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시간과 공간은 관측하는 입장에 따라서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제안한 것이 '특수 상대성 이론'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다 쓰지 않고 남겨둔 것'은 '필연적으로 에너지와 질량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바로 E=mc2이다.
2-2. 시간은 느려지고, 공간은 줄어든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정지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운동하는 물체의 시계는 느려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정지해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가 줄어든다.'라는 결론도 유도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시간이나 공간의 길이가, 입장에 따라서 늘어나거나 줄어든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속도 v로 운동하는 사람의 1초가, '정지해 있는 사람이 봤을 때 몇 초로 느려져 보일 것인지'를 구하는 계산식을 유도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줄어들까? '광속의 0.6배(초속 약 18만 km)'로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 시계가 놓여 있다고 가정하자. 이 시계가 가리키는 1초는, 우주선 밖에서 정지한 사람이 보면, 1.25초로 늘어나 보인다. 즉, 우주선 안의 시계가 느려진다. 그리고 우주선 안에 놓인 자가 나타내는 1m는, 우주선 밖에 정지해 있는 사람이 보면 0.8m로 줄어든다.
2-3. 에너지의 크기도 입장에 따라 변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입장에서 따라서 변하는 것이 시간이나 공간의 길이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전제로 고찰했더니, '빛의 에너지의 크기'도 입장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마 계수'를 이용하여, 빛의 에너지가 보는 사람의 속도에 따라서 어느 정도 변하는지 계산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 고찰은 E=mc2에 도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까지의 결론을 6월 논문에 기록하였다. 그리고 사고 실험을 하여, 마침내 E=mc2에 도달하게 되었다.
3. 1905년 9월 논문 - E=mc2
3-1. 빛을 내보내는 물체'를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아래의 내용은 아인슈타인이 E=mc2을 유도한 사고 실험이다. 9월 논문에 쓰여 있는 '사고 실험'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으로, 본질은 같다.
- 아주 큰 상자가 있고, 그 안에 A씨가 정지해 있다. 상자 중앙에는 발광기가 있는데, 역시 정지해 있다. 어느 순간 발광기가 좌우를 향해 완전히 같은 세기의 빛을 내보냈다.
- 견해 A: 총을 발사하면 반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빛을 발사하는데도 반동이 일어난다. 빛에 질량은 없지만 에너지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발광기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같은 세기의 빛을 동시에 발사하기 때문에, 반동은 상쇄된다. 결국 발광기는 빛을 발사한 후에도 계속 정지해 있다.
- 한편 B씨는 상자 밖에서 같은 현상을 보고 있다. 그런데 B씨가 볼 때, 상자는 맹렬한 속도로 앞쪽으로 등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다. 당연히 발광기도 같은 속도로 접근한다. 그리고 발광기가 발사한 2개의 빛은 좌우로 퍼지면서, B씨를 향해 비스듬히 다가온다. 결국, 발광기는 그 비스듬한 진행 방향을 향해 '빛'을 발사한 셈이다.
- 견해 B: 비스듬한 진행 방향을 향해 '빛'을 발사한 셈이므로, 그 반대 방향으로 반동이 있을 것이다. 이 반동은 발광기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건다. 그러면 발광기가 접근해 오는 속도는 상자의 속도에 비해 느려질 것이다. 따라서 발광기는 빛을 발사함으로써, 상자 안에서 뒤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 하지만 A씨가 보는 발광기는 상자 안에 정지해 있으므로, B씨가 보는 발광기가 뒤로 움직이면, 모순이 생긴다. 그러면 이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3-2. 아인슈타인이 E=mc2에 도달한 과정
사고 실험에서는 A씨의 견해와 B씨의 견해가 서로 부딪혀 모순됐다. 그러면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포기하는 일 없이 앞뒤가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인슈타인은 고민 끝에, 발광기는 빛의 방출과 교환으로 '질량(움직이기 어려움)'을 잃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빛을 방출하는 것에 따른 '감속'과 '질량(움직이기 어려움)'을 잃는 것에 따른 '가속'이 균형을 이루면, B씨가 보았을 때도 발광기가 상자 안에 정지한 채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설명된다. 그러면 A씨의 견해와 앞뒤가 맞는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고찰로부터, 그때까지의 물리학에서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되었던 '질량'과 '에너지'가 사실은 같은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9월 논문에서는 발광기가 잃은 질량의 크기를 구하는 계산이 전개된다. 그 결과, E=mc2라는 극히 간결한 식이 나온다. (E=에너지, m=잃은 질량의 크기, c=광속) 그런데 너무나도 의외의 결론에, 아인슈타인 자신도 반신반의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훗날 자신의 강연에서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mc2이라는 식은 극히 근소한 질량이 극히 큰 양의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것, 또는 그 반대를 나타낸다. 이 식에 따르면,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같은 것이다."
4. 실험에 의해 E=mc2이 증명되다.
E=mc2이 발표된 1095년 9월 논문은 다음과 같이 매듭지어진다. '라듐염처럼 거기에 포함된 에너지의 양이 크게 변하는 물질을 조사하면, 이 이론을 검증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라듐염'이란 방사성 원소인 '라듐(원자번호 88번 원소)'을 천연 광물에서 고농도로 추출한 것을 말한다. 당시에는 라듐염이 큰 에너지의 방출을 계속하는 현상이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에 의해 발견되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에너지의 방출과 교환으로 라듐염의 질량이 근소하게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실험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질량 감소량이 너무나 작아서 검출은 못했다.
E=mc2이 옳다는 것이 확인된 것은 라듐염이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해서였다. 1932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코크로프트(John Cockroft, 1897~1967)'와 '어니스트 월트(Ernest Walton, 1903~1995)'은 스스로 만든 장치에서 '1H(양성자 1개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핵)'를 가속시켜 '7Li(양성자 3개와 중성자 4개로 이루어진 리튬 원자핵)'에 충돌시켰다. 그 결과, '7Li(양성자 3개와 중성자 4개로 이루어진 리튬 원자핵)'이 파괴되고, 2개의 '4He(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진 헬륨 원자핵)'이 생겼다. 가속기에 의한 세계 최초의 원자핵 파괴 실험이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충돌에 의해 질량의 총량이 0.2%가량 줄어들은 것이다. 만약 E=mc2으로 규명되는 반응이 일어난 것이라면, 감소한 질량 m에 c2을 곱한 양의 에너지 E가 충돌에 의해 생겨야 한다. '존 코크로프트'와 '어니스트 월턴'은 충돌의 결과로 생긴 입자의 운동 에너지를 측정해, 충돌로 새로 탄생한 에너지의 양을 산출해 보았다. 그 결과, E=mc2에서 계산되는 에너지의 양과 높은 정밀도로 일치했다. 이리하여 E=mc2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