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멘델의 완두 교배 실험 - 유전자 존재가 제창되다.
- 모건의 염색체 지도 작성
- 유전자의 정체는 DNA
- DNA의 이중 나선 구조
1. 멘델의 완두 교배 실험 - 유전자 존재가 제창되다.
자식은 대체로 부모를 닮는다. 그러나 부모와 완전히 똑같이 태어나지는 않는다. 때로는 부모에게 없는 특징을 가진 자식이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인류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이렇게 유전 현상이 오랫동안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가 1865년, 오스트리아의 브륀 박물학회에 유전에 대해 법칙성을 발표한 성직자 '그레고어 멘델'이 등장한다. 멘델은 식물인 완두에 대해 종자(씨)의 성질과 떡잎의 색깔 등 일곱 가지 형질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 형질이 어떤 법칙성을 바탕으로 해서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멘델의 유전 연구 성과는 '식물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당시에는 부모의 형질이 자식 속에서 서로 뒤섞여 중간적인 형질이 나타난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멘델은 완두의 교배 실험을 통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어느 하나의 형질만이 자식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나아가 자식에게 나타나지 않은 또 하나의 성질도 나중 세대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 법칙성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날의 유전학의 기초가 되는 획기적인 가정을 했다. 멘델은 부모에서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은 형질 그 자체가 아니라 형질의 바탕이 되는 인자라고 생각했고, 그 인자는 다른 인자와 섞이지 않는 안정된 입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인자가 바로 오늘날 '유전자'로 알려진 것이다. 또 인자가 자식에게 모두 형질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멘델의 생각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일반 사람들의 견해와 크게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휘호 더 프리스(Hugo de Vries, 1848~1935)' 등이 멘델의 연구를 재발견하였다. 그의 연구가 세상에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은 멘델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35년이 지난 1900년이 되고 나서였다.
2. 모건의 염색체 지도 작성
멘델이 제창한 '형질을 옮기는 인자'는 1909년 '유전자(Gene)'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유전자는 이론상에서만 존재했을 뿐 실체가 없는 이론상의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동물 유전학자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 1866~1945)'이 멘델이 제창한 유전자의 실체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미 당시에는 세포의 핵 속에 세포분열의 움직임에 맞추어 움직이는 염색체의 존재가 확인되어 있었다. 또한 이 염색체의 개수는 생물종에 따라 정해져 있고 정자와 난자 등의 생식세포에서는 그 반수밖에 없고, 둘이 수정해야 비로소 원래의 개수로 돌아간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유전과 염색체 사이에 무언가가 관계가 있다고 추정하던 시대였다.
당시 모건은 노랑초파리의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그는 정상적인 붉은 눈이 아니라 하얀 눈을 가진 초파리를 발견했다. 이 하얀 눈은 수컷에게만 나타나는 형질이었다. 그래서 그는 눈의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같은 염색체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노랑초파리는 4쌍 8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염색체는 4쌍씩 각각의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만약 하얀 눈의 유전자가 수컷이라는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같은 염색체에 있다면 하얀 눈의 유전자는 수컷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함게 자식 노랑초파리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얀 눈을 가진 초파리가 반드시 수컷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모건은 이 현상을 바탕으로, 유전자가 염색체에 선 모양으로 늘어선 모델을 생각했다.
모건은 눈의 색깔과 성처럼 유전자가 연쇄해서 전하는 현상에 대해 계속 연구했다. 그리고 가끔 연쇄가 무너지는 경우를 발견했다. 모건은 그 이유에 대해 염색체끼리 부분적으로 바꿔 들어가는 것이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했다. 똑같은 염색체에서 연쇄로 전해지던 두 유전자 중 하나가 바뀌어 들어가 다른 염색체로 옮겨졌기 때문에 같은 개체로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생각이 옳다면, 하나의 염색체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유전자끼리일수록 바뀌어 들어가 뿔뿔이 흩어질 확률이 높아지고, 연쇄적으로 전달될 빈도가 적어진다. 모건은 이 현상을 통해, 어느 유전자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염색체 지도'를 작성했다. 모건은 노랑초파리의 눈의 색깔과 모양, 날개의 모양 등 각각의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염색체의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표시해 나갔다. 이리하여 유전자가 염색체라는 물체에 놓여 있음이 명확히 증명되었다. 모건은 이 업적을 인정받아 1933년에 노벨 의학 생리상을 받는다.
3. 유전자의 정체는 DNA
1940년대 초까지만해도 유전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정보인 만큼 매우 복잡할 것으로 추측되었고, DNA는 4종류의 염기로만 구성되어 유전물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대다수의 생물학자들은 훨씬 복잡한 단백질이 유전물질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43년, 세균학자 '오즈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 1877~1955)'가 '페렴 쌍구균 실험('그리피스의 시험'이라고 불리기도 함)'을 통해 유전자의 정체가 DNA임을 밝혀 냈다. 에이버리는 영국의 보건부에 근무하고 있던 '프레더릭 그리피스(Frederick Griffith, 1877~1941)'의 폐렴 쌍구균 연구에 자극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폐렴 쌍구균에는 S형, R형이라는 두 유형이 있다. S형 균은 표면이 매끈하며 '병원성'을 갖지만, R형 균은 표면이 까칠까칠하며 '병원성'을 갖지 않는다. '병원성(Pathogenicity)'이란 감염체가 전염을 통해 숙주 개체로 전파된 후, 감염을 통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피스는 열을 가해 죽인 다수의 S형 균에 R형 균을 조금 더해 생쥐에게 주사해보았다. 병원성을 가진 S형 균은 죽은 상태이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쥐는 폐렴에 걸려 죽어있었고, 생쥐의 혈액을 살펴보았더니 살아 있는 S형 균이 다수 발견되었다. S형 균의 형질이 R형 균으로 병원성의 형질이 옮겨져, R형 균이 S형 균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병원성 등의 형질이 타자에서 타자로 옮겨가는 현상을 '형질 전환(Transformation)'이라고 한다.
'에이버리'는 폐렴 쌍구균을 병원성으로 하는 것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실험을 했다. 먼저 S형 균을 가열해 죽이고 파괴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액체에는 단백질과 그 밖에 다수의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수프 속에서 꺼낸 한 종류의 분자를 R형 균에 더해 병원성이 있는 균으로 변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DNA 분자를 제거한 액체는 병원성을 가진 균을 만들 수 없었다. 병원성을 가진 균을 만드는 유전자의 정체가 DNA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오즈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의 성과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에이버리'가 연구 성과를 발표한 것과 같은 시기에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가 'What is Life?(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거기에서 그는 단백질이 유전자의 정체라고 언급했다. 단백질을 두고 'DNA가 유전자의 정체'라는 결론은 그 당시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전자=DNA'라는 생명과학 역사상 최대의 진리를 규명한 '오즈월드 에이버리'는 생전에 노벨상도 수여받지 못했다.
4. DNA의 이중 나선 구조
유전자의 정체가 DNA로 밝혀진 이후에는 DNA 그 자체의 구조를 밝히려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1950년 무렵, 영국의 킹스 칼리지에서 영국의 생물 물리학자인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와 영국의 물리화학자 '로절린드 플랭클린(1920~1958)'은 최초로 DNA의 X선 회절상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미국의 결정학자 '제리 도너휴(Jerry Donohue, 1920~1985)'는 DNA의 염기 A(아데닌)와 T(티민), G(구아닌)와 C(시토신)가 평면에서 수소 결합을 한다는 데이터를 얻었다.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이 두 가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DNA의 구조 모델을 생각해 냈다. 그 모델은 바로 DNA의 이중 나선 구조였다.
이 획기적인 모델은 1953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쳐(nature)'에 1쪽 분량의 논문으로 게재되었고, 이 공적을 인정되어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28~)',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는 1962년에 노벨 의학 생리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