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론 머스크(Elon Musk)' Full Story
    카테고리 없음 2021. 10. 3. 18:26

    1. 남아공에서의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197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머스크의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 아버지는 네덜란드와 영국계 혈통의 전기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캐나다 출신의 모델 겸 영양사였다. 2남 1녀의 장남이었던 머스크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아주 좋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책을 읽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3~4학년 즈음에는 학교 도서관과 마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조리 다 읽어버리게 될 정도였다. 도서관의 책을 다 읽은 이후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심취했다.

     머스크가 열 살이 됐을 때, 모아둔 용돈과 아버지가 보태준 돈으로 컴퓨터를 살 수 있었다. 컴퓨터를 산 머스크는 곧바로 베이식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머스크가 열두 살이 됐을 때에는 '블래스터(Blastar)'라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게임업체에 500달러에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덜컥 이혼하게 되었다. 머스크는 어머니와 남매들과 살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많이 우려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영양사로 큰 성공을 거두는 동시에, 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한편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을 정도로 미개한 국가였다. 자주 긴장과 폭력으로 들끓었고, 백인은 열여덟 살이 되면 의무적으로 입대해야 했다. 머스크는 이런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떠나고 싶어했다.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고 싶어 했고, 특히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인 미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2. 캐나다 국적 획득 (1988년)

     어머니가 캐나다 시민권자였고 캐나다에서 자녀에게 시민권을 줄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서,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머스크는 유학자금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조건하에 부모를 설득했다. 그리고 개정된 법에 맞춘 서류를 1년가량에 걸쳐 완비하여 캐나다 정부의 승인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머스크는 비행기 표를 구하자마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영원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떠났다. 구체적은 계획은 없었지만 기대감에 부푼 채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에 도착 후 머스크는 몬트리올에 살았었던 종조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종조부는 이미 미네소타로 떠난 후였다. 그리하여 머스크는 머물 곳이 없어졌고 캐나다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어머니의 친척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머스크는 캐나다 전역을 돌며 1년 동안 별의별 일을 다 해가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촌의 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기도 하고 밴쿠버에서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기도 하고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기도 한다. 머스크가 캐나다에서 일하는 동안 그의 어머니와 남매는 캐나다로 갈 방법을 찾았다. 머스크의 가족은 캐나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머스크는 남동생 킴벌과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1990년에 퀸스 대학교에 입학한 머스크는 경영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때보다 더욱더 학구열을 불태웠다. 머스크와 킴벌은 공부 외에 다른 활동도 했다. 예를 들면 신문을 읽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식사를 하자고 요청했다. 머스크는 연설 대회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대학생활이 체질에 잘 맞았고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그의 야망과 지적 능력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머스크도 더 이상 잘난 척을 하지 않았고 이러한 환경에서 꿈을 더 키워나갈 수 있었다.

    3. 미국에서의 일론 머스크

     머스크는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소속 대학교에 다니는 것이 미래의 문을 좀 더 쉽게 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옮겨 경제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한다. 머스크는 퀸스 대학교에 다닐 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물리학과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머스크는 대학교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비디오 게임 사업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야심을 채울 수 있을만한 원대한 사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머스크는 자신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미래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분야는 '인터넷', '재생에너지', '우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머스크는 이 세 가지 분야의 꿈을 모두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젠슨 황 (Jensen Huang) 엔비디아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우)

    4. Zip2 설립 (1995년~)

     머스크는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발전 중인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웹상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머스크는 결국 스태퍼드 박사과정을 이틀 만에 그만두고, 동생인 킴벌에게 실리콘밸리로 이주하여 사업을 하자고 설득하였다. 그렇게 머스크 형제는 도원결의하였고, 작은 사무실을 빌려 Zip2라는 회사를 창업하였다. Zip2는 지도에 회사의 정보나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서비스인 것 같지만, 이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머스크는 서비스를 위한 초기 코딩을 혼자서 담당했고, 붙임성이 좋은 킴벌은 사업체를 직접 방문하여 세일즈를 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Zip2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 있는 사업체의 이름과 주소를 포함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싸게 획득할 수 있었다. 또한 전 세계에 디지털 맵 및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자 지도업체인 '나브텍(Navteq)'에 접촉해 무상으로 기술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머스크는 이 두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해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서비스를 점점 보완해나가기 시작한다. 이후 머스크는 Zip2를 4년 후에는 '컴팩(Compaq)'에 3억 7백만 달러에 매각하였다. 이로 인해 머스크는 2200만 달러를 거머쥐게 되었다.

    5. 엑스닷컴 설립 (1999년~)

     큰 부자가 된 머스크는 곧바로 인터넷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스닷컴(X.com)'을 창업했다. 그리고 재산의 대부분도 엑스닷컴에 투자했다. 엑스닷컴은 머스크의 생각에 따라 몇 가지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서비스를 사용하겠다고 신청하거나 다른 고객을 소개할 때마다 현금카드를 주었고, 사소한 수수료와 과다 인출 수수료를 없앴다. 특히 이메일 주소를 사이트에 연결하기만 해도 송금이 가능한 '지명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여 편리하고 신속한 은행 서비스를 구축하였다. 엑스닷컴은 혁신적인 개념 덕분에 가입자가 두 달 만에 20만 명을 돌파하였다.

    5-1. 경쟁사 '콘피니티'의 등장

     하지만 곧 엑스닷컴처럼 웹과 이메일 기반 결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콘피니티(Confinity)라는 경쟁사가 나타났다. 이 두 회사는 규모가 크고 속도가 빠른 쪽이 이 분야를 승자독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두 회사는 출혈적인 경쟁을 해야 했고 막대한 자금을 광고비로 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해커들과 싸우는데도 돈을 많이 써야 했다. 이렇게 계속 경쟁만 하다가는 두 회사 모두 망하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두 회사는 서로 경쟁하느라 돈을 낭비하지 말고 협력하자고 합의를 하게 된다. 머스크는 합병회사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

    5-2. 합병 후

     합병 후 엑스닷컴의 직원들은 기업문화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친근한 분위기는 형성되지 않았다. 내부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구성원들과의 갈등도 자주 일어났다. 가령 기술 기반 구조의 설계를 둘러싸고 콘피니티 팀은 리눅스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머스크는 생산성이 높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센터 소프트웨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이름도 머스크는 엑스닷컴 브랜드를 고수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포르노 사이트 이름 같다며 페이팔이라는 브랜드를 더 선호했다. 갖가지 위기를 맞는 과정에서 머스크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엑스닷컴의 직원 중에는 머스크를 회사에서 몰아낼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결국 CEO 자리는 '피터 티엘(Peter Thiel)'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머스크는 해임되었다. 그리고 회사 이름도 '페이팔(PayPal)'로 바뀌었다.

    6.인류는 왜 화성에 가지 못했을까?

     머스크는 오래전부터 우주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는 인간이 화성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머스크는 특히 지구 밖에 자립할 수 있는 제2의 문명이 없다면 인류는 모두 멸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스크는 왜 아직도 인간을 화성에 보내지 못한 것인지 궁금해했고, 즉각 NASA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화성에 대한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머스크는 크게 충격을 받는다.

     사실 당시 NASA는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접은 상태였다. 이는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접은 것이 아니라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가들은 거대 비전을 무산시키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었고, NASA도 저가형 로켓을 개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7. Space X 설립 (2002년~)

     이후 머스크는 우주공학을 독학하기 시작했고, 로켓 제작에 필요한 재료비가 전체 개발비의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로켓 제작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결론해 도달했다. 결국 머스크는 직접 화성행 로켓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도 창업 당시 로켓 사업의 성공 확률이 10% 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머스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좋으니, 인류에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머스크는 재사용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여, 기존 비용의 10분의 1로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항공 우주 회사 '스페이스 X(Space X)'를 설립하였다. 당시 머스크는 '페이팔(Paypal)'이 '이베이'에 매각되면서 생긴 자금으로 인해 1억 달러 이상을 스페이스 X에 투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머스크가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페이스 X는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무시하고, 첫 번째 로켓인 '팰컨 1호'를 개발하는데 착수했다.

    8. 테슬라 모터스 (2003년~)

     머스크는 '스페이스 X(Space X)'를 설립한지 2년쯤 지났을 무렵, 또 다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바로 전기차 사업이었다. 머스크는 대학 시절부터 늘어나는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의 미래에 대해 자주 고민해왔었다. 그는 자연환경을 최소한 현 수준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가솔린차를 전기차로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머스크는 전기차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머스크는 전기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틴 에버하드(Martin Eerhard)'와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을 만나게 된다. 이 둘은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를 공동 창업하게 되었고, 머스크는 자금을 투자하여 최대주주에 등극하고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테슬라는 머스크의 의도에 따라 고급 스포츠카를 먼저 만든 후, 대중적인 차를 만들어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다수의 회사가 일반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개발한 것과는 달리 독창적인 사업 전략이었다. 머스크는 이 전략을 토대로 미국 전역의 투자가들을 설득해 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테슬라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전기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자동차 업계에서 아마추어나 다름없었다. 개발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터널은 길었다. 테슬라는 머스크가 투자설명회에서 약속한 개발 기간인 2년이 지나도 첫 차 '로드스터(Roadster)'를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머스크는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른 자동차 회사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테슬라는 영국의 '로터스 자동차(Lotus Cars)'와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 계약으로 인해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마틴 에버하드(좌), 마크 타페닝(우)

    9. 솔라시티 (2006년~)

     '스페이스 X'와 '테슬라'라는 굵직한 현안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머스크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006년, 머스크는 자신의 거대 비전에 따라 태양 에너지 전문 업체인 '솔라시티(SolarCity)'를 사촌 동생 '린던 리브(Lyndon Rive)'와 공동 설립하기로 했다. 솔라시티는 테슬라의 전기차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설립된 회사이기도 하다. 실제로 솔라시티는 2016년에 테슬라에 인수되었다.

    10. 팰컨 1호의 계속되는 실패

     우주산업에서의 로켓 발사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스페이스 X가 로켓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인다고 해도 '팰컨 1호(Falcon 1)'를 제대로 작동시킬 때까지 발사를 시도해볼 수 있는 횟수는 기껏해야 서너 번 정도였다. 한편, 2006년 당시 NASA는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COTS)'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란 NASA가 발주하고 민간 기업이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화물을 수송하는 사업이다. 스페이스 X는 이 프로젝트를 위한 두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X의 '팰컨 1호' 발사가 2008년까지 3차례 모두 실패하면서, 예산은 거의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팰컨 1호의 발사가 계속 실패하면서, 우주 개발 전문가들은 스페이스 X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까지 비판에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계속되는 실패의 순간에도, 대형 로켓 '팰컨 9호'의 설계 개발을 병행하였다.

    COTS(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

    11. 테슬라의 위기

     테슬라는 '로드스터'의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화제를 모으는데 성공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조지 글루니 등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 유명 인사들의 이름도 예약 명단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시장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로드스터를 출하하기까지 대대적인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테스트 과정에서 변속기의 내구성에서 문제가 드러나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로드스터를 제때 출하하지 못하면 자금 흐름이 막히게 될 것이 뻔했고 그러면 회사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머스크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결단을 해야 했다. 머스크는 CEO인 '마틴 에버하드'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로드스터 발매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새로운 CEO를 찾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CEO로 임명된 '드로리(Ze'ev Drori)'는 테슬라의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개혁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조치로 인해 테슬라의 내분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머스크는 여론의 불안감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에 머스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모든 투자자가 포기한다 해도 내가 끝까지 테슬라를 지원할 것이다!'라고 선포하며 배짱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머스크는 꿈의 속성이 순풍을 만나면 급격하게 팽창하지만, 역풍을 맞으면 삽시간에 오그라든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이 휘청거리고 테슬라가 도산 위기에 처한 시기에도, 머스크는 투자설명회를 개최하여 투자금을 유치하였다. 온갖 상황이 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했지만 머스크는 앞만 보고 나아갔다.

    12. 암흑의 2008년

     2008년은 테슬라에서 로드스터를 제때 출하하지 못하고, 스페이스 X에서는 팰컨 1호의 세 번째 발사까지 실패한 시기였다. 두 회사 모두 막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최악의 불황을 맞은 시기였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줄어들면서 아내 '저스틴 윌슨(Justin Wilson)'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결국 둘은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2008년은 머스크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머스크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래가 암울해 보였다. 머스크의 제국은 이대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8년 12월 24일 오후 6시, 테슬라는 자금 모금을 최종 기일의 최종 시간에 간신히 완료하게 되면서 부도 위기를 극적으로 넘기게 되었다.

    13. '팰컨 1호' 발사에 성공하다.

     '스페이스 X'는 간발의 차로 4번째 발사 시도를 위한 자금을 긁어모으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주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인 2008년 9월 28일, 팰컨 1호는 4번째 발사에서 극적으로 궤도 진입에 성공하게 되었다. 민간 로켓으로는 처음으로 지구 궤도에 진입한 것이었다. 머스크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고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표현하였다. 스페이스 X는 팰컨 1호의 발사 비용이 670만 달러라고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보도 보였다. 기존의 로켓 발사 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는 사실에 전 세계는 깜짝 놀랐다. 팰컨 1호의 성공으로 인해 스페이스 X는 많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머스크는 이로써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페이스 X는 NASA와 국제 우주정거장에 보낼 무인 화물선과 유인 우주선 계획인 '상업용 재보급 서비스(CRS)'라는 16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계약도 따낼 수 있었다. 팰컨 1호 로켓을 개발할 때는 직접 자금을 충당했지만, 이제 NASA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게 된 것이다.

    14. 로드스터를 출하하다.

     2009년 4월, 테슬라에서도 로드스터를 320대 출하하면서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로드스터는 예정된 개발 기간보다 두 배는 더 걸렸지만 완성도는 높았다. 테슬라는 도요타 자동차와 파나소닉으로부터 투자를 유치 받는데 성공하였고, 미국 정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머스크는 어느새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던 암흑의 2008년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스크와 테슬라는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는 미디어와 전문가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BBC의 프로그램 '톱 기어(Top Gear)'는 로드스터를 배터리 방전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을 악의적으로 연출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테슬라에서 조사한 결과, 배터리가 25% 이하로 떨어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머스크는 이에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이처럼 머스크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15. '팰컨 9' 발사에 성공하다.

     2010년부터는 스페이스 X에서 2단 우주 발사체인 팰컨 9의 비행을 성공시키기 시작했다. 팰컨 9의 첫 번째 발사에서는 우주선 '드래곤'의 모형으로 테스트 비행을 하는데 성공했다. 팰컨 9의 두 번째 발사에서는 진짜 우주선 '드래곤'이 탑재되어 있었다. 우주선 드래곤은 궤도에 진입했고 지구 주위를 두 시간 정도 돌았다. 이후 드래곤은 태평양 위에서 대기권으로 진입 낙하산을 펼치고 무사 귀환하는데 성공하였다. 팰컨 9의 성공으로 인해 머스크는 순식간에 새로운 우주 개발의 역사를 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팰컨 9의 세 번째 발사에서는 우주선 드래곤이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도킹에 성공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팰컨 9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발사에서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화물을 운송하는데 성공했다.

     스페이스 엑스는 재사용 가능한 '팰컨 9(Falcon 9)'도 개발하였다. 2015년 12월에 팰컨 9 로켓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추진체 로켓을 그대로 회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2018년에는 간단한 정비만 거치고 바로 발사될 수 있도록 설계된 '팰콘 9'의 최종 업그레이드 버전인 '팰컨 9 블록5(Falcon 9 Block5)'의 발사까지 성공하였다.

    팰컨 9(Falcon 9)

    16. 테슬라의 상장과 흑자전환

     2010년에 들어서는 테슬라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이로써 테슬라는 포드 자동차가 주식 시장에 상장한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상장한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2012년 6월부터는 대량생산 모델인 '모델 S'를 북미 전역에 판매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창업 이래 적자만 기록하던 테슬라는 2013년 일사분기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테슬라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고, 머스크는 전기 자동차 초고속 충전소인 '슈퍼차저 스테이션(SUper Charger Station)'을 미국 전역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슈퍼차저 스테이션'이란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차 충전 시스템이다. 테슬라는 전기차를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차 생태계를 판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전기차의 판매량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충전시설이다. 하지만 테슬라 외의 전기차 회사들은 충전시설 설치를 국가나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2014년에는 테슬라에서 전기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 보유 특허를 모두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테슬라는 '모델X'와 '모델3', '모델Y' 그리고 전기 트럭까지 공개하면서 전기차의 대중화를 실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테슬라 상장

    17. 팰컨 헤비(Falcon Heavy)

     '스페이스 X(Space X)'는 팰컨 9보다 우주 비행거리가 길고 훨씬 커다란 우주선을 탑재할 수 있는 거대 로켓인 '팰컨 헤비(Falcon Heavy)'도 개발하였다. 팰컨 헤비는 스페이스X에 현존하는 로켓 중에서 가장 강력한 로켓이다. 하지만 팰컨 헤비 로켓은 버스 한 대를 채울 만큼의 사람을 화성으로 수송하지는 않는다. 팰컨 헤비의 후속 모델이 그 임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그 모델을 만드는 작업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18. 스타쉽 발사 시스템 (Starship Launch System)

     스타십 발사 시스템은 스페이스 X에서 개발 중인 다목적 초대형 우주발사체다. 현재 스페이스X가 운용하고 있는 모든 우주선과 로켓을 대체할 수 있는 엄청난 대형 기체인 것이다. 스타십 발사 시스템은 화성과 달 탐사 그리고 먼 미래에 있을 행성 간 탐사까지 고려해 설계되었다. 스타십은 본격적으로 인류를 태양계 다양한 곳으로 실어나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우주선인 것이다.

     여러분들은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와 솔라시티를 왜 세웠는지 아는가? 그 이유는 태양광 발전과 전기자동차를 함께 보급하면 온난화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을 화성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19. 인류의 두 가지 미래

     인류에게는 두 가지 미래가 있다. 하나는 훗날 끔찍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영원히 지구에서 머물러 있어야 하는 미래, 다른 하나는 인류가 여러 행성으로 나아가서 다행성 종이 되고 태양계 밖으로까지 나아가는 미래다.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는 것은 대국적으로 봤을 때 인류의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지구 외의 영역 확보가 인류에게 일종의 생명 보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지금까지 5번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대멸종 위기는 언제든 또다시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인류는 운이 좋게도 지적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었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인류는 더 이상 멸종에 굴복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머스크가 인류의 생존을 확보하는 길을 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20. 뉴럴링크(Neuralink)

     뉴럴링크는 인간의 지능을 증강시키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2016년에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를 개발하는 수준에 그치겠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뇌를 기계와 융합'하거나 '기계 뇌로 교체' 혹은 '마인드 업로드(mind upload)'하려는 목적을 뇌 공학 회사이다.

     뉴럴링크는 2019년 7월에 뇌에 이식할 수 있는 폴리머 소재 전극과 초소형 칩인 N1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 장치를 공개하였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