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서번트 증후군'
- 서번트 증후군에 관한 기록들
- 서번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 아스퍼거 증후군
- 서번트들의 초인적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 서번트들의 두뇌를 스캔해보았다.
- 우리도 서번트가 될 수 있는가?
- '사진 같은 기억력'은 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
1.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서번트 증후군'
지금까지 보고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70억 인구 중 서번트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약 100명 정도라고 한다. 물론 사고 후 정신 능력이 초인적으로 향상된 사람만 100명이라는 뜻이지, 초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사고 전보다 능력이 향상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현재 자폐증 환자 중 약 10%는 '서번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자폐증 환자 가운데 이른바 '자폐성 서번트(Autistic Savant)'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번트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자폐증 환자인데도 특정 분야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더 중요한 것은 평범했던 사람이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을 입은 후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불가사의한 능력이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을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스터 Z(Mr. Z)'는 아홉 살 때 사고로 머리에 총을 맞았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좌뇌가 크게 손상되어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고, 청력과 언어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데 총상은 '미스터 Z'에게 또 다른 흔적을 남겼다. 기억력이 엄청나게 좋아지고, 온갖 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등 전형적인 서번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미스터 Z'뿐만이 아니다 1979년 당시 10살이었던 '올란도 세렐(Orlando Serrell)'은 왼쪽 머리를 야구공으로 세게 얻어맞고 한동안 두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두통이 사라지면서 계산능력이 거의 천재 수준으로 일취월장했고, 어떤 사건이든 사진처럼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는 수천 년 후의 날짜와 요일을 단 몇 초 만에 계산할 수 있었다.
2. 서번트 증후군에 관한 기록들
1789년, '벤저민 러시(Benjamin Rush)' 박사는 정신장애를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역사상 최초로 '서번트(servant)'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그 환자에게 지금까지 몇 초 동안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1분 30초 만에 2,210,500,800초라는 정확한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정확한 나이는 70살 17일 12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서번트를 연구해온 위스콘신의 의사 '대럴드 트레퍼드(Darold Treffert)' 박사는 한 맹인 서번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체스판의 한 사각형에 옥수수알 2개를 놓고, 그다음 사각형에는 4개를 놓고, 그다음 사각형에는 8개를 놓고... 이런 식으로 두 배씩 늘려나가면, 64번째 사각형에는 옥수수알 몇 개를 놓을 수 있는가? 그랬더니 그 서번트는 45초 만에 18,446,744,073,709,551,616이라는 정확한 답을 내놓았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서번트는 '톰 크루즈(Tom Cruise)'와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이 친형제로 출연했던 영화 '레인맨(Rain Man)'을 실제 모델인 '킴 피크(Kim Peek, 1951~2009)'일 것이다. 그는 혼자서 신발 끈도 못매고, 셔츠의 단추도 채우지 못할 만큼 정신적 장애가 심했지만, 무려 1200권의 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했다. 게다가 책을 단순히 외우는 정도가 아니라, 특정 단어가 무슨 책 몇 페이지 몇째 줄에 나오는지까지 완전히 꿰고 있었다. 또한 그는 속독가로도 유명했는데, 책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평균 8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책을 읽는 방식이 매우 특이했는데, 두 눈으로 각기 다른 페이지를 보면서 책 양면을 한꺼번에 읽어 내려갔다. '킴 피크'는 젊은 수줍음을 많이 타서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TV에 출연하여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보여주었고, 청중들이 즉석에서 던지는 난해한 질문에 척척 대답하기도 했다.
3. 서번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물론 '천재성'과 '암기력'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서번트들은 수학뿐만 아니라 '음악', '예술', '기계공학(Mechanical Engineering)'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자폐성 서번트는 머릿속에 진행되는 사고과정을 말로 설명하지 못하므로, 자폐증보다 정도가 가벼운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 환자를 연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1994년이 돼서야 심리적 질환으로 인정되어, 아직은 데이터가 많지 않은 상태다. 자폐증과 마찬가지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약간의 훈련을 거치면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정신적 과정을 말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서번트 수준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 가운데 아스퍼거증후군을 앓았던 사람이 꽤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둔형 물리학자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6)'과 '폴 디랙(Paul Dirac, 1902~1984)'이다. 특히 뉴턴은 주변 사람들과 사소한 잡담조차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4. 아스퍼거 증후군
서번트들은 매우 희귀한 경우여서 별로 실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미한 자폐증이나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앓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특히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곳에 가면 이런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TV 드라마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에는 조금 멍청하고 유별난 젊은 물리학도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들은 여자친구를 사귀는 기술이 부족하여 에피소드마다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다. 이 드라마는 '똑똑한 사람은 괴짜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기본 가정으로 깔고 있다. 실제로 첨단 기술 개발의 대가들이 모여있는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과학자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가벼운 자폐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정보기술과 같은 특정 분야에 알맞은 정신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위와 같은 통념의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의 과학자들은 '경미한 자폐증 진단을 받은 16명'과 '정상적인 사람 16명'을 선발하여,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해 보았다. 테스트는 복잡한 패턴으로 적혀 있는 문자와 아무런 규칙 없이 나열된 난수 슬라이드를 여러 장 본 후, 자신이 봤던 숫자나 문자를 기록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랬더니 짐작한 대로 자폐 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훨씬 좋은 성적을 얻었다. 놀라운 것은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두 그룹의 점수 차가 더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 실험 결과, 가벼운 자폐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일반인보다 인지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똑똑한 사람들이 모두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직종에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5. 서번트들의 초인적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러면 서번트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왜 초인적 능력을 보이는 것일까? 초인적 능력의 원천에 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본래 그렇게 타고난 것이며 '일종의 변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총알에 맞은 후부터 달라졌다고 해도, 그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평범한 사람은 머리에 충격을 받거나 후천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천재가 될 수 없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내재되어 있던 천재성이 언날 갑자기 발현되는 것은 진화론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지능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향상되어왔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서번트 천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머지 보통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재능을 어딘가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이 기적 같은 재능을 일깨울 수 있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심지어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천재적 재능이 숨어 있으며, '전자기 스캐너(TES)'로 자기장을 걸어주면 이 재능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술논문까지 발표되었다.
6. 서번트들의 두뇌를 스캔해보았다.
서번트와 관련된 이야기는 과장된 소문이 많아서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기 공명 영상법(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를 비롯한 여러 두뇌 스캔 장비가 개발되면서, 서번트들의 뇌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킴 피크(Kim Peek)'의 뇌는 확실히 비정상이었다. 그의 뇌를 스캔해보니까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매우 빈약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책의 두 페이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균형감각을 관장하는 소뇌가 기형적으로 생겨 셔츠 단추를 못 채울 정도로 움직임이 서툴렀다. 안타깝게도 MRI 스캔으로는 그의 '계산능력'과 '사진 같은 기억력'의 원천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양한 스캔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후천성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환자 대부분이 좌뇌에 손상을 입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특히 '좌전측두피질(Left Anterior Temporal Cortex)'과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서번트를 '왼쪽 측두엽의 매우 중요한 부위가 손상된 환자'로 간주하는 학자도 있다. 이 부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억을 주기적으로 지우는 일종의 '센서(Sensor)' 역할을 하는데, 어쩌다가 좌뇌에 손상을 입으면 우뇌가 이 역할을 떠맡게 된다. 좌뇌는 때에 따라 현실을 왜곡하거나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하지만, 우뇌는 이런 면에서 좌뇌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정확한 우뇌가 평소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서번트 수준의 능력이 발현된다.'고 믿어왔다. 예컨대 우뇌는 예술적인 면에서 좌뇌보다 뛰어나고, 좌뇌는 가능한 한 예술적 재능이 발휘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좌뇌에 손상을 입으면, 전권을 장악한 우뇌가 예술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서번트가 도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서번트가 아니더라도 좌뇌의 억제 기능을 약화시키면 숨어 있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은 '좌뇌를 다치면 우뇌가 보상해 준다.'고 말해왔다.
6-1.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서번트
1998년에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브루스 밀러(Bruce Miller)'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연구를 수행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이들은 '전두측두엽 치매(FTD: Frontotemporal Dementia)' 초기 증세를 보이는 환자 5명을 관찰했는데, 이들 중 몇 명은 과거에 예술과 거의 무관하게 살았음에도 증세가 심해질수록 거의 서번트에 가까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 또한 이들의 능력은 '듣기'보다 '보기'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만든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지만, 독창성, 추상성, 상징성은 별로 없는 모조작에 가까웠다.
'브루스 밀러' 박사는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좌전측두피질의 기능이 저하되면 '우뇌 시각계(Visual System)'의 억제 기능이 약해지면서 예술적 능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좌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그 역할을 떠맡으면서 새로운 능력이 발현된다는 것도 다시 한번 사실로 확인되었다.
6-2. 과잉기억증후군
과학자들은 서번트뿐만 아니라 '과잉기억 증후군(Hyperthymestic Syndrome)'을 보이는 사람들의 뇌도 MRI로 촬영해 보았다. 이들은 자폐증이나 기타 정신적 장애가 있지는 않지만 기억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잉기억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미국 전체를 통틀어 4명밖에 없다. 그중 한 사람이 '질 프라이스(Jill Price)'인데, 그녀는 수십 년 전의 일까지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억력이 좋으면 매우 편할 것 같지만, 사실 그녀는 지우고 싶은 기억까지 머리에 담고 사느라 매우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녀는 '자동 조종 장치'가 켜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의식하지 않아도 모든 생각과 느낌이 알맞은 자리를 찾아 자동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치의 스위치를 자기 의지로 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분리된 스크린'에 비유했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가 별도의 스크린에서 '동시상영' 중인데, 이들이 주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과학자들은 2000년부터 '질 프라이스(Jill Price)'의 뇌를 꾸준히 스캔해 왔다. 그 결과, 습관이 형성되는 부분인 '미상핵(Caudate nuclei)'과 사람의 얼굴과 다양한 사실이 저장되는 부분인 '측두엽(temporal lobe)'이 평균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두 부위가 서로 협조하여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을 만들어낸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의 뇌는 '좌측 측두엽'에 손상을 입은 서번트의 뇌와는 분명히 다른 형상을 띠고 있다. 이로써 '과잉기억 증후군'의 원인은 대충 알려졌다.
7. 우리도 서번트가 될 수 있는가?
그러면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이런 능력을 끄집어낼 수는 없을까? 혹시 평범한 사람의 좌뇌를 인위적으로 둔하게 만들어서 우뇌의 활동성을 향상시키면, 서번트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얻어진 연구 결과를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다. '경두개 자기 자극법(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은 '자기에너지(Magnetic Energy)'를 이용하여 뇌 내의 신경세포를 비침습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이다. '경두개 자기 자극법(TMS)'을 이용하면 뇌 특정 부위의 활동을 둔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TMS를 '좌전두측두엽'과 '안와전두피질'에 쪼여서 서번트 같은 능력이 발현되도록 만들 수 있지 않을까?
7-1. 왼쪽 전전두엽에 TMS를 쪼였더니, 갑자기 서번트 같은 능력을 발휘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의 '앨런 스나이더(Allan Snyder)'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에 옮겨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논문을 통해 '한 피험자의 좌뇌에 TMS를 쪼였더니, 갑자기 서번트 같은 능력을 발휘했다.'고 보고했다. 피험자의 좌뇌에 저주파 자기장을 걸어서 특정 부위의 기능을 저하시켰더니, 우뇌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앨런 스나이더'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11명의 남성 지원자들이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왼쪽 전전두엽에 TMS를 쪼였는데, 이들 가운데 2명이 원고를 교정하거나 중복된 단어를 찾는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또 '로빈 영(Robyn Young)' 박사가 이끄는 또 다른 연구팀은 17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여, 이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피험자에게 TMS를 쪼인 결과, 다섯 명이 서번트 수준의 능력을 갑자기 발휘했다고 한다.
전전두엽에 TMS를 쪼이면, 주변 물체를 인식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정확성이 높아진다. TMS에 의한 효과는 특정 부위에 카페인을 집중적으로 투여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자기장이 왜 그런 역할을 하는지는 아진 분명치 않다. '앨런 스나이더'와 '로빈 영'의 실험은 '좌전두측두엽'의 기능을 둔화시키면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지만,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아서 증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7-2. 현재 TMS의 정밀도는 많이 떨어진다.
과거에는 이런 실험을 하려면,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이 있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TMS를 이용하면 되므로 굳이 그런 환자를 찾을 필요가 없고, 실험자 마음대로 뇌의 특정 부위를 골라서 둔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TMS 탐침은 한 번에 수백만 개의 뉴런을 잠재우는 수준으로, 아직 정밀도가 많이 떨어진다. 탐사 자기장은 전기장과 달리 수 cm 범위로 퍼지기 때문이다. 모든 서번트는 '좌전두측두엽'과 '안와전두피질'에 손상을 입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능이 둔해지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부위는 아주 작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TMS를 사용하면 그 부위뿐만 아니라 서번트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위까지 둔화시키기 때문에,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TMS 탐침이 정밀해져서 서번트와 관련된 부위만 정확하게 둔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부위가 밝혀지면, '뇌 심부 자극술(DBS: Deep Brain Stimulation)'처럼 훨씬 정확한 전기 탐침으로 원하는 부위를 겨낭할 수 있다. 그리고 스위치만 누르면 해당 부위가 둔화하면서, 피험자는 서번트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8. '사진 같은 기억력'은 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
앞서 말한 대로 서번트는 좌뇌의 손상을 우뇌로부터 보상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뇌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작동하길래 서번트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까? 2012년까지만 해도 '사진 같은 기억력'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보통 사람은 무슨 수를 써도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 같은 기억력'은 뇌의 어떤 기능이 뛰어나서 생긴 능력이 아니라, 어떤 기능이 부족해서 나타난 결과이다. 즉, 무언가를 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기억력이 비정상적으로 좋아진다.
플로리다에 있는 '스크립스 연구소(Scripps Research Institute)'의 과학자들은 과실파르가 쉽게 배울 수 있는 실험 방법을 개발했다. 특정한 냄새가 나는 곳을 따라가면 먹이를 얻고, 다른 냄새를 따라가면 전기 충격을 받는 식이다. 과학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기억이 형성되고 잊히는 과정을 밝히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은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스크립스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도파민'이 기억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기억을 잊게 하기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새로운 기억이 형성될 때는 DCA1이라는 수용체가 활성화되고, 기억을 지울 때는 DAMB라는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예전에는 기억력 감퇴가 뇌의 노화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라고 믿었다. 나이가 들면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와 함께 기억력도 감퇴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뇌의 '능동적인 행동'이며, 이 과정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스크립스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과실파리의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면서 행동을 관찰했다. 이들의 짐작대로 DCA1을 억제하면 과실파리의 기억력이 감퇴하고, DAMB를 억제하면 잊어버리는 능력이 감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 이들은 도파민 효과가 서번트의 능력에 부분적으로 기여한다는 가정을 세웠다. 서번트들이 그토록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데에는 '잊는 능력의 결핍'이 한몫한다는 가설이다. 이 연구에 참여해온 대학원생 '제이콥 베리(Jacob Berr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번트들의 기억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능력이 기억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아마도 그들은 망각 체계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일 것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하면 인지력이나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을 개발할 수도 있다. 망각 능력을 억제하면 인지력이 좋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8-1. 망각 과정을 둔화시키는 약?
만약 이 결과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망각 과정을 둔화시키는 약'이나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것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꼭 기억해야 할 일을 골라서 기억할 수 있다면 많은 면에서 꽤 유용할 것이다. '서번트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기억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수용체들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약물을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인지력이나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과도한 정보 때문에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