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자연이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 유기농 먹거리도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 유기농은 환경 측면에서 바람직한가?
- '화학비료'가 더 효율적이다.
- 식물입장에서는 '유기질'과 '무기질'의 차이가 없다.
- 농약과 화학비료의 부작용은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1. 자연이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주의에 끌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아마 문명이 주는 피로가 있고, 위험 요소도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Nature)'이라고 다 안전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식물을 벌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충제 성분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과일과 채소에는 극소량이나마 천연 발암 물질이 들어 있다. 아린 맛이 나는 '새순'은 독성이 더 강하다. 싹이 난 감자 눈을 먹지 않는 이유다.
천연 물질 역시 화학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인체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경우, 강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2019년에 한국에서는 천연 염색약의 부작용으로 얼굴까지 검게된 사람들이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몸에 좋다는 천연 물질을 도포한 침대 매트리스가 알고 보니 방사선을 방출하는 침구였던 사례도 있다. 이처럼 단순히 '몸에 좋다'라는 속설을 무지성으로 믿다가는 오히려 몸을 해치기 십상이다.
1990년대 초에는 벨기에에서 한 자연주의 다이어트 클리닉의 체중 조절약을 복용한 100여 명의 젊은 여성이 '급성 신부전증'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부전증(Renal Failure)'이란 신장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역학 조사 결과 '아리스토로크산(Arstolochic Acid)'을 함유한 '광방기(Southern Fangchi)'라는 중국산 한약재 때문임이 밝혀졌다. 구체적으로는 약재 수입업자가 '방기'와 '광방기'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일어난 사고로 판명되었다. 투석과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에는 10여 년 뒤 신장암 진단을 받은 이들이 속출했다. 한약재의 독성으로 인한 사고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난다. 자연산이라고 안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독버섯도 자연산이고, '라돈(Rn, 원자번호 86번)'도 천연 물질이다.
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를 액화시킨 '목초액(Pyroligneous Liquor)'은 민간요법 치료제나 천연 농약 등으로 흔히 쓰이지만, 나무가 탈 때나 오는 '벤조피렌(Benzopyrene)'이나 '타르(Tar)'같은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십상이다. 이 화학 성분은 정제해도 잘 제거되지 않는다. 대체 농약으로 쓸 경우, 일반 농약보다 잔류 독성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목초액은 화목 보일러나 숯가마에서 나오는 부산물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서 안전성을 보장하기 힘들다. 육류를 훈제할 때도 정제된 목초액을 쓰기도 한다. 또 '목초액'이 무좀이나 아토피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민간요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독성 물질을 바르는 격이다.
2. 유기농 먹거리도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기른 유기농 먹거리도 알고 보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2-1. 유기농 먹거리 사고
2017년, 유럽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 파동'이 일어나면서 한국에도 불똥이 튄 적이 있다. 살충제가 검출된 달걀 생산 농가의 상당수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이어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녹림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말 당시 3000마리 이상을 사용하는 양계 농장 가운데 73%가 친환경 받은 농가로, 여기서 생산된 계란이 전체 유통량의 80~90%를 차지했다. '친환경 인증'을 부여하는 민간 업체만 해도 37곳이나 되어 허술한 인증 절차가 도마에 오르면서 정부가 인증 제도를 허술하게 관리해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는 '유기농'과 '무농약' 두 가지뿐이다. '유기농' 인증은 최소 3년간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은 땅에서 재배한 작물에 부여하고, '무농약' 인증은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 비료를 적정량의 3분의 1 이하만 써서 재배한 작물에 부여한다.
2011년 독일에서는 수천 명이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되어 44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스페인산 유기농 오이가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독일의 한 유기농 기업이 재배한 새싹 채소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또 2018년 미국에서는 유기농으로 기른 '로메인 상추(Romane Lettuce)'를 먹고 200여 명이 감염되어 5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2-2. '잔류 농약'으로 인한 '화학적 위험'보다 '생물학적 위험'이 더 크다.
유기농 식품 소비가 늘면서 유기농도 점점 기업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유기농 바람이 불기 시작해 1990년대에는 '어스바운드팜(Earthbound Farm)' 같은 대규모 유기농 기업이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유럽에도 유기농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유기농 기업이 생산한 채소가 국경을 넘어 유통되고 있다. 식품의 산업화로 표준화된 식품이 광범위한 지역에 유통되면서 유통 과정 중 변질될 위험이 높아졌다. 또 사고가 일어날 경우 피해 지역이 훨씬 광범위해졌다. 과거에는 감염 범위가 마을 단위였다면, 지금은 국가 단위, 지구촌 단위로 확장되었다.
2009년 미국 공익과학센터(CSPI: Center for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가 실시한 식품 원인 질병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오염원의 90%가 세균, 6%가 바이러스, 3%가 화학 물질로 밝혀졌다. 잔류 농약으로 인한 '화학적 위험'보다 '생물학적 위험'이 훨씬 더 큰 셈이다. 유기농에 쓰이는 '유기질 비료'는 원료인 가축 분뇨에 들어 있는 항생제 성분으로 인해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병원균의 온상이 되기 쉽다. 또한 작물에 질소 과잉을 유발할 수도 있다. 흔히 벌레 먹은 채소가 안전하다고 알고 있지만, 잎에 '초산성 질소'가 많을수록 벌레가 많이 꾄다. '초산성 질소(Nitrate Nitrogen)'란 암모니아성 질소가 초산균에 의해 산화되어 만들어지는 최종 생산물이다. '초산성 질소'는 체내에서 단백질과 결합해 '니트로소아민(Nitrosoamine)'이라는 발암 물질을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 전문가들은 아기에게는 유기농 채소보다 오히려 일반 채소를 먹이라고 권한다. 유기농 채소에 있는 세균으로 인해 면역 체계가 약한 아기가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통념과 달리, 유기농 채소일수록 더 잘 씻고 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잎이 유난히 짙은 녹색을 띠는 채소는 '초산성 질소'가 많기 때문에 끓는 물에 데쳐서 질소 성분을 우려내고 요리하는 것이 좋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이 맛있고 싱싱하기는 하지만, 더 안전한 것은 아니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3. 유기농은 환경 측면에서 바람직한가?
식품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 말고도, 유기농이 환경 측면에서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유기농으로 관행농과 비슷한 수확량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농토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곧 더 많은 숲을 베고 물을 소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점점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유기농으로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위생과 영양 상태가 개선되면서 유아 사망률이 극적으로 낮아졌는데, 이는 수십만 년 인류사 가운데 아주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사실상 현대 의학과 농업 기술 덕분이다. '페니실린'과 '화학 비료'가 지난 백여 년 동안 인류에게 기여한 '공'과 '과'를 제대로 짚을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급증하는 인구로 인해 한 세기 이상 기아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인류는 20세기 초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가 질소고정법을 발명하면서 비로소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화학 비료'는 인류를 기아에서 해방시켰지만,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빗물에 씻겨 내려가 수질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 대안으로 친환경 유기농이 주목받고 있지만, 질소 공급은 유기농에서도 풀기 힘든 문제다. '전통적인 퇴비'는 질소 성분이 적어 잎채소 재배에 어려움이 있던 반면, 오늘날 '가축분 발효 퇴비'는 비료 성분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어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항생제 범벅인 가축 분뇨로 만들어진 퇴비'가 '화학 비료'보다 더 낫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화학 비료'가 아무리 좋아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화학 비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과잉 '시비(거름주기)'로 인한 오염 문제가 심각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적정량을 시비하고 비료의 유실을 막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4. '화학비료'가 더 효율적이다.
더욱이 화강암이 풍화되어 형성된 한반도의 토양은 농사짓기가 힘든 토질이다. 한국의 경우, 전통 농법에서 인분을 삭힌 액비로 논밭에 질소를 공급하다, 일제 강점기에' 홍남 비료 공장'이 들어서면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인분을 비료로 쓰는 전통 농법에서는 채소의 기생충 감염이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분단과 함께 다시 비료 부족 상황에 놓이면서 1960년대에 보릿고개를 겪게 된다. 사실상 1970년대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중화학 공업이 당시 한국인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품종이 개량된 작물을 밀식 재배하는 농사 자체가 지극히 인공적인 일인 만큼, 화학 비료를 독처럼 여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화학 비료'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 퇴비로 토질을 개량하면서 필요한 무기질 영양소를 공급하는 '이중 전략'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5. 식물 입장에서는 '유기질'과 '무기질'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식물의 입장에서는 '유기질'과 '무기질'의 차이가 없다. 물론 '유기질 비료에'는 필수 영양소 외에도 다양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유익한 미생물이 들어 있으므로 '화학 비료'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식물도 유기질 성분을 바로 섭취하지는 못한다. 모든 동식물은 미생물의 도음을 받아 유기질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무기질로 변환해 섭취한다. '화학 비료'는 그런 변환 없이 식물이 바로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먹는 영양제나 비타민 정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밀식 재배되는 농장물은 땅속에 한정된 영양소를 놓고 다툴 수밖에 없기에 '시비(거름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비료의 3대 요소로 불리는 '질소(N)', '인(P)', '칼륨(K)'은 토양에 부족하기 쉬운 대표적인 영양소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에게는 먼저 영양제 주사로 기운을 차리게 한 다음 음식을 먹이듯이, 영양 결핍 식물에게는 무기기 화학 비료가 영양제 역할을 할 수 있다.
6. 농약과 화학비료의 부작용은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임상 시험을 거쳐 더 좋은 약과 영양제가 개발되듯이 농약과 화학비료도 지난 100년간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토양과 작물에 대한 지식도 깊어졌다. 한국에서는 70종 이상의 다양한 화학 비료가 생산되고 있고, 작물 재배와 시비법이 연구되면서 비료의 부작용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농약과 비료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생산된 농산물의 안정성을 점검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일 것이다. 농작물의 '이력 추적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잔류 농약'이나 '중금속', '유해 세균 검사'를 거친 농작물에 한해 '농산물 우수관리(GAP: Good Agricultural Practices)'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도 그중 하나다. 농업에도 전문 지식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