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심리학 (Psychology)

'일부일처제'를 고집해야 하는가?

SURPRISER - Tistory 2023. 2. 19. 14:05

 어떤 사람들은 '일부일처제(Monogamy)'가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지 않기에, 누구는 바람을 피우고 누구는 '폴리아모리(Polyamory)'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일대일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며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과연 우리의 본성은 어디에 있을까?

0. 목차

  1. 폴리아모리(Polyamory)
  2. 어둠 속의 일탈 실험
  3. 인간의 일부일처제
  4. 현대에는 연애·섹스·결혼·출산이 분리되었다.
  5. '독립적 개인'에 대한 환상
  6. '완벽한 사랑'에 대한 환상
  7. 모든 건 환경과 시대에 따라 변할 뿐이다.

1. 폴리아모리(Polyamory)

 '폴리아모리(Polyamory)'란 감정적·성적으로 끌리는 여러 명의 대상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경우 혹은 그러한 사랑의 형태를 일컫는 말로 '다자연애'라고도 한다. '여럿'을 뜻하는 그리스어 'Poly'와 '사랑'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의 변형태이 '아모리(amory)'의 합성어로, '일부일처제(Monogamy)'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단순히 여럿을 만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를 독점하고 구속하는 가부장적 일대일 관계를 벗어난다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사상을 '폴리아모리주의(Polyamorism, 폴리아모리즘)', 폴리아모리를 실천하거나 지향하는 이들을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라고 한다. '폴리아모리'와 반대되는 개념은 '모노가미(monogamy, 독점적 사랑)' 혹은 '모노아모리'이다. 아무튼 이러한 개념이 지상파에서 공공연히 언급되는 것만 해도 우리가 이를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해도 '폴리아모리스트(Polymarist)'들은 비난을 받기 일쑤였지만, 요즘에는 공개적으로 '폴리아모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폴리아모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원칙은 '동의(Agreement)'다. 어떤 사람들은 폴리아모리를 '공개적인 바람'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상대를 속이는 바람이나 불륜과는 다른 개념이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연애 대상들이 다른 연인들의 존재를 알고 그 관계에 동의해야 한다. 합의하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상대를 동의를 받지 않거나 기만을 전제로 하는 '바람피우기', '외도' 등과는 구별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일부일처제의 1:1 관계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제도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여러 상대와의 다양한 관계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폴리아모리스트는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통상적 관념을 거부하고, 소유하고 독점하는 관계 대신 열린 관계를 지향한다. 일대일의 독점적 사랑은 상대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며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통제와 구속을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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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둠 속의 일탈 실험

 1973년 심리학자 '게겐 부부(Mary M & Kenneth J. Gergen)'는 독특한 실험을 진행했다. 쿠션으로 바닥이 사면이 이루어진 가로 3m, 세로 3.6m 방 두 개를 만들고, 각 방마다 생면부지의 '사람 8명(남자 4명, 여자 4명)'을 넣는다. 그리고 한 방은 전등을 완전히 제거해 깜깜하게 만들고, 한 방은 조명을 그대로 남겨뒀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두 방을 방치했다. 표본이 적었으므로, 다른 피험자를 대상으로 총 6번 동일한 실험을 수행했다. 한 시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 불이 켜진 방: 아주 좁은 방에 들어간 아무 할 일 없는 성인 남여 여덟 명은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매우 좁은 방이었지만, 시야가 확보되었기에 이들이 실수로 옆 사람 신체를 접촉한 비율은 5%로 극히 낮았다. 이들은 한 시간 만에 사이가 매우 좋아졌는데, 실험 참가자의 30%가 성적인 흥분을 느꼈다고 한다.
  2. 불이 꺼진 방: 반면 불이 꺼진 방의 사람들은 100% 다른 사람과 접촉했다. 불이 없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스킨십을 한 경우가 90%나 되었다. 참고로 상대방이 싫다는 내색을 할 경우 터치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실험 참가자 대부분이 전혀 모르는 상대와 스킨십을 했다. 50%는 그 수위가 포옹까지 올라갔으며 30%는 키스를 했다. 실제로 참가자의 80%가 성적인 흥분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사람들은 이 실험을 예로 들며 인간이 본능적으로 얼마나 스킨십을 좋아하는지 설명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부장제에 기반한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실험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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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의 일부일처제

 수컷은 여기저기 씨를 퍼트리려고 하고, 암컷은 가장 능력 있는 수컷과 교미해서 자식을 낳고 보호하려는 것을 동물의 본성이라고 배워왔다. 만약 이것이 동물의 유일한 성적 본성이라면, 모든 동물은 일부다처를 해야 한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를 보면 일부다처에 가까눈 생활하는 개체가 많다. 일부일처를 하는 동물은 포유류 중 4%, 영장류 중에는 18%뿐이다. 포유류 중에는 늑대, 너구리, 들쥐, 긴팔원숭이, 비버, 조류 중에는 백조, 사랑앵무, 황제펭귄, 진박새, 기러기 정도가 일부일처를 한다. 이 수치도 그나마 인간을 일부일처로 하는 동물로 분류하기 때문에 나온다. 인간을 빼고 개체 수를 따지면 비율은 훨씬 떨어진다. 일부일처를 영위하는 동물 중 인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멸종 위기 종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얼마나 바람을 많이 피는데?'라고 생각하며, 사람은 일부일처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부일처제란 다른 이성은 바라보지도 않고, 한 파트너에게만 헌신하는 걸 말할 것이다. 기간도 가능하면 '영원히'를 바랄 것이다. 이런 일부일처제를 하는 개개인은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종 내의 모든 개체가 이런 생활을 하는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일부일처를 한다고 생각하는 동물도 새끼를 조사해 보면 30% 가량은 다른 수컷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단어로 하자면 외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엄밀한 일부일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파트너에게 충실한 동물조차, 가끔은 바람을 피우는 다른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종종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를 안 한다고 말하기에는 기준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이다.

3-1. '일부일처제'는 오랜시간 인류와 함께해왔다.

 사극을 보면, 대부분 지배계층은 일부다처제를 했다. 그들은 권력이 있었기에 여러 분위기를 거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절대 다수인 평민은 대부분 일부일처였다. 현재도 아랍에미리트나 이집트 등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남성 한 명 당 최대 4명의 부인을 거느릴 수 있지만, 두 명 이상의 부인을 얻는 이는 소수의 부자들뿐이며 대다수는 일부일처를 한다. 일부다처를 하는 동물 세계에서는 우두머리 수컷을 제외하고 대다수 수컷은 짝을 구하지 못한다. 심한 경우 무리에서 쫓겨나 홀로 죽는다. 하지만 인간 역사에서 지배층이 일부다처를 한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이 짝을 못 구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일부일처는 꽤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해왔다. 지금의 일부일처제가 가부장제의 유산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가부장제가 없었다고 일부일처제가 아니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어렵다. '일부일처제'는 나름 필요한 측면이 있었고, 어쩌면 이것이 본성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어둠 속의 일탈' 실험을 다시 생각해 보자. 일부일처제가 본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당 실험의 결과를 근거로 끌어다 쓰지만, 인간은 결코 그런 사황에 놓일 수 있다. 도시화 이후 인류가 자유연애를 하게 된 것도 어쩌면 도시의 익명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둠 속의 일탈처럼 극단적이진 않다. 익명성이 완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둠 속에서 스킨십을 마음 놓고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인류는 단 한 번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간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만한 환경이 되면 그럴 수도 있다.

3-2. 인간도 다부다처를 하기도 한다.

 중국의 소수 민족인 '모수오족'은 모계를 중심으로 한 다부 다처 관계를 갖는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은 외할머니고,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갖는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은 외할머니고,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재산도 어머니에서 맏딸로 이어진다. 모수오족은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만 관계를 유지한다. 청춘 남녀가 마을 축제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으면, 여자는 밤에 남자가 자신의 방에 들어올 수 있도록 대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는다. 남자가 찾아오면 둘은 사람은 나누고 남자는 동이 틀 무렵에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한동안 밤에만 연애를 하는데, 이를 '야사혼'이라고 한다. 모수오족 여성은 열세 살이 넘으면 '야사혼'을 치를 수 있다. 야사혼을 맺었다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변하면 밤에 문을 닫거나 남자의 짐을 넣은 가방을 문 앞에 걸어둔다. 물건을 챙기고 꺼지라는 뜻이다.

 '야사혼'은 꼭 한 사람과 할 필요는 없다. 성향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명의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일평생 한 남성과 야사혼을 지속하는 여성도 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모수오족에게는 부인과 남편의 개념이 없으며 아버지라는 호칭도 없다. 여성이 아이를 가져도 어차피 아이는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이 책임진다. 따라서 아버지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 일부일처를 하지 않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양육의 부담을 부부가 지지 않으니, 연애도 자유롭다.

3-3. 일부일처는 환경에 따라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다.

 일부다처 형태를 띠는 동물들은 새끼를 보통 암컷이 키운다. 반면, 일부일처를 하는 동물은 새끼를 기르고 먹이를 구하고 집을 구하는 일에 대해 암수 분업을 잘 이룬다. 따라서 외적인 요소가 일부일처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작용하고, 가족에 대한 헌신이 훨씬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만약 이 설이 맞다면 일부일처라는 것은 환경에 따른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조류(Bird)'의 일부일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부 조류들은 일부일처를 하긴 하는데, 딱 2년 정도만 한다. 파트너와 2년 정도 함께 살다 헤어지고 다른 파트너를 만나서 2년을 보내는 식이다. 그들이 하필 2년간 만남을 유지하는 이유는 새끼를 낳고 새끼가 성체가 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딱 그정도만 관계를 유지하며, 협동해서 새끼를 키우다, 새끼가 독립을 하고나면 쿨하게 지저귀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떠난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Helen E. Fisher, 1945~)'는 이런 동물의 습성을 보고 원시시대 우리의 조상들이 5년짜리 일부일처를 반복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간의 경우 다섯 살 정도가 되면 유아기를 벗어나 또래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때가 되면 남녀가 각자의 길을 떠났다는 말이다. 아기는 대부분 동물이 그렇듯 엄마를 따라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면 현대의 인류는 어떨까? 문명 탄생 이후 양육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 적어도 20년이며, 최근에는 30년까지도 잡아야 한다. 자녀 양육만으로 부부가 20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뒤에 헤어지려고 하면,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오갈 데가 없어지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순도순 살아간다. 하지만 현대의 인류는 의료기술로 발달로 수명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양육이 다 끝난 후에도 새 삶을 시작할 시간이 충분해졌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최근에 '황혼 이혼'이 늘어난 이유도 설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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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대에는 연애·섹스·결혼·출산이 분리되었다.

 우리의 뇌가 원하는 사랑은 크게 '성욕', '로맨틱한 사랑', '깊은 애착'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성욕:우리는 성욕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 현실에서는 주로 '섹스'라는 행위로 나타난다.
  2. 로맨틱한 사랑: 우리는 누군가를 특별하게 만들어서 그 사람과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현실에서는 '연애'로 나타난다.
  3. 깊은 애착: 파트너와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다. 그래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 '결혼'과 '출산'이 이에 해당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연애, 섹스, 결혼, 출산은 한 세트였다. 물론 당시에도 시대를 앞서간 이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그런 방식의 삶을 살았고, 대중매체에서도 그런 삶을 당연한 것으로 묘사했다. 근대 이전에는 결혼과 출산이 가정의 일이었으므로 연애와 분리된 것이었지만, 결혼의 의미가 워낙 강력했기에 연애가 별로 중요한 대소사가 아니었다. 또 제대로된 피임법도 없었으므로, 연애를 즐기기도 어려웠다. 근대 이후에는 연액, 섹스, 결혼, 출산이 하나의 사이클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연애-섹스-결혼-출산의 사이클은 돌지 않는다. 콘돔과 피임약의 개발은 인류의 연애를 가속화시켰으며, 연애·섹스·결혼·출산을 분리시켰다. 연애를 해도 섹스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섹스를 해도 연애를 안 할 수 있다. 결혼이나 출신은 훨씬 더 다양한 이유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사이클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더라도 각 사이클을 넘어갈 때마다 이유가 필요해졌다. 당연히 전통적 의미의 일대일 관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결혼율과 출산율이 떨어지고, 심지어 연애하는 젊은 세대의 비율조차 떨어지는 것에는 경제적인 이유 못지않게 이런 인식의 변화가 크다.

 그 외에도 현대에는 성과 관련된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정자은행', '난자은행', '대리모', '결혼하지 않는 연인들', '낮은 출산율', '포르노의 대중화',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 '폴리아모리(Polyamory)', '무성애자(Asexual)'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비연애'와 '폴리아모리'가 정반대인 것 같지만, 실은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한 것일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은 과거부터 음지에서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흔해진 건 '기술의 발달', '인식의 변화' 등이 합쳐져서 드러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일대일 방식을 고집하는 건 너무도 뒤쳐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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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독립적 개인'에 대한 환상

 현대인들은 '독립적인 개인'을 중시한다. '독립적인 개인'은 현대인의 이상적인 형태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본성과 한참 떨어져 있다. 인간관계가 전혀 없는 독립적인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존감은 이름의 뜻과 다르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아무리 스스로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자신을 세뇌시켜도 우리는 타인의 애정을 욕망한다.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애착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원시인들은 무리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한 사람은 생존이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무리를 이루고 함께한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아남았을 것이다. 무리를 이룬 사람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며, 친밀함을 선호하는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인간은 주변인 가운데 일부를 특별히 아끼도록 진화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뇌 속에는 부모·자식·파트너 같은 애착 대상과의 관계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일만을 하는 메커니즘이 따로 존재한다. 그만큼 특별한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와 가까이 지내고 싶은 욕구는 인간에게 중요하다. 양육자와 떨어진 아기가 극도로 흥분하고 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를 '항의 행동(Protest Behavior)'이라 하는데,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해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어른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게 되면,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다.

5-1. 우리는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버지니아 대학교의 '제임스 코언(James Coan, 1969~)' 박사팀의 실험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진들은 실험을 하기 위해 기혼여성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MRI로 뇌를 촬영할 계획인데, 촬영 중에 가벼운 전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알려줬다. 당연히 생명을 위협하거나 상처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따끔할 건 분명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불안감에 떨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기서 스트레스란,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가 준비한 주사기를 꺼내서 주사를 놓기 직전 환자가 느끼는 긴장감 같은 것이다.

 '제임스 코언'은 총 3번의 실험을 진행했다. 한 번은 여성들이 혼자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는 경우, 또 한 번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손을 잡아준 경우, 마지막은 남편이 손을 잡아준 경우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상하부가 활성화된다. 당연히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상하부가 가장 크게 반응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손을 잡아줬을 때는 반응이 반으로 줄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손을 잡아 줬을 때는 스트레스가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또 사전 조사에서 결혼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변한 여성일수록 더 낮은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결과가 달라지는데, 어떻게 우리가 타인과 동떨어진 개별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5-2. '애착'과 '개인의 독립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애착'과 '개인의 독립성'이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놀이 기구가 많은 낯선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상상해 보자. 만약 무리에 아이와 친밀한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재미난 놀이 기구가 많아도 아이는 그곳에서 즐겁게 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노는 건 고사하고 엄마를 찾으며 울지라도 않으면 다행이다. 반면 신뢰하는 보호자가 놀이공원 입구에서 편하게 기다리고 있다면, 그 아이는 공간을 뛰어다니며 새로운 놀이를 즐길 것이다. 즉, 보호자가 있다는 안정감이 아이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의 활발함은 의존성에서 나온다.

 파트너는 생존 능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자존감분 아니라 희망을 품고 꿈을 좇는 노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베이스캠프가 확실해야 우리는 새로운 일에 새로운 일에 자신감 있게 도전할 수 있다. 애착 이론은 우리가 연애와 결혼에서 얻는 만족감을 잘 설명해 준다. 애착 욕구를 채워 주고 베이스캠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파트너를 둔 사람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훨씬 건강하며 실제로 수명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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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완벽한 사랑'에 대한 환상

6-1. '완벽한 사랑'은 없다.

 물론 꼭 일부일처의 일대일 관계에서만 이런 만족감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적인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서로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주변의 응원'이나 '제도적 밑받침'도 없기에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새로운 관계를 실험하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맞든 틀리든 사회적 통념을 따르는 것만으로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편해지는 측면이 있으며, 이는 에너지를 줄여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현실적으로 그런 안정감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평범한 연애'와 '평범한 결혼'이다.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이 '평범한 연애'와 '평범한 결혼'이라는 기존의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사회에 굴복한다기보다는 그냥 그게 편해서 그런 거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외모도 출중했던 어떤 50대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20대 초반에 나이가 10살 이상 많은 소위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을 존경하지만, 성적으로 끌렸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도 말했고, 연애의 흥분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삶을 포기할 생각도 없으며, 어려운 시절 도와준 남편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수긍할만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관계를 통해 자신이 갖는 만족감이다. 이 여성과 그녀의 남편은 믿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삶의 베이스캠프를 마련했다. 그러니 사랑 좀 안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도 완벽히 이상적인 결혼을 하지 않으며, 그런 관계를 구축할 수도 없다.

 또 요즘에는 결혼하는 커플이 다섯 쌍이라고 했을 때, 대략 두 커플 정도는 이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세 커플 중 대략 두 커플은 불행하게 산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의 성공 가능성은 대략 20% 정도밖에 안된다. 결혼을 인생을 걸고 하기에는 확률이 썩 좋지 않은 셈이다.

6-2. 일부일처가 아니더라도 안정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

 또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야 만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족, 친구, 이웃, 나아가 잠깐 만나는 캐주얼한 섹스 파트너 등으로 차곡차고 쌓인 울타리를 만듦으로써 우리의 삶은 안정되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

 기혼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애슐리 메디슨(Ashley Madison)'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사람들은 이 사이트를 불륜을 조장하는 사이트라고 부른다. 나는 이 사이트의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이 사이트의 이용자를 한 조사를 보면, 현재의 가정을 깨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냥 디저트 같은 데이트와 섹스를 원할 뿐이었다. 그들은 가정을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울타리 내에서 일탈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파트너를 속이니 비겁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들은 가정을 깰 생각이 없었다.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부일처제를 원했고, 안정적인 파트너를 원했다.

애슐리 메디슨(Ashley Madison)

7. 모든 건 환경과 시대에 따라 변할 뿐이다.

 그러면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일부일처'가 본성일까? 아니면 '자유로운 연애'가 본성일까? 사실 인간이 처한 본성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 집단이 처한 상황이 있고, 그에 따라 우리가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적응하고 변한다. 일부일처제든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든 집단혼이든 난혼이든 간에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평가하는 건 당시의 가치관이다. 지금까지 길게 설명했듯이 인류는 그럴 만한 상황이 되면 그런 형태를 취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적으로 더 낫다고 여겨지는 연애의 형태가 있을 뿐이다.

 가령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중 25%의 확률로 수컷을 잡아먹는다. 그중 63%는 머리부터 뜯어먹는다. 그럼에도 수컷 사마귀는 성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사마귀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수컷을 잡아먹은 암컷'과 '수컷을 잡아먹지 않은 암컷'을 비교해 봤더니, 수컷을 잡아먹은 암컷이 알을 두 배 정도 많이 낳았다. 수컷은 자신의 몸을 영양분으로 제공해 자식을 퍼트렸던 것이다.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이 과정 자체가 적응이고 본성이다. 각 종이 환경 속에서 만들어온 나름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