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각지에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살고 있다. 하지만 겉모습과 생활양식이 모두 다른 그들의 DNA를 조사해 근본을 찾아보면, 어느 집단이든 모두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지극히 소수의 집단을 조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는 그 후, 유럽,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대륙 등으로 각지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살았다. DNA 분석을 통해, 인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동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자리 잡은 땅에 어떤 역사가 펼쳐졌는지 알아보자.
0. 목차
- 인류의 진화 단계
-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 '혈액형의 편향'으로 보는 과거 인류의 경로
- 유럽 선주민끼리의 관계
- 아랍인의 DNA에 남은 아프리카 여성의 흔적
- Y염색체의 다형을 통해 본 남성 사회의 역사
- 일본인의 조상
1. 인류의 진화 단계
인류의 진화 단계는 오래된 순서부터 크게 '원인(猿人)', '원인(原人)', '구인(舊人)', '신인(新人)'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원인(猿人): 가장 원시적인 화석인류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류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 원인(原人): 화석인류 가운데 '피테칸트로푸스(Pithecanthropus)'류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바원인(Java原人)'과 '북경원인'(Beijing原人)'이 있다.
- 구인(舊人): 화석인류 가운데 '네안데르탈인'류를 가리킨다. 입이 튀어나와 아래턱이 뒤쪽으로 기울어졌고, 얼굴이 길쭉하고 신장이 비교적 작다.
- 신인(新人): 인류진화에서 최종 단계의 인류로서 현생인류라고도 한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모두 '신인(新人)'에 속하는데, 그 출현은 4만 년 이상 되지 않았고, 문화면에서는 구석기 문화에 속했다.
인류 | 학명 |
원인(猿人) | Australopithecus |
원인(原人) | Pithecanthropus |
구인(舊人) | Homo sapiens neanderthalensis |
신인(新人) | Homo sapiens sapiens |
2.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주민을 조사하면 세계 모든 지역의 주민에 비해, 다채로운 유전자의 개인차가 나타난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인류의 탄생지인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흩어진 사람들이 백인, 아시아인, 아랍계 등 모든 인종의 조상인 것이다.
인간은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지면서 500만~700만 년 전쯤에 생겨났다. 고릴라에서 분화했다는 설도 있지만, 유전자 차원에서 조사했더니 '침팬지'가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DNA 차원에서 인간과 침팬지는 약 1%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아프리카 동남쪽에는 '대지구대(Rift System)'가 있다. 주변 지역보다 낮고 절벽 등 급사면에 의해 주위로부터 격리된 지역이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것이다. 이 지구대 근처에서 가장 원시적인 최고의 화석 인류인 '원인(猿人)'의 화석이 발견된다. 주변 지역은 삼림으로 덮여 있었지만, 대지구대에서는 초원이 넓은 범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곳에서 탄생한 인간의 조상은 나무 위에서 사는 원숭이 등과 달리, 초원을 걷거나 달리기에 적합한 체형과 능력을 갖도록 진화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진화에는 턱 근육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변화도 관계된다는 설이 있다. 음식물을 씹을 때 사용하는 근육은, 침팬지를 포함한 원숭이 부류의 경우에는 아래턱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뻗어 있다. 한편, 인간의 경우는 머리 옆 부근까지만 뻗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머리를 조이며 아래로 끌어당기던 힘이 크게 줄어들면서, 그것이 뇌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수백만 년 전에 일어난, 근육에 관여하는 단 하나의 유전자의 변화가 턱의 근육을 축소해, 인간의 급속한 뇌 발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2. 각지의 기후에 유리한 체질을 정착시켰다.
- 인류의 첫 번째 아프리카 탈출: 약 180만 년 전에 인류의 첫 번째 '아프리카 탈출'이 있었다. 대지구대를 나와 북쪽으로 향했던 조상이 사해 근처를 거쳐 세계의 각지로 흩어진 것이다.
- 인류의 두 번째 아프리카 탈출: 그리고 십몇만 년 전에 두 번째 '아프리카 탈출'이 일어났다. '신인(新人)'의 조상은 그때 아프리카에서 나온 그룹의 자손이다. 그리고 신인 가운데 북쪽으로 나아간 그룹은 백인이 되고, 동쪽으로 나아간 그룹은 '중근동(동북 아프리카와 서아시아)'과 아시아 각지에 정착했다.
햇빛이 약한 북유럽에서는 피부가 검으면 자외선이 통과하지 않는다. 자외선은 비타민 D 합성에 필요하고, 비타민 D가 부족하면 뼈의 발육이 나빠지는 '구루병'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이곳에 살게 된 그룹은 피부색이 옅어지도록 유전자가 변한 사람의 자손이 생존에 유리했고, 그들이 조금씩 늘어나 마침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백인이 등장했다. 반대로 햇빛이 강한 아프리카에서는 검은 피부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쪽이 유리하다. 만약 백인이 현지인처럼 피부를 드러내고 산다면 피부암이 높은 빈도로 발생할 것이다. 눈동자의 색이 옅은 것도 아프리카 등 열대 지역에서 살기에 불리하다. 현재도 백인이 적극적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혈액형의 편향'으로 보는 과거 인류의 경로
혈액형에 편향이 있다는 것은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분포가 편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혈액형을 조사하면, 과거 인류의 경로를 알아낼 수 있다.
3-1.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조상은 모두 O형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은 모두 시베리아 남부에서 '베링 해협(Bering Strait)'을 건넌 아시아인의 자손이다. 시베리아 동부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 해협'의 현재 수심은 40m 정도이지만, 2만~1만 수천 년 전의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정도 낮았다. 주변에는 초원이 펼쳐지고 2개의 대륙이 이어져 있었다.
다만 빙하기가 가장 한창일 때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동부는 산에서 내려온 빙하 등의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어, 당시의 기자재나 기술로는 헤치고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지구가 온난해지고 이에 따라 해수면이 상승했다. 이로 인해 대륙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그리고 캐나다 등 얼음으로 뒤덮인 지역에서 '무빙(無氷) 회랑'이라는 틈이 생긴 아주 짧은 기간이 있었다. 이때 북아메리카 대륙 내부에 도착한 소수의 사람들이 '중부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선주민의 조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소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들 자손의 혈액형이 모두 O형이기 때문이다. 몇 십 명, 몇백 명의 조상이 도착해 자손을 남겼다면, 자손 전원이 O형일 수는 없다.
한편, 캐나다 북부에는 훨씬 늦은 시기에 아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있다. '에스키모(Eskimo)'라고 알려진 '이누이트족(Innuit)'이다. 그들은 뗏목이나 보트를 타고 차가운 겨울 바다를 건너왔다. 그들에게서는 O형뿐만 아니라, 다른 혈액형도 발견된다.
3-2.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선주민의 조상은 B형이 없다.
혈액형의 편향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에게는 B형 대립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혈액형이 O형과 A형뿐이다. 그리고 베트남, 태국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지역은 빙하기에는 대부분 연결되어 있었지만, 완전한 육지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약간의 바다가 남아 있었다. 해협이 깊었기 때문에 100m 정도 해수면이 낮아지는 것으로는 땅이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4. 유럽 선주민끼리의 관계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약가 북쪽에는 '바스크인(Basques)'이 살고 있다. 그들은 유럽 선주민의 자손으로, 나중에 농업 기술을 가지고 온 이주자와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DNA 수준의 특징에 대해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연구 그룹이 유럽 각지의 주민에 대해 Y 염색체의 'DNA의 다형(같은 종의 생물 집단에 공존하는 형태나 형질이 다른 것)'을 13종 정도 조사했더니, Y염색체를 9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의 유형인 'H1'이 흥미로운 분포를 나타낸다. 터키 등 유럽 남부의 주민에서는 H1의 비율이 1.8% 정도이지만, 그리스·이탈리아로 북상함에 따라 늘어나, 프랑스·에스파냐 부근의 주민에서는 50% 정도가 된다. 그렇지만 바스크인의 경우에는 H1의 89%를 차지한다. 영국 부근에서는 아일랜드에 특히 H1이 많아 78%였다. 아일랜드 가운데서도 서쪽 지역에서는 주민의 98.3%가 이 유형이었다. '성'과 '이름의 특징', '거주 지역' 등에 근거해 주민의 출신을 조사하면, 이 유형이 특히 많은 사람은 선주민에 해당하는 '켈트인'이었다. '켈트인(Celt)'도 '바스크인(Basques)'과 같은 기원의 선주민이다.
5. 아랍인의 DNA에 남은 아프리카 여성의 흔적
'중근동(동북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아랍인의 조상에는 아프리카계의 DNA가 상당히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DNA를 남긴 것은 여성뿐이며, 남성이 남긴 DNA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여성으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지며, 남성으로부터 전해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머니 난자의 세포질이 자식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Y 염색체의 다형은 아버지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진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다형을 조사하면 여성을 경유한 기원을 알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조사했더니, '아프리카 여성에서 유래한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아랍인의 미토콘드리아'에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조사한 결과, 이미 기원전 7000년 무렵부터 동아프리카와 아랍 세계는 접촉이 있었다. 기원전 3000~2000년 무렵에는 아프리카의 동부에 돌출한 '소말리아(Somalia)'나 '에티오피아(Ethiopia)' 부근에 아랍인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원전 1000년 무렵에는 아랍인이 홍해의 교역 루트를 지배하며, 아프리카 쪽 '에리트레아'(Eritrea)'나 '에티오피아(Ethiopia)'도 영향 아래 두고 있었다. 그 후 서쪽으로 이어진 지역에서 여자 노예의 유입이 시작되어, 다수의 여성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아랍으로 들어왔다. 주된 목적은 간단한 노동가 성행위였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여성들의 대부분이 아랍인의 자식을 임신했기 때문에, 놀랍게도 현재의 아랍인 미토콘드리아의 3분의 1은 아프리카 여성에서 유래한다. 한편, 아랍인의 Y 염색체에는 아프리카 남성의 특징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남성 노예를 들여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6. Y 염색체의 다형을 통해 본 남성 사회의 역사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뉴기니섬에서 주민의 Y 염색체 다형을 조사했더니, 섬의 서부에서는 다형의 종류가 극히 적어 1종의 다형이 모든 남성의 모든 남성의 75%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것을 포함한 4종의 다형이 94%를 차지했다. 전자는 추장인 남성 한 사람과 그 아들과 친손자에 의해 유래한 것이고, 후자는 추장의 보좌역 몇 명과 그 자손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요약하면, 아주 소수의 권력자와 그 추종자 자손의 남성만이 많은 여성에 둘러싸여 살았고, 일반 남성은 아내를 맞을 수도 자식을 낳을 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남태평양의 '타히티(Tahiti)' 남방의 '폴리네시아(오세아니아 동쪽 해역에 분포하는 수천 개 섬들의 총칭)'에서는 남아메리카의 선주민의 특징을 가진 Y 염색체가 발견되었다. 19세기에 페루에서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면서 남아메리카에서 선주민 남자들이 폴리네시아로 옮겨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증명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부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선주민이나, 태평양 섬의 주민을 조사하면, 드물게 백인의 특징을 가진 Y 다형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반면, 백인의 특징을 나타내는 미토콘드리아의 다형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지 여성들이 선원의 자식을 임신한 흔적으로 보인다.
7. 일본인의 조상
7-1. 일본 열도는 대륙과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100만~수십만 년 전, 원래는 '필리핀해판(Philippine Sea Plate)'의 섬이었던 '이즈 반도'가 '판(plate)'의 움직임에 따라 '혼슈(일본의 가장 큰 섬)'에 충돌해 하나가 되었다. 둘 사이의 경계는 '하코네' 북쪽 기슭으로, 지금은 'JR 고텐바' 선이 달리는 부근이다. 필리핀 해양판의 동쪽 경계는 '사가미 트로프(Sagami Trough)' 로, '간토 대지진'의 원인이 되었다. 서쪽 경계는 '스루가 트로프(Suruga Trough)'로, '도카이 지진'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즈 반도'가 충돌할 당시는 대규모 지진이나 후지산 등 부근 산의 분화 등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일본 열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까? 그 당시 일본 열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만 수십만 년 전에는 해수면이 크게 낮아, '대만(Taiwan)'은 대륙과 이어졌으며, 한반도도 대륙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일본 열도도 대륙에서 돌출한 한반도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생각된다. 대륙에서 '나우만코끼리(Naumann's Elephant)' 등의 대형 동물이 이동하고, 그것을 쫓아 사람이 이주해 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가노 현의 '노지리호'에는 4만 년 전의 유적이 있고, 당시의 사냥꾼이 늪지에서 '나우만코끼리'를 추격해 사냥한 흔적이 남아 있다. 나우만코끼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 열도가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일본 열도는 화산이 많기 때문에, 화산재에 덮여 있다. 화산재에 묻히면 뼈 등은 녹아 사라진다. 하지만 운 좋게 '종유동(지하수가 석회암 지대를 용해하여 생긴 동굴)' 등에 있으면 녹지 않으므로, 뼈가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뼈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7-2. '야요이인'과 '조몬인'
어쨌든 1만 년쯤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화가 시작되자, 일본 전국에 '조몬인'들이 번영했다. 농업 기술은 없었고, 수집한 야생 식물이나 사냥한 짐승을 중심으로 식사를 했기 때문에, 인구 밀도는 매우 낮았다. 기원전 1000년쯤이 되자, 쌀농사나 금속기를 사용하는 기술을 가진 '야요이인'이 한반도 등지에서 차례차례 규슈 북부에 도착했다. 야요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야요이인'이 농업 기술을 가지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강점이었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도 공급에 문제가 없었다. 그들 '야요이인'의 일부는 남쪽으로 향했지만, 대부분은 동쪽 혼슈를 향해 급속히 나아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조몬인'과 '야요이인' 사이에 싸움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조몬인(Jomon)'들과 '야요이인(Yayoi)'은 얼굴 생김새에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야요이인'은 얼굴이 세로로 길며 가늘고, 얼굴 전체가 평면적이고, 코가 낮고, 눈이 작고 쌍꺼풀이 없고, 입술은 얇은 현재 전형적인 동아시아인의 얼굴이다. 귓불도 발달하지 않았다. 반면 '조몬인'들은 전체적으로 위아래가 짧고, 눈과 입이 크며, 눈썹이 진하고, 눈이 들어가 있으며, 코가 높은 등 전체적으로 입체적이고 각진 경향이 있다. 일본 여배우의 얼굴에는 '조몬계'가 많은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는 야요이인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훗카이도에는 조몬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