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억한 것을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실제로 존재할까?
0. 목차
- NR2B
- 'CREB 활성제'와 'CREB 억제제'
- 기억력을 높이는 유전자는 더 많을 것이다.
- 똑똑해지는 알약
- 기억을 잊게 하는 효소 'PP1'
1. NR2B
기억을 만드는 기본적인 원리는 시냅스의 신호 전달 효율을 높이는 일로,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장기 증강(LTP: Long-term potentiation)'이다. '장기 증강(LTP: Long-term potentiation)'이란 '뉴런(Neuron)'끼리의 이음새인 '시냅스(Synapse)'에서 화학물질을 받아들이는 '수용체(Receptor)'가 늘어나 신호 전달의 효율이 좋은 상태가 계속되는 메커니즘을 말한다. 그렇다면 '장기 증강(LTP)'를 일어나기 쉽게 하면 이론상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1-1. 두기 마우스(Doogie Mice)
실제로 1999년에 '조셉 첸(Joseph Tsien)' 박사는 '프리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의 과학자들과 함께 쥐의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유전자를 발견하여 쥐에게 이식해 '천재 생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LTP를 일어나기 쉽게 하려면, 시냅스에서 화학 물질을 받는 수용체를 늘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이 실험에서 '천재 생쥐'는 수용체의 일종인 'NMDA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집어넣음으로써 탄생했다. 이 똑똑한 쥐는 미로의 출구를 훨씬 빨리 찾아냈고, 지나간 과거를 훨씬 많이 기억했으며, 다양한 실험에서 다른 쥐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발휘했다. '조셉 첸'은 '두기 하우저 박사(Doogie Howser M.D.)'에 등장하는 천재소년의 이름을 따서 똑똑해진 쥐들을 '두기 마우스(Doogie Mice)'라고 불렀다.
'조셉 첸' 박사는 NR2B라는 유전자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건과 연결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을 제어하는 유전자가 바로 NR2B이다. NR2B는 '해마(Hippocampus)'에 있는 기억세포들 사이의 정보교환을 제어하는 유전자로, 이 유전자 기능을 차단하면 쥐는 기억력의 대부분을 상실한다. 처음에 '조셉 첸' 박사가 쥐의 NR2B를 제거했더니, 기억력과 습득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NR2B가 강화된 쥐들은 정상 쥐보다 정신능력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조셉 첸' 박사는 물속 어딘가에 먹이를 숨겨놓고 쥐들을 풀어놓았는데, 정상적인 쥐들은 바로 며칠 전에 똑같은 훈련을 받았는데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지만, 똑똑한 쥐들은 처음부터 먹이가 있는 곳으로 향해 똑바로 헤엄쳐나갔다.
1-2. 하비-J(Hobbie-J)
그 후 이와 비슷한 실험이 연달아 진행되었고 한층 더 똑똑한 쥐들이 탄생했다. 2009년 '조셉 첸' 박사는 '하비-J(Hobbie-J)'라는 똑똑한 쥐를 만들어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하비-J'는 장난감의 위치 등 지나간 기억을 이전의 똑똑한 쥐들보다 3배 이상 길게 기억했다. '조셉 첸' 박사는 이로써 NR2B가 기억을 형성하는 범용 스위치임이 밝혀졌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 탄생한 똑똑한 쥐들도 한계가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중 올바른 쪽을 택하면 초콜렛을 주는 실험을 해본 결과 '하비-J'는 초콜렛이 있는 쪽을 다른 쥐들보다 훨씬 오래 기억했지만, 5분이 지나면 이들도 방향을 기억하지 못했다. 즉, 기억력을 아무리 증진해도 그들은 결구 쥐일 뿐이였으며, 쥐를 수학자로 만들 수는 없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똑똑한 쥐들 중 일부가 보통 쥐들보다 눈에 띄게 겁이 많고 소심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기억력이 좋아지면 과거의 실수나 심리적 상처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행동이 그만큼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억력이 좋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2. 'CREB 활성제'와 'CREB 억제제'
기억력 증진을 위해 연구 중인 유전자는 NR2B뿐만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사진 기억(Photographic Memory)'이 주입된 과실파리를 만들어냈다. 과학자들은 기억과 관련하여 'CREB 활성제(CREB activator)'와 'CREB 억제제(CREB repressor)'라는 두 개의 유전자를 추가로 발견했다. 'CREB 활성제'는 '뉴런 사이의 새로운 연결을 촉진하는 유전자이고, 'CREB 억제제'는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유전자'이다.
뉴욕 '콜드 스프링 하버(Cold Spring Habor)' 연구소의 '제리 인(Jerry Yin)'과 '티머시 툴리(Timothy Tully)'는 과실파리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해왔다. 일반적으로 과실파리에게 냄새 감지와 충격 회피 등 '특정 행동'을 유발하려면 평균 10회 정도의 훈련이 필요한데, 이들에게 'CREB 억제제'를 추가로 투입하면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CREB 활성제'를 투입했을 때 과실파리는 단 한 번의 연습으로 '특정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은 과실파리에게 '사진 기억(Photographic Memory)'이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한 학생이 책의 한 장을 읽은 후 무언가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질문의 답은 제가 읽은 책 74쪽 세 번째 문장에 들어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또 '콜드 스프링 하버(Cold Spring Habor)' 연구소의 '알치노 실바(Alcino Silva)' 박사는 쥐를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수행하여 'CREB 활성제가 결핍된 쥐는 장기기억력을 거의 상실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마디로 '기억 상실증 쥐'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쥐들도 휴식을 취한 후 훈련을 거치면 간단한 행동을 습득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 속에는 특정량의 CREB 활성제가 함유되어 있으며, 이 양에 따라 학습 능력이 결정된다.'고 결정지었다.
-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하면, CREB 활성제가 빠르게 소진되어 무언가를 더 습득하기가 어려워진다. CREB 활성제가 재생산되려면 간간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이로써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 왜 시험 성적이 신통치 않은지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또 이 논리에 의하면 정신적으로 강렬한 경험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이류를 설명할 수 있다. CREB 억제제는 일종의 필터처럼 필요 없는 기억을 수시로 지우는데, 감정적으로 강렬한 기억은 CREB 억제제에 의해 지워지거나 CREB 활성제에 의해 더욱 강렬해진다. 이로써 우리는 왜 감정에 치우친 사건을 더 많이 기억하는지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 기억력을 높이는 유전자는 더 많을 것이다.
인간의 두뇌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유전자들은 '인간 게놈(Human Genome)'에 이미 등록되어 있으므로, 잘 찾아내서 적용하면 인간의 기억력과 정신력을 유전학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뇌의 능력을 지금 당장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풀어야 할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 첫째, 파리와 쥐를 대상으로 얻은 결과가 사람에게 적용되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과거에도 쥐에게 잘 통했던 치료법이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 둘째, 이 방법이 사람에게 통한다 해도, 어떤 효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 예컨대 CREB 유전자가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는 있지만, 지능까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 셋째, 유전자 치료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유전병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무해한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좋은 유전자를 만들려고 해도, 항체가 바이러스를 공격하여 치료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동물의 경우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겠지만, 이 연구가 완성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앞날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방법으로 유전자를 바꾸는 시술은 팔에 주사를 놓는 것만큼 간단할 것이다.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가 혈액 속에 유입되면 정상적인 세포에 유전자가 침투하여 변형이 일어난다. '똑똑한 유전자'가 세포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곧바로 단백질을 생성하여 '기억력'이나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4. 똑똑해지는 알약
유전자를 주입하기가 어렵다면, 유전자 시술을 거치지 않고 단백질을 직접 주입해도 된다. 이때는 주사보다 알약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집중력, 기억력, 지능까지 높여주는 '똑똑해지는 알약'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제약 회사들은 'MEM 1003', 'MEM 1414' 등 정신 기능을 향상하는 몇 가지 알약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과학자들은 동물 연구 사례에서 '효소'와 '유전자'를 이용하면 '장기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떤 행동을 하면 CREB와 같은 특정 유전자가 활성화되고, 그로부터 특정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행동요령을 습득하게 된다. 연체동물, 과실파리,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두뇌를 순환하는 CREB 단백질의 양이 많을수록 장기기억이 빠르게 형성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에서 언급한 MEM1414는 CREB 단백질의 생성을 촉진하는 약이다. 노년기에 접어든 동물에게 MEM1414를 투입하면, 장기기억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형성된다.
요즘 과학자들은 유전학적 수준, 분자물리학적 수준에서 장기기억의 형성에 필요한 생화학적 요인을 서서히 밝혀내고 있다. 기억 형성 과정이 모두 밝혀지면, 이 과정을 강화하여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노인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들뿐만 아니라, 뇌 기능을 개선하고 싶은 일반인들도 모두 포함된다.
5. 기억을 잊게 하는 효소 'PP1'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생각할 때, '천재 생쥐'처럼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방법과는 별도로, 기억한 것을 잊지 않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이에 관련한 중요한 발견이 있었다. 애초에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의 가능성은 뇌 안에 기억이 남아 있는데, 상기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기억 그 자체를 잃는 경우이다. 우리의 뇌 안에서는 양쪽의 경우가 모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근년에 보고된 중요한 발견이란 '기억 그 자체가 없어지는 겨우'의 이야기다. 2002년에 스위스의 연구자들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PP1'이라는 효소에는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하거나 생긴 기억을 없어지게 하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PP1의 작용을 억제하면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억의 기본 원리인 '장기 증강(LTP: Long-term potentiation)'에서는, 시냅스에서 화학 물질을 받는 '수용체(Receptor)'가 활성화되거나 수가 늘어난다. 이것이 일어나기 위해서 '인산화'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산화(Phosphorylation)'란 단백질에 인산이 결합해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는 일이다. 그런데 PP1이라는 효소는 인산의 결합을 떼어 놓는다. 결국 수용체의 작용을 나쁘게 하거나 수용체가 늘어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뇌 안에서 PP1이 작용하며, 기억하기 어렵게 하거나 없어지게 하는 것 같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PP1의 작용을 억제하면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스위스의 연구자들이 PP1을 억제하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그 생쥐는 기억력이 향상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특히 나이를 먹은 생쥐에서 효과가 컸다는 점이다. 추측이지만 나이가 들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PP1의 제어가 잘되지 않는 점이 원인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PP1의 폭주를 억제하는 약이 개발된다면, 나이가 듦에 따라 기억력의 퇴화를 막는 약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처럼 기억력에 방해물이라고 생각되는 PP1이라는 효소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모든 정보를 저장하면 아무리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이 우수하다고 해도 회로망이 포화될지도 모른다. 또 불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지워 나가는 메커니즘이 뇌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