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미래학 (Futurology)

나노 기술(Nano Technology)

SURPRISER - Tistory 2022. 6. 27. 04:27

0. 목차

  1. '나노 기술'이란?
  2.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3. 부분적으로나마 개개의 원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4. 몸속의 나노 기계
  5. 바이오칩(BioChip)
  6. 형태 변환 기술
  7. 분자 조립 장치(Replicator)

1. '나노 기술'이란?

 인간은 복잡한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 덕분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 가운데 최상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의 운명은 줄곧 도구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인간은 수천 년 전에 활과 화살을 발명하여 물체를 손으로 던진 것보다 빠르게 발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냥 기술이 발달하면서 음식이 풍족해졌다. 또 700년 전에 '야금술(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는 방법이나 기술)'이 개발된 후로 진흙과 짚더미로 지었던 집들은 점차 견고한 재질로 바뀌었으며, 결국에는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되었다. 황량한 사막과 우거진 숲에 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금속을 다루는 기술 덕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도구를 손에 넣기 직전까지 와 있다. 그 도구는 바로 '나노 기술(Nano Technology)'이라는 것으로, 나노 기술이 있으면 모든 만물의 기본단위인 원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나노 기술은 21세기 안에 원자를 낱개로 다루는 수준까지 발전하여, 엄청나게 강하고 가벼우면서 놀라운 전자기적 특성을 갖고 있는 신소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나노 기술이 가져올 여파는 과거 1차 산업혁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깊고 광범위하다. 앞으로 각국의 경제력도 나노 기술의 개발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며, 전 세계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능력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의 나노 기술은 이 꿈같은 기적을 인간에게도 허용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스몰리(Richard Smalley, 1943~2005)'는 "나노 기술의 가장 큰 목표는 원자를 기본 블록으로 삼아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또 '휴렉팩커드(Hewlett-Packard)' 사의 '필립큐키스(Philip Keukes)'는 "나노 기술의 목표는 간단한 컴퓨터를 박테리아 크기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는 먼지 한 톨만 한 크기로 작아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나노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9년에 미국정부는 의학, 산업, 항공 등 나노 기술의 적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 나노 기술 연구소(National Nanotechnology Institute)'에 15억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정부 산하기관인 나노 기술 과학 재단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나노 기술'은 유해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등 식량과 물을 생산하고 보존하는 데 큰 일익을 담당할 것이며, 에너지와 신소재개발 분야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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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1959년에 열린 '미국 물리학회 정기총회'에 연사로 초빙되어 '극소 영역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있다(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물리학자는 화학자들이 노트에 써 내려가는 화학물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주문만 하면 하면 무엇이든 오케이다. 화학자의 지시에 따라 개개의 원자를 배치하면 된다. 원자를 낱개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만들지 못할 물질은 없다." 그는 기계의 규모가 계속 작아지다 보면 결국 원자스케일에 이를 것이고, 따라서 원자를 이용하여 다양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리처드 파인만'은 개개의 원자를 따로 다루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원리적으로 이것을 금지하는 물리법칙은 없다고 했다.

 미시 세계에서는 거시 세계에서 적용되는 '고전 물리학'이 잘 적용되지 않고, 우리의 직관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법칙을 따른다. 결국 세계경제와 국가의 운명은 '양자역학'에 달려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세계에서는 양자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의 몸을 비롯한 거시적 물체들은 천문학적 개수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성입자가 이렇게 많으면 양자적 효과들이 서로 상쇄되어, 직관에 부합되는 결과만 나타난다. 반면, 양자역학의 원리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렇게 상식을 뛰어넘는 양자역학'이 확고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해 주는 '옳은 이론'이기 때문이다. 실험에서 얻은 값과 양자이론으로 계산된 값 사이의 오차는 100억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 오차면 역사상 가장 정확한 물리학 이론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미시 세계'에서는 상식을 뛰어나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그중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소개한다.

2-1. 원자는 대부분 비어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는 모든 곳이 터엉 비어 있다. 원자의 중심에 원자핵이 있고 그 주변에 전자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 대부분의 공간이 비어있는 것이다. 원자를 축구장 크기로 확대했을 때, 원자핵은 축구장 중심에 놓여 있는 좁쌀 한 톨보다 작고, 전자는 운동장 외곽의 담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즉, 운동장의 대부분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허한 원자들이 모여서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만 먹으면 벽도 쉽게 통과할 수 있어야 하지지 않을까? 이 세상 모든 물체가 거의 텅 비어있는 원자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벽을 유령처럼 통과할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기이한 양자적 현상' 때문이다. '볼프강 파울리(Wolfgan Pauli)'의 베타 원리에 의하면 한 쌍의 전자는 절대로 동일한 양자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그러므로 거의 동일한 두 개가 서로 가까이 접근하면 배타 원리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 서로 밀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벽돌담이나 철제 금고가 견고하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제아무리 단단한 물체라 해도 속은 텅텅 비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의자에 앉을 때 몸 또는 옷이 의자와 접촉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기력과 양자적 힘에 떠밀려 '나노미터(10-9m)'보다 좁은 간격을 두고 허공에 떠 있는 상태이다. 의자뿐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질 때 우리의 손은 물체와 직접 닿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원자력에 의해 일정 간격만큼 떨어져 있다.

2-2. 원자들이 뭉쳐 안정된 분자가 되는 것도 '양자 역학' 덕분이다.

 양자역학의 법칙은 원자를 견고하게 유지시켜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서로 결합시켜 분자로 만들어준다. 예컨대 두 개의 원자가 가까이 접근하면 서로 튕겨내거나, 하나로 결합하여 안정된 상태의 분자가 된다. 원자들이 뭉쳐서 분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웃한 두 원자 사이에 전자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원자들이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 원리(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는 원리)'에 의하면, 전자는 정확한 위치를 갖지 않고 두 원자 사이에 '퍼져 있으면서' 이들을 결합시키고 있다.

 만약 누군가 양자역학의 스위치를 꺼서 양자적 현상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면, 모든 분자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산산히 분해되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원자들이 분해되지 않고 서로 결합하여 견고한 물체를 이루는 것은 '양자역학'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

2-3. 그 외의 양자적 현상들

 양자역학에 의하면,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입자는 입자는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팽이처럼 자전하는 입자의 스핀값은 '위(up)'와 '아래(down)'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또 양자역학에 의하면 한 지점에서 물질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른 지점에 나타나는 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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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분적으로나마 개개의 원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리처드 파인만'은 '개개의 원자를 조직하여 필요한 분자를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세상'을 꿈꿨다. 물론 1959년에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파인만의 꿈이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1981년에 일단의 물리학자들이 개개의 원자를 다룰 때 사용하는 '주사 터널 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라는 특수 전자현미경을 발명하면서 나노 기술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장비를 발명한 IBM 사의 '게르트 비니히(Gerd Binning, 1947~)'과 '히이리히 로러(Heinrich Rohrer, 1933~2013)'는 '주사 터널 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후로 물리학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노 기술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화학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원자 배열하기' 기술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3-1. 원자의 배열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주사 터널 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ope)'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언뜻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이 연상되겠지만, 사실 이것은 현미경과 거리가 멀다. 겉모습만 보면 구식 '축음기(원반에 홈을 파서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해서 이것을 소리로 재생시키는 장치)'처럼 생겼다.

 이 물체의 표면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면 바늘에 흐르는 전류가 물체를 통과하여 그 밑에 있는 센서로 전달되는데, 원자 하나를 지날 때마다 전류가 미세하게 변하기 때문에 센서가 그 차이를 감치하여 물체의 표면 상태를 추정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물체 위를 여러 번 스캔하여 전류를 분석하면 물질의 원자 배열을 입체영상으로 재현할 수 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원자의 배열 상태가 놀라운 상태로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보다 최근에 나온 원자현미경은 원자의 배열 상태를 3D로 보여준다. 이 장비도 원자 크기의 바늘을 사용하고 있지만, 바늘에서 레이저를 방출한다는 점이 다르다. 바늘이 물체 위를 훑고 지나가면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고, 레이저빔 영상 장치가 이 진동을 감지하여 원자의 배열 상태를 파악한다.)

 '주사 터널 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ope)'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신기한 법칙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탐침에서 대상물질의 표면으로 건너뛸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전자는 에너지 장벽을 뚫고 물질 쪽으로 건너갈 확률이 존재한다. 물론 이 확률은 아주 작지만 뉴턴의 고전물리학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전자가 이동했다는 것은 탐침에서 물질의 표면으로 전류가 흘렀다는 뜻이다. 이 전류는 물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양자적 효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3-2. 개개의 원자를 하나씩 이동시킬 수도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바늘이 원자의 형태를 감지할 뿐만 아니라, 원자를 하나씩 이동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원자로 글을 쓸 수도 있으며, 원자 규모의 간단한 기계장치를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이들은 금속 표면에 원자로 원자를 재배열시켜서 'IBM'이라는 글자를 새겨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개개의 원자를 움직이는 원리는 비교적 간단했다. 원자 배열을 '주사 터널 현미경'으로 찍은 영상은 탁구공처럼 생긴 하얀 공 모양으로 스크린에 나타난다. 스크린에서 특정 원자를 커서로 선택한 후 커서를 다른 곳을 이동시키고 바늘을 작동시키는 버튼를 누르면, '주사 터널 현미경'이 물체를 다시 스캔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 스크린에는 해당 원자가 원했던 위치로 이동한다. 하나의 원자를 임의의 위치로 옮기는 작업은 1분이면 충분하다. (다만 작동법을 익히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3-3. 미세 전자 제어 시스템(MEMS)

 '나노 기술'에서 파생된 것 가운데에는 '미세 전자 제어 시스템(MEMS: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s)'도 있다. '미세 전자 제어 시스템(MEMS)'이란 초소형 기계를 만드는 기술의 총칭으로, '잉크젯 카트리지(Inkjet Cartridge)'와 '에어백 센서(Airbag Sensor)'에서 비행기의 '자이로스코프 디스플레이(Gyroscope display)'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기본적인 원리는 컴퓨터 산업계에서 사용하는 에칭과 비슷하지만, 트랜지스터 대신 기계의 부품을 새긴다는 점이 다르다. 이 부품들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지난 2000년에 IBM '취리히 연구소(Zürich Research Institute)'의 과학자들은 '주사 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으로 원자를 하나씩 움직여서 '주판(동양의 구식 수동 계산기)'을 원자 스케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위아래로 위아래로 움직이는 주판알 대신, 탄소 원자들이 축구공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는 탄소동소체인 '풀러렌(C60)'을 사용했다. 풀러렌 하나의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 1밖에 안된다.

 '코넬 대학(Cornell University)'의 과학자들은 한술 더 떠서 원자 스케일의 기타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진짜 기타와 마찬가지로 여섯 개의 줄이 있고, 하나의 줄은 100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전체의 크기는 머리카락 룩기의 20분의 1밖에 안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원자기타는 연주도 가능하다. 다만 줄의 진동수가 너무 높아서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뿐이다.

 '미세 전자 제어 시스템(MEMS)'을 사용해서 만든 것 중에는 실용적인 발명품도 있다. '에어백 센서(Air Bag Sensor)'는 '가속도 센서(Accelerometer)'의 일종으로, 자동차의 급정거를 감지한다. 달리던 자동차가 충돌하여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들거나 운전자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큰 가속도가 생기면서 센서에 충격이 전된다. 그러면 이로부터 미세한 전류가 생성되고, 이 전류가 화학 폭발을 유도하여 다량의 질소 가스를 25분의 1초 만에 에어백 안으로 불어넣는다. MEMS를 적용한 '에어백 센서'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MEMS 이전에도 다양한 가속도 센서가 사용됐지만, 크기가 크고 가격이 비싸 차량에 설치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MEMS가 개발되면서 작고 정밀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가속도 센서'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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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몸속의 나노 기계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의학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나노장비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혈관을 따라 몸속을 돌아다니는 나노 기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 '환상적인 여행(Fantastic Voyage)'에는 적혈구 크기만큼 줄어든 잠수함이 등장한다. 테러범을 공격을 받고 뇌사상태에 빠진 한 과학자를 살리기 위해, 특수요원들이 축소된 잠수함을 타고 환자의 몸에 들어가 뇌 수술을 한다는 스토리다. 요원들은 혈관을 타고 뇌를 찾아가는 동안 여러 번 위기에 봉착하지만, 그때마다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은 수술에 성공한다.

4-1. 똑똑한 알약

 나노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는 암세포를 골라서 확실하게 죽이고, 정상세포에는 해를 입히지 않는 '암세포 전문 킬러'를 분자 크기로 만드는 것이다. 혈관을 타고 이동하면서 암세포를 처리하는 초소형 잠수함은 공상과학소설의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현실성이 없다면 단순한 상상의 산물로 취급해왔다.

 하지만 그 꿈은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뉴욕주립대학교 버펄로 캠퍼스의 '제롬 셴탁(Jerome Schentag)'은 1992년에 특별한 알약을 개발했다. 이 알을 삼키면 속에 있는 전자 장비가 미리 설정해 놓은 위치를 찾아가서 손상 부위에 필요한 약을 주입한다. 여기에는 초소형 TV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어서, 위장이나 창자의 내부를 볼 수 있다. 또 가는 길을 외부 자석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이 알약은 종양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치료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조직 검사'나 '간단한 수술' 정도는 '똑똑한 알약'이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이런 '잔심부름'을 위해 피부를 절개할 필요가 없다.

4-2. 나노입자(Nanoparticle)

 알약보다 훨씬 작은 '나노입자(Nanoparticle)'도 있다. '나노입자'는 몸의 특정 부위에 항암제를 실어 나르는 분자로 활용할 수 있어, 장차 암 치료 분야의 일대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 실행된 암 치료의 문제점은 부수적인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노입자'는 스마트 폭탄처럼 화학약품 탄두를 싣고 정확하게 암세포만 공격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일으킬 염려가 없다. 치명적인 독소인 '항암제(Anticancer drug)'는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구별하는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는 구토증과 탈모, 기력 감퇴 등 온갖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암 환자들 중에는 '고통 속에 사느니 차라리 암으로 죽는 편이 낫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노입자'가 개발되면 이 모든 부작용을 말끔하게 없앨 수 있다. 분자 크기의 초소형 캡슐에 치료약을 담아서 몸속에 주입하면, 혈관을 타고 암세포를 찾아가 정밀폭격을 가한다.

 10~100nm면 혈액세포를 관통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암세포는 경우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암세포의 표면에는 커다란 구멍이 불규칙적으로 뚫려 있기 때문에 나노입자가 쉽게 침입할 수 있다. 아군과 적군이 아무리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도, 폭탄이 적군을 식별할 수 있다면 그 전쟁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즉, 나노입자를 10~100nm 규모로 줄이면 복잡한 유도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저절로 암세포 속에 누적될 것이므로, 아무런 부작용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이 치료법은 전혀 위험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노입자를 '적당한 크기(정상세포를 공격하기에는 너무 크고, 암세포에 침투하기에는 적절한 크기)'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4-2-1. 스스로 결합해 형성되는 나노입자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릿지에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 '바인드 바이오사이언스(BIND Bioscience)'의 과학자들은 또 다른 형태의 나노입자를 개발하였다. 이들은 나노입자의 '탄두(포탄이나 미사일 따위의 머리 부분)'를 '폴리유산(PLA: Polylactic Acid)'과 '글리콜산(Glycolic Acid)'으로 만들었는데, 이 성분은 치료약을 분자망 속에 가둬두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노입자를 '펩티드(아미노산 화합물)'로 코팅하여 표적세포에 잘 들러붙도록 만들었다.

 이 나노입자의 특징은 스스로 생성되어, 복잡한 제조과정을 사람이 일일이 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절한 환경에서 다양한 화학성분을 순서에 맞게 첨가해 주면 스스로 결합하여 나노입자가 형성된다. 이들이 개발한 나노입자는 자체 조립이 가능해 복잡한 화학적 공정을 거치치 않고서도 아주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거대한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 입자를 kg 단위로도 만들 수 있다.

4-2-2. 암세포 죽이기

 몸 안에 주입된 나노입자는 암세포를 찾아갈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화학물질을 살포하여 암세포를 죽인다. 말하자면 고도로 훈련된 '암세포 전문 킬러'인 셈인데, 그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나노입자는 특정 주파수의 빛을 흡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여기에 레이저를 쪼이면 입자가 진동하면서 근처에 있는 암세포의 벽을 파괴한다. 따라서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나노입자를 가능한 한 암세포에 가까이 접근시켜야 한다.

 그 해결책으로 '미국 아르곤 국립 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와 시카고대학의 과학자들은 '산화티탄(Titanium dioxide)'을 사용하여 나노입자를 만들었다. '산화티탄'은 자외선 차단제에 흔히 쓰이는 혼합물이다. 우리 몸에는 '다형성 교모세포종(GBM: Glioblastoma Multiforme)'이라는 특정 암세포를 자연적으로 항체가 있는데, 연구진은 산화티탄 나노입자를 이 항체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즉, 나노입자가 항체에 탑승해서 암세포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들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백색광을 5분 동안 쪼여주면 탄두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이 활성화되어 암세포를 죽인다. 실험에 의하면, 이 방법으로 암세포의 80%는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연구진은 암세포를 죽이는 2차 방법도 개발했다. 진동하기 쉬운 초소형 자석판을 암세포에 접근시키고 외부에서 약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이들이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암세포의 벽을 파괴한다. 실험 결과, 자석진동판은 암세포의 90%를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산타크루즈(Santa Cruz)'캠퍼스의 과학자들도 '금-나노입자'를 이용하여 이와 비슷한 치료법을 개발했다. 구슬처럼 동그랗게 생긴 이 나노입자는 직경이 20~70nm로서 원자의 몇 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 연구진들은 피부 암세포를 추적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펩티드에 '금-나노입자'를 연결하여, 쥐의 피부 암세포까지 운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적외선 레이저를 쪼이면 '금-나노입자'에서 방출된 열이 암세포를 죽인다. 연구진의 한 사람인 '진 장(Jin Zhang)'은 이를 두고 "암세포를 뜨거운 물에 넣어서 데워 죽이는 원리"라고 했다.

 미래의 나노 기술은 종양이 자라나기 수십 년 전에 암세포를 미리 탐지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속에는 나노입자가 항상 순찰을 돌면서 암세포가 발견되는 즉시 우리도 모르게 파괴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공상과학이 아니며, 기본적인 기술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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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노 자동차(Nanocar)

 '나노 자동차(Nanocar)'는 나노입자'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나노입자는 혈관을 타고 피가 흐르는 방향을 따라 몸속을 순환하는 반면, '나노 자동차'는 마치 무선조종 비행기처럼 임의로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라이스대학(Rice University)'의 '제임스 미첼 투어(James Mitchell Tour, 1959~)'와 그의 동료들은 바퀴 대신 '풀러렌(C60)'을 사용하는 나노 자동차를 개발했다. 이들의 목적은 혈관 속에서 초소형 로봇을 밀고 가는 분자 규모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다. 로봇과 자동차는 몸속을 감시하는 일종의 순찰차로서, 마주치는 암세포를 죽이고 손상된 곳에 약을 주입한다. 그런데 문제는 분자 자동차에 엔진을 장착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분자 규모에서 꽤 복잡한 기계장치를 만들어왔지만, 엔진만은 너무 복잡해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연구팀은 '아데노신 3인산(ATP: Adenosing Triphosphate)'라는 천연 분자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했다. ATP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다. ATP 분자의 에너지는 원자들 사이에 '결합에너지(Bond Energy)'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매 순간마다 근육에 공급되고 있는데, 인공적으로 구현하기에는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

4-3-1. 나노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낸 사람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의 '토머스 말록(Thomas Mallouk)'과 '아유즈만 센(Ayusmansen)'이었다. 이들은 1초당 10μm의 속도로 움직이는 나노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이 정도면 박테리아의 이동속도와 비슷하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금(Au)'과 '백금(Pt)'으로 박테리아와 비슷한 크기의 나노 막대를 만든다. 이것을 물과 과산화수소의 혼합용액에 담가두면, 막대의 양 끝에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한쪽 끝에 있던 양성자가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이 양성자는 물 분자의 전기전하를 밀치고 나아가기 때문에, 결국 나노 막대가 앞으로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물(H2O)'속에 '과산화수소(H2O2)'가 섞여 있는 한 나노 막대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4-3-2. 나노 자동차가 방향을 조종하는 원리

 '자기력(Magnetic Force)'을 이용하면 나노 막대의 방향도 바꿀 수 있다. 나노 막대에 니켈판을 삽입하면, 나침반의 바늘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즉, 몸의 외부에 자석을 갖다 대면, 나노막대의 자석의 자기장 방향으로 정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석을 이용하면, 나노 막대를 원하는 지점으로 유도할 수 있다.

 방향을 조절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빛을 사용하는 것이다. 분자에 빛을 쪼이면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분해되고, 이들은 물질 속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온은 전기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자신의 주변에 전기장을 형성하고, 분자 기계는 그 영향을 받아 방향을 바꾸게 된다. 즉, 자석 대신 빛을 사용해도 분자 기계의 방향을 조종할 수 있다.

4-3-3. 박테리아의 꼬리를 이용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폴리테크닉대학'의 '실뱅 마르텔(Sylvain Martel)'은 일상적인 박테리아의 꼬리를 이용하여 초소형 칩을 전진시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박테리아의 꼬리만큼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엔진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실뱅 마르텔'은 '나노 기술로 박테리아의 꼬리를 만들 수 없다면, 그냥 박테리아를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작은 컴퓨터칩을 제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 무리의 박테리아를 배양했다. 그 후 칩의 뒷면에 약 80개의 박테리아를 이식했더니, 마치 '프로펠러(Propeller)'를 단것처럼 칩이 앞으로 전진했다. 게다가 이 박테리아들은 약간의 '자성(Magnetism)'을 띠고 있기 때문에 외부 자석을 이용하여 방향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박테리아로 구동되는 칩을 직접 조종하면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박테리아들이 초소형 컴퓨터칩을 밀고 나가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버튼을 누르면, 자기장이 켜지면서 칩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여기서 자기장을 끄면 칩은 다시 무작위로 움직인다. 이 작동을 반복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것으로 컴퓨터칩을 유도할 수 있다. 마치 박테리아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미래의 의사들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칩이 아닌 나노 기계를 조종하게 될 것이다. 혈관 속에서 자석으로 방향을 찾아가는 분자 기계가 유해한 세포를 조준 사격하고,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고, 동맥의 막힌 부분을 뚫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피부를 절개하는 수술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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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이오칩(BioChip)

  '바이오칩(BioChip)'이 보급되면 진단비도 크게 절감될 것이다. 요즘 병원에서 실행되는 '조직 검사'나 '화학분석법'은 몇 주를 기다려야 결과를 알 수 있고, 비용도 수백 달러나 들어간다. 그러나 미래에는 검사가 단 몇 분 만에 끝나고 비용도 몇 센트면 충분할 것이므로,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도 없다. 머리를 빗을 때나 이를 닦을 때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칩들이 다양한 질병과 암을 진단해 줄 것이다.

5-1. DNA서열이나 암세포를 감지하는 초소형 칩

 미래에는 모든 의료와 가정의 욕실 등에 장착된 초소형 센서가 암을 비롯한 온갖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이 실현되려면 초소형 '바이오 칩(BioChip)'부터 개발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초소형 실험실'을 하나의 칩 안에 구현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 '스타트렉(Star Trek)'에 등장하는 '트라이코더(Tricoder)'처럼 '바이오칩'은 단 몇 분 만에 모든 진단을 마무리할 것이다.

 요즘 병원에서 암 발생 여부를 판별하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는 모든 종류의 암을 다 찾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훨씬 빠른 암 진단법을 새로 개발했다. 원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암세포에 의해 생긴 '생체표지(Biomarker)'를 추적하는 것이다.

 컴퓨터칩을 만들 때 사용되는 식각법을 도입하면, 특정 DNA 서열이나 암세포를 감지하는 기능을 초소형 칩에 새길 수 있다. 트랜지스터 식각법을 이용하여 칩의 표면에 DNA 조각을 새긴 후 흐르는 액체 속에 담그면, DNA 조각들이 서로 결합하여 특정한 유전자 서열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레이저를 쪼이면, 유전자를 아주 빠르게 스캔할 수 있다. 즉, 유전자를 하나씩 읽지 않고 한 번에 수천 개씩 읽을 수 있는 것이다. 1997년에 미국의 '에피메트릭스(Affymetrix)' 사는 한 번에 5만 개의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는 상업용 DNA 칩을 출시했다. 그 후 2000년에는 성능이 40만 개로 향상되었고, 2002년에는 한층 더 개선된 칩이 200달러에 판매되었다. 이 가격은 앞으로 무어의 법칙을 따라 더욱 내려갈 것이다.

 지금은 '암 생체표지 샘플'을 임상적으로 분석하려면, 연구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운 좋게 이런 컴퓨터를 구했더라도 결과를 얻으려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토론토 의과대학 교수 '샤나 켈리(Shana Kelley)' 연구팀은 손톱만 한 크기의 전자 칩으로 생체 분자를 관측하는 데 성공하였다. 앞으로 이 칩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들이 스마트폰만 한 장비 속에 다 들어갈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웬만한 화학실험실이 초소형 칩 안에 통째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5-2. 암세포를 검출하는 바이오칩

 '메사추세츠 제너럴 병원(Messachusetts General Hospital)'의 의료진은 이전까지 시장에 출시된 그 어떤 칩보다 100배 이상 뛰어난 '바이오칩'을 자체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혈액 안에서 '혈액순환 종양세포(CTCs: Circulating Tumor Cells)'의 비율은 100만 분의 1 미만이지만, 이 수치가 증가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새 바이오칩은 혈중 CTCs 수치가 10억 분의 1일 때도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티스푼 정도의 혈액 샘플만 있으면, 바이오칩으로 폐암, 전립선암, 췌장암, 유방암, 결장암 등을 감지할 수 있다.

 표준 식각법을 사용하면 78000개의 다리가 달린 칩에 특정한 모양을 새길 수 있다. (다리 하나의 길이는 100μm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다리가 달린 울창한 숲과 비슷하게 보인다. 개개의 다리는 '상피세포 부착분자(EpCAM: epithelial cell adhesion molecule)'의 항체로 코팅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의 암에서 발견되는 EpCAM은 암세포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종양으로 자라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이제 다리가 달린 칩에 혈액 샘플을 흘려보내면, CTC 세포들이 다리에 들러붙으면서 암세포의 존재를 알려준다. 실험 결과, 116명의 암 환자들 중 115명의 암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5-3. 특정 단백질을 검출하는 바이오칩

 워싱턴대학의 '리로이 후드(Leroy Hood)'와 그의 동료들은 한 방울의 피에서 특정 단백질을 검출하는 폭 4cm 짜리 칩을 개발했다. 단백질은 생명의 기본단위로, 근육, 피부, 체모, 호르몬, 효소 등은 대부분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암과 관련된 특정 단백질을 검출할 수 있으면 조기진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특정 단백질을 10분 만에 검출하는 칩이 10센트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데, 기존의 검사 방식에 비하면 백만 배 이상 효율적이다. 앞으로는 수백, 수천 가지의 단백질의 빠르게 검출하는 칩도 생산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치명적인 병에 걸려 조기에 사망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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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형태 변환 기술

6-1. 21세기 중반이 되면 '형태 변환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Terminator 2: Judgment Day)'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는 미래에서 온 로봇 T-1000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다. T-1000은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신형 터미네이터로서,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작은 틈도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있다. 오로지 살인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로봇은 총과 같은 복잡한 기계로 변신할 수는 없지만 손끝이나 발끝을 뾰족한 모양으로 바꿔서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다. 게다가 임무에 맞게 다른 형태로 변신했다가,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한마디로 T-1000은 도저히 죽일 수 없는 완벽한 살인 무기였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이야기고, 지금의 기술로는 견고한 물체를 녹이거나 부수거나 자르지 않고서는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21세기 중반이 되면 '형태 변환 기술(Shape Transformation Technology)'이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2050년이 되면 나노 기술의 다양한 산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나노 제품은 분자 제조기술 덕분에 엄청나게 강하고, 타지 않고, 전도성이 뛰어나고, 유연하기까지 할 것이다. 또 곳곳에 설치된 나노센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지금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 중반으로 간다고 해도, 크기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기술 혜택들은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6-2. 형상변환 물질

 살인 전문 로봇 터미네이터 T-1000은 '형상변환 물질(Programmable Matter)'의 가장 극적인 사례이다. 미래에는 버튼 하나로 물체의 '외형', '색상', '물리적 구조' 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네온사인은 가스 튜브에 전기 공급을 제어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형태를 수시로 바꿀 수 있으므로, 따지고 보면 이것도 원시적 형태의 '형상 변환물질(Programmable Matter)'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가 기체 원자를 '들뜬 상태(에너지준위가 높아진 상태)'로 만들면, 잠시 후 원자는 정상상태로 되돌아오면서 빛을 방출한다. 이 과정을 좀 더 복잡하게 구현한 것이 컴퓨터 스크린에 사용되는 LCD이다. LCD에 들어 있는 '액체 결정(액정: Liquid Crystal)'은 작은 전류가 흐를 때 불투명해지는 성질이 있다. 여기에 전류의 양을 조절하면 결정의 색상과 모양이 달라지면서 다양한 영상이 구현된다.

터미네이터 2'에 나오는 로봇 T-1000

6-3. 실제로 외형을 바꾸는 형상변환 물질

 '인텔(Intel)' 사의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외형을 바꾸는 '형상변환 물질(Programmable Matter)'을 만들었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우선 모래알만큼 작은 칩을 만든다. 이 똑똑한 모래알은 표면의 '정전하(움직이지 않는 전하)'를 쉽게 바꿀 수 있어서 서로 당기거나 미는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모든 '모래알 칩'의 전하가 균일하면 일렬로 늘어서면서 특정 배열을 형성한다. 그리고 전하량을 바꿔주면 모래알의 배열이 즉각적으로 달라진다. '전하량의 크기'에 따라 배열이 여러 가지 형태로 달라지는 성질을 보면, 이들은 꼭 원자를 닮아서 과학자들은 이 모래알 칩을 '캐톰'이라고 부른다. '캐톰(Catom)'은 '클레이토닉스(Claytonics)'와 '아톰(Atom)'의 합성어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쓸 때, 주머니에 넣기에는 너무 크지만 화면의 크기가 너무 작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200~300mL의 캐톰만 있으면 스마트폰을 적절한 크기로 바꿀 수 있다.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스마트폰이지만, 사용이 끝난 후에는 다른 모양으로 바꿔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전자제품을 여러 개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텔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캐톰으로 1인치 크기의 배열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개개의 캐톰은 육면체 모양으로, 표면에는 미세한 전극들이 균일하게 달려 있다. 이 전극에 대전된 전하량을 조절하여, 캐톰들 사이의 결합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이 캐톰을 무선으로 조종하면 표면전하량을 임의로 바꿀 수 있다. 이들이 결합하여 커다란 육면체가 될 수도 있고, 이 상태에서 전극에 전하량을 조절하면 순식간에 배열이 바뀌면서 배 모양이 되기도 한다.

6-4. 캐톰의 크기를 조절하여 모래알보다 작게 만들 수 있다.

 모양이 바뀌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각 캐톰의 크기를 조절하여 모래알보다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여 캐톰이 세포 크기까지 작아진다면, 버튼 하나를 눌러서 쉽게 모양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2050년쯤이 되면 이 기술이 일상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특히 자동차와 비행기의 외관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 등 3차원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은 캐톰으로 첫 시제품을 만든 후 원하는 대로 수정을 가할 수 있다. 예컨대 캐톰으로 4-도어 세단의 차체를 만들었는데 모양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간단하게 스위치 몇 개를 눌러서 '해치백(들어서 여는 문)'스타일로 바꿀 수 있다. 또 차체를 조금 압축하면 스포츠카로 변신한다. 이런 작업은 찰흙으로도 할 수 있지만, 찰흙과 달리 캐톰은 지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언제라도 이전의 형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또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최종 스타일이 결정되면, 관련 정보를 수천 명의 디자이너들에게 전송하여 똑같은 복제품을 대량생산할 수도 있다.

6-5. 산업계에 미칠 영향

 이 기술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할 것이다. 에컨대 장난감은 싫증을 잘 내는 어린아이의 특성상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데, 모든 장난감을 캐톰으로 만든다면 평생 갖고 놀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도 새 선물을 사줄 필요 없이 새 장난감과 관련된 최신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여 기존의 장난감에 주입하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장난감으로 변신할 것이다. 장남감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판매하는 상당수의 제품들도 결국은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될 것이다. 물론 택배기사도 필요 없으며, 새로 다운로드한 소프트웨어를 기존의 물건에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주택이나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에도 부수고 다시 쌓는 등 번거롭고 힘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부엌의 타일과 식탁, 가전제품, 싱크대 등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신제품으로 변신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형상변환 물질'이 상용화되면 프로그램을 새로 주입하면 금방 새로운 물건이 되기 때문에 쓰레기가 크게 줄어든다. 형상변환 물질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을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구나 가전제품이 망가져도 버릴 이유가 없다.

6-6. 해결해야 할 문제

 이렇게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지만, 인텔 사의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 가운데 커다란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수많은 캐톰들을 어떻게 다 통제하는가?'에 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형상변환 물질의 안정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면, 빌딩을 비롯한 도시 전체가 버튼 하나로 나타나거나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텔 사의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캐톰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다.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영화에서 보았던 T-1000이 현실세계에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6-6-1. 수많은 캐톰들을 어떻게 다 통제하나?

 가장 큰 문제는 수백만 개의 '캐톰(Catom)'들이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새 프로그램은 '형상변환 물질(Programmable Matter)'에 업로드할 때 '대역폭(Bandwidth)'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는 '모핑(Morphing)'이라는 촬영기법이 자주 사용된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괴물로 변하는 등 실제로 있을 수 없는 현상을 화면으로 구현할 때 종종 사용되는 기법이다. 이 장면을 실제로 연출하려면 많은 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요즘은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과 괴물의 얼굴을 비교하여 눈과 코 등 중요한 차이점을 추출해서 '벡터(Vector)'로 연결한 후, 이 벡터를 따라 일제히 조금씩 이동하면 '서서히 변해가는 중간 과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얻은 그림들을 영상에 심으면 사람에서 괴물로 변하는 연속과정이 구현된다. 3차원 물체의 외형이 변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러면 예컨대 냉장고를 순식간에 오븐으로 바꾸고 싶을 때, 수십억 개의 캐톰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이것을 일일히 프로그래밍 해야 한다면 프로그래머에게 이것은 악몽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개개의 캐톰에게 일일이 명령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냥 자기 주변에 있는 캐톰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도록 하면 된다. 개개의 캐톰이 주변의 일부 캐톰들하고만 결합하도록 지시를 내려도, 전체적인 외형을 마술처럼 바꿀 수 있다. (인간 두뇌의 뉴런도 갓 태어났을 때는 주변의 극히 일부 뉴런들하고만 결합되어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결합 구조가 복잡해진다.)

6-6-2. 캐톰들 사이에 작용하는 정전기력이 너무 약한 문제

 또 다른 문제는 '캐톰들 사이에 작용하는 정전기력'이 '고체 원자들 사이의 결합력'에 비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속의 견고함과 플라스틱의 유연함은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여기 작용하는 양자적 힘은 정전기력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다. 미래에는 이 두 가지 힘을 모두 고려하여 '형상변환 물질의 안정성(변환된 후의 형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보하는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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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자 조립 장치(Replicator)

 '나노 기술(Nano Technology)'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2100년쯤이 되면 '분자 조립 장치(Replicator)'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분자 조립 장치'란 분자를 조립하여 이 세상 모든 물건을 만드는 장치로서, 크기도 세탁기 정도면 충분하다. 이 장치 안에 기본원료를 넣고 단추를 누르면 수많은 나노봇들이 원료에 들러붙어 복잡한 임무를 수행한다. 즉, 개개의 나노봇들이 원료를 분자 단위로 분해한 후 재조립하여 완전히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것으로, 원리적으로 '분자 조립 장치'는 만들지 못할 물건이 없다. 이런 장치가 개발된다면 과학과 공학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며, 인류가 만들어온 도구의 역사는 그 정점을 찍을 것이다.

 '분자 조립 장치(Replicator)'는 나노 기술의 궁극적 성배이지만, 정작 만들어지고 나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과격한 진화(Radical Revolution)'의 저자 '조엘 가로(Joel Garreau, 1984~)'는 "스스로 조립되는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격렬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분자 조립 장치'가 만들어지면, 편리하고 풍족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부터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분자조립장치'로 물건을 원하는 데로 얻을 수 있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어, 사람들의 '경제관념'도 크게 바뀔 것이다.

7-1. 최초의 나노봇을 만드는 것이 거다란 과제

 그러면 '분자 조립 장치'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 가지 문제는 물체를 복제하기 위해 재배열시켜야 할 원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의 몸은 약 50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로 따지면 1026개나 된다. 따라서 원자의 위치를 저장하는 데만도 엄청난 용량의 메모리가 필요하다. 이 난관을 극복해 줄 해결사가 바로 '나노봇(Nanobot)'이다. 나노봇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들은 자기복제가 가능하다. 일단 하나의 나노봇을 만들어놓기만 하면, 인간의 도움 없이 자신과 똑같은 나노봇을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첫 번째 나노봇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둘째, 나노봇은 분자의 특성을 규명하고 정확한 지점에서 자를 수 있다. 셋째, 나노봇은 분해된 원자의 사전 명령에 따라 다른 형태로 재배열시킬 수 있다. 따라서 1026개의 원자들을 일일이 재배열시키는 문제는 이와 비슷한 문제로 전환되고, 이는 곧 '첫 번쨰 나노봇'을 문제로 단순화된다. 이는 '첫 번째 나노봇'을 만드는 문제로 단순화된다. 재배열시켜야 할 원자가 많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짜 중요한 문제는 최초의 나노봇을 만들어서 번식시키는 일이다.

7-2. '분자 조립 장치'를 만드는 것이 진짜 가능한가?

 그러나 이 환상적인 장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나노 기술의 선구자이자 '창조의 엔진(The Engine of Creation)'의 저자인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 1955~)'를 포함한 일부의 학자들은 '모든 것이 분자 수준에서 제작되어 누구에게나 공급되는 소비의 천국'을 꿈꾸고 있다. 무엇이든 원하는 물건을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다면, 사회의 질서는 완전히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분자 조립 장치(Replicator)'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도 많다.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Richard Errett Smalley, 1943~2005)'는 2001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끈끈한 손가락'과 '뚱뚱한 손가락' 문제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모든 물체를 분자 스케일에서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민첩한 나노봇을 과연 만들어 냈을까?" 그리고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NO!'라고 선언했다. 그 후 2003년과 2004년에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는 '케미컬 앤 엔지니어링 뉴스(Chemical and Engineering News)'에 '에릭 드렉슬러'에게 보내는 일련의 편지를 게재하여 논쟁을 본격화시켰다. '스몰리 에테르 스몰리'가 나노봇으로는 분자를 조작할 수 없다고 주장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첫째, 분자를 조작하는 '손가락'에는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손가락 자체가 분자에 달라붙어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 원자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이유 중 하나는 전자들 사이에 '반데르발스 힘(중성인 두 개 의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같은 미세한 전기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둘째, 원자를 다루기에는 손가락이 너무 크고 뚱뚱하다. 두툼한 목장갑을 낀 채로 시계를 조립한다고 생각해 보자. 나노 손가락도 결국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개개의 원자를 다루기에는 너무 투박하다. 그렇다면 원자보다 작은 손가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 두 가지 논리를 바탕으로 나온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소년과 소녀의 등을 떠밀어 강제로 붙여놓는다 해서 그들이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처럼, 두 개의 분자에 역학적 운동을 일으킨다고 해서 화학반응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화학반응(Chemical Reaction)'은 '역학(Mechanics)'보다 훨씬 미묘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나노 세계에서는 우리가 거시 세계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거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반데르발스 힘', '표면장력', '불확정성 원리', '베타 원리' 등을 거의 느낄 수 없지만, 이 현상들이 나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상황을 좀 더 실감 나게 이해하기 위해, 원자의 크기가 구슬만 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집 뒷마당에 이런 원자들로 가득 찬 수영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원자 수영장'에 뛰어들었을 때의 느낌은 물속에 뛰어들었을 때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원자들은 '브라운 운동(유체 속에서 미소 입자가 외부의 간섭 없이도 불규칙적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당신의 온몸을 정신없이 때릴 것이다. 당신은 마치 끈적한 늪에 빠진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게다가 당신의 몸과 구슬만한 원자는 여러 가지 힘이 조합된 복잡한 상호작용을 교환하고 있기 때문에, 손을 뻗어 구슬을 잡으려고 하면 멀리 도망가거나 손가락에 붙어버릴 것이다.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

7-3. 이 논쟁으로 분명해진 일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Richard Errett Smalley, 1943~2005)'는 '분자 조립 장치'에 KO 펀치를 날리지는 못했지만, 이 격렬한 논쟁의 과정에서 몇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1. 첫째, 초소형 핀셋으로 분자를 자르고 붙이는 나노봇은 개념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원자 스케일에서는 양자적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2. 둘째, '분자 조립 장치(Replicator)'는 아직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겠지만, '분자 조립 장치'는 이미 자연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단백질을 만들어내느 세포소기관 '리보솜(Ribosome)'으로, 리보솜은 음식에 함유된 단백질과 아미노산을 이용하여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햄버거와 야채로 9달 만에 아기를 만들어 낸다.
  3. 셋째, '분자 조립 장치'가 가능하려면 좀 더 복잡한 버전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원자 두 개를 붙여놓았다고 해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는 대개의 경우, 물속에 녹아 있는 효소가 화학반응을 촉진한다.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는 컴퓨터와 전자산업계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이 대부분 물에 녹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에릭 드렉슬러'는 물이나 효소의 도움 없이 진행되는 화학반응도 있다고 반박했다.

7-4. '자체 조립법'에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자체 조립법' 또는 '상향식 접근법(Bottom-Up approach)'을 사용하는 것이다. 고대부터 인류는 무언가를 제작할 때 항상 '하향식 접근법(Top-Down Approach)'을 사용해 왔다. 예컨대 망치와 톱으로 나무를 자른 후, 미리 짜놓은 계획에 따라 나뭇 조각을 조립하여 커다란 집을 만드는 식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소한 실수가 전체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매 단계마다 계획에 어긋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조립이 스스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상향식 접근법'이라고 한다. 예컨대 '눈(Snow)'의 육각형 결정은 뇌우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 수많은 원자들이 자동으로 재배열되면서 다양하고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눈의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은 미리 만들어진 설계도를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생물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다섯 가지 이상의 단백질 분자와 몇 개의 DNA 분자로 이루어진 '박테리아 염색체(Bacterial Ribosome)'는 시험관에서 스스로 형성된다

 '자체 조립법'은 반도체 산업에도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트랜지스터의 부품들은 경우에 따라 스스로 조립되기도 한다. '냉각', '결정화', '중합반응', '증착', '응결' 등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을 정확한 순서에 따라 적용하면 상업적 가치가 높은 컴퓨터 부품을 만들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암세포 퇴치용 나노입자'도 이와 같은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체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나노물질 중 '자체 조립'이 가능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노 기계의 '자체 조립기술'은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리고, 분자를 조립하는 기계는 물리학 법칙에 위배되지 않지만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나노봇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첫 번째 나노봇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시대가 열릴 것이다.

7-5. '분자 조립 장치'의 원시적 형태의 물건은 이미 존재한다.

 '분자 조립 장치'의 원시적 형태의 물건은 이미 존재한다. 바로 3차원 물체를 인쇄하는 '3D 프린터(3D Printer)'이다. 3D를 이용하면 여러 부품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계를 단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다. 또 여러 3차원 물체를 스캔하여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건을 복제할 수도 있다. '3D프린터'는 '분자 조립 장치'라고 하기에는 투박하지만, 이 장치는 수십 년 혹은 수 세기 후에는 세포나 분자 스케일에서 원본을 복제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다.

 일단 '3D 프린터'는 사람의 장기를 만드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다 '웨이크포레스트 대학(Wake Forest Univesity)'의 과학자들은 잉크젯프린터를 이용하여 살아 있는 심장조직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들은 노즐을 통해 살아 있는 심장세포를 '주사(유동체를 바늘 따위로 넣어 생물체의 조직이나 혈관 속에 직접 주입하는 일)'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물론 잉크젯프린터의 카트리지에는 잉크 대신 심장세포를 포함한 유동체가 들어 있다. 기본적인 방식은 3D 프린터가 물건을 복제할 때와 비슷하지만, 심장의 경우 각 부위마다 세포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훨씬 복잡하고 프린터도 훨씬 더 정교해야 한다.

7-6. '분자조립장치'로 인간도 복제할 수 있을까?

 그러면 우리의 몸도 복제할 수 있을까? 일단 우리의 몸을 복제하려면 우리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MRI를 사용하면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일을 못할 것도 없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MRI 스캔의 오차가 약 0.1mm로, MRI로 얻은 영상의 픽셀 하나에는 수천 개의 세포가 들어 있다. 하지만 MRI 영상의 해상도는 자기장의 균일한 정도에 비례한다. 즉, 자기장이 균일할수록 더욱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자기장의 균일성이 지금보다 개선되면 0.1mm 이하의 작은 영역까지 충분히 볼 수 있다. 충분히 균일한 자기장을 생성할 수 있게 되어 세포 단위까지 볼 수 있는 MRI 스캐너가 개발되면, 분자나 원자 스케일까지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즉, 원리적으로는 인간의 몸도 복제가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구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7-7. 그레이-구 시나리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설립자 '빌 조이(Bill Joy, 1954~)'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나노 기술이 앞날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나노 기술이 지구의 자원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다가, 결국에는 쓸모없는 '그레이-구(Gray-Goo)'만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노봇은 여러모로 유용하지만 위험의 소지가 다분하다.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들이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나노봇은 스스로 복제를 할 수 있으므로, 이 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지구를 접수하고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레이-구 시나리오(Grey-Goo Scenario)'이다.

 만약 '그레이-구 시나리오'의 위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미리 안전장치를 설계해야만 한다. 예컨대 결정적인 순간에 '무력화 버튼'을 눌러서 모든 나노봇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고, 통제를 벗어난 나노봇을 전문적으로 소탕하는 '킬러봇(Killerbot)'을 만들어 사태를 수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이와 비슷한 사태를 수십억 년 동안 겪어온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지구는 자가복제로 번식하면서 종종 변이까지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천국이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항체와 백혈구를 꾸준히 개발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해왔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로부터 나노봇과 싸우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레이-구 시나리오(Grey-goo scena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