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화학 (Chemistry)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

SURPRISER - Tistory 2022. 4. 12. 07:53

 책상 위에서 책을 미끄러지게 해도, 미끄러짐은 오래가지 않고 곧 멈춘다. 이것은 '마찰(friction)'이 운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미끄러지면,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한 여간해서 멈추지 않는다. 얼음은 매우 마찰이 적어, 미끄러지기 쉬운 물질이다. 사람들은 얼음판 위가 매우 미끄럽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수수께끼가 많아서, 지금까지도 그 메커니즘에 대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얼음(ice)'은 왜 미끄러울까?

 원래 얼음은 우리가 생활하는 온도의 범위에서는 매우 잘 녹으며, 심지어 -10℃의 한겨울에도 얼음이 녹을 수 있다. 얼음이 0℃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잘 녹는 이유는 -10℃이라는 저온도 얼음에게는 '작열의 세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음의 녹는점인 0℃는 절대 온도로 273K이다. '-10℃는 절대 온도로 263K이므로, 녹는점의 약 96%에 해당하는 '고온'이다. 대략적인 비교이지만, 녹는점이 '1539℃(1809K)'인 '철(Fe)'에서 녹는점의 96%는 '약 1464℃(1737K)'가 된다.

 '도자기(ceramics)'는 점토를 작열 상태로 해서 '소결'시켜 만든 것이다. '소결(sintering)'이란 가루를 압축해 녹는점 이하의 온도로 가열했을 때, 가루가 녹으면서 서로 굳어 붙는 현상을 말한다. 단, 점토의 입자가 녹을 정도의 온도는 필요 없다. 녹는점이 되지 않아도, 오랜 시간 들이면 입자끼리 서서히 융합해 튼튼한 도자기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얼음의 입자에서도 '소결'이 일어나므로, 쌓인 눈의 입자는 어는점 이하에서도 '소결 현상'에 의해 자꾸 융합해서 커진다. 얼음에게는 한겨울의 온도도 '작열하는 상태'이므로 '소결'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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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목차

  1. 압력 융해설
  2. 응착설
  3. 마찰 융해설
  4. '얼음의 마찰 메커니즘'은 사실 보통의 물질과 같은가?
  5. '얼음의 마찰 메커니즘'은 여러 설이 뒤섞인 상황

1. 압력 융해설

 얼음 위가 미끄러운 이유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설 중에는 '압력 융해설'이 있다. 스케이트의 날로 얼음에 큰 압력이 걸리면, 그 압력에 의해 얼음이 녹고, 얼음 위에 얇은 물의 막이 생겨서 잘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물에 젖은 바닥이 미끄러운 이유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압력 융해설'은 1886년,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존 졸리(John Joly, 1857~1933)'가 주장하였다. 이것은 '얼음의 미끄러지기 쉬운 성질'에 대한 최초의 가설이었다.

1-1. 물은 압력을 가하면 '녹는점'이 내려간다.

 산에서는 밥이 설익는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고도가 높은 곳은 기압이 낮기 때문에, 물의 '끓는점'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기압이 낮은 곳에서는 '끓는점'이 내려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얼음에 압력을 걸면 '녹는점'이 내려간다. 얼음이 녹는 온도는 원래 0℃이지만, 압력을 걸면 녹는점이 내려가 어는점 이하에서도 액체의 물이 존재한다. 단, 압력에 의해 녹는점이 내려가도, 그것만으로 얼음이 녹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서 열의 유입이 있어야 비로소 얼음이 녹는다.

 압력을 걸면 녹는점이 내려가는 '얼음의 성질'은 다른 보통의 물질과 비교하면 매우 이상한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물질은 압력을 걸면 녹는점이 올라간다. 예컨대, 지구의 중심핵은 6000℃나 되는 고온인데도, 고체의 '철(Fe)'과 '니켈(Ni)'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은 압력에 의해, 철과 니켈의 녹는점이 올라가 고체가 된 것이다.

1-2. 압력을 가하면 '물'의 '녹는점'이 내려가는 이유

 다른 물질과는 다르게, 압력을 가할 때 물의 '녹는점'이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물질은 고체가 되면 부피가 줄어든다. 하지만 물을 얼리면 부피가 오히려 늘어난다. 물속에서 얼음이 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의 물질은 같은 물질의 액체 속에서 가라앉는다. 압력을 걸면 얼음이 녹는 이유를 대략 말하면, 그 압력을 약하게 하려고 얼음이 부피가 작은 액체의 물로 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압력에 의해 얼음이 녹는 성질을 이용한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소개한다. 0℃보다 약간 기온이 높은 곳에 아래의 그림과 같이 얼음을 놓고 그 위에 철사를 올려놓는다. 철사의 양 끝에는 추가 달려 있어, 무게 때문에 얼음을 누르고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 그대로 두면 철사가 얼음 안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하지만 얼음은 철사가 의해 둘로 절단나는 일은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원래 얼음의 녹는점은 0℃이지만, 철사에 의해 압력을 받는 철사 아래쪽의 얼음은 녹는점이 내려가 있다. 그러면 철사와 주위의 얼음 사이에는 녹은 물의 얇은 막이 생긴다 열은 반드시 고온 부분에서 저온 부분으로 흐르므로, 압력을 받은 철사 아래의 얼음에는 언제나 주위에서 열이 유입되어 계속 녹는다. 그리고 압력에서 해방된 철사의 위쪽에서는 물의 막이 열을 뺏기고 다시 얼어버린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철사는 아래로 계속 가라앉지만, 위에서는 얼음의 상처가 복구된다. 그 결과 철사는 얼음을 통과하지만, 얼음이 절단나지는 않는다.

얼음을 통과하는 철사 실험

1-3. '압력 융해설'은 저온에서의 미끄러짐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은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를 '압력 융해설'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압력에 의해 내려가는 녹는점의 폭은 상당히 작다. 1기압이 증가하면, 녹는점은 0.0075℃밖에 내려가지 않는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에 미치는 압력에서 생각되는 녹는점의 강하는, 0.1℃에서 몇 ℃밖에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20℃의 얼음 위에서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 따라서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를 '압력 융해설'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압력 융해설은 적어도 얼음이 미끄러운 주원인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얼음이 미끄러운 주원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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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응착설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에 대한 다른 설들을 소개하기 전에, 일반 물질의 마찰 메커니즘을 먼저 설명한다. 일반 물질의 '마찰(friction)'은 매우 복잡한 현상이지만, 그 주요 메커니즘은 '응착설'로 설명된다.

 어떤 물질의 표면이 완전히 평탄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미시의 크기로 보면, 깨끗한 책상 위의 책은 그 겉보기의 면적 전체가 실제 책상과 접해 있는 것이 아니다. 미세한 울퉁불퉁함 때문에, '실제 접촉 면적'은 '겉보기 접촉 면적'의 수백 분의 1에서 수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미시의 크기로 보면, 물체의 접촉은 마치 바늘끼리 서로 마주 보게 한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접촉 부분은 변형되고, 원자 간·분자 간의 인력 등에 의해 붙는다. 이것이 '응착'이다.

 위에 놓인 물체를 움직이려면, 이 응착 부분을 잡아떼어야 한다. 이때 작용하는 저항이 마찰력이 근원인 셈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마찰의 메커니즘을 '응착설'이라고한다. '응착설'은 영국의 물리학자 '프랭크 필립 보우덴 (Frank Philip Bowden, 1903~1963)' 등에 의해 1903년대에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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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찰 융해설

 기계 부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기름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같은 목적으로 쓰이는 물질을 '윤활제'라고 한다. '윤활제'가 물체 표면에 적절한 양이 있으면, 위의 물체는 윤활제의 얇은 막 위에 뜨게 된다. 액체의 윤활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응착 부분이 많이 있는 건조한 물체 사이보다 더 잘 미끄러진다. '윤활제'가 없는 '일반적인 건조한 물질'은 얼음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마찰이 크다. '얼음 위의 마찰'은 일반적인 물질에서 윤활제가 있는 경우와 같은 정도나 그 이하밖에 되지 않는다. '압력 융해설'에서 윤활제로서의 물을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프랭크 필립 보우덴 (Frank Philip Bowden)'도 얼음의 경우에는 '응착설'을 채용하지 않았다. 마찰에 의해 생기는 열로 얼음이 녹고, 그 물이 윤활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미끄럽다는 '마찰 융해설'을 주장한 것이다. 손바닥을 서로 비비면 열이 발생해 따스해지는데, 얼음 위를 미끄러질 때도 마찬가지로 열이 발생한다. '마찰 융해설'은 현재도 가장 널리 지지를 받고 있다.

3-1. '마찰 융해설'은 모순인가?

 어느 정도의 저온에서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물체의 속도가 매우 느린 경우, 충분한 마찰열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얼음은 충분히 녹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근년에 실험에 의해, 얼음이 녹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저속에서도 얼음 위는 충분히 미끄럽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열이 접촉면에서 외부로 달아나기 어려울수록 마찰열이 얼음을 녹이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므로 마찰은 작아질 것이다. 실제로 '마찰 융해설'을 주장한 '프랭크 필립 보우덴 (Frank Philip Bowden)'은 다양한 물질을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게 해서, 열을 전하기 어려운 물질일수록 마찰이 작아진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마찰 융해설'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근년에 다양한 물질을 사용해 실험한 결과, 열을 전하기 쉬운 물질에서 반드시 마찰이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찰이 작을수록 발생하는 열은 적어지고, 얼음은 녹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찰 융해설'에 바탕을 두고 생각하면, 마찰이 작아질수록 얼음은 잘 녹지 않게 되고, 결국 잘 미끄러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잘 미끄러지지 않게 된다.'는 말은 '마찰이 커진다'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것은 모순된 논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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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음의 마찰 메커니즘'은 사실 보통의 물질과 같은가?

4-1. 유사 액체층 윤활설

 '유사 액체층 윤활설'이라는 설도 제창되었다. '유사 액체층'이란 얼음의 표면에 존재하는 '고체와 액체의 중간 성질을 가진 층'을 말한다. 물 분자의 수십~수백 개 분의 두께의 극히 얇은 층이다. 얼음의 표면에는 열의 공급이 없어도 '유사 액체층'이 존재한다. 이것이 윤활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사 액체층'은 얇고 점성이 크므로, 물의 윤활에 비하면 월등하게 큰 마찰이 일어난다고 생각된다.

 일본 도야마 대학의 '쓰시마 가쓰토시' 박사는, 얼음의 마찰도 보통 물질과 마찬가지로 '응착설'로 설명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얼음은 압축 방향의 힘에는 비교적 단단하다. 얼음 표면의 미세한 요철을 바늘로 비교해 보자. 그러면 '얼음 바늘'은 압축 방향의 힘에는 비교적 잘 찌부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로 방향에 힘에는 '얼음 바늘'이 약하고 부러지기 쉽다. 그래서 '응착된 부분'이 벗겨지기 쉽다. 압축에는 강하지만 가로방향의 쓸림에는 약하다는 특이성 때문에, 얼음의 마찰이 적어지는 셈이다.

4-2. 얼음의 결정 구조

 '얼음의 결정 구조'를 모식적으로 그리면, '얇은 육각기둥 모양'의 층이 겹쳐 쌓인 구조이다. 모식적으로 그린 이 '얇은 육각기둥 모양'의 층에 평행한 면을 '밑면'이라고 부르고, '얇은 육각기둥 모양'의 옆면을 '기둥면'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 분자의 배열 방식에 따라 '단결정(single crystal)'과 '다결정(polycrystal)'으로 나뉜다. 물 분자의 배열 방식이 얼음 전체에서 같은 것을 '단결정'이라고 하고, 층의 겹치는 방향이 장소에 따라 각각 다른 것을 '다결정'이라고 한다. 냉동고에서 만드는 보통 얼음은 미세한 단결정이 모여서 형성된 '다결정'이다. 냉동고에서 만들어진 얼음을 물에 띄우면 줄기 같은 것이 생기는 일이 있는데, 이 줄기는 작은 결정끼리의 경계에 해당한다.

 얼음의 단결정은 층의 사이가 어긋나도록 '소성 변형'되기 쉽다. '소성 변형(plastic deformation)'이란 힘을 제거해도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변형이다. 그래서 단결정 얼음에 힘을 장시간 계속 걸면 휘어진다. 얼음이 변형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연계에도 얼음이 변형되는 사례가 있다. 바로 '빙하(Glacier)'이다. '빙하가 흐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빙하는 얼음덩어리 전체가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빙하 중앙의 흐름은 빠르고 가장자리의 흐름은 느린 등, 장소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 결국, 빙하는 마치 물엿처럼 변형되면서 천천히 흐르는 셈이다. 다만, 결정의 층끼리의 어긋남뿐만 아니라 더욱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변형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얼음의 결정 구조'를 모식적으로 표현함

4-3. 결정의 면이나 미끄러지는 방향에 따라, 마찰의 크기가 달라진다.

 '쓰시마 가쓰토시' 박사는 단결정의 얼음을 써서 마찰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결정의 면에 따라 마찰의 크기가 2배 정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방향에 따라 결정의 강도가 다른 것이 원인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같은 결정의 면이라도, 미끄러지는 방향에 따라 마찰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런데 '결정의 면이나 미끄러지는 방향에 따라 마찰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응착설'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4-4. 고속 스케이트 링크

 '쓰시마 가쓰토시' 박사는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998년 일본 간사이 전력과 공동으로 대량의 '단결정 얼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가노 현의 '스케이트 링크'에 그 단결정을 채워, 마찰이 적은 링크를 만들었다. '빙순(자연계에서도 드물게 생기는 일이 있는 죽순 모양의 단결정의 얼음)'을 사용한 '빙순 링크'이다. 마찰이 가장 작은 '밑면'이 링크의 표면에 오도록, '빙순'에서 지름 15cm 정도의 판 모양의 단결정 얼음을 잘라내 링크 전체에 깔았다. 그 결과, '빙순 링크'는 종래에 사용하던 링크보다 마찰이 22%나 줄었다고 한다. 그 결과, '빙순 링크'에서 새로운 신기록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링크 전체에서 마찰을 적게 하면 코너에서 회전하기가 어려워 잘 넘어진다는 새로운 문제도 지적되었다. 코너 부분에서 결정의 방향을 조절하면, 스케이트의 날에 의해 팬얼음이 '뱅크'를 형성하도록 하면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이상적인 링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뱅크'란 얼음이 파헤쳐져 작게 솟아오른 벽과 같은 모양을 가리키는데, 코너에서 기울어진 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5. '얼음의 마찰 메커니즘'은 여러 설이 뒤섞인 상황

 현재 '얼음의 마찰 메커니즘'은 여러 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다. 과연 '얼음의 마찰 메커니즘'은 '마찰 융해설'이 옳을까? '응착설'이 옳을까? 아니면 둘 다 아니고 다른 설이 옳을까? 아니면 다양한 메커니즘이 다양하게 얽혀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