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우주관'이라고 하고, 과거의 여러 시대에 우주를 나타낸 그림을 '우주도'라고 한다. '우주도'들은 각 시대의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인류가 우주를 보는 눈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 우주관의 변천을 따라가 보자.
0. 우주에 대한 의문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약 2300년 전의 옛날, 고대 중국 초나라에 '굴원(屈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하늘에 묻습니다'라는 긴 시는 우주의 수수께끼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아래는 당시 '굴원'의 원작 첫 부분 중, 우주에 대한 의문과 흐름이 맞는 내용 일부만을 발췌한 것이다.
태고의 처음을 누가 전해 주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늘은 아홉 겹인데 누가 그것을 설계했을까?
하늘이 도는 원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움직이지 않는 하늘의 축은 어디에 닿아 있는가?
온 하늘의 경계는 어디에 위치하며 어디에 속하는가?
.............
이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의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0-1. 목차
- 고대의 우주관
- 천동설
- 지동설의 등장
-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 새로운 은하의 발견
- 우주의 대규모 구조
- 상대성 이론에 따른 우주 모델
- 새로운 우주의 모습 - 우주도
1. 고대의 우주관
고대의 세계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Mesopotamian Civilization)'과 '이집트 문명(Egyptian Civilization)',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 '황하 문명(Yellow River Civilization)' 등의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 고대 세계의 문명들을 각자 독자적인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고대의 사람들이 우주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그림이나 문서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고대 시대에 자연은 인간의 힘을 초월한 그 무엇이었다. 고대의 사람들 중에서 특히 권력자는 자연의 법칙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알아야 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천체 관측을 통해 시각이나 계절뿐만 아니라, 바다나 초원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긴 것이 달력, 측량 기술 같은 것이었다. 이때의 우주관 역시 자연의 신비를 규명하고자 한 사람들의 관측력과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이때의 사람들은 '움직이는 별'과 '움직이지 않는 별'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왔고, 이것이 천문학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얻어온 정보는 각각의 토지 신화나 신앙과 결합하여 '점(占)', '점성술'이 되기도 했다.
과거 '바빌로니아(Babylonia)'에서 나온 '성도(지상에서 관측한 천체들의 위치를 평면인 지상에 투영시켜 그려 넣거나, 석판에 새겨 넣은 별과 별자리)'는 이집트, 그리스로 계승되어 왔다. 특히 그리스 인들은 별자리에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붙였고 지금은 '국제 천문학 연합회(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에서 '88 별자리'로 정리되어 있다.
사람들은 천체 관측을 통해 시각이나 계절뿐만 아니라, 바다나 초원에서 자신의 '방위(위치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즉 '움직이는 별'과 '움직이지 않는 별'로부터 여러가지 정보를 얻어 온 것이다.
1-1. 고대 이집트의 우주관
고대 이집트에서는 하늘과 땅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공기도 신으로 생각했다. 아래의 그림에서는 이집트 '제21왕조(기원전 1070~기원전950)' 말기 시대의 것으로, 대지의 신 '게브(Geb)'와 하늘의 신 '누트(Nut)' 사이에 하늘을 떠받치는 공기의 신 '슈(Shu)'가 중앙에 그러져 있다. 이집트 문명에서는, 우주가 이 세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2. 고대 인도의 우주관
고대 인도에서는 거대한 뱀이 우주, 무한, 영겁 회귀 등을 관장하고, 거대한 거북 위에는 코끼리가 있어 반구 모양의 대지를 떠받친다고 생각하였다. 대지의 중앙에 치솟은 것은 신들이 산다고 여겨지는 '메루 산(Mount Meru)'이다. 수미산은 힌두교 및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솟아있다고 생각되는 상상의 산이다.
수미산에 사는 신들이라는 사상은 불교에 반영되어 동양의 다른 나라들에도 전해졌다. 힌두교 신들이 산다고 전해지는 상상의 산인 메루 산을 불교에서 '수메루 산'이라는 이름으로 차용하였고, 불경이 한문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수메루 산'은 '수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래의 그림은 '브라만 교'의 승려가 그린 원화를 토대로 19세기에 독일의 판화에 채색한 것이다. '브라만 교(Brahmanism)'는 '베다 시대(Vedic Age)' 동안 인도 아대륙에서 '브라만(Brahman)'이라고 불리는 사제 계급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이다.
1-3. 불교의 우주관
아래 그림은 불교의 세계관, 우주관을 나타내는 '만다라(Mandala)'의 하나인 '태장계 만다라(胎藏界曼茶羅)'이다. '만다라'는 신성한 '단(성역)'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으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가운데에 여덟 개의 연꽃 잎이 있는 원이 있고 이 원의 중심부에 대일여래가 있으며 각 연꽃 잎에도 한 명의 부처 또는 보살이 있다.
1-4. 셀라리우스 천구도(북반구의 하늘)
아래의 그림은 네덜란드의 '라틴 어' 학교 교장이었던 '안드레아스 셀라리우스(Andreas Cellarius, 1596~1665)'가 17세기 후반에 만든 '천문도 휘장(ATLAS COELESTIS SEU HARMONIA MACROCOSMICA)' 에 실려있는 천구도 중 하나이다. 북반구남반구 하늘 한 쌍인데, '지구도' 위에 천구가 그려져 있다. 천구에는 황도 표의 '경선(원이나 구 따위에서, 중심을 지나는 직선으로 그 둘레 위의 두 점을 이은 선분 또는 그 선분의 길이')이 그려져 있으며, 지구의 경선도 그려져 있다. 게자리 옆에는 지금은 없는 '작은 게자리'가 그려져 있고 '유프라테스 강(Euphrates River)' 등이 그려져 있다. 주위에는 당시의 기구를 사용해 관측하는 사람도 그려져 있다.
2. 천동설
2-1.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천문학자로는 2세기 초 무렵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100년경~170년경)'가 꼽힌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리스 천문학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나중에 '알마게스트'라고 불리게 되는 책을 집필했다. '알마게스트(Almagest)'는 '천동설(Geocentric Theory)'의 가장 권위있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는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Epicycle)'이라는 보조적인 원궤도의 개념을 도입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원은 '도원'이라고 했다. '주전원'이란 그 중심이 도원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설정한 원이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지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주전원의 중심이다. 행성이 주전원 위를 일정한 속도로 돌면서 '주전원'의 중심도 도원의 위를 돈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양 이외의 항성에 대해서는 천구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생각에 따르면, 주전원의 회전 비율을 조정하면, 행성의 역행도 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이르러 천체의 일주 운동을 지구의 자전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생각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복잡했지만, 행성의 움직임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후 1400년에 걸쳐 인류의 우주관을 계속 지배했다.
2-2. 천동설의 약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행성의 움직임을 그런대로 잘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관측 결과에 맞추기 위해 '주전원(Epicycle)'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즉, 행성이 왜 주전원을 그리는가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고, 단지 계산상으로 만들어 낸 우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행성의 공전궤도가 엄밀하게 말하면 타원을 그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은 가장 완전한 도형이라고 생각했던 고대 그리스인이 만든 천동설에 타원 궤도가 들어설 여지는 없었다. 타원 궤도를 그리는 행성의 움직임을 원의 조합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행성 관측의 정확도가 높아질 때마다 천동설은 미세한 수정을 거쳤다. 이론과 실제의 관측 사이에 차이가 발견되면, 새로운 주전원을 차례로 보완해 나가는 방식으로 대응해나갔다. 미세한 차이를 수정하기 위해 주전원 위에 다시 작은 주전원을 덧붙이는 등, 천동설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70개 이상의 주전원이 덧붙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천동설의 약점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다. 수성과 금성이 저녁과 새벽에만 보이는 현상은 당시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천동설에서는 그 이유를 '지구의 주위를 일주하는 주기가 수성, 금성, 태양이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성과 금성은 항상 태양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태양에서 멀어질 때만 관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화성(Mars)'의 '겉보기 밝기(Apparent Brightness)'가 크게 변하는 것도 수수께끼였다. 화성은 2년 2개월 간격으로 접근해 밝게 빛난다. 밝기의 변화는 최대 40배나 된다. 하지만 화성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에서는 주전원을 도입하더라도, 이만한 겉보기 밝기의 변화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3. 지동설의 등장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Klaudios, 2세기경)'는 서기 120년 무렵에 고대인들의 천동설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가 완성한 천동설은 지구를 중심으로 설계한 가장 정밀한 우주 체계였다.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이 나올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천문학의 중심이었다.
3-1.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하지만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인간이 서있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의 성직자로, 1495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오래된 지동설을 접하고 이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하여 천문학계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것을 계기로 천문학은 종교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근대 과학이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주의 중심에 태양이 있으며,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안쪽에서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순으로 원궤도를 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에는 움직이지 않는 항성 천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는 데 주전원은 필요가 없다. 예컨대 화성의 경우라면, 지구가 화성을 안쪽에서 '앞지를' 때 역행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성과 금성이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에 보이는 것은 2개의 행성이 지구의 안쪽에 있기 때문이다. 화성의 겉보기 밝기의 변화에 대해서도, 지구가 화성을 앞지를 때 둘이 가장 접근해 밝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발표하는 데 신중했다. 당시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신이 창조한 대지가 움직인다는 주장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보다 나중에 지동설을 강경하게 부르짖은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628~1600)'은 화형에 처해졌다. 지동설을 옹호하는 책을 출판한 '갈릴레오 갈릴레오(1564~1642)'도 교회의 노여움을 사서, 종교 재판을 받고 유폐되기도 했다. 천동설이냐 지동설이냐 하는 문제는 당시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3-2.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어 1608년 네덜란드의 안경 상인인 '한스 리페르세이(Hans Lippershey, 1570~1619)'가 망원경을 발명한 이듬해인 1609년, 갈릴레이(1564~1642)는 그가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4개 (이오, 에우로페, 갈리메데, 칼리스토)'를 발견하는 등 많은 발견을 하면서 '천동설'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망원경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우주관을 가지게 되었다.
화형에 처해진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628~1600)'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기독교를 부정하게 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론상에 미비한 점도 있었다. 타원 궤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측에 결과에 오차가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주전원을 사용해 수정했던 천동설 쪽이 정확도가 높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후, 행성이 타원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발견하고,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개발해 금성이 이지러지는 것을 확인했으며,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운동의 3법칙을 마무리해 천체의 운동 법칙을 물리적으로 규명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지동설의 증거가 되었고, 증거가 쌓여 지동설은 차츰 널리 받아들여졌다.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가 핼리 혜성의 궤도를 지동설에 근거해 계산한 사실 등을 보면, 적어도 그 시대에는 지동설이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3-2-1. 케플러의 법칙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해, 아름다운 법칙성이 있음을 밝힌 사람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였다. 케플러는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 궤도에 3개의 법칙을 발견하고, 1609년에 출판한 '새로운 천문학(Astronomia nova)'에서 제1 법칙과 제2 법칙을, 1619년에 출판한 책 '세계의 조화(Harmonice Mundi)'에서 제3 법칙을 발표하였다. 케플러가 유도한 행성의 운동에 관한 이 세 가지 법칙을 '케플러의 법칙(Kepler's laws)'라고 한다.
케플러는 3개의 법칙을 발견하기 전, 1596년에 '우주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발표한 것이 아래 그림의 '태양계 형상'이다. 당시 케플러는 5개의 정다면체가 6개의 행성 궤도를 포함한 천구를 떠받친다고 생각했다. 케플러는 가장 바깥쪽에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안쪽에 있는 정육면체가 목성의 천구를 떠받치며, 그 안쪽에 있는 정사면체가 화성의 천구를 떠받치고, 그 안쪽에 있는 정십이면체가 지구를 떠받치고, 그 안쪽에 있는 정이십면체가 금성의 천구를, 그 안쪽에 있는 정팔면체가 수성의 천구를 떠받친다고 생각했다. 그림의 모형은 천구를 절반으로 잘라, 토성의 천구에서부터 지구의 천구까지 형상화하였다.
3-3. 지동설의 직접적 증거
그러면 지구가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을까? 지동설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의 대표적인 것에는 '연주 광행차'와 '연주 시차'를 들 수 있다. '연주 광행차(Annual aberration)'와 '연주 시차(Annual parallax)'는 지구의 공전 때문에 항성의 겉보기 위치가 어긋나는 현상이다. 연주 광행차, 연주 시차가 확인됨으로써,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지동설이 확고부동한 것이 되었다.
3-3-1. 연주 광행차
'연주 광행차'는 비가 내리는 각도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관찰하는 경우에 비유된다. 즉 자동차가 멈춰있을 때, 비가 수직으로 내고 있다고 해도,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비가 앞쪽에서 비스듬히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공전에 의해, 항성에서 오는 빛의 방향이 어긋나 보인다. 이처럼 별이 본래 위치보다 지구의 진행 방향으로 기울어 보이는 현상을 '연주 광행차'라고 부른다. 지구가 정지해 있다면, 바로 위에 있는 항성에서 오는 빛은 바로 위에서 온다. 하지만 지구는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빛은 미세하게 비스듬히 오는 것처럼 보인다. 공전 운동에 따라 지구의 진행 방향이 바뀌므로 계절에 따라 빛이 오는 방향이 변하게 된다. 그래서 이 현상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연주 광행차는 1728년에 처음으로 확인되었으며, 그 어긋남의 크기는 최대 약 20.5″로, 1″는 3600분의 1°를 의미한다.
3-3-2. 연주 시차
'연주 시차(Annual parallax)'란 가까운 곳에 있는 항성의 겉보기 위치 차이의 크기를 말한다. 지구가 공전함에 따라 가까운 별은 멀리 있는 별에 비해 겉보기 위치가 크게 어긋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놀이 공원에서 원운동하는 관람차를 타고 바로 앞의 경치와 먼 곳의 경치를 비교함으로써 체험할 수 있다. 먼 곳의 경치는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바로 앞의 경치는 크게 움직인다.
실제 가까운 별이라도 공전 반지름에 비해 별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기 때문에 연주 시차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4.3광년 정도 떨어져 있어,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켄타우루스자리의 프록시마 별조차 시차의 크기는 0.742″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연주 시차의 확인은 1838년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4.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4-1. '허셜'이 생각한 우주 전체의 단면도
독일 태생의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Frederic W. Herschel, 1738~1822)'은 별이 가장 많이 보이는 영역은 멀리까지 별이 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785년에 은하수가 원반 모양으로 펼쳐진 별의 집단이라는 사실을 밝혔다.'윌리엄 허셜'은 자신이 망원경을 이용해 누이 '캐럴라인 허셜'과 함께 밤하늘을 관측해 우주 전체의 단면도를 만들었다. 그때 만든 단면도가 바로 아래있는 그림이다. 허셜은 별의 수를 기준으로 은하계(우주)의 형태를 측정하였다. 그때 허셜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가정을 했다. 모든 별의 절대적인 밝기는 같다는 것, 별의 분포에 치우침은 없고 평균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것, 은하(우주)의 끝까지 볼수 있다는 것. 허셜도 이 세 가지 가정의 오류를 느끼기는 했지만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허셜을 이뿐만 아니라 항성의 천구상 운동으로부터 태양계의 공간 운동 방향을 구해, 800개의 이중성과 2500개나 되는 성운과 성단을 발견했다. 천왕성을 발견한 것도 허셜이었다.
그의 아들인 '존 허셜(John F W. Herschel, 1792~1871)'도 5073개의 성운과 성단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당시 허셜이 우주 전체라고 생각했던 우주의 단면도도 '우리 은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 새로운 은하의 발견
5-1. 천체 물리학의 시작
19세기에 들어서는 '전자기학(electromagnetics)', '열역학(Thermodynamics)' 등 물질을 세계를 규명하기 위한 물리학 수법이 계속적으로 정비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물리학을 이용하여 천체나 우주를 물리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천체물리학(Astrophysics)'의 시작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천체물리학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의 커다란 진보가 있었다.
- 사진의 발명: 하나는 사진의 발명이었다. 1850년 경에는 천체 사진으로 천체를 기록할 수 있게 되어 천문학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스케치에 의존해 오다가 더욱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어 천문 현상의 규명하고 새로운 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분광학의 발달: 또 하나의 커다란 진보는 '분광학(Spectroscopy)'의 발달이었다. 분광학이란 물질에 의한 빛의 흡수나 복사를 '분광계(Spectrometer)', '분광 광도계(Spectrophotometer)' 등을 써서 스펙트럼으로 나누어 측정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이로써 프리즘이나 회절 발 등의 분광기를 설치하여 얻는 스펙트럼을 통해 '빛에서 오는 빛에 함유된 화학 조성의 분석', '천체의 표면 온도 측정', 그리고' 천체의 운동 모습'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에 의해 '에드윈 허블(Edwin Hubble, 1889~1953)'은 1929년에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5-2. 새로운 은하가 발견되었다.
망원경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시력 또한 밝아졌다. 1920년대 초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인 안드로메다 대은하가 천문학자들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천문학계에는 '태양계를 포함한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체인지, 아니면 우리은하 외에도 다른 천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는 '우리은하가 바로 우주'라고 주장했다. 한편, '헤버 커티스(Heber Curtis)'는 '우리 은하는 광대한 우주에 있는 여러 은하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으며, 둘의 의견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논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이었다.
'에드윈 허블'은 1924년에 안드로메다 은하의 외연부를 포착한 사진에서 '세페이드형 변광성(Cepheid variables)'을 발견했다. '변광성'은 시간에 따라서 밝기가 변하는 별로, 주기적으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천체이다. 그중 '세페이드 변광성'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항성으로, 1~50일 정도의 짧은 주기로 밝은 밝기가 1등급 전후로 바뀌는 별을 말한다. 가장 밝게 보이는 것은 가장 팽창했을 때와 가장 수축했을 때의 사이에 있을 때이다. 허블은 이 성질을 이용해서 변광 주기와 별 '본래의 밝기(절대 광도)'를 추측해, 관측된 겉보기 밝기와 비교해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구했다. 그 결과,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은하 바깥의 천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우리은하'와 같은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약 1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1944년 독일의 천문학자인 '바데(Wilhelm H. W. Baade, 1893~1960)'는 변광성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는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이용한 거리 측정 방법이 정밀해져, 안드로매다 자리 대은하(M31, NGC224)까지의 거리가 '230만 광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써 많은 '성운'이 우리은하와 같은 '은하'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은하가 우주에 무수히 존재하는 은하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6. 우주의 대규모 구조
망원경을 통한 인류의 우주 관측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현재에는 우주에 관측용 위성을 띄워 대기의 영향이 없는 곳에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항성이나 행성들을 관측하고 있다. 지상에서도 여러 가지 파장의 전파로 관측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우주의 더 큰 구조가 밝혀졌다.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 밖에는 은하가 있고 그 은하는 은하군을 이루고 있으며 은하군은 은하단을 만드는 것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은하단의 분포에는 빽빽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은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부분을 '보이드(Void)'라고 하고 은하가 모인 곳을 '은하단'이라고 한다. 은하가 모여 생긴 거품 모양의 구조를 '대규모 구조'라고 한다. 이 '대규모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마거릴 겔러(Margaret J. Geller, 1947~)'였다.
인류는 우주에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는 정체불명의 물질이 많이 있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 거대한 구조는 암흑 물질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7. 상대성 이론에 따른 우주 모델
1916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반 상대성 이론(Theory of General Relativity)'이라는 중력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을 우주에 적용하게 되면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하게 된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을까? 수축하고 있을까?
7-1.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다.
1929년, 허블은 '모든 은하는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그 속도는 먼 은하일수록 큰 것처럼 보인다.'라고 쓰여 있는 논문을 하나 발표하였다. 공간이 팽창하면 관측되는 빛의 파장이 늘어난다. 이 파장의 늘어남을 천체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속도라고 생각하면 수억 광년 정도까지는 관측적으로 구할 수 있는 거리와 속도가 비례한다. 이것이 바로 '허블-르메트르 법칙'이다.
허블은 1936년에 'The Realm of the Nebulae(성운의 영역)'에는 책을 출판하였다. 아래의 그림은 'The Realm of the Nebulae'에 실려있는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와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한 결과'이다. 은하로부터 오는 빛을 분광해서, 그 안에 있는 칼슘에 의한 흡수선(암선)의 파장과 지상의 실험실에서 측정되는 본래의 칼슘의 흡수선의 파장이 어느 정도 어긋나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먼 은하일수록 흡수선의 파장의 어긋남이 컸다. 이것은 우주 공간이 팽창하고 그에 따라 은하가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파장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설명이 된다. 이와 같은 파장의 변화는, 가시광선으로 말하면 적색에 가까운 쪽의 파장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적색 이동(red shift)'이라 불린다. 이것을 측정함으로써, 그 천체가 멀어지고 있는 속도 즉, '후퇴 속도'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후퇴 속도'와 '거리'의 관계가 밝혀지면, 후퇴 속도를 구하기만 해도 천체까지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양자의 관계를 결정하는 계수를 '허블 상수(Hubble constant)'라고 하는데, 근년에는 이 수치로부터 우주의 나이를 138억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7-2. 빅뱅 이론
이 '허블-르메트르 법칙'을 적용하여 우주가 팽창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한 점'에 도달한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은 우주가 생간 최초의 순간, 최초의 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빅뱅 이론'이다. 이 법칙에 의해 인류는 '우주'가 진화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에너지의 물질의 대소에 따라 중력이 변하고 우주 팽창의 법칙이 달라진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밀도가 '임계 밀도' 보다 크면, 팽창이 언젠가 수축으로 바뀌고, 마지막에 한 점에 모이게 된다. 반대로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밀도가 '임계 밀도' 보다 작으면, 우주는 계속 팽창하게 된다. '임계밀도(Criticality Density)'란 빅뱅 우주론에서 '팽창하는 우주'와 '팽창하다가 수축으로 전환되는 우주' 사이의 밀도 경계값을 말한다.
8. 새로운 우주의 모습 - 우주도
아래 그림은 현재 인류가 우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는 최신 '우주도'이다. 왼쪽을 향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경과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 정도이다. 아래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평평한 타원은 우주의 현재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원의 중심에 우리가 있으며 우주는 약 470억 광년의 반지름으로 퍼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