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미래학 (Futurology)

기술의 7단계 생명 주기

SURPRISER - Tistory 2021. 10. 6. 03:53

 기술도 개인이나 국가처럼 흥망성쇠가 있다. 하나의 기술이 탄생하면 더 좋은 기능으로 진화하다가 절정에 이른 후 쇠퇴기를 맞이한다. 과거에 탄생하여 전성기를 누리다가 사라진 기술의 사례들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보이게 된다. 기술도 그 나름대로 '진화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이에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기술의 생명 주기를 체계화하여 다음과 같이 7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0. 목차

  1. 1단계 - 기술에 대한 발상
  2. 2단계 - 기술의 발명
  3. 3단계 - 기술의 발달
  4. 4단계 - 기술의 성숙
  5. 5단계 -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실패
  6. 6단계 - 새로운 기술의 승리
  7. 7단계 - 새로운 기술의 지배
  8. 사례

1. 1단계 - 기술에 대한 발상

 발상 혹은 전조 단계에서는 기술의 전제 조건들이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서 이를 연결하거나 묶어서 새로운 기술을 상상하곤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창조의 본질이 '연결'이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이질적인 것들에서 동질적인 요소를 찾아 하나로 묶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발상 단계를 두고 발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설득력 있는 비행기와 자동차를 그려놓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비행기나 자동차의 발명가는 아니다. 또 우리는 설득력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Space Elevator)'나 '나노봇(Nanobot)', 항성계를 통째로 옮기는 거대 구조물인 '스텔라 엔진(Stellar Engine)'을 구상하거나 설계해 놓았지만 이를 발명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스텔라 엔진(Stellar Engine)

2. 2단계 - 기술의 발명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명의 단계이다. 이 발명의 단계에서는 발상 단계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체화한다. 이 과정은 매우 짧을 수 있지만, 상당히 큰 고통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우리 문화는 이 과정을 격찬하곤 한다. 발명가는 호기심과 과학적 재주와 결단력의 일정 정도의 쇼맨십을 혼합해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기술에 활기를 부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발명의 단계는 대부분 상업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단계에서는 제품의 가치가 워낙 높아서 관련 기술을 보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수천 년 전 종이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이집트에서는 두루마리 종이 한 묶음을 운반할 때에도 한 무리의 성직자들이 따라가며 주변을 경계했고, 중국의 종이 제작자들은 삼엄한 경비 속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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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단계 - 기술의 발달

 기술의 발달 단계에서는 맹목적인 후견인들이 발명을 보호하고 지원해 주는 현상이 나타난다. 발명의 단계보다 더 어려울 때도 많으며, 기존의 발명에 새로운 창작이 부여되기도 한다. 이때 기술은 상업성과 대중성을 갖추게 된다. 최초의 발명보다 중요한 창작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종이는 1450년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8년경~1468년)'의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책'이라는 것이 등장하여 종이 수백 개에 적어야 할 다량의 지식을 한 개인이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유통되는 책은 기껏해야 3만 권에 불과했으나 1500년에는 그 300배인 900만 권까지 늘어났다. 이로써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장품'이 되었고, 지식에 눈뜬 일반인이 많아지면서 유럽 전체가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찬란한 부흥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번에는 다른 예로 자동차를 살펴보자. '핸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이전에도 말이 끌지 않아도 되는 탈것을 수공으로 만들어낸 장인들은 이미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의 정착과 확산에는 헨리포드가 발명한 대량 생산 체계가 결정적이었다. '헨리 포드(Henry Ford)'는 자동차 생산 공정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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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단계 - 기술의 성숙

 기술이 발전을 멈추지 않고 진화하게 되면 이 단계에 오게 되는데, 이때의 기술은 독자적인 생명력과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른 기술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며 이 기술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어진다. 여러분들이 지금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제 모든 개인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른다고 반드시 개인이 기술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기차는 1800년대 초에 증기 엔진이 발명되면서, 수백 명의 승객들이 하나의 증기기관차를 타고 다녔다. 그 후 1900년대에 개인용 기관차라 할 수 있는 자동차가 발명되었으나, 기관차를 개인적으로 수십 대씩 소유하는 사람들은 없다.

4-1. 종이

 이해를 위해 종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1930년대가 되자 종이 한 장의 가격은 푼돈 수준으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집 안에 수백 권의 책으로 개인 도서관을 꾸며놓기도 했다. 대량생산된 종이는 한 번에 몇 톤씩 팔려나갔다. 종이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지만 너무나 흔했기 때문에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종이는 종이에 온갖 색상과 무늬를 첨가하여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가하면, 종이는 가장 쉽게 버려지는 물건이 되어 도시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탄생 초기에는 가장 값진 보물이었던 것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낭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4-2. 물

 물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고대 시대에 물은 너무나 값진 재산이어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수천 년을 지내오다가 1900년대에 개인용 펌프가 발명되면서 서서히 2단계로 접어들었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중산층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졌다. 지금은 공원에 가면 각양각색들의 분수들이 현란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데, 이것은 물이 더 이상 귀중품도 고가품도 아님을 의미한다.

4-3. 전기

 전기도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다.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와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등 여러 공학자와 발명가들의 노력에 의해 대부분의 소규모 공장들은 전구 하나로 조명을 대신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개인용 전구와 모터가 사용화되었으며, 곳곳에 대형 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싼값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기가 세상 곳곳에 보급되고 있지만, 우리는 전기를 사용하면서 그 존재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전기가 그만큼 흔해져서 당연해쪘고,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들이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전기는 너무 흔해져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브로드웨이나 라스베이거스 등 도시를 장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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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단계 -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실패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기존의 기술을 압도하겠다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이 단계를 ‘가짜 사칭자의 단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술이 눈에 띄는 장점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 가격이나 기능, 품질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업가들은 이때 창업을 하여 실패를 하기도 하고 투자자들은 섣불리 투자했다가 큰 자금을 잃기도 한다. 투자가 과열되어 '닷컴 버블(Dot-com Bubble)'이나 2018년 한국 코스닥의 '바이오 버블'처럼 과열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산업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항상 이러한 거품이 동반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시장에 많은 유동성이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 초기에 등장한 기업 중에서 살아남고 오랜 기간 두각을 보이는 기업은 전무하거나 소수일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업가나 투자자들은 ‘가짜 사칭자의 단계’에 속하는 기술들을 걸러낼 줄 알아야 한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의 전자책들은 종이책의 핵심적 속성 중 한 가지를 갖추지 못했었다. 종이와 잉크가 구현하는 시각적 특성이 그것이었는데, 이러한 단점 때문에 인쇄된 책보다 스크린을 읽는 것이 더 불편했었다. 이처럼 이때의 새로운 기술은 무언가를 충족하지 못해, 기존의 기술을 밀어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기술 보수주의자들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기술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경험에서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낸 것이다.

닷컴 버블

6. 6단계 - 새로운 기술의 승리

 여섯 번째 단계에서 기존의 기술은 새로운 기술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기술이 개선되거나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기존의 기술을 밀어낸다. 기존의 기술은 쇠퇴하게 되고, 기술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더 잘 수행하는 새로운 기술이 자리하게 된다.

 과거 사람들은 전기차에 대해 골프장 자동차처럼 작고 느리다는 편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테슬라(Tesla)'는 이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고급 스포츠카 모델부터 공략하는 전략을 세웠다. 고급 스포츠카 모델부터 공량한 또 다른 이유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테슬라는 기존 내연 기관의 차들을 밀어내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데 성공하였다. 즉,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완전히 성공한 것이다.

7. 7단계 - 새로운 기술의 지배

 기술의 생명 주기에서 약 5~10%를 차지하는 이 단계에서는 기존의 기술이 결국 지난 시절의 유물이 된다. 삐삐, '팩스(Fax)', '하프시코드(Harpsichord)', 비닐 레코드, 수동 타자기, 전자수첩, PMP 등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구시대의 유물이 된 기술은 아무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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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례

8-1. 레코드판

  1. 1단계(기술에 대한 발상): '축음기(Gramophone)'는 원통형 레코드 또는 원판형 레코드에 녹음한 음을 재생하는 장치이다. '축음기(Gramophone)'는 원통형 레코드 또는 원판형 레코드에 녹음한 음을 재생하는 장치이다. 19세기 중반에는 '축음기'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가령 '레옹 스코트 드 마르탱빌'의 음의 진동 패턴을 인쇄형태로 기록하는 장치인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녹음기라 할 수 있다.
  2. 2단계(기술의 발명): 하지만 1877년에 모든 요소들을 종합하여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최초의 기기를 발명한 사람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이었다.
  3. 3단계(기술의 발달): 축음기가 상업적으로 활용되기까지는 많은 개량이 필요했다.
  4. 4단계(기술의 성숙): 축음기는 1949년 '컬럼비아'사가 33rpm의 LP판을 내놓고고, 'RCA 빅터'사가 45rpm 디스크를 발표했을 때 완전히 성숙한 기술이 되었다.
  5. 5단계(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실패): 가짜 사칭자는 1960년대에 소개되고 1970년대에 대중화된 카세트 테이프였다. 초기의 카세프테이프 지지자들은 크기가 작고 여러번 녹음할 수 있는 카세트 테이프가 상대적으로 덩치카 크고 긁히기 쉬운 레코드판을 쇠퇴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뚜렷한 장점이 있지만, 카세트테이프는 임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형체가 뒤틀리기 쉽고, 음질이 뛰어나지 않다.
  6. 6단계(새로운 기술의 승리): 진정 LP를 대체한 것은 '콤팩트디스크(CD)'였다. CD가 임의 접근과 인간 청각의 한계에 가까운 음질을 제공하자, 레코드판은 급격히 세퇴하기 시작했다.
  7. 7단계(새로운 기술의 지배): 레코드판은 여전히 생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에디슨이 과거에 만들었던 이 기술은 이제 낡은 유물이 되었다.

축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