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미래학 (Futurology)

인공 기억(Artificial Memory)

SURPRISER - Tistory 2021. 10. 3. 06:53

 1999년에 개봉되어 숱한 화제를 낳았던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 주인공 '네오(Neo)'는 오직 기계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전락한 인류를 구한다. 네오는 가짜 기억으로 형성된 '매트릭스(Matrix)'를 파괴하고 인류에게 진정한 삶을 되돌려주었다. 매트릭스의 수호자인 '센티널(Sentinel)'이 '네오'를 구석에 몰아넣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네오는 현란한 무술을 구사하며 위기에서 탈출한다. 그전에 네오는 목뒤에 있는 플러그에 전선을 연결하여 다양한 무술을 다운로드했기 때문에, 실제로 훈련한 적이 없었음에도 고수처럼 싸울 수 있었다. 또 네오의 파트너인 트리니티는 헬기 조종법을 다운로드해,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헬기를 타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처럼 미래에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 뒤 뇌에 기억을 '다운로드(Download)'하여, 각 개인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뇌에 주입된 기억이 가짜라면 어떨까? 영화 '토탈리콜(Total Recall)'에서 주인공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는 머릿속에 가짜 기억을 주입한 뒤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다. 그는 화성에서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워 승리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그 악당들의 우두머리였음을 알게 된 후 커다란 충격에 빠진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준법정신 강했던 샐러리맨의 삶은 인공적으로 주입된 가짜 기억이었던 것이다. 기억이 가짜면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면서 수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것이다.

0. 목차

  1. 기억과 해마
  2. 기억의 구조
  3. 인공 기억 주입하기
  4. 인공 두뇌 만들기
  5. 기억 지우기
  6. 기억 지우기를 허용해야 하는가?

영화 '매트릭스(Matrix)'

1. 기억과 해마

 '구스타프 몰레이슨(Henry Gustav Molaison, 흔히 HM이라는 약자로 알려져 있음)'은 기억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게 해준 간질병 환자였다. 과학자들은 HM의 사례에서 '해마(Hippocampus)'와 '기억(Memory)'의 상관관계를 알게 되었으며,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신경과학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HM은 9살 때 자전거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간간이 경련 증세를 보이다가, 25살 때인 1953년에 수술을 받고 증세가 완화되었다. 수술 도중 의사의 실수로 해마 일부가 제거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HM에게 새로운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억을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바로 몇 분 전에 만나서 인사를 나눔 사람과 다시 마주칠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똑같은 인사말을 건넸다. 새로 입력된 기억을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게 된 것이다. HM은 아무 기억 없이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남은 삶을 살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HM의 장기기억력은 거의 정상이어서, 수술받기 전까지 겪었던 자기 삶은 모두 기억했다는 점이다.

 장기 기억력과 단기 기억력이 모두 정상인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매일같이 끔찍한 경험에 시달린다. 예컨대 HM은 거울을 볼 때마다 항상 똑같은 상황을 겪어야 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수술받기 전인 25살 때의 얼굴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울을 보고 놀랐던 기억조차 금방 사라지는 탓에,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항상 똑같은 상황을 겪어야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HM은 방금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2단계 의식(포유류와 비슷한 수준)'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해마의 기능을 상실해 '3단계 의식'에서 '2단계 의식'으로 떨어진 것이다.

구스타프 몰레이슨(Henry Gustav Molaison)

2. 기억의 구조

 1990년대 이후 '두뇌 스캐너(Brain Scanner)' 등의 관련 장비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인간의 뇌에 기억이 저장되고 복구되는 과정이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2-1. 감각정보는 '뇌간'을 통해 중계소 역할을 하는 '시상'으로 전달된다.

 우선 '감각정보(시각, 촉각, 미각 등)'는 '뇌간(Brainstem)'을 통해 '시상(Thalamus)'으로 전달된다. '시상'은 일종의 중계소로서, 다양한 감각정보를 분류하여 뇌의 각 부위에 전송하고, 여기서 처리된 정보는 '전두엽(Frontal Lobe)'에 있는 '전전두피질(PFC: Preforontal Cortex)'을 거쳐 의식으로 들어가 '단기기억'으로 저장되는데, 이 과정은 몇 초에서 몇 분쯤 소요된다.

2-2. 장기기억은 해마에서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리되어 분산 저장된다.

 그런데 이 기억이 오랫동안 유지되려면, 즉 '장기기억'으로 저장되려면 우선 '해마(Hippocampus)'에서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해마는 녹음테이프나 하드 드라이브처럼 모든 기억을 한 영역에 저장하지 않고, 기억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다양한 피질에 전송한다. 이렇게 하면 기억을 한 곳에 차례로 쌓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만약 인간의 기억이 메모리처럼 순차적으로 저장된다면, 기억해야 할 양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미래에는 컴퓨터도 인간의 뇌를 흉내 내서 '순차적 저장' 방식 대신 '분할 저장' 방식을 채택할 것임)

 예컨대 감정과 관련된 기억은 '편도체(Amygdala)'에 저장되고, 새로운 단어는 '측두엽(Temporal Lobe)'에 저장되고, 시각 및 색상과 관련된 기억은 '후두엽'에 저장되고, 촉각이나 움직임은 '두정엽(Parietal Lobe)'에 저장된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과일, 채소, 식물, 동물, 신체 부위, 색상, 숫자, 글자, 명사, 동사, 이름, 표정, 다양한 감저, 소리가 저장되는 두뇌 부위를 20곳까지 발견했다. 예컨대 '공원산책'처럼 하나의 단순한 기억도 여러 항목으로 쪼개져서 뇌의 다양한 부위에 분할 저장된다.

2-3. 기억을 떠올릴 때는 수많은 기억 조각들이 합쳐져야 한다.

 반대로 단순한 기억을 떠올릴 때도 수많은 기억 조각들이 합쳐져야 한다. 기억을 연구하는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최종목적은 분산 저장된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하나의 기억으로 재현되는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결합 문제(Binding Problem)'이라고 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기억과 관련된 난해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 다마시오(Antonio Damasio)' 박사는 특정 부류의 기억만 떠올리지 못하는 환자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뇌의 해당 부위가 손상되었음을 알아냈다.

 '기억'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그 형성 과정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는 기억의 분류 항목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와인 감별사의 기억 항목은 다양한 맛을 구별하는 쪽에 집중되어 있고, 물리학자는 방정식의 해법에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기억이 동일한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EEG 스캔으로 얻은 데이터에 의하면, 사람의 뇌에는 1초당 약 40회의 진동수를 가진 진동수를 가진 전자기파가 분포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서 결합 문제를 찾고 있다. 기억의 한 단편이 이 진동수로 진동하면서 뇌의 다른 부위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여러 기억이 위치상 가까운 곳에 저장된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이론에 의하면 기억은 공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동일한 진동수로 진동하면서 시간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이론이 맞는다면, 진동하는 전자기파가 뇌 속을 끊임없이 흐르면서, 각기 다른 부위에 저장된 기억의 단편들을 통합하여 전체적인 기억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 사이에 흐르는 정보는 두뇌의 각기 다른 부위에서 '공명(Resonance)'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2-4. 감각 정보에서 장기 기억까지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보면 머리 뒤에 전극을 곶고 '가짜 기억'을 직접 업로드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눈, 귀, 피부 등에서 들어와 척수, 뇌간, 시상을 통해 뇌에 전달된 '아직 처리되지 않은 데이터'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작업은 해마에서 이미 처리된 정보를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척수'와 '뇌간'을 통해 들어오는 '처리되지 않은 데이터'가 어느 정도 양인지 이해하기 위해 '눈(eye)'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기억은 시각과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우리 눈의 망막에는 대략 1조 3천억 개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은 임의의 한순간에 무려 1조 비트에 달하는 정보를 처리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시신경을 거쳐 시상으로 1초당 900만 비트씩 전송된다. 여기서 다시 뇌 뒤쪽의 '후두엽'으로 보내지면, 그곳에 있는 시각피질이 모든 데이터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시각피질은 V1부터 V8까지 여덟 부위로 나뉘는데, 각 부위는 고유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V1 부위가 스크린과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다. '안와중심(망막의 중심부에 초점이 맺히는 부분)'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만 빼면, 이 영상은 실제와 매우 비슷하다. 다만 영상의 중심부가 크게 확대되어 있을 뿐이다.

  1. V1: V1에 있는 뉴런들은 실제 영상과 거의 똑같은 영상을 만들어 낸다.
  2. V2: V2에 있는 뉴런들은 양쪽 눈에 온 영상을 비교해 '입체 시각(Stereo vision)'이 생겨 '입체성'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3. V3: V3에 있는 뉴런들은 그림자를 비롯한 다른 정보로부터 물체까지의 '거리'를 판단한다.
  4. V4: V4에 있는 뉴런들은 사물의 색을 판단한다.
  5. V5: V5에 있는 뉴런들은 직선 운동, 나선 운동, 팽창 등 사물의 다양한 운동 상태를 파악한다.

 시각피질에 도달한 정보가 전전두피질로 전송되면,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보게 되고, 이로부터 단기기억이 형성된다. 그 후 이 정보는 '해마'로 전송되어 약 24시간 동안 저장되는데, 바로 여기서 기억이 잘게 분할되어 다양한 피질로 흩어진다.

 보는 것은 너무 쉽다. 다른 노력은 전혀 필요 없고, 그냥 눈만 뜨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무엇을 보고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십억 개의 뉴런이 활성화되고, 1초당 수백만 '비트(bit)'의 정보가 전송된다. 게다가 우리는 평소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있으므로, 전체 정보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해마는 이 모든 정보를 처리하여 간단한 영상 기억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기술로는 가장 뛰어난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사람의 뇌에 인공 해마를 이식하여 기억을 주입하려면 수십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2-5.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서 장기기억이 필요했다.

 시각의 기억만을 만드는 데에도 이토록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장기기억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한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인간은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동물의 행동을 지배하는 본능은 '장기기억'과 거의 무관하다. '기억의 목적이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라면, 인간이 장기기억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장기기억은 미래의 시나리오들을 유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두뇌 스캔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보면, '기억을 떠올리는 데 쓰이는 부위'와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거의 같다. 특히 미래의 일을 계획하거나 과거를 기억할 때에는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과 '해마'를 연결하는 부위가 눈에 띄게 활성화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미래에 투영한다. 이 부분을 잘 분석하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이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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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공 기억 주입하기

 현재 뇌과학은 이미 '인공 해마(Artificial Hippocampus)'를 쥐의 뇌에 삽입하는 수준까지 발전되어 있다. 2011년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Wake Forest University)'의 과학자들은 쥐의 기억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컴퓨터에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인간의 뇌에 기억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함이 입증되었다. 언뜻 생각하면 기억은 다양한 감각적 경험의 산물인데다가, 뇌의 다양한 부위에 분산 저장되기 때문에, '기억 다운로드'는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HM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뇌에는 모든 기억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장소가 있다. 바로 장기기억이 형성되는 '해마'이다. '해마'에서 기억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다면 다른 부위에서도 풀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쥐가 원래의 해마와 인공 해마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는 쥐의 능력이 강화되었다. '인코딩(Encoding)' 과정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조작할 수 있는 인공 신경기관이 인지 기억 과정을 복원할 뿐 아니라, 강화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3-1. 기억 주입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의 과학자들은 쥐의 두뇌 스캔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해마 부위에서 'CA1'과 'CA3'이라 뉴런을 발견했다. 이 뉴런들은 쥐가 새로운 행동을 배울 때마다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한다. 과학자들은 우리 안에 차례로 눌러야 물이 나오도록 두 개의 막대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쥐의 뇌파를 관찰했는데, 처음에는 CA1과 CA3에서 발생한 신호가 뚜렷한 패턴을 보이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수백만 개의 신호를 끈질기게 분석한 끝에 전기적 입력과 출력의 상관관계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들은 쥐의 해마에 탐침을 삽입하여, 두 개의 막대를 차례로 누를 때 CA1과 CA3 사이에 교환되는 신호를 체계적으로 분류해냈다.

 그 후 쥐에게 '습득된 행동을 잊게 하는 특수 화학물질'을 주입했더니, 쥐는 막대 누르는 순서를 잊고 우왕자왕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쥐에게 유실된 기억을 주입하자 이전처럼 정확한 순서로 막대를 눌러 물을 받아먹었다.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 해마에 다운로드하여, 기억을 되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기억을 인공적으로 주입하여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가능함이 확인되었다.

3-2. 가짜 기억 주입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2013년에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쥐에게 '일상적인 기억'뿐만 아니라 '가짜 기억'까지 주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MIT의 과학자들은 특정 뉴런에 빛을 쪼여서 활성화하는 '광유전학(Optogenetics)'를 이용하여 특정 기억에 관여하는 뉴런을 찾아냈다. 쥐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어떤 충격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고통을 관장하는 뉴런이 활성화되면서 해마의 분석을 거쳐 하나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그 후 같은 쥐를 아무런 해가 없는 다른 방에 집어넣고, 광유전학으로 그 뉴런을 활성화시키면, 쥐는 충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공포 반응을 보인다. 두 번째 방에는 고통을 가할 만한 요인이 전혀 없는데도, 처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까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교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같은 콘텐츠를 즐길 때도 시청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모두 충족하며 실감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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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공 두뇌 만들기

4-1. '인공 해마' 만들기

 2013년 MIT에서 쥐에게 기억을 주입하는 실험을 할 당시, 인공 해마는 한 번에 하나의 기억밖에 주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MIT의 과학자들은 좀 더 복잡한 인공 해마를 개발하여 다양한 기억을 여러 동물에 주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일단은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이들은 머리에 주렁주렁 달린 전선을 초소형 라디오로 대치하여 기억을 무선으로 다운로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들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환자에게 인공 기억을 주입하고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는 인간의 기억 처리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이 기술이 완성되면 '해마의 기능장애로 발생하는 질병(뇌졸중, 치매, 알츠하이머 등)'들을 치료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영장류와 인간의 해마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크고 복잡해서 그만큼 분석하기가 어렵다. 사람에게 기억을 '업로드(Upload)'하려면 한참은 더 걸리겠지만, '인공 기억' 주입 연구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해마를 연구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해마의 신경지도 작성: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해마의 신경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즉, 해마의 다양한 부위에 흐르는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마의 여러 부위에 전극을 설치하고, 뇌의 다른 영역과 주고받는 신호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해마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해마는 CA1에서 CA4까지 총 4개의 구획으로 나뉘는데, 과학자들은 각 구획에서 교환되는 정보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우선 사람들을 고용하여 예컨대 호화 여행이나 모의 전투 등 다양한 상황을 겪게 한다. 이들의 머리에는 전극이 부착되어 있으므로, 모든 기억이 컴퓨터에 저장될 것이다. 행동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면, 전극은 초소형이어야 하고, 데이터전송은 무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기억 사전 만들기: 그다음에 할 일은 특정 행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신호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무선으로 컴퓨터에 전송하여 상황별로 분류하면 방대한 '기억 사전'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고리 넘기'를 할 때 해마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세밀하게 분석하면, 이를 토대로 '정보'와 '기억'을 연결하는 '기억 사전(Memory Dictionary)'을 만들 수 있다.
  3. 가짜 기억 업로드: 그다음에는 기억을 저장한 후, 다른 피험자의 해마에 전기 신호를 전송하여 가짜 기억을 '업로드(Upload)'하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지원자에게 이전과 비슷한 전극을 해마에 부착하고 그가 원하는 기억을 주입하면, 실제로 경험한 기억을 획득하게 된다. 여기까지 성공하면 예컨대 고리를 뛰어넘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고리를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피험자에게 기억을 업로드하면 '고리 넘기'뿐만 아니라, 사전에 등록된 모든 행동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전쟁이나 스포츠와 같은 육체적 경험을 주입하려면 '정신적 기억' 뿐만 아니라 '근육 기억(Muscle Memory)'도 함께 주입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한쪽 발을 다른 발 앞에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 보행은 오래전부터 수없이 반복해온 행동이어서 거의 천성으로 굳어져 있다. 다시 말해, 걸어갈 때 다리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신호는 해마뿐만 아니라 '운동피질', '소뇌', '기저핵(Basal ganglia)'에서도 생성된다. 따라서 운동과 관련한 기억을 완전하게 주입하려면, 뇌의 다른 부위에 부분적으로 저장된 기억까지 되살려야 한다.

4-2. '인공 피질' 만들기

 쥐의 인공 해마를 제작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Wake Forest University)'의 '침례 의료센터(Wake Forest Baptist Medical Center)'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과학자들은 2012년에 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영장류의 '두뇌 피질'에서 진행되는 복잡한 사고과정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붉은털원숭이 5마리를 골라 두뇌 피질의 두 층에 초소형 전극을 삽입하고, 원숭이들이 특정 작업을 수행할 때 두 층 사이에 오가는 신호를 기록했다. 이 실험은 원숭이한테 특정한 그림을 보여준 후, 여러 개의 그림 속에서 전에 봤던 그림을 찾아내면 상을 주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비슷한 훈련을 받은 원숭이의 성공률은 약 75%였다. 그런데 원숭이가 고르기 작업을 수행할 때, 동일 과정에서 이미 저장해 둔 신호를 두뇌 피질에 주입하면 성공률이 10%까지 증가했다. 특별히 제작된 화학약품을 원숭이에게 주입하면 성공률이 20%쯤 감소하는데, 이 경우에도 두뇌 피질에 신호를 전송하면 평균을 웃도는 성공률을 기록했다. 물론 실험에 참여한 원숭이의 개체 수가 적고, 성공률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뇌 피질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 발생하는 신호를 포착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연구는 쥐가 아닌 영장류를 대상으로 했고, 해마가 아닌 두뇌 피질을 다뤘으므로, 대상을 사람을 바꿨을 때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 피질'을 이용하여 뇌의 손상된 부위를 우회하는 출력 패턴을 만들어서 다른 식의 연결이 가능해지면, 신피질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목발'이 '다친 다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인공 피질'이 '손상된 대뇌 피질'을 대신하는 것이다.

4-3. '인공 소뇌' 만들기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 대학교(TelAviv University)'의 과학자들은 이미 쥐의 '소뇌(Cerebellum)'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파충류에게 소뇌는 균형감각을 비롯한 기본 신체기능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위이다.

 일반적으로 쥐의 얼굴에 짧은 바람을 쏘면 눈을 깜빡인다. 이럴 때 소리를 같이 들려주면 나중에는 소리만 들어도 눈을 깜빡인다. 이스라엘 과학자들의 목적은 이런 행동을 똑같이 재현하는 '인공 소뇌'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이들은 쥐의 얼굴에 바람을 쏘이면서 동시에 특정한 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뇌간(Brain stem)'으로 전달되는 신호를 기록했다. 이 신호는 뇌의 다른 부위에서 처리된 후 다시 뇌간으로 되돌아온다. 실험 결과, 쥐들은 예상했던 대로 신호를 받을 때마다 눈을 깜박였다. 이것은 인공 소뇌가 제대로 작동한 최초의 실험이자, 뇌의 한 부분에서 신호를 받아 처리한 후 다른 부분으로 업로드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4-4. 결국에는 뇌의 모든 부위가 인공 장비로 대치될 것이다.

 뇌의 인공 대체물에 관한 연구는 하루게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 해마'와 '인공 피질'은 첫 번째 단계일 뿐이고, 결국에는 뇌의 모든 부위가 인공 장비로 대치될 것이다. 다른 부위는 모르겠지만, '인공 해마'와 '인공 피질'은 이번 21세기 안에 확실히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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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억 지우기

5-1.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기억 상실증(Amnesia)'에는 기본적으로 '단기 기억상실'과 '장기 기억상실'이 있다.

  1. 역행성 기억상실증(Retrograde Amnesia): '역행성 기억상실증'은 뇌에 충격이 가해지거나 외상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증세로서, 충격을 받은 그 순간부터 깨어날 때까지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장기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지만, '해마'가 멀쩡하므로 깨어난 후부터 겪은 일은 정상적으로 기억한다.
  2. 순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 '순행성 기억상실증'은 단기기억력이 손상된 경우로, 충격을 받은 후부터 새로운 기억을 장시간 저장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해마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기억상실증으로,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계속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이 사라진 시간대가 충격을 받거나 병에 걸린 후라는 점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특정 기억만 삭제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 뇌에서 기억은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어 두뇌에 여러 분위에 분할 저장되기 때문에, 특정 기억만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5-2. '프로프라놀롤'이 끔찍한 기억을 지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와는 별개로 외상 후 충격에 오랫동안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약을 개발하고 있다. 2009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메렐 킨트(Merel Kindt)' 박사와 그의 연구팀은 예전부터 사용해왔던 '프로프라놀롤(Propanolol)'이 외상성 충격에 의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기적의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프로프라놀롤'은 교감신경 억제제 중 하나로 '고혈압', '협심증', '부정맥'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약은 특정 시간대의 기억상실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약 3일 동안 경미한 교통을 유발한다고 발표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의학계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각종 매스컴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앓는 수천 명들의 환자에게 희망이 생겼다고 '메렐 킨트' 박사의 연구를 앞다퉈 보도했다. '참전했던 군인들', '성적 학대의 피해자들', '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이 보도를 접하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언뜻 보면, '메렐 킨트(Merel Kindt)'' 박사의 연구는 기존 연구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장기기억은 전기적 신호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 분자의 수준에서 기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체적인 기억을 떠올리려면 여러 곳에 흩어진 기억의 단편들을 모아서 재조합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단백질 분자 구조가 어떻게든 재배열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 자체가 기억을 변형시킨다는 이야기이다. 기억을 지우는 약이 가능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외상을 입은 후 끔찍한 기억이 형성되는 것은 주로 '아드레날린(Adrenaline)' 때문인데, '프로프라놀롤'은 '아드레날린'의 흡수를 방해하여 나쁜 기억의 형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프로프라놀롤은 기억과 관련한 신경세포에 자리 잡고 있다가 아드레날린의 침투를 방해한다. 그러면 아드레날린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없으면 기억도 희미해진다. '메렐 킨트' 박사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환자들에게 이 약을 처방하여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5-3. 고통 없이 기억을 지우는 약

 2008년에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도중 육체적 고통 없이 기억을 지우는 약을 개발했다. '조지아 의과대학'의 '조 첸(Joe Tsien)' 박사와 '상하이 대학교(Shanghai University)'의 동료들은 'CaMKII(CaM kinase II)'라는 단백질을 사용하여, 쥐의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또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SUNY 다운 스테이트 메디컬 센터(SUNY Downstate Medical Center)'의 과학자들은 PKMzeta를 이용하여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SUNY의 연구원인 '안드레 펜슨(Andre Fen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연구가 성공하면 PKMzeta는 효과적인 기억 제거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 약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울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불안감'과 '우울증', '공포증',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각종 중독'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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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억 지우기를 허용해야 하는가?

6-1. 기억 지우기를 반대하는 사람들

 하지만 '기억을 지우는 약'은 윤리적인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일부 윤리학자들은 약의 효능을 인정하면서도, 기억을 인위적으로 지운다는 발상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기억이 존재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불쾌한 기억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므로, 지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미국 백악관 생명윤리 자문 위원회(President' Council on Biothics)'에서는 기억을 지우는 약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나쁜 기억을 골라서 지운다면 인간의 삶이 지나치게 편리해져서, 고통을 겪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또는 잔인한 행동을 할 때 무감각해질 수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슬픔에 무감각하면서 가장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겠는가?

 '스탠퍼드 대학교 부설 생명의료윤리센터(Stanford University's Center for Biomedical Ethics)'의 '데이비드 마구스(David Magus)'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는 고통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그 고통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 고통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6-2. '기억 지우기'를 지지하는 사람들

 한편, 하버드 대학교의 '로저 피트만(Roger Pitman)' 박사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기억 지우기'를 지지하였다. "모든 의사는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을 경감하면 감정까지 무뎌지는 이유로 진통제 처방을 금지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진통제 사용을 반대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지 않았는가? 정신의학이라고 해서 다를 게 무엇인가? 반대론자들이 펼치는 논리 저변에는 정신적 장애가 육체적 장애와 다르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