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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과학(Science)/물리학 (Physics) 2021. 8. 15. 15:59
이 세계는 정말 3차원일까?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3차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국 수많은 화소로 채워져 있는 평면인 '2차원'이다. 즉, TV는 2차원 평면에 색을 칠해 3차원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상은 3차원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실제 차원의 수는 다를지도 모른다.
0. 목차
- 홀로그래피 원리
- 홀로그램과 홀로그래피
- 중력은 허상인가?
- 홀로그래피 원리의 탄생
- 홀로그래피 원리 세계관
홀로그램(hologram) 1. 홀로그래피 원리
시공은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무대이다. 예컨대, 공간이 3차원이라면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약해질 테지만, 공간이 2차원이라면 중력은 거리에 반비례할 것이고, 공간이 4차원이라면 중력은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할 것이다. 이처럼 시공의 차원이 달라지면, 일반적으로는 물리 법칙도 달라지고 그 무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의 결과도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는 다른 무대, 즉 다른 차원을 가진 2개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같다고 간주되는 원리이다. 예컨대, 공간이 특수하게 휘어진 세계에서는, 그곳에서 생긴 중력에 관한 현상이 다른 세계의 소립자끼리 반응하는 현상과 이론상 '같다'고 간주된다. (이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함) 그 결과, 이 세계는 '홀로그래피(Holography)'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반응형2. 홀로그램과 홀로그래피
'홀로그램(Hologram)'이란, 2차원 평면에 빛을 비출 때, 3차원의 입체적인 영상을 재생하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홀로그램'과 '홀로그래피 원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실 '홀로그램'과 '홀로그래피 원리'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홀로그래피 원리'는 '차원이 낮은 것에서 차원이 높은 것을 재현한다'는 발상과 매우 비슷하다. '홀로그래피 이론'을 고안한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Gerardus 't Hooft, 1946~)' 박사 등은 이 유사성 때문에 '홀로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반응형3. 중력은 허상인가?
홀로그래피 원리에 따르면, 중력에 관한 3차원 세계의 이론을, 중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2차원 세계의 이론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한다. 차원이 다른 각각의 이론으로 계산된 결과는 얼핏 생각하면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홀로그래피 원리에서는, 예컨대 물체의 낙하와 같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 3차원 세계의 현상이, 중력이 없는 2차원 세계 현상의 '홀로그램'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래의 그림은 '홀로그램(hologram)' 기술에 의한, 2차원 세계에서 떠오른 '비행기'의 이미지를 나타낸 것이다. 홀로그래피 원리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3차원 세계의 중력에 관한 현상은 중력을 포함하지 않은 2차원 세계의 홀로그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3-1. 중력을 생각하지 않아도 모든 현상이 설명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에는 '중력(Gravity)' 이외에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과 '약한 핵력(Weak Nuclear Force)',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이 있다. 이 네 가지 힘은 자연계의 근본적인 힘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중력'은 다른 힘에 비해 아주 약하기 때문에, 4가지 힘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힘'으로 생각되며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그런데 '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에 따르면, 특별한 힘인 중력에 관한 현상을, 중력을 포함시키지 않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중력을 고려하지 않고도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중력을 자연계의 근원적인 힘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중력이 '환상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응형4. 홀로그래피 원리의 탄생
그러면 '홀로그래피 원리'는 왜 고안되었을까? 이 사건은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 박사를 중심으로 1970년대에 붐을 일으킨, '블랙홀'을 둘러싼 대논쟁에 있다. '블랙홀(Black Hole)'은 거대한 중력을 가진 천체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 이 말은 빛이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사실을, 블랙홀 바깥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4-1. 블랙홀에 빨려들어간 정보는 사라지는가?
모든 물질은 자신을 구성하는 원자의 '위치'와 '속도'라는 '정보(Information)'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블랙홀로 빨려간 물질의 정보는 블랙홀 밖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사실상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미약하게나마 전자기파 등을 방출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것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하는데, 이렇게 블랙홀로 빨려간 정보의 행방은 '호킹 복사'에 의해서 다시 수수께끼에 빠진다. 블랙홀은 호킹 복사에 의해 에너지를 방출하여, 조금씩 작아져서 마지막에는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된다. 이를 '블랙홀의 증발(Black Hole Evaporation)'이라고 부른다. '스티븐 호킹'은 이때 블랙홀에 삼켜진 물질의 정보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리학의 대원칙에 의해, 정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즉, 블랙홀과 거기에 빨려간 정보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대논쟁으로 발전되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물질 4-2.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정보는 블랙홀 표면에 있었다.
블랙홀은 빨아들인 물질의 질량에 따라 반지름이 커지고 표면적도 커진다. 이스라엘의 이론 물리학자 '베켄슈타인(Jacob David Bekenstein, 1947~2015)' 박사는 이 사실이 '정보의 총량을 결코 줄어들지 않으며 계속 커진다.'는 대원칙과 수식상으로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베켄슈타인 박사는 이것이 의미있는 일치인지 우연의 일치인지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2개의 현상이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블랙홀의 표면적'은 '내부에 포함된 정보의 양'과 비례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있었다.
4-3. 블랙홀의 표면은 '홀로그램의 필름'인가?
우리는 보존할 저장 장치가 늘어나면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보존할 저장 장치가 늘어난다는 것은 '부피'가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는 정보의 양은 넓이가 아니라 부피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베켄슈타인 박사가 내린 결론은 '정보의 양'이 '블랙홀의 부피'가 아닌 '블랙홀의 표면적'과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상한 결론을 해석한 실마리는 1990년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박사 등이 제창한 어떤 아이디어에서 나타났다.
'엇호프트' 박사 등은 3차원 세계에 존재하던 정보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2차원인 '블랙홀의 표면'에 기록된다고 생각했다. 블랙홀의 표면이 마치 '홀로그램의 필름'처럼 되어 있으며, 그곳에 블랙홀 내부에 포함된 모든 정보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홀로그래피 원리'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반응형5. 홀로그래피 원리 세계관
엇호프트 박사 등이 홀로그래피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홀로그래피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얼마 동안 알지 못했다. '홀로그래피 원리'를 물리학의 구체적인 계산에 활용하게 된 것은 1998년 미국 프리스턴 대학의 '후안 말다세나(Juan Maldacena, 1968~)'박사가 'AdS/CFT 대응'이라는 '홀로그래피 원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예상을 발표한 다음부터였다.
5-1. AdS/CFT 대응
'AdS/CFT 대응'이란 'AdS(반 더 시터르: Anti de Sitter) 시공'이라는 특수하게 휘어진 3차원 공간의 '중력 이론'과 중력이 없는 2차원 공간의 이론의 계산 결과가 서로 일치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3차원 공간의 중력 이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말하는 것이고, 2차원 공간의 이론은 '양자역학'을 말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중력과 다른 힘을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이 유명하다. 하지만 '초끈 이론'으로는 블랙홀 등 강한 중력이 관여하는 현상을 다루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AdS/CFT 대응'을 사용하면, 'AdS 시공'이라는 한정된 세계뿐이긴 하지만, 블랙홀 등의 강한 중력이 관여하는 현상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또 'AdS/CFT 대응'을 이용하면, 중력 이론을 단순히 한 차원 낮은 다른 이론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초전도 물질(낮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물질)'을 비롯한 '강상관 물질(Strongly correlated materials: 전자 사이의 영향이 강한 물질)'을 연구할 때에는 양자역학의 매우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AdS/CFT 대응'을 이용해 복잡한 양자 역학의 계산을 한 차원 높은 세계의 중력 이론의 계산을 바꾸면 훨씬 간단해진다. 이처럼 'AdS/CFT 대응'은 물리의 다양한 분야에서 '도구'로 이용된다.
5-2 'AdS/CFT 대응'과 블랙홀의 수수께끼
'AdS/CFT 대응'은 블랙홀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호킹 복사'란 열을 가진 석탄이 빛을 내는 것과 같은 '열복사(Thermal Radiation)' 현상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호킹 복사'가 '흑체(Black Body: 입사하는 모든 복사선을 완전히 흡수하는 가상의 물체)'의 복사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흑체'의 열복사의 색과 강도는 온도만으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호킹 박사는 어떤 정보를 가진 물질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도, 블랙홀로부터는 온도에 따라 같은 열복사가 방출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결과 정보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홀로그래피 원리'에 근거해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dS/CFT 대응'을 이용해서 계산하면, 블랙홀처럼 거대한 중력을 가진 천체 현상을 한 차원 낮은 세계의 '양자 역학'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역학에 의하면 한 번 생긴 정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결정타가 되어, 호킹 박사는 2004년에 '홀로그래피 원리'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호킹 복사'에 의해 블랙홀이 소멸되어도 빨려 들어간 물질의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다만, 블랙홀의 표면에 기록된 정보가 어떤 형태로 우주 공간에 방출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반응형5-3. 홀로그래피 원리가 시공을 만드는 원리일지도 모른다.
'홀로그래피 원리'는 최근 십수 년간 소립자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일본 도쿄 대학의 '다카야나기 다다시(Tadashi Takayanagi)' 교수와 미국 시카고 대학의 '류 신세이' 부교수가 2006년에 발표한 '류-다카야나기 공식(Ryu-Takayanagi Formula)'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류-다카야나기 공식'에서 중요한 점은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라는 상태이다. '양자 얽힘'이란 입자의 쌍이 어떤 관계성을 가진 상태를 말한다. 예컨대, 전자에는 '스핀(Spin)'이라고 하는 자전과 비슷한 성질이 있다. 스핀에는 '위 방향'과 '아래 방향'이 있는데, 전자는 이 2개의 방향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중첩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양자의 스핀을 관측하면 중첩 상태가 사라지면서 스핀이 결정된다. 만약 2개의 전자가 얽힌 상태에 있는 경우, 예를 들면 한쪽 전자의 스핀이 '위 방향'으로 결정되는 순간, 다른 한쪽의 전자는 '아래 방향' 스핀으로 정해진다.
'류-다캬아나기 공식'에 의하면, 이 세계에는 양자 얽힘 상태에 있는 입자 쌍이 무수히 존재하며, 거기에서 홀로그램처럼 시공이 떠오른다고 한다. 어쩌면 시공은 '양자 얽힘'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른다. 다만, '홀로그래피 원리'를 우리 세계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홀로그래피 원리'는 아직 가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로그래피 원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홀로그래피 원리'에는 이론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킬 가능성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