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차
- 체세포에는 '죽음'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 두 유형의 체세포
- 세포 자살의 메커니즘
- '죽음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 식물은 죽지 않을 수 있다.
- DNA의 손상
1. 체세포에는 '죽음'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생물이 죽는 이유는 다른 생물에게 먹히거나 병에 걸리는 등 여러 가지 이유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든 생물에게 죽음이란 '체세포'의 죽음을 의미한다. '체세포(Somatic Cell)'란 정자와 난자라는 '생식 세포' 이외의 세포를 말한다. 인체는 수십조 개의 체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체세포에 '죽음'이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몸에서는 하루에 3000억~4000억 개의 세포가 스스로 죽고 있다. 이것을 무게로 따지면 약 200g에 해당한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죽은 세포와 같은 수만큼 새로운 세포가 분열을 통해 보충되기 때문에 체중은 거의 일정하다. 그러나 노인이 되면 죽는 세포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체중이 감소한다.
- 약 28일 주기로 교체되는 표피: 표피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한 결과, 표피는 약 28일 주기로 교체된다고 한다. 1회 분열에 걸리는 시간으로는, 닭의 피부 세포의 일종에서 12시간 전후라는 값이 알려져 있다.
- 교체되는 각막: 눈동자를 덮고 있는 안구 표면의 투명한 부분을 '각막'이라고 한다. 각막은 세포 분열을 되풀이하여 200시간~300시간에 걸쳐 교체된다.
- 재생하는 간: 간은 평소에는 활발하게 세포 분열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술을 통한 절제 등을 계기로 남은 간세포가 비대해진 다음, 일부 특수한 세포를 중심으로 분열해 세포의 수를 늘리며 재생한다.
- 활발하게 분열하는 소장: 소장은 평생 세포 분열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장기이다. 소장의 입구인 십이지장의 세포에서 분열 주기는 약 34시간이라고 한다.
- 비장(지라): 면역 세포의 일종이 분열하는 곳이다. 적혈구를 교체하는 데 꼭 필요한 장기이다.
- 일부 부위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뇌: 뇌의 신경 세포는 기본적으로는 분열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마의 일부 등의 부위에서 예외적으로 세포 분열이 일어나, 성인에서도 새로운 신경 세포가 만들어진다.
- 재생하지 않는 심장: 성장한 포유류에서 심장 근육 세포의 대부분은 분열하지 않는다.
- 재생되지 않는 근육: 성장한 포유류에서 골격근 세포는 분열하지 않는다.
2. 두 유형의 체세포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체세포는 크게 2종류로 나뉜다. 정해진 기간만큼 살고 죽는 '정기권 유형의 세포'와 분열 횟수에 한계가 오면 죽음을 맞는 '회수권 유형의 세포'이다.
- '회수권 유형'의 세포: 하나는 피부세포처럼 빈번하게 교체되는 세포이다. 피부 표피의 맨 아래에는 '표피 바닥층'이 있다. 표피 바닥층의 세포는 분열해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 새롭게 태어난 세포는 서서히 세포의 성질을 바꾸면서 위로 밀려 올라가, 4주 정도 지나면 피부에서 떨어져 나간다. 인간의 피부는 약 4주 주기로 교체되는 것이다. 이런 세포의 수명은 시간이 아니라 분열 횟수에 따라 정해진다. 인간의 세포의 경우, 이런 분열을 50~60회 반복하면 죽음에 이르며, 분열할 수 있는 상한은 세포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이것들을 비유하자면 한 번에 한 장씩 쓰고, 여러 장을 묶음으로 사서 쓰는 '회수권'에 비유할 수 있다. 분열 횟수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세포는 '회수권'에 비유할 수 있다. '회수권 유형'의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은 '아포토시스(Apoptosis)'이다.
- '정기권 유형'의 세포: 다른 하나는 뇌의 '신경 세포(Neuron)'나 심장의 '심장 근육세포'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교체되지 않는 세포로, 세포 분열을 하지 않는 대신에 장수한다. 뇌의 신경 세포는 태아 시기에 분열해 늘어난다. 그러나 태어난 다음에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그수가 점점 줄어든다. 생애를 통에 평균하면 하루에 약 10만 개의 신경 세포가 뇌에서 죽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랫동안 사용되다 기한이 되면 자살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세포는 '정기권'에 비유할 수 있다. '정기권 유형'의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은 '아포비오시스(Apobiosis)'이다.
인간의 몸은 '정기권 유형'의 세포와 '회수권 유형'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개체에게 보다 치명적인 것은 '정기권 세포'가 죽는 일이다. 뇌의 '신경 세포'와 '심장 근육 세포'는 생명 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단, 피부 세포와 같은 회수권 유형의 자살이 지나치게 많아져 개체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한편, '기간권 유형'으로만 혹은 '회수권 유형'으로만 이루어진 생물도 있다. '기간권 유형'으로만 이루어진 생물이 곤충이다. 곤충은 새롭게 분열하는 세포가 없기 때문에 상처가 생겨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 한편, '회수권 유형'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플라나리아' 같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생물이다. 이런 생물들은 아무리 잘라도 재생할 수 있다. 다만, 회수권은 무한히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세포 분열의 '회수권을 다 쓰면 그런 개체에도 죽음이 찾아온다.
세포의 유형 | '회수권 유형'의 세포 | '정기권 유형의 세포' |
메커니즘 | 아포토시스 | 아포비오시스 |
세포 죽음의 원인 | 기간이 다 되면 죽음 | 분열 횟수에 한계가 오면 죽음 |
세포의 수명 | 상대적으로 길다 | 상대적으로 짧다 |
3. 세포 자살의 메커니즘
'정기권 유형의 세포'와 '회수권 유형의 세포'의 사이에는 세포 자살의 메커니즘에 차이가 있다.
3-1. 아포토시스(Apoptosis)
'회수권 유형'의 세포의 죽음은 '아포토시스(Apoptosis)'이다. '아포토시스'란 그리스어로 '잎과 꽃이 흩어진다.'라는 의미이다. '아포토시스'는 '세포의 노화', '호르몬', '바이러스', '방사선' 같은 다양한 자극에 의해 일어난다. 자극을 받은 세포는 '카스피아제(Caspase)'라는 효소를 활성화시킨다. 카스파아제는 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을 잘게 자른다. 그 단백질 중에는 평소에 DNA를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단백질도 있다. '카스파아제'에 의해 그 단백질이 파괴되면 DNA는 조각나 버린다. DNA가 조각나면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할 수 없으므로 세포가 죽게 된다. 세포는 최종적으로 조만 주머니로 나뉘어 옆에 있는 세포나 '대식 세포(Macrophage)'라는 세포에게 먹힌다. 여기까지의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2~3시간으로 짧다. '아포토시스'는 노화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변한 세포에서 일어난다. 이런 세포를 제거함으로써, 몸은 정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아포토시스'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죽음'인 셈이다.
아래는 '아포토시스'를 통한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을 설명한 것이다.
- 카스파아제가 활성화된다: 세포가 암세포화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 세포'의 일종이 찾아온다. '면역 세포'란 이물질을 퇴치하기 위해 작용하는 세포이다. 면역 세포가 이상이 있는 세포의 표면에 단백질을 결합시키면 이것이 신호가 되어 '카스파아제'가 활성화된다. 또 DNA에 상처가 생겼을 때에는 세포의 '에너지 생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에서 '시토크롬 c(Cytochrome c)'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방출한다. 이 단백질도 카스파아제를 활성화하는 신호가 된다.
- 단백질을 잘게 자른다: 활성화된 카스파아제는 세포 안에 있는 다양한 단백질을 잘게 자른다 그 영향으로 DNA 분해 효소가 DNA를 조각낸다.
- 변형한다: 세포는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잘록해지고 갈가리 찢긴다.
- 작은 주머니로 나뉜다: 세포는 '아포토시스 소체(Apoptosis Corpuscle)'라는 작은 주머니로 나뉜다.
3-2. 아포비오시스(Apobiosis)
한편, 뇌의 '신경 세포'나 '심장 근육 세포' 같은 수명이 긴 세포는 '아포토시스'로 죽지 않는다. 이것들은 '아포비오시스(Apobiosis)'라는 별도의 메커니즘을 따른다. '아포비오시스(Apobiosis)' 명칭을 제기한 사람은 죽음의 기원에 정통한 일본 도쿄 이과대학의 '다누마 세이이치(田沼靖一)' 교수이다. 뇌 신경 세포의 죽음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다. 그러나 '아포토시스(Apoptosis)'와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죽는다. 이것을 구별하기 위해 '수명이 다했다'는 의미의 '아포비오시스'를 고안한 것이다. '아포토시스(Apoptosis)'와 비교했을 때, '아포비오시스(Apobiosis)'의 차이는 'DNA가 비교적 크게 조각난다는 점'과 '최종적으로 작은 주머니로 나뉘지 않고 단지 수축한다는 점'이다. 대체되지 않는 뇌의 신경 세포가 죽는다는 것은 개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아포비오시스'는 '몸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개체의 죽음과 직결되는 죽음'이다.
아래는 '아포비오시스'를 통한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을 설명한 것이다.
- 건강한 상태: 신경 세포는 주변 신경 세포와 연결되어 있다.
- 연결이 줄어든다: 주변 신경 세포와의 연결이 작아지며 세포가 쪼그라든다.
- DNA가 조각난다: 주변 신경 세포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DNA가 크게 조각난다.
4. '죽음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4-1. '죽음'은 '유성 생식'에서 시작되었다.
대장균는 1개의 유전자 세트를 지닌 생물이다. 이런 생물을 '1배체 생물'이라고 한다. 대장균은 분열을 통해 증식한다. 증식할 때는 유전자 세트를 미리 1개 복사해 두고 분열할 때 1세트씩 분배한다. 분열해서 생긴 개체가 지닌 유전자 세트는 원래 개체의 유전자 세트와 똑같다. 대장균은 영양이 있는 한 계속 분열해 수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은 분열에 한계가 없다는 말이다. 즉 죽음 유전자를 갖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죽는 일은 없다. 1배체 생물의 생식 메커니즘을 '무성 생식(Asexual Reproduction)'이라고 한다.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고 약 20억 년 동안, 지구에 있던 생물은 대장균과 같은 1배체 생물이었으며, 분열을 통해 증했다고 생각된다. 결국 20억 년 동안 생물은 스스로 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 탄생하고 약 20억 년 후, 자살 메커니즘을 지닌 생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1배체 생물'과 달리 유전자 세트를 2개 지닌 인간과 같은 '2배체 생물'이었다. 2배체 생물의 생식 메커니즘을 '유성 생식(Sexual Reproduction)'이라고 한다. '세포 죽음의 메커니즘'은 '2배체 생물'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는 죽지 않는 '1배체 생물'과 자살하는 '2배체 생물'은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2배체 생물의 대부분은 분열만으로 개체를 늘리지 않는다. 수컷과 암컷이 협력해 개체를 증식한다 수컷과 암컷은 각각 자신이 지닌 2세트의 유전자를 '생식 세포'에 넣어 둔다. 양친의 생식 세포가 만나면 2세트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태어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유전자 세트는 어느 누구와도 다른 조성을 지니게 된다. 그 결과, 2배체 생물의 경우는 유전자 세트의 '변화(Variation)'가 풍부해진다. 이것은 온도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 등이 조금씩 다른 개체가 생겨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환경이 급변한 경우 같은 위기 상황에서 생물종이 전멸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즉, 유전적 다양성을 통해 종의 생존 확률을 늘리는 것이다.
- 무성 생식(Asexual Reproduction): 1배체 생물의 생식 메커니즘
- 유성 생식(Sexual Reproduction): 2배체 생물의 생식 메커니즘
4-2. '죽음의 메커니즘'이 생긴 이유
2배체 생물은 '성(Sex)'라는 메커니즘을 갖는 동시에 '죽음의 메커니즘'도 갖는다. '성'과 '죽음'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유성 생식'에는 유전자를 뒤섞기 때문에 다양한 유전자 세트를 지닌 개체가 생겨난다. 이것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개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유전자의 비정상적인 조합이 생길 가능성도 안고 있다.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지닌 개체는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2배체 생물은 2개의 유전자 세트를 지니기 때문에, 한쪽 유전자 세트에 이상이 있더라도, 다른 한쪽이 정상이면 성장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이상이 있는 유전자는 그대로 생식 세포에 포함되어 자손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생긴다. 이상이 있는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자손에게 축적되면, 언젠가 정상 개체를 만들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생물종의 전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죽음(Death)'이다. 유성생식을 통해 이상한 유전자 조합이 생겨났을 때, 그것을 소거하는 메커니즘을 지닌 생물이 어느 시점에 나타났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의 메커니즘'을 가진 생명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메커니즘'이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죽음의 메커니즘' 자체도 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4-3.'원시적인 죽음의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는 '짚신벌레'
'짚신벌레'는 2배체 단세포 생물이면서 '성의 메커니즘'과 '죽음의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어 흔히 연구되는 생물이다. '짚신벌레'는 '대핵'과 '소핵'이라는 2개의 핵을 가지고 있다. '소핵'을 제거해도 짚신벌레는 살아남는다. 생명 활동에 필요한 정보는 대핵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핵이 없으면 '유성 생식(Sexual Reproduction)'을 할 수 없다. 짚신벌레는 600~700회 정도 분열하면 이상이 생겨 죽고 만다. 단, 그 전에 유성 생식을 해 유전자 세트를 새롭게 구성하면 다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유성 생식'을 하면 두 마리의 짚신벌레는 소핵을 교환해 새로운 소핵을 만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하던 대핵은 조각나서 사라져 없어지며, 새로운 소핵을 복제해 새로운 대핵을 만든다. 소핵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대핵은 소실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식 세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몸은 소실되는 관계와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죽음의 메커니즘'은 2배체 단세포 생물에서 기원했다고 생각된다.
5. 식물은 죽지 않을 수 있다.
식물에서 조직 일부를 떼어 내, 성장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사용해 배양해 보자. 그러면 대부분의 세포가 증식해 '캘러스(Callus, 식물체에 상처가 났을 때 생기는 조직)'가 생긴다. 이 조직에 호르몬과 영양을 제공하면 다시 완전한 개체가 생겨난다. 식물의 '복제(Clone, 클론)'이다. 이런 개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전능성'이라고 한다. 식물 세포에는 '전능성'이 있다. 조직을 잘라 '캘러스'로 만들어 개체로 성장시키는 일을 되풀이하면, 거기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식물은 죽지 않을 가능성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식물과 달리 동물은 체세포의 '전능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단 '전능성'이 아닌 '다능성'이 있는 경우, 특수한 기술을 사용하면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 '다능성'이란 '다양한 조직이나 장기의 세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능성을 인공적으로 회복시키는 기술이 바로 '배아 줄기세포(ES 세포)'와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 세포)'이다.
그리고 식물도 '아포토시스(Apoptosis)'를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바이러스와 함께 '동반 자살'해 감염 확산을 막는다고 한다.
6. DNA의 손상
지금까지 보았듯이 진화의 역사에서 '죽음'이 등장한 것은, 유전자를 교환해 자손을 만드는 '2배체 생물'이 등장했을 때로 생각된다. 교환할 때마다 비정상적인 유전자 조합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6-1. 손상된 DNA를 완전히 복구할 수 있다?
생명 활동에 필요한 정보는 DNA라는 분자 사슬에 씌어 있다. DNA란 A, T, G, C의 4종류 문자로 쓰인 유전 정보의 '암호문'이다. 사슬은 두 가닥이 쌍이며, 마주 보는 DNA 사슬은 A-T, G-C가 각각 결합하듯이 배열되어 있다. 세포 분열을 할 때는 이 DNA를 정확히 복제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하게 하려 해도 복제 실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외선에 노출되는 등, DNA는 '손상'을 입게 된다. DNA의 손상이란 본래와는 다른 염기로 변하거나 염기를 잃은 것이다. 1개의 세포에 포함된 DNA에는 하루에 수천 개의 손상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
세포 안에도 DNA에 손상을 입히는 원인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사용해 당류를 태워 생명에 필요한 에너지 'ATP 분자'를 만든다. 그렇지만 이 반응에서는 '활성 산소'도 생긴다. '활성 산소'는 반응하기 쉬운 물질로 DNA, 단백질, 지방에 손상을 입힌다. 이런 손상들은 그대로 방치하면 생명 활동에 지장을 준다. 따라서 DNA는 복구 효소를 사용해 끊임없이 손상을 복구한다. 이것을 증명하듯이, 복구 효소가 작용하지 않는 사람은 노화가 빨리 일어나는 질병에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6-2. 복구하지 못한 손상은 축적된다.
유전자는 끊임없이 복구된다. 다만 복구를 했더라도 염기 1000개 가운데 1개 이하의 비율로 손상은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런 손상은 체세포만이 아니라 생식 세포에도 생긴다.
장수한 개체의 유전자는 손상이 많은 경향이 있다. 이런 개체의 생식 세포를 사용해 자손을 만들면 손상이 다시 쌓이게 된다. 그러면 그 생물종이 최종적으로는 멸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가장 안전하게 피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낡은 개체가 반드시 죽도록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인간의 DNA는 손상을 복구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기 때문에, 수십 년을 사는 정도로는 손상이 지나치게 많아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200년이나 300년 계속된다면 문제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을 피하기 위해 죽음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것이다.
손상이 많은 늙은 개체는 '죽음'으로 제거된다. 그렇다면 자살하는 메커니즘이 없는 대장균 같은 생물은 손상이 어떻게 쌓이지 않는 것일까? 1배체이든 2배체이든 손상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대장균과 같은 1배체 생물은 한 세트밖에 없는 유전자가 손상되면 곧바로 생명 활동과 생사 그 자체에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1배체 생물은 세포에 '죽음의 메커니즘'이 없지만, 손상을 입으면 개체의 죽음으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집단 전체로서는 손상이 축적되지 않는다. 반면 2배체 생물은 유전자 세트가 2개 있기 때문에, 손상이 바로 개체의 변화로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손상이 쌓이기 쉽다.
6-3. 변화는 '진화'에 필요하다.
생물은 에너지를 사용해 유전자의 손상을 복구한다. 그러나 손상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도 사실은 생물에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경우 유전자에 손상이 생기면, 이상 증식하는 '암세포'로 변하거나, 본래와 다른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등의 불편한 일이 생긴다. 그렇지만 이따금 몇 가지 변화가 겹쳐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좋은 변화가 여러 번 겹치면서 생물은 진화했다고 생각된다. 복제 실수가 전혀 없다면 진화는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