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우주 (Universe)

'인플레이션 이론'의 탄생

SURPRISER - Tistory 2022. 8. 13. 11:41

 1667년에 발간된 공상과학소설 '타우 제로(Tau Zero)'가 출간되자,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주의 종말'에 관한 결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과연 우리의 우주는 대수축해 '빅 크런치(Big Crunch)'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팽창해 '빅 프리즈(Big Freeze)'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종말 없이 '정상상태(Steady State)'로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논쟁을 잠재울 만한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다. '우주론(Cosmology)'의 가장 최신 버전이자 가장 강한 설득력을 지닌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이다.

0. 목차

  1. 앨런 구스
  2. 힘의 통일을 위하여
  3. 인플레이션이론의 탄생
  4. '인플레이션 이론' 발표 이후
  5. 관측자료로 검증되는 '인플레이션 이론'

앨런 구스(Alan Guth)

1. 앨런 구스

 1979년의 어느 날 '앨런 구스(Alan Guth, 1947~)'는 몹시 흥분하여 자신의 일기장에 "극적인 실현"이라고 적어놓았다. 우주론의 역사를 바꿀만한 아이디어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앨런 구스'는 십수 년 이상 빅뱅이론을 끈질기게 연구한 끝에, 이론에 결정적인 수정을 가했다. 그는 우주가 태어나자마자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팽창되었다고 가정함으로써, 우주론과 관련된 몇 가지 수수께끼를 해결하였다. 이로 인해 '우주론(Cosmology)'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실제로 최근에 얻어진 관측 결과는 '앨런 구스'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우주론의 난해한 문제들이 이런 간단한 문제들이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플레이션 이론이 해결한 문제들 중 하나는 우주의 '평탄성(Flatness)'과 관련되어 있다. 관측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곡률은 0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과거의 천문학자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즉, 우주를 빠르게 팽창하는 풍선의 표면에 비유하면,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어 풍성의 표면이 거의 평탄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표면을 기어가는 개는 풍선의 작은 곡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서 있는 바닥이 평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주의 시공간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어 지금은 거의 평탄해진 상태이다.

 '앨런 구스'의 발견이 높게 평가되는 또 하나의 이유로는 '물리학(Physics)'과 '우주론(Cosmology)' 사이에 긴밀한 협조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빅뱅이 일어나던 무렵의 초미세영역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천문이나 우주론보다 입자물리학이 훨씬 더 유용하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을 밝히는 데, 미시세계의 물리학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우주론'은 '입자물리학'이나 '양자역학'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1-1. 앨런 구스의 어린 시절

 '앨런 구스(Allan Guth)'는 1947년 뉴저지의 '뉴브런즈윅(New Brunswick)'에서 태어났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조지 가모', '프레드 호일' 등과는 달리 '앨런 구스'는 어린 시절에 과학에 관심을 가질 만한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그의 부모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과학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앨런 구스'의 스스로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자연과학의 상호 관계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1960년대에 MIT에 진학한 그는 '입자물리학(Particle Physics)'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그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상호작용들을 하나의 체계로 통일하는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 무렵에는 복잡다단한 우주를 간단한 법칙으로 통일시키는 이론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옛날 그리스 시대부터 과학자들은 궁극적인 단순함이 붕괴되면서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단순하고 아름다웠던 '원초적 질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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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힘의 통일을 위하여

2-1. 4종류의 힘

 지난 2000여 년 동안 온갖 물질과 에너지를 연구해온 끝에, 과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힘이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4종류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4가지 힘이란 '중력(Gravity)', '전자기력(Electomagnetic force)', '약력(Weak Force)', '핵력(Nuclear Force)'이다. (물론 현대의 과학자들은 다섯 번째 힘을 찾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소득이 없다.)

  1. 중력(Gravity): 첫 번째 힘은 '중력(Gravity)'이다. '중력'은 태양과 행성들을 한 가족으로 맺어주고 있다. 만약 중력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별들은 당장 폭발하고 지구는 산산이 분해되며, 우리 모두는 시속 수천 km의 속도로 우주 공간을 향해 내던져질 것이다.
  2. 전자기력(Electomagnetic force): 두 번째 힘은 '전자기력(Electomagnetic force)'이다. '전자기력'은 도시의 밤거리를 밝히고, TV를 볼 수 있게 해주며, 이동전화, 라디오, 레이저빔, 인터넷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만약 전자기력이 사라진다면 지금의 문명은 당장 수천 년 전으로 되돌아가 암흑과 고요 속에 잠길 것이다. 그런데 전자기력의 얼개를 초미세영역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은 '광자(Photon)'이라는 작은 입자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다.
  3. 약력(Weak Force): 세 번째 힘은 '약력(Weak Force)'이다. '약력'은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을 한데 묶어놓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핵자들이 떨어져 나가거나 붕괴되는 과정에만 관여한다. 또 약력은 방사능 물질을 통해 지구의 중심부를 뜨겁게 달궈서 화산활동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약력'은 '전자'와 '중성미자'의 상호 작용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W-보존'과 'Z-보존'이 교환된다.
  4. 핵력(Nuclear Force): 네 번째 힘은 '핵력(Nuclear Force)'이다. '핵력'은 '핵자(원자핵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을 단단하게 묶어두고 있다. '핵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원자핵은 당장 분해되며, 그 결과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들도 근본적인 단계에서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다.

2-2. 모든 힘의 통합을 시도한 아인슈타인

 그러면 우주에는 왜 4종류의 힘만 존재할까? 그리고 이들 힘들이 '물리적 특성'과 '물리적 세기', '작용 방향' 등이 모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현대물리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의문들 중 하나이다.

 모든 힘의 이론적 통합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의 과학자들보다 너무나 앞서나가는 바람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핵력'의 구조도 통일의 대상으로 간주될 만큼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선구적인 업적은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에게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과학의 영원한 희망봉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2-3. 입자 가속기에서 새로운 입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입자물리학이 총체적인 난관에 빠져 있었던 1950년대에는 '통일장 이론'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입자 가속기(particle accelerator)'를 이용하여 물체에 강하게 충돌시켜서 내부 구조를 살피는 실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입자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자물리학'이라는 이름까지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모든 만물이 공통적인 기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물리학자들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입자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그리스 알파벳까지 동원해야 했다. 심지어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알컬어지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는 반농담 삼아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1년 동안 새로운 입자를 단 하나도 발견하지 않은 물리학자에게 줘야 한다. 그래야 수상자를 쉽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칼텍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과 '게오르그 츠바이크(George Zweig)'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기본입자로서, '쿼크(Quark)'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들의 이론에 의하면,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가 3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중간자(meson)'는 '쿼크'와 '반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것은 부분적인 해답에 불과했지만, 침체된 입자물리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2-4.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일하였다.

 1967년에는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2021)'와 '앱더스 살람(Abdus Salam, 1926~1996)'이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통일장이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집혔다. 이들은 '전자(Electron)'와 '중성미자(Neutrino)'가 새로운 입자인 'W-보존(W-Boson)', 'Z-보존(Z-Boson)', '광자(Photon)'를 교환하면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는 새로운 이론체계를 만들어냈다. 즉, '광자'와 'W-보존', 'Z-보존'을 동일한 객체로 간주하면, '전자기력'과 '약력'을 하나의 이론체계로 통일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 후 1979년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와 '앱더스 살람(Abdus Salam)', '셸던 글래쇼(Sheldon Glashow)'는 4개의 힘 가운데 2개의 힘을 통일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5.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 '글루온'을 발견하다.

 1970년대에 물리학자들은 스탠퍼드 대학에 있는 '스탠퍼드 선형 입자가속기 센터(SLAC: Stanford Linear Accelerator Center)'로 몰려들어 충돌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실험은 전자와 같은 탐사 입자를 가속기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가속시킨 후, 미리 준비해둔 시료와 충돌시킴으로써 시료의 내보에 있는 '양성자(Proton)' 및 '중성자(Neutron)'의 내부 구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물리학자들은 양성자를 구성하고 있는 3개의 '쿼크(Quark)'를 강하게 결합시키는 힘이 '글루온(Gluon)'이라는 매개입자에 의해 생성되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글루온(Gluon)'은 '강력'을 이루는 최소단위의 양자였던 것이다. 3개의 쿼크들은 글루온을 서로 교환하면서 양성자라는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핵력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인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이 탄생했다.

2-6. 표준모형

 1970년대 중반에 물리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4종류의 힘들 중 중력을 제외한 3개의 힘을 하나로 통일하는 이론을 거의 완성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론에 의하면 '쿼크(Quark)'와 '전자(Electron)', '중성미자(Neutrino)'는 각각 '글루온(Gluon)'과 'W-보존(W boson)', 'Z-보존(Z-Boson)', '광자(Photon)'를 교환하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입자물리학의 꾸준한 진보가 드디어 결실을 거둔 것이다.

 '표준모형'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었지만, 생긴 모습 자체는 전혀 깔끔하지 못했다.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 그토록 누더기 같은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예컨대 표준모형에는 임의의 상수가 19개나 등장한다. ('입자의 질량'과 '상호작용의 세기' 등은 이론만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을 통해 값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이론이라면, 이 모든 상수들도 이론적으로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소립자들은 '세대(Generation)'이라고 불리는 3개의 유사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이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소립자 시스템을 3종류의 유사한 세트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각 세대끼리 서로 대응되는 입자들은 질량을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제1세대의 '전자(electron)'에 대응되는 제2세대의 입자는 '뮤온(muon)'인데, 이 입자의 질량은 전자의 200배이다. 그리고 제3세대 '타우(tau)' 입자의 질량은 전자의 3500배나 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표준모형 중 가장 큰 단점은 '중력(Gravity)'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표준모형(Standard Model)

2-7. 대통일 이론

 '표준모형(Standard Model)'은 실험 결과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인위적인 구석이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만족스러운 이론은 아니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쿼크(Quark)'와 '렙톤(Lepton)'을 동일선상에서 서술하는 '대통일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이론에서는 '글루온(Gluon)'과 'W-보존(W boson)', 'Z-보존(Z-Boson)', '광자(Photon)'도 동일한 맥락에서 서술된다. 그러나 '대통일 이론' 역시 중력을 포함시키지 못해 최종적인 이론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합한 이론체계 속에 중력을 포함시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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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플레이션 이론의 탄생

3-1. 과거에 4종류의 힘들은 '단 하나의 힘'이었다.

 '물리법칙의 통일 연구'는 '우주론(Cosmology)'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는데, 그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빅뱅이 일어나던 순간에 4종류의 힘들은 '초힘(Superforce)'라는 단 하나의 힘으로 통합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즉, 4종류의 힘들이 모두 같은 세기로 작용하면서 구별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탄생의 순간에 우주는 이와 같이 완벽한 '대칭성(Symmetry)'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가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원래의 '초힘(Superforce)'은 몇 개의 서로 다른 힘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빅뱅 이후에 우주가 식는 과정은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액체 상태의 물은 분포가 균일하고 부드럽지만, 낮은 온도에 방치해 두면 수백만 개의 작은 얼음결정으로 이루어진 고체로 변한다. 물이 얼어붙으면 원래 갖고 있던 균질성이 붕괴되면서 특정한 방향성을 갖는 결정체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우주는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는 전혀 균일하지 않고, 대칭적이지도 않다. 산과 바다, 허리케인, 소행성, 폭발하는 별 등 온갖 잡다한 물체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게다가 우주에 존재하는 4종류의 힘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 그러나 초창기의 우주는 그렇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끔찍하게 하강하면서 원래 갖고 있던 대칭성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무질서한 우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주는 원래 완벽하게 통일된 상태에서 태어났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온도의 하강과 함께 여러 차례의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겪으면서 하나였던 힘이 4종류로 분리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초기우주의 완벽한 대칭 상태를 복원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나는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가리켜 '대칭성의 자발적 붕괴(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라고 부른다. '얼음이 녹을 때', '물이 끓을 때', '비구름이 형성될 때', '우주가 식을 때'에 물체는 하나의 상태에서 전혀 다른 상태로 전환되는데, 이 과정을 '상전이(Phase Transition)'라고 한다.

3-2. 우리 우주는 가짜 진공에서 시작되었다.

 하나의 힘이 여러 개의 힘으로 분리되는 과정은 댐이 붕괴되는 과정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물은 항상 에너지가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향해 흐르므로, 비탈길을 만나면 무조건 아래쪽을 향해 흘러간다. 흐르는 강이 이르게 되는 최종 목적지는 해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인 '바다'이다.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를 '진공(Vacuum)'이라 한다.

 그런데 진공 중에는 정상에서 벗어난 '가짜 진공(False Vacuum)'이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흐르는 강을 댐으로 막아놓으면 물은 조용히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댐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때 댐에 균열이 생기면, 작은 틈 사이로 압력이 분출되면서 '댐에 물이 갇혀 있는 상태'로부터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나오고 결국 강물은 '해수면과 같은 높이'로 되돌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댐에 물이 갇혀있는 상태'가 '가짜 진공상태'이고 '해수면과 같은 높이의 상태'가 '진짜 진공상태'이다. 댐이 자발적으로 붕괴되면 근처에 있는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강물의 에너지는 '가짜 진공'에서 '진짜 진공' 상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대통일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짜 진공(False Vacuum)'에서 시작되었으며, 중력을 제외한 3개의 힘들은 하나의 힘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구조가 붕괴되면서 '가짜 진공'은 '진짜 진공'으로 전환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힘은 3가지로 분리되었다.

 이것은 '앨런 구스(Alan Guth)'가 '대통일이론'을 연구하기 전부터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앨런 구스'는 다른 물리학자들이 간과했던 중요한 사실을 간파했다. 1917년에 '빌렘 드 지터(Willem de Sitter)'가 예견한 바와 같이 '가짜 진공' 상태에서 우주는 지수함수적으로 점차 빠르게 팽창하며, 팽창 속도는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 즉 '가짜 진공에 함유되어 있는 에너지'에 의해 좌우된다. 이 대목에서 '앨런 구스'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빌렘 드 지터'가 예견했던 '점차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를 수용하면 우주론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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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자기홀극 문제

 '대통일이론(GUT)'은 우주의 초창기에 다량의 '자기홀극'이 존재하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자기홀극(Magnetic Monopole)'이란 간단히 말해서 '남극(S)' 또는 '북극(N)'만 갖고 있는 자석을 말한다. 모두 알다시피 모든 자석은 N극과 S극이 동시에 짝으로 존재한다. 둘 중 하나의 극만 가지고 있는 자석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막대자석의 중간을 잘라서 두 토막을 내도, 각각의 자석은 N극과 S극을 모두 갖고 있다. 자석과 관련된 실험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도 없이 실행되어 왔지만, 자기홀극이 발견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래서 구스는 자기홀극의 존재를 허용하는 GUT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기홀극은 발견된 사례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설 속의 '유니콘(Unicorn)'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앨런 구스'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주가 가짜 진공상태에서 출발했다면, 초기의 팽창 속도는 지수함수적으로 점차 빨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오래전에 '드 지터'에 의해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가짜 진공상태의 우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엄청난 비율로 팽창되기 때문에, 자기홀극의 밀도도 순식간에 작아졌을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자기홀극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긴 있지만 너무나도 넓은 우주 속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앨런 구스'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앨런 구스'는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UGT의 자기홀극 문제를 해결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훨씬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3-4. 평탄성 문제

 '앨런 구스'는 자신의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이 우주의 '평평성 문제(Flatness Problem)'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당시만 해도, '표준 빅뱅이론'으로는 우주 공간이 평탄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빅뱅이 일어난 후 수십억 년이 지났을 때 '우주의 밀도'와 '임계밀도'가 거의 같았던 이유는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었다. 우주가 팽창하면 'Ω(우주의 밀도÷임계밀도)'도 당연히 시간과 함께 변해야 한다.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었다면, 그는 현재의 Ω가 0.1이 되도록 초창기의 Ω를 세밀하게 조절했을 것이다. 오늘날 Ω가 0.1~10 사이의 값을 가지려면 빅뱅이 일어나고 1초가 지났을 때 Ω의 값은 1.00000000000000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Ω가 0.1~10 사이의 값을 가지려면 초기 우주의 Ω값은 100조 분의 1 단위까지 세밀하게 조율되어 있어야 한다. 빅뱅이 일어나고 수십억 년이 지났을 때에도 'Ω(우주의 밀도÷임계밀도)'의 값이 1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것이 바로 '미세 조율 문제(Fine-Tuning Problem)'이다.

 연필의 뾰족한 끝을 아래로 향한 채 책상 위에 똑바로 세운다고 상상해 보자. 실험을 해보면 금방 알겠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연필은 쓰러지기 마련이다. 정말로 연필을 세우고 싶다면 처음부터 엄청난 정확도로 수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해도, 몇 초 이내에 연필은 쓰러질 것이다. 그런데 연필이 똑바로 서 있는 상태를 몇 년 동안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웬만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우주도 방금 설명한 연필과 마찬가지로 마찬가지로, 현재 Ω의 값이 1에 가까우려면 초창기의 Ω는 엄청난 정확도로 조율되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현재의 Ω는 전혀 다른 값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Ω는 왜 1에 가까운 값을 갖게 되었을까?

 '앨런 구스'에게는 이것도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엄청난 크기로 팽창된 우주를 구소적인 규모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평평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잘 아고 있지만, 그것은 교육에 의한 효과일 뿐 실제로 '둥근 지구'를 느끼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당장 눈앞에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충분히 크게 팽창되었기 때문에 Ω가 1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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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평선 문제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은 '평탄성 문제(Flatness Problem)' 뿐만 아니라 '지평선 문제(Horizon Problem)'도 해결하였다. 이 문제는 '밤하늘의 어느 쪽을 바라봐도 별들이 거의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실험 삼아 오늘 밤 밖으로 나가 하늘의 한 구역을 바라보고 시선을 180°돌려서 정반대 쪽을 바라보면, 두 지역에서 별의 밀도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바라본 두 지역은 거리상으로는 거의 수백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하늘을 훑어봐도 밀도가 특별히 높거나 낮은 지역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관측 위성이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전 공강에 걸쳐 수천 분의 1도의 오차 이내에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신기한 형상이 아닐 수 없다. 다들 알다시피 빛의 속도는 매우 빠르긴 하지만 무한히 빠르지는 않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 빛이나 기타 신호가 밤하늘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전달되려면,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예컨대, 하늘의 한 특정 방향에서 관측된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는 130억 년 이상 동안 공간을 표류해왔다. 그리고 이와 정반대 방향에서 관측되는 배경 복사도 역사 130억 년 전에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온도가 수천 분의 1도 이내로 동일하다는 것은 우주의 초창기 때 이들 두 지역이 열역학적인 접촉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수로 수백억 광년이나 멀어질 수 있었을까?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에 불과하므로, 이들의 줄곧 빛의 속도로 멀어져왔다 해도 지금과 같은 거리만큼 멀어질 수는 없다.

 우주배경복사가 처음 생성된 무렵, 그러니까 빅뱅 후 38년이 지난 시점으로 되돌아가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 시기에 반대쪽 하늘을 바라봐도 배경 복사는 거의 동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빅뱅 이론의 계산에 의하면, 하늘의 대척점은 약 90억 광년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면 태어난 지 38만 년밖에 안된 우주에서 90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이 어떻게 같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장 빠른 빛으로 신호를 전달한다고 해도, 38만 년 사이에 90억 광년의 거리를 주파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주의 반대편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탄생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으므로, 각 지점의 온도와 밀도가 균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질들은 매우 균일한 밀도로 분포되어 있다. 빛이 우주 공간의 대척점을 가로지를 만큼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분포가 가능한 것일까?

 '앨런 구스'는 이 문제 역시 '인플레이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가 초창기에 있었던 불덩어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에 이 작은 부분의 온도와 밀도는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1050배까지 팽창되었고,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는 여전히 균일한 분포를 유지하고 있다. 즉, 별의 밀도와 배경 복사의 온도가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이유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가 아주 작은 영역에 뭉쳐있다가 인플레이션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6. 인플레이션 이론을 발표하다.

 '앨런 구스(Alan Guth)'는 인플레이션 이론'이 옳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에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그는 1980년에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발표하던 현장을 다음과 같이 같이 회고하였다. "저의 이론에서 잘못된 결과가 나올까 봐 몹시 걱정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제가 우주론의 초심자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앨런 구스'의 이론은 매우 우아하고 강력했기에,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그 중요성을 곧 인식하게 되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머리 겔만(Murray Gell-Mann, 1929~2019)'은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구스가 해결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노벨 수상자인 '셸던 리 글래쇼(Sheldon Lee Glashow, 1932~)'는 "당신의 이론을 듣고 스티븐 와인버그가 노발대발했따."고 귀띔해 주었다. 이에 '앨런 구스'가 "스티븐이 내 이론에 반대한답니까?"라고 물었더니 '셸던 리 글래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뇨, 자신이 그 이론을 진작 생각해 내지 못했다고 해서 화가 난 겁니다." 글래쇼를 포함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그토록 간단한 아이디어를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을까?'라며 생각하며 한결같이 긴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앨런 구스'의 이론을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앨런 구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사실 그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수당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훗날 그는 자신이 '취업시장에서도 거의 소용없는 실업자 취급을 받았다.'고 회고하였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이론'을 발표하자마자 사방에서 일자리 제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모교인 MIT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었으나 MIT에서만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앨런 구스'는 운수 등을 인쇄한 쪽지가 들어 있는 중국제 과자인 '행운의 과자(Fortune Cookie)'에서 "당신이 소극적이지 않다면 아주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문구를 읽고 용기를 내어 MIT 대학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라면서 교수직을 제안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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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플레이션 이론' 발표 이후

4-1. '인플레이션 이론'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물리학자들은 '앨런 구스'의 이론을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정작 천문학자들은 '인플레이션 이론'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지적한 결함이란 바로 'Ω(우주의 밀도÷임계밀도)'에 관한 문제였다. Ω의 값이 거의 1에 근접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이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Ω가(또는 Ω+Λ가) 정확하게 1.0임을 예견하였다. 즉, 앨런 구스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완벽하게 평평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 무렵에 얻어진 관측 데이터들은 암흑물질의 존재를 강하게 시사하면서 Ω의 값이 1.3까지 커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후로 10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논문을 수천 편이나 발표했으나,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문스런 이론으로 남아 있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입자 물리학자들이 '인플레이션 이론'의 아름다운 외모에 현혹되어 실험적인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버드대학의 천문학자 '로버트 커쉬너(Robert Kirshner, 1949~)'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인플레이션 이론은 한 마디로 미친 생각이다. 평생 교수직을 보장받은 학자들이 그 이론을 아무리 열심히 연구한다고 해도, 틀린 이론이 옳은 이론으로 뒤바뀔 수는 없다."며 앨런 구스'의 이론을 비난했다. 또 옥스퍼드 대학의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가리켜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이 우주론에 개입하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엽다고 하지 않던가"라고 했다.

 하지만 '앨런 구스'는 관측 데이터가 좀 더 축적되면 결국 우주가 평평하다는 자신의 주장이 입증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인플레이션 이론'에 작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플레이션은 우주론과 관련된 일련의 심오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했지만, 정작 문제는 '인플레이션(팽창)'을 멈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4-2. 풀리지 않은 의문 -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났는가?

 물이 담긴 주전자가 가스 불 위에서 데워지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물은 끓기 직전에 잠시 동안 고에너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물은 당장이라도 끓고 싶어 하지만, 기포가 생성되려면 약간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끓기 시작하면, 물은 '진짜 진공(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면서 다량의 기포를 만들어낸다. 이 기포들은 전자의 내부가 증기로 가득 찰 때까지 조금씩 합쳐지면서 크기가 점차 커진다. 이런 식으로 모든 기포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물의 기화과 정이 끝나는 것이다. 이 기포는 '앨런 구스'의 이론에서 '진공으로부터 팽창하는 우주의 한 부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계산을 해보니, 기포들이 적절히 합체되지 않아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우주가 얻어졌다. 즉, 구스의 이론은 '증기 거품이 주전자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하나로 합쳐지지 않아서 균일한 증기가 생성되지 않는 희한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리하여 구스의 이론은 현재의 우주를 재현시키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1981년에 러시아의 '레베데프 연구소'의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 ,1948~)'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폴 스타인하르(Paul J. Steinhardt)'와 '안드레아스 알브레히트(Andreas Albrecht)'가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즉, 가짜 진공 상태에서 생성된 하나의 기포가 충분한 크기로 자라나면 주전자를 가득 채울 수 있으므로, 이로부터 균일한 우주가 생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우주는 하나의 기포가 우주를 가득 채울 때까지 팽창되면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주전자의 내부를 균일한 증기로 가득 채우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여러 개의 기포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기포가 단 하나라 해도, 충분한 크기로 팽창되기만 하면, 여러 개의 기포가 생성된 경우와 동일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댐과 가짜 진공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댐이 두꺼울수록, 물이 댐을 뚫고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만큼 길어진다. 댐이 충분히 두껍게 지어졌다면 물이 샐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정 없이 길어질 것이다. 만약 우주가 초창기 부피의 1050배까지 팽창되었다면 하나의 기포만으로 '자기홀극 문제', '평탄성 문제', '지평선 문제' 등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뚫고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충분히 지연되었다면, 우주는 매우 긴 시간 동안 팽창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 우주는 '평평하면서 자기홀극이 거의 없는 공간'으로 진화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초창기에 대체 어떤 힘이 작용했기에 우주가 무려 1050배까지 팽창되었다는 말인가? 즉,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반중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는 '우아한 탈출 문제'라는 재밌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나의 기포가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우주가 팽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후로 몇 년 동안 50여 종의 해답이 제시되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정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앨런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자기홀극 문제', '평탄성 문제', '지평선 문제'를 해결했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우주의 팽창을 유도하고, 또 그것을 멈추는 요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렇다 할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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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혼돈 인플레이션

 '우아한 탈출 문제'의 해답으로 제시된 수많은 아이디어들 중 만장일치로 채택된 답은 없었지만, 물리학자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는 이 사실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만약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창조물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이 멋진 가능성을 틀림없이 사용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의 기원이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이와 똑같은 현상이 언제 반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인플레이션이 주기적으로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스탠퍼드 대학의 러시아 물리학자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어떤 물리적 과정이 우주의 갑작스런 팽창을 야기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면, 이와 동일한 현상은 우주의 다른 부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작은 부분이 어느 순간 갑자기 팽창하여 봉오리를 이루고, 그로부터 '아기우주(Baby Universe)'가 태어나 다시 봉오리로 성장하여 아기우주를 재생산 하는 과정이 영원히 반복된다. 이것은 마치 공기중에 있는 비눗방울과 비슷하다. 비눗방울이 충분히 커지면, 일부 비눗방울은 두 개의 작은 방울로 분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우주는 새로운 우주를 낳으면서 영원히 번식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의하면, 빅뱅은 지금도 우주의 도처에서 꾸준히 일어나고 이야기가 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방울우주'가 떠다니는 망망대해 속에서 하나의 방울 속에 실린 채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에는 '우주(Universe)'라는 단어 대신 '다중우주(Multivers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안드레이 린데'는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는 우주'를 가리켜 '혼돈 인플레이션(Chaotic Inflation)'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다중우주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주창했던 '앨런 구스'도 '인플레이션 이론'을 연구하다보면 '다중우주이론'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다중우주이론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우주도 언젠가는 아기우주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우주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부모우주로부터 탄생해 한창 자라나는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4-4. 다중 우주(Multiverse)

 '다중우주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에서도 자발적인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즉, 우리의 우주가 장차 새로운 우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뜻이며, 이는 곧 우리의 우주가 과거에 어떤 '모체 우주(Mother Universe)'로부터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혼돈 인플레이션(Chaotic Inflation)' 이론에서 하나의 우주는 영원하지 않지만, '다중우주 시스템(Multiverse System)' 자체는 영원히 지속된다. '다중우주(Multiverse)'란 단순히 '지금과 같은 우주가 여러 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특성이 천차만별인 우주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복합 우주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중우주들 중 일부는 Ω의 값이 너무 커서 빅뱅으로 태어난 후 '빅 크런치'를 겪으면서 소멸되고, Ω가 작아서 영원히 팽창하는 우주도 있다. 따라서 다중우주의 세계에는 엄청난 규모로 팽창된 우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영국의 천문학자 '마틴 리스 경(Sir Martin Rees)'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주는 여러 집합체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주들이 각기 다른 물리법칙을 따르면서 고유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속한 우주는 아마도 복잡성과 의식이 허용되는 우주일 것이다."

 다중우주론을 접하다 보면 '다른 우주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곳에도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과 교신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세계 각지에서는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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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무(無)'에서 창조된 우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중우주(Multiverse)'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다른 문제는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해도, 물질과 에너지의 보존법칙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우주에 내재되어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총량은 아주 작을 수도 있다. 우주에는 '별'과 '은하', '행성' 등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질이 존재하지만, 중력에는 에너지가 '음(-)'의 형태로 저장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더하면 우주의 총 에너지는 0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우주들은 '자유로운 우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총 에너지가 0인 우주라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주가 닫혀 있다면 에너지의 총량은 0이 되어야 한다.)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커다란 구덩이에 빠진 당나귀를 상상해 보자. 이 불쌍한 당나귀를 꺼내려면 어떻게 해서든 당나귀의 몸에 에너지를 부여해야 한다. 일단 구덩이를 빠져나와 땅 위에 서면, 당나귀의 에너지는 0이 된다. 그런데 당나귀에게 에너지를 투여한 결과가 에너지=0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구덩이에 빠진 당나귀의 에너지가 '음(-)'이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양 근처에서 궤도운동을 하고 있는 행성을 태양계 바깥으로 끄집어내려면 행성에 에너지를 투여해야 한다. 일단 태양계 바깥으로 방출된 행성은 0의 에너지를 갖는다. 그런데 행성을 태양계에서 끌어내기 위해 에너지가 투입되었으므로, 총 에너지가 0이라는 것은 행성이 태양계에 속해 있을 때 에너지가 '음(-)'이었음을 뜻한다. (물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행성의 총 에너지는 양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행성을 태양계에서 끌어내기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가 투입된 경우를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바깥으로 이탈된 행성은 별도의 운동에너지를 갖지 않으므로 총 에너지는 0이 된다.)

 실제로 1온스 정도의 물체만 있으면, 지금과 같은 우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앨런 구스'는 '우주는 점심 도사락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뉴욕 '헌터 대학(Hunter College)'의 '에드워드 티론(Edward Tyron)'이었다. 그는 1973년에 '네이처(Natrure)'지에 제출한 한 편의 논문을 통해 '우주란 진공의 요동에 의해 수시로 탄생하는 그 무엇'이라고 주장했다. 우주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물체의 양은 거의 0에 가깝지만, 이 물체는 엄청나게 큰 밀도로 압축되어 있어야 한다.

4-5-1. 우주는 왜 회전하지 않는가?

 '무에서 창조된 우주론'은 기존의 논리로 증명될 수는 없지만, 우주와 관련된 현실적인 질문에는 나름대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우주는 왜 회전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팽이나 허리케인에서 시작하여 행성과 은하, 심지어는 퀘이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물체들은 '자전(스스로 회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는 회전운동을 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은하들의 스핀을 모두 더하면 0이 된다.

 우주가 회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우주가 무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공은 회전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로부터 탄생한 우주가 회전운동을 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다중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기포우주(Bubble Universe)'의 순스핀(net spin)'은 0이다.

4-4-2. 우주에 존재하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은 왜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그러면 우주에 존재하는 '양전하(Positive Electric Charge)'와 '음전하(Negative Electric Charge)'의 양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적인 규모에서 힘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중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력(Gravity)'은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힘에 불과하지만, 우주적인 스케일에서 전자기력을 특별히 문제 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정확하게 같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전하가 아예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우주는 '전자기력'이 아닌 '중력'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별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범우주적인 규모에서 양전하와 음전하가 상쇄되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관측된 바에 의하면, '양전하'와 '음전하'의 총량은 '10-21(0.0000000000000000001%)' 이내에서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10-7(0.00001%)'정도 차이만 나도 우리의 몸은 순식간에 산산이 분해될 것이며, 강력한 전자기력에 의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이 의문 역시 우주가 '무(無)'로부터 탄생했다는 논리로 해결할 수 있다. 바닥에너지, 즉 진공상태에서는 '순스핀(net spin)'과 '순전하(net charge)'가 모두 0이므로, 이로부터 탄생한 우주도 '스핀'과 '전하'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4-5-3. 물질만 남아있는 이유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법칙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우리의 우주는 '반물질(Antimatter)'이 아닌 '물질(Matter)'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과 '반물질'은 전하의 부호가 반대이다. 물질과 반물질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므로, 언뜻 생각하기에 빅뱅으로부터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만큼 생성되었다고 가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감마선을 방출하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우주가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같은 상태에서 출발했다면, 인간은 물론이고 모든 물질들도 지금처럼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우주에서는 다량의 감마선이 공간을 메우고 있을 것이다. 빅뱅이 완전한 대칭성을 갖춘 상태에서 일어났다면, 즉 '무(無)'에서 출발했다면, 물질과 반물질의 양은 완벽하게 같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주에는 왜 물질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빅뱅이 완전한 대칭 속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면, 물질의 초과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러시아의 물리학자 '인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가 제시한 해결책이었다. 다시 말해서, 창조의 순간에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조금 달랐다면, 물질과 반물질이 모두 결합하여 사라진 후에도 여분의 물질이 남아서 지금과 같은 우주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빅뱅의 시기에 깨진 대칭을 'CP 대칭'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C는 '전하의 반전'을 뜻하고, P는 '물질과 반물질 사이의 반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CP 대칭성 붕괴'를 도입하면,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았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우주의 초창기에 대칭성이 깨진 원인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4-6. 다른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주의 초창기에 자발적인 대칭성 깨짐이 무작위로 일어났다.' 가정만 세우면, 일단 '다중우주 이론'은 성립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가정은 전혀 필요 없다. 한 우주에서 자식 우주가 탄생할 때마다, 물리상수의 값은 달라지고 적용되는 물리법칙도 달라진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개의 우주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다. 다른 우주들은 어떻게 생겼는가?

 물리학자들은 '단순한 이론'과 '높은 대칭성을 가진 이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론이 아름답다는 것은 관측자료를 함축적이고 경제적으로 설명해 주는 강력한 대칭성이 이론체계 안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름다운 방정식'이란 여러 개의 요소들을 맞바꿔도 그 형태가 변하지 않는 방정식을 의미한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에 숨어 있는 대칭성을 찾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고 있는 것도, 겉보기에 전혀 다른 현상들을 대칭이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현상으로 통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기와 자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현상인 것 같지만, '맥스웰 방정식(Maxwell's equations)'의 대칭성을 이용하면 동일한 현상의 다른 모습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한 객체의 다른 면임을 간파하여 '시공간(Space Time)'이라는 이름하에 이들을 하나로 통합시켰다.

4-6-1. 대칭이란 무엇인가?

 6각형 결정구조로 되어 있는 눈송이를 생각해 보자. 눈의 결정이 아름답게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안에 모종의 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의 결정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60° 또는 그 배수만큼 회전시켜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눈의 결정을 서술하는 방정식이 있다면, 이 방정식도 60° 또는 그 배수의 회전에 대하여 불변일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러한 대칭을 'C대칭(60° 회전에 불변인 대칭)'이라고 부른다.

 '대칭(Symmetry)'이란 '어떤 변환에 대한 불변성'을 의미한다. 즉 어떤 물리계에 수학적으로 정의되는 변환을 가했을 때 변하지 않는 성질이 있다면, 그 물리계는 대칭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6각형 눈송이의 경우, 변환은 '60° 회전'이고 변하지 않는 성질은 '눈 결정의 외형'이다. 대칭이라고 하면, 흔히 물체의 외형이 변하지 않는 대칭을 떠올리겠지만, 외형이 변하더라도 무언가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으면 대칭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대칭은 자연의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대칭은 보기 흉할 정도로 붕괴되어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4종류의 힘들이 아무런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 것도, 초기우주의 대칭성이 붕괴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사실, 지금의 우주는 불규칙성과 결함으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는 빅뱅에 의해 붕괴된 원시 대칭의 잔해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평행우주를 이해하려면, 빅뱅 직후에 발생한 '대칭성의 붕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비밀은 대칭 속에 숨어 있지만, 자연의 현재 모습은 대칭성의 붕괴 과정 속에서 결정되었다.

 표면이 매끈한 거울은 매우 높은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거울을 임의의 방향, 임의의 각도로 회전시켜도 그 안에 비치는 영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울을 깨뜨리면 원래의 대칭성은 당장 붕괴된다. 그러므로 대칭성의 붕괴 과정을 규명하는 것은 거울이 깨진 원인을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4-7. 대칭성의 붕괴

 대칭성의 붕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태아의 성장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수정된 후 며칠이 지나면 태아는 완전한 세포로 이루어진 구형의 모습을 띠게 된다. 각 세포들은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외부에서는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도 다른 점이 별로 없다. 물리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기의 태아는 '구형 대칭(Spherical Symmetry)'인 'O(3) 대칭'을 갖고 있다. 즉, 임의의 축을 중심으로 어떤 각도로 돌려도 태아의 외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태아는 아름답고 우아해 보이지만, 생명체로서는 거의 무력한 상태이다. 기하학적으로는 완벽한 구형에 가깝다 해도,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기능들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태아의 머리 부분이 돌출되면서 기하학적 대칭성이 붕괴되어 볼링 핀과 비슷한 형태가 된다. 이 시기가 되면 구형 대칭은 붕괴되지만, 다른 대칭은 아직도 남아있다.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회전시켜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대칭인 '원통형 대칭(Cylindrical Symmetry)'인 'O(2) 대칭'이 바로 그것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원래의 'O(3) 대칭'이 붕괴되면서, 전체적인 대칭이 'O(3) 대칭'으로 축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O(3) 대칭'의 붕괴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예컨대 불가사리는 초기의 구형 대칭이 붕괴된 후, '원통형 대칭(Cylindrical Symmetry)'이나 '좌우대칭(Bilateral Symmetry)'이 아닌 'C5대칭(72° 회전에 대해 불변인 대칭)'이 남으면서 별 모양의 몸체가 만들어진다. 즉 초기 배아의 'O(3) 대칭'이 붕괴되는 방향에 따라, 앞으로 태어날 생명체의 외형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초창기의 우주가 완전한 대칭성을 보유한 채로 시작되었다고 매우 강하게 믿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4종류의 힘들도 하나의 힘으로 통합된다. 고도의 대칭성을 갖고 있던 초기의 우주는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별로 유용하지는 않았다. 그럴 일도 없었겠지만 만약 이 시기에 생명체가 태어났다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 안에서 생명활동이 가능하려면 온도가 내려가면서 대칭성이 붕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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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측자료로 검증되는 '인플레이션 이론'

5-1. '배경 복사'에서 희미한 요동이 발견되었다.

 각 우주마다 각기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다중우주는 이론적으로 큰 하자는 없지만, 지금의 실험기술로는 그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가 없다. 다른 우주에 도달하려면 빛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이론'을 적절히 이용하면 많은 우주들 중 하나인 우리 우주의 특성을 예견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은 일종의 '양자이론(Quantum Theory)'이므로, 양자역학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불확정성 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빅뱅을 유발한 초기의 불덩이에 이 원리를 적용해 보면, 우주적 폭발은 '매끈하게' 진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양자역학을 이용하면 초기 불덩이가 요동친 정도를 계산할 수 있고, 이 미세한 양자적 요동을 그대로 팽창시키면 빅뱅 후, 38년 만에 생성된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의 양도 계산할 수 있다. 또 이 요동을 현재의 시점까지 팽창시키면,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은하와 성단의 분포상태도 재현시킬 수 있다. 우리의 은하는 초기의 미세한 양자적 요동으로부터 탄생한 수많은 은하들 중 하나이다.

 과학자들이 COBE 위성의 관측 데이터를 처음 분석했을 무렵에는 '배경 복사(Background Radiation)'의 편차나 요동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배경 복사가 아무런 요동의 흔적도 없이 매끈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인플레이션 이론'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도 위배되는 결과라고 생각해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20세기의 물리학을 지배하던 양자역학이 송두리째로 폐기처분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COBE 위성이 보내온 자료를 컴퓨터로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배경 복사에서 10만 분의 1 정도의 희미한 요동이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이것은 양자역학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양이었으며, '인플레이션 이론'과도 잘 부합되었다.

 '앨런 구스'는 '배경 복사 문제'에 대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배경 복사 문제는 저에게 커다란 스트레스였습니다. 신호가 너무 약해서 1965년이 되어서야 감지될 수 있었지요. 게다가 10만 분의 1에 불과한 요동을 감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관측자료가 쌓일수록 인플레이션 이론'은 점차 설득력을 얻어 갔다.

5-2. '람다(Λ)'의 재등장

 COBE의 위성이 보내온 관측자료는 인플레이션 이론과 잘 일치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한 가지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대의 천문학자들은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예측된 Ω의 값이 관측 결과와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었다. Ω의 값은 왜 1.0이 아닌 0.3인가?

5-2-1. 1a형 초신성

 그러나 1998년에 새로운 관측 데이터가 얻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먼 과거의 시점에서 우주의 팽창 속도를 다시 계산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1920년대에 '에드윈 허블'이 시도했던 '변광성 분석법'을 사용하는 대신 지구로부터 수십억 광년 거리에 있는 은하 내부의 초신성을 분석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표준 촛불로 사용할 수 있는 '1a형 초신성(Type 1a Supernova)'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천문학자들은 '1a형 초신성'의 밝기가 어디서나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a형 초신성의 밝기는 매우 정확하게 알려져 있으므로, 약간의 변화만 나타나도 그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기준보다 밝게 빛나는 1a형 초신성은 희미해지는 속도가 그만큼 느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초신성은 연성계를 이루고 있는 백색왜성이 파트너의 질량을 서서히 빨아들이면서 탄생한다. 자신의 짝을 잡아먹는 백색왜성은 태양 질량의 1.4배가 될 때까지 서서히 몸집을 키워나간다. 이 값은 백색왜성이 가질 수 있는 질량의 한계이다. 그러다가 질량이 이 한계를 넘어서면 안으로 붕괴되어 대규모의 폭발을 일으키면서 1a형 초신성이 되는 것이다. 1a형 초신성의 밝기가 균일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이와 같이 명확한 한계점을 통과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백색왜성이 질량을 키워나가다가 한계점이 이르러, 내부의 중력에 의해 붕괴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먼 거리에 있는 초신성은 아득한 과거에 존재했던 천체이므로, 이들을 분석하면 수십억 년 전 우주의 팽창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1935년에 천체물리학자인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는 백색왜성의 내부 중력이 전자들 사이의 척력과 균형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천문학자들은 이 힘을 '축퇴압(Degeneracy Pressur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백색왜성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4배를 초과하면, 중력이 축퇴압보다 강해지면서 안으로 붕괴하며,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 1a형 초신성이다.

5-2-2. 놀랍게도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지금의 우주가 팽창되고는 있지만, 팽창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천문학자들이 한결같이 믿어왔던 일종의 '천문학 교리'같은 것이엇으며, 모든 천문학교재에도 이 내용은 빠지지 않고 수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울 펄머터(Sual Perlmutter)'가 이끄는 초신성 연구팀과 '브라이언 슈미트(Brian P. Schmidt)'가 이끄는 High-Z 초신성 관측팀에서 10여 개의 초신성을 분석한 결과, 과거 우주의 팽창 속도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즉, 초신성의 '적색편이(Redshift)'가 기대했던 것보다 작게 나타났다. 천문학자들은 우주 초기와 현재의 팽창 속도를 비교한 결과, 현재의 팽창 가속도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그룹의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2-3. 관측 데이터에 부합되는 Ω의 값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들을 더욱 곤경에 몰아넣은 것은 관측 데이터에 부합되는 Ω의 값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론과 실험을 조화롭게 연결시키려면, 아인슈타인이 처음 제기했던 진공에너지 즉 '람다(Λ)'를 다시 도입해야만 했다. 게다가 어렵게 찾아낸 Λ의 값이 Ω를 압도할 정도로 커서, 우주는 '빌렘 드 지터(Willem de Sitter)'가 예견했던 것처럼 '점차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그룹의 천문학자들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한 끝에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지만, 오랜 세월 동안 Λ=0이라는 의견이 천문학계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연구결과로 곧바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지난 세월 동안 Λ는 무모한 개념으로 취급되어 왔고, Λ가 0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관측 데이터는 너무나 명백했고 계산도 틀린 것이 없었다. 결국 1998년에 두 그룹은 거의 동시에 논문을 발표했고, 이와 함께 아인슈타인이 '일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던 Λ도 부활하게 되었다. 이미 알려져 있던 Ω의 값 0.3에 Λ의 값 0.7을 더하면 인플레이션 이론'의 예견대로 1.0이 얻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