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물리학 (Physics)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

SURPRISER - Tistory 2022. 3. 28. 22:03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을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이라고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반생에 걸쳐 정열을 다해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통일장 이론'은 현대 물리학의 최대 주제이기도 하다. 통일장 이론의 기초를 만들어 낸 선구자들의 성과를 따라가보고, 그것들이 현대의 '통일장 이론'과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과 비슷한 개념으로 '모든 것의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개념도 있다. '모든 것의 이론'은 우주와 자연법칙의 모든 것을 단 하나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어쩌면 '통일장 이론'은 '모든 것의 이론(ToE)'이 아닐 수도 있다.

0. 목적

  1. 아인슈타인의 필생의 꿈
  2. 중력과 전자기력
  3. '통일장 이론의' 선구가 된 두 가지 아이디어
  4.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
  5. 현대의 통일장 이론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 아인슈타인의 필생의 꿈

 유례없는 영광으로 가득 찬 76년간의 생애를 마감하기 전날인 '1955년 4월 17일', 아인슈타인은 비서에게 '통일장 이론'에 관한 계산의 가장 새로운 페이지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정열을 기울인 아인슈타인의 다하지 못한 꿈, '통일장 이론'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에 관한 일반인용 해설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내용이 대단히 수학적이고 알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인슈타인의 시도가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주제는 아인슈타인이 반생을 걸쳐 집요하게 몰두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꿈은 고도로 발전한 형태로 바뀌어, 여전히 현대의 이론 물리학자들의 최대의 꿈으로 계속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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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력과 전자기력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통일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쓴 것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힘인 '중력(Gravity)'과 '전자기력(Magnetic force)'이었다. '중력'과 '전자기력'은 그 무렵에 존재가 확실히 확인되어 있던 단 두 가지의 힘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기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을 무시하면, 두 가지 모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장거리력'이라는 같은 기본적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실은 같은 기원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한 것은, 대담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의 본질을 포착하는 혁명적인 이론, 즉 '일반 상대성 이론(Theory of general relativity)'의 확립에 성공하자마자, 이미 확립되어 있던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의 '전자기 이론(Electromagnetic theory)'과 맞추어서, 중력과 전자기력의 통일을 목표로 한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제임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의 '전자기 이론'은 전기나 자기의 힘을, 공간 속에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장(field)'을 통해 전달하는 것으로 기술하는 내용이다. 즉, 공간의 x, y, z 방향으로 힘을 끼치는 '전기마당(전기장)'과 '자기마당(자기장)'이라는 모두 6개의 장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발전해가는 모습을 아름다운 형태로 포착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실은 이들 6개의 장은 더욱 기본적인 4개의 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나중을 위해 기억해 두도록 하자.

2-1.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중력을 '휘어진 시공의 기하학'으로 표현한다. 뉴턴은 모든 물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에 의해 중력을 설명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유명한 결론인 '에너지와 질량이 등가'라는 사실을 통해, 빛조차도 예외 없이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힘에 의해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나아가려고 해도 시공 자체가 휘어져 있으므로 휘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를 '일반 상대성 원리(General Theory of Relativity)'에 더 충실한 방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간다. '일반 상대성 원리'는 물리학의 법칙은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 관측자가 보아도 같은 형태라는 원리이다. 관측자란 사물의 위치 등을 자기 자신만의 좌표로 측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물리학의 법칙은 좌표의 채용에 좌우되지 않는 언어, 즉 '기하학(Geometry)"이라는 언어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은 관측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먼저 관측자가 어떤 좌표를 사용해야 할지 지정해야 한다.

2-2. 좌표에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양

 그러려면 좌표에 나타내기 위해, 몇 개의 양이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자.

 먼저 2차원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그 세계가 평탄한 면이라면, x축과 y축이 직교하는 데카르트 좌표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하지만 휘어진 세계의 일도 고려해, 좀 더 일반적으로 x축과 y축이 만나는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지정해야 할 일은 x축 방향의 눈금 너비, y축 방향의 눈금 너비, 그리고 x축과 y축 사이의 각도 등 세 가지의 양이 된다. 이번에는 3차원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x축 방향의 눈금', 'y축 방향의 눈금', 'z축 방향의 눈금', 'x축과 y축 사이의 각도', 'y축과 z축 사이의 각도', 'x축과 z축 사이의 각도' 총 6개의 양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4차원인 경우에는 10개의 양이 필요하고, 5차원인 경우에는 15개의 양이 필요하다.

 이처럼 '길이와 각도를 지정하는 데 필요한 양'을 '기하학'에서는 '계량(metric)'이라고 한다. 휘어진 세계를 상대로 할 때는 좌표의 축 자체가 일반적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 눈금이 바뀌거나 축 사이의 각도가 변하므로 '계량'도 변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도 이 계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세계의 휘어진 정도를 나타내기 위해 '기하학적인 양'을 써서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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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일장 이론의' 선구가 된 두 가지 아이디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고 나서, 이에 자극을 받아, 물리학과 수학 두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몇 가지가 발표되었다. 특히 아래의 두 가지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시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이론의 기초가 되는 '기하학의 변경'에 의한 통일이고, 두 번째 아이디어는 '시공의 5차원화'에 의한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구축한 혁명적인 중력 이론에서 태어난 이런 통일의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의 용기를 더욱 북돋워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더욱 만족할 만한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집요하게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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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기하학의 변경'에 의한 통일

 1918년에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바일(Hermann Weyl, 1885~1955)'은 '일반 상대성 원리'의 생각을 더욱 철저히 탐구했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요점의 10개의 계량 가운데, 길이의 눈금을 지정하고 있는 4개의 부분을, 시공의 각각의 점에서 멋대로 바꾸어도 방정식의 형식이 변하지 않는 이론은 없을까를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 자체에서 그러한 일을 하면 방정식의 형식이 무너지지만, 바일은 교묘하게 4개의 새로운 '장(field)'을 도입해 그것을 잘 조절하면, 형식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욱 멋진 일은, 이 4개의 새로운 장이 가진 성질은 앞에서 말한 전자기 현상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4개의 장과 매우 비슷함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요컨대, 중력과 전자기력을 동시에 밀접하게 관계하는 것으로 기술하는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사실 바일의 이론에 나타난 4개의 장은 중요한 부분에서 전자기마당과는 달라져 있었지만, 바일의 생각은 현대 통일장 이론의 요소가 되는 '게이지 이론(Guage Theory)'의 생각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 자체도 일종의 '게이지 이론'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3-2. '시공의 5차원화'에 의한 통일

 또 한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는 1921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테오도어 칼루차(Theodor Kaluza, 1885~1954)'가 제창하고 1926년에 스웨덴의 물리학자 '오스카르 클라인(Oscar Klein, 1894~1954)'에 의해 완전한 것이 되어, '칼루자-클라인 이론(Kaluza Klein theory, KK theory)'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이론 역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확대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바일의 이론과는 달리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5차원의 시공에서 생각하려고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5차원에서는 15개의 '계량'이 나타난다. 이 가운데 10개는 우리가 사는 4차원 세계의 길이와 각도를 측정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나머지 5개 중의 하나는 제4차원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러한 차원은 관측되지 않기 때문에, 이 다섯 번째의 차원을 관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원 모양처럼 둥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4개의 양이 남게 된다. 이들은 전자기의 기본적인 4개의 장으로 간주하면 아주 멋지게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이 4개의 양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의 방정식을 훌륭하게 만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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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

 아인슈타인은 이 30년 동안 추구한 꿈의 실현을 위한 길은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는 길고 긴 길이었다. 1922년 칼루차의 성과에 자극을 받아쓴 논문을 시작으로 한 발자취를 살펴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쓴 통일장 이론의 논문 대부분이 '기하학의 변경' 시도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마음은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거의 5년마다 두 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로 돌아섰고, 또 두 가지 아이디어의 중간을 택하는 시도도 했다.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독자적인 '통일장 이론'을 발표한 때는 1925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서 '기하학의 변경'을 생각하고, '전자기 마당'을 '중력 이론'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길이와 각도를 결정하는 계량의 개수를 계산했을 때의 일을 상기해 보자. 우리는 x축과 y축 방향으로 재는 각도가 달라져도 무방한 기하학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4차원의 경우, 새로 6개의 각도를 지정하는 양을 도입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6개의 양이야말로 3개의 전기 마당과 3개의 자기 마당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6개의 양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의 방정식을 만족함을 보여줄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아주 복잡한 연구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 시도도 앞에서 말한 결점을 없앨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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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의 통일장 이론

5-1.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이 통일되다.

 아인슈타인은 '힘의 통일'이라는 꿈을 생전에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죽은 지 10년쯤 지난 후에, 생각하지도 못한 데에서 힘의 통일이 부분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1967년에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2021)'와 파키스탄의 '아브두스 살람(Abdus Salam, 1926~1996)'이 바일의 유산인 '게이지 이론(gauge theory)'에 바탕을 두고,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을 통일하는 이론을 고안한 것이다.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을 통합한 이 이론의 이름은 '와인버그-살람 이론(Weinberg-Salam theory)'이다.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 이유는 원래 '전자기력'과 '중력'이 그러하듯이 '게이지 이론'의 특징은 원래 장거리력을 기술하는 내용이라, 약한 핵력처럼 단거리력을 설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와인버그와 살람은 이 어려움을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로 멋지게 해결했다. 그들은 약한 핵력은 원래 장거리력인데, 우리가 보통 공허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진공 중에 약한 핵력의 전달을 방해하는 새로운 장이 가득 차 있어서 겉보기에 단거리력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의 이론은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실험에 의해 훌륭하게 검증되었다. 그 공로로, '셰던 리 글래쇼(Sheldon Lee Glashow, 1932~)'와 '아두브스 살람(Abdus Salam)',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197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셸던 리 글래쇼, 아두브스 살람, 스티븐 와인버그

5-2. 강한 핵력에 대한 이해도 비약적으로 진보했다.

 한편, '강한 핵력'에 대한 이해도, 같은 무렵에 비약적으로 진보했다. '강한 핵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원자핵 속에 묶어 놓는 힘이다. 먼저 이들이 '쿼크(Quark)'라고 불리는 아주 기본적인 입자로 조립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1970년대에는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글루온(Gluon)'이라고 불리는 '게이지 입자(Gauge Particle)'에 의해 생긴다는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강한 핵력' 역시 '게이지 이론'을 따른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표준모형 (Standard Model)

5-3. '대통일장 이론'도 제창되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와인버그-살람 이론(Weinberg-Salam theory)'의 생각을 응용해, '전자기력·약한 핵력·강한 핵력'의 3가지 힘을 통일하는 '대통일장 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도 제창되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초대칭 이론(supersymmetric theory)'을 사용하였으나, 현재까지 '초대칭입자(Supersymmentry Particle)'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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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중력은 끝까지 미해결로 남게 되었다.

 끝까지 미해결로 남게 된 것은, 원래 통일장 이론의 주역이었던 '중력(Gravity)'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양자론(quantum theory)'과 모순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사실 아인슈타인이 가장 걱정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중력 이론'과 '양자론'이 서로 모순되고 대립된다는 점이었다.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통일장 이론'을 추구한 이유 중 하나도, 통일장 이론에서 양자론을 유도하려는 숨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자론에 의하면, 미시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해도 제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요동(fluctuation)'과 '불확정성(Uncertainty)'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적용시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즉시 명백해진다. 미시의 세계에서 '길이를 재는 자의 눈금'과 '시간을 재는 자의 눈금'이 흔들린다면, 거기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 그 자체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유력한 시도로, '점(dot)' 대신에 넓이를 가진 '끈(String)'을 기본 요소로 하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라고 불리는 통일장 이론이 활발히 연구되었다. 이 이론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을 모순 없이 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초끈 이론이 진짜 '통일장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끝없는 변모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