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뇌과학 (Brain Science)

뇌의 시간 조정술

SURPRISER - Tistory 2022. 3. 14. 23:54

0. 목차

  1. 우리가 느끼는 '지금'은 '과거'이다.
  2. 우리의 의식은 '결정자'가 아니라 '기록자'
  3. 어떻게 다른 사람에 맞추어 손뼉을 칠 수 있을까?
  4. 우리의 행동은 상당 부분 자동화되어 있다.
  5. 뇌의 시간 조정술
  6. 뇌의 여러 가지 편집
  7. 뇌의 편집 작업 덕분에, 이치에 맞는 세계가 보인다.

1. 우리가 느끼는 '지금'은 '과거'이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일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말은 틀렸다. 왜냐하면 당신이 의식하는 '지금(Now)'은 약간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신은 생각하는 것보다 0.1초 이상 빨리 이 글을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지금'은 모두 조금 과거의 것이다. 예컨대 야구에서 타자가 '방망이에 공이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이미 몸은 이미 공을 되받아치고 있다. 또 육상 선수가 눈앞에서 온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미 그의 몸은 몇 m 앞의 결승선에 도달해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오감의 정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각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이 글자에서 발생된 빛이 당시의 눈에 도달하면, 빛은 눈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그러면 전기 신호는 시신경 세포에 차례로 전해진 뒤에 뇌에 이른다. 그리고 여러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 '보였다'고 인식한다.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시각 정보가 뇌에 인식되기까지는 약 0.1초 정도가 걸린다. 마찬가지로 소리와 촉감도 귀와 손에 감지되고 나서 인식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즉, 우리의 의식은 앞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현재의 자신을 항상 뒤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의식되는 지금'을 '현재'라고 오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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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의 의식은 '결정자'가 아니라 '기록자'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는 가운데 사물을 결정하고 실행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먼저 뇌 속을 방대한 정보가 왕래하면서 여러 가지 판단이 이루어진 뒤, 그 결과의 극히 일부가 나중에 의식으로 알려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의식은 '예측하는 일'이 아니라 '나중에 알게 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의식은 '결정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록자'같은 존재이다.

3. 어떻게 다른 사람에 맞추어 손뼉을 칠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이 0.1초 정도 현재에서 느려진 것이라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까? 예컨대 다른 사람과 함께 손뼉을 칠 때, 어떻게 주위 사람과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가설 중 하나를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 '자!'하고 신소를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 신호를 각각 같은 정도로 느리게 인식한다. 또 신호한 본인도 자신의 목소리를 느리게 인식한다. 결국 모두가 현재에서 같은 정도로 느리게 인식하므로, 각 사람의 의식에서는 시간축이 어긋나지 않아 상태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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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의 행동은 상당 부분 자동화되어 있다.

 우리는 뇌에서 만들어진 과거의 영상을 현재라고 믿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걷거나 달리기를 할 때, 일상 동작에 큰 문제가 없다니 신기할 정도이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의 영상을 바탕으로 생활하면서도 왜 일상 동작에 큰 문제가 없을까?

 그 이유는 우리의 행동은 상당 부분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걸을 때, 각 근육이 움직이는 방식까지 의식하지 않는다. 또 보통의 동작은 인식의 느림에 대해 느긋하게 이루어지므로, 인식의 느림을 만회하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현대인들은 자동차 운전 등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로 움직이게 되었다. 시속 72km로 달리는 자동차는 0.1초에 2m나 나아간다. 운전 중에는 인식에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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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뇌의 시간 조정술

  빛이나 소리가 감지되고 나서 의식에 이르는 동안, 실은 여러 '편집 작업'이 이루어진다. 뇌의 편집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시간의 착각'이라는 현상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푸른색 글자가 흔들리는 현상'도 그 예이다. 여기서부터는 '시간의 착각'을 통해 우리 뇌의 여러 가지 작용을 살펴보자.

5-1. 시간이 어긋난 정보는 미세 조정되어 동시로 느껴진다.

 사람이 무언가를 인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빛, 소리, 촉각 등이 모두 다르다. 예컨대 눈앞에서 빛과 소리가 동시에 생긴 경우, 빛에는 0.17초 뒤에, 소리에는 0.13초 뒤에 반응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그래서 빛과 소리가 동시에 생기면, 소리가 먼저 들리기 쉽다.

 하지만 소리와 얼굴의 영상처럼 같은 데서 유래하는 소리와 빛의 경우, 동시라고 느끼기 쉽다. 사실 뇌는 다른 타이밍으로 생긴 두 정보라고 해도 같은 일이라고 파악하면 동시라고 인식해 버린다. 영화에서 더빙의 목소리나 효과음을 맞추듯이, 빛과 소리의 타이밍이 맞추어진 '편집된 영상'이 우리의 의식에 이르는 것이다.

5-2. 인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환경에 따라 바뀐다.

 빛과 소리는 눈과 귀를 통해 지각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빛이나 소리를 인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환경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그래서 뇌는 몇 초 늦추어 놓을지 항상 바꾼다. 또 이 인식한 정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환경의 빛의 대소, 소리의 강약 등에 따라서도 변한다.

 예컨대 '어두운 곳의 빛의 변화'와 '밝은 곳의 빛의 변화'에서는, 전자가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뇌는 밤에 생긴 빛과 소리에 대해 낮보다 타이밍이 크게 어긋나는 것을 수정한다. 청각은 약 0.05초, 촉각은 약 0.01초, 그리고 시각은 무려 0.3초 어긋나도 동시로 판단된다고 한다. 이처럼 동시로 간주되는 범위를 '동시성의 창'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주위의 일을 보고 들을 때 거기에는 '어느 빛과 소리를 결합할까?' 다시 말해, '무엇을 동시라고 간주하면 될까?'라는 뇌의 판단이 항상 작용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밝은 환경에서 손을 들며 '안녕!'이라고 외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 목소리보다 밝은 빛의 정보가 빨리 처리되었다. 이때 뇌에서는 서로 다른 타이밍에서 처리된 빛과 소리의 정보를 비교하고, 변화된 부분을 결합해 '동시'로 정한다. 편집이 끝난 이 영상이 우리 의식에 이르기 때문에 동시로 느껴진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어두운 환경에서, 손을 들며 '안녕!'이라고 외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목소리 쪽이 어두운 빛의 정보보다 먼저 처리되었지만, 동시로 느껴진다. 이처럼 뇌에서는 환경이 바뀔 때마다, 몇 초 어긋나 동시로 간주할지에 대해 미세 조정을 한다.

5-3. 동시인데, 어긋나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소리와 빛의 타이밍을 맞추는 뇌의 능력을 역이용해서, 동시의 시간을 마치 어긋난 것처럼 느끼도록 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실험에서는 소리를 빛보다 0.04초 먼저 발생하는 타이밍으로 빛과 소리를 피험자에게 몇 분 동안 들려준다. 그러면 피험자의 뇌에서는 소리가 먼저 인식되고, 뒤이어 약 0.04초의 미미한 시간차로 인식된다. 하지만 뇌는 그 어긋남을 조정해 동시에 느끼도록 편집한다. 이 상태가 몇 분 정도 계속되면, 뇌는 '지금 환경에서는 빛과 소리를 약 0.04초 차로 연결되면 동시가 된다.'는 버릇을 임시적으로 갖게 된다. 그다음에 소리를 빛보다 0.04초 늦게 내보자. 그러면 뇌는 몇 분 동안 적용되었던 '소리와 빛을 동시로 하려면 소리 정보를 0.04초 느리게 한다'는 규칙을 적용한다. 그러면 피험자는 소리와 빛이 어긋나 있다고 느낀다.

 뇌는 소리와 빛이 동시에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의 동시화 패턴에 따라 굳이 소리를 약 0.04초 느리게 하고 나서 의식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피험자에게는 빛이 소리보다 먼저 생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 이 새로운 시간 관계가 몇 분 계속되면, 뇌는 어긋남을 알아차리고 곧 소리와 빛이 동시에 느껴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뇌는 '동시(at the same time)'의 타이밍을 항상 조정해 나간다.

5-4. 푸른색 글자는 왜 움직였을까?

 당신이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다면, 아래의 '그림 1'을 크게 좌우로 움직여 보기 바란다. 검은 바탕에 흰 글자에 비해서 푸른색 글자만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 이유는 당신이 보고 있는 짙은 푸른색의 글자의 상이 주위의 영상에 비해 조금 더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을 좌우로 흔들면, 짙은 푸른색 글자만 느리게 움직여, 그림에 대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푸른색 글자는 왜 움직였을까? 이것도 빛이 인식되기까지의 시간차가 원인이다. 우리의 시각은 '흑과 백'처럼 '밝기가 크게 다른 것'을 볼 때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인식할 수 있다. 한편, '검은색과 어두운 푸른색'처럼 '비슷한 밝기로 된 것'은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림 1'을 좌우로 흔들면, 검은색 바탕에 짙은 푸른색 글자 부분만 의식되기까지 시간이 걸려, 주위에 비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림 1

6. 뇌의 여러 가지 편집

 우리의 뇌에서는 타이밍을 맞추는 작업 외에도 여러 가지 편집이 이루어진다. 시간 조정 외에 어떤 편집이 이루어질까?

6-1. 존재하지 않은 것이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빛을 1회 점멸시키고 소리를 1회 울리면, 피험자는 '1회 빛나고 1회 소리가 났다.'고 대답한다. 그다음에 똑같이 빛을 1회 점멸시키고 소리를 2회 울리면, 피험자는 '2회 빛나고 2회 소리가 났다.'고 대답한다. 또 피험자에 대해 빛의 점멸에 맞추어 짧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낸다고 하자. 이때 소리의 크기만 변화시키면, 피험자에게는 소리의 대소에 맞추어 빛의 명암도 바뀌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피험자의 뇌는 소리와 빛을 이치에 맞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2회째 점멸'이나 '빛의 명암 변화'를 만들어 내서 피험자에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6-2. 섬광 지연 효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실제와는 다른 위치에 보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이 현상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기까지 한다.

 피험자에게 디스플레이에 '재빨리 가로지르는 빨간색 점'의 영상을 보여준다. 빨간색 점이 화면 한가운데로 왔을 때, 그 바로 아래에 초록색 점을 순간적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초록색 점'이 나왔을 때 공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물으면, '공은 중앙을 지나친 위치에 있었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공이 주위에 비해 먼저 나아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착시 현상을 '섬광 지연 효과(Flash-Lag Effect)'라고 한다. 이처럼 시야의 일부에서는 '미래(future)'가 보이기도 한다.

섬광 지연 효과(Flash-Lag Effect)

 '섬광 지연 효과'는 축구 경기의 '오프사이드(off-side)' 판정에서, 자주 오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프사이드 판정에서 심판은 패스가 이루어진 순간 골문 가까이 있는 공격 팀 선수와 수비팀 선수의 위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공격수가 수비수보다 골라인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면 '오프사이드'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때 심판 눈에 '섬광 지연 효과'가 일어나기 쉽다. 달려드는 공격수가 실제보다 골라인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결과, 잘못이 없는데 반칙을 선언하는 경우가 있다. '섬광 지연 효과'에 의한 오심은 착시가 원인이기 때문에, 훈련을 하더라도 오심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6-3. 과거와 미래가 바뀌는 착시

 이번에는 '과거'와 '미래'가 바뀌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소개한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디스플레이 왼쪽에 1이라고 순간적으로 표시하고 그 0.01초 뒤에 오른쪽에 2라고 표시한다. 이때 피험자는 '1, 2의 차례로 보였다.'고 옳게 답한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디스플레이의 오른쪽을 순간적으로 밝게 한다. 그리고 0.1초 뒤에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왼쪽에 1, 그리고 그 0.01초 뒤 오른쪽에 2를 표시한다. 그러면 피험자는 놀랍게도 '2, 1의 차례로 보였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건인 1보다 미래의 사건인 2가 먼저 보였다는 것이다.

 이 현상에는 '주의(attention)'가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시야 안에서도 주의가 향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주위보다 빨리 인식할 수 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먼저 디스플레이 오른쪽을 순간적으로 밝게 함으로써, 피험자의 주의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효과가 그 뒤로도 이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표시된 오른쪽의 2가 왼쪽의 1보다 먼저 정보 처리되어, 2가 1보다 먼저 보였던 것이다. 주위의 사건 가운데 수상한 그림자 등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빨리 알아야 한다. 한정된 뇌의 능력으로 중요한 정보를 빨리 얻는 이 메커니즘은, 인류가 살아남는 데 합당한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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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뇌의 편집 작업 덕분에, 이치에 맞는 세계가 보인다.

 이처럼 '현실'은 '우리 의식에 생기는 세계'와 괴리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뇌가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편집해, 이치에 맞는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현실'과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두렵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긋난 타이밍으로 빛이나 소리를 인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치에 맞는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뇌의 편집 작업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