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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금요일'을 왜 불길하게 여길까?

SURPRISER - Tistory 2023. 1. 7. 21:12

 1970년 4월 11일, 미국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아폴로 13호(Apollo 13)'가 발사되었다. 아폴로 13호의 목표는 아폴로 11호처럼 달 표면에 착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을 향해 가는 도중 산소 탱크가 폭발하는 바람에 아폴로 13호는 지구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아폴로 13호는 지구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아폴로 13호'의 실패 후 사람들은 13이라는 숫자에 대해 다시 한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트리스카이데커포비아(Triskaidekaphobia)'라는 용어로 알려진 '13공포증'은 숫자 13을 불길하게 생각하는 미신이다. 마치 한자 문화권에서 숫자 4를 꺼리는 것처럼 말이다. 서양에서 13 공포증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도 뿌리내려 있다. 그러한 인식은 '건물의 층수', '방 번호', '비행기의 좌석 번호' 등에서 13을 사용하지 않거나, 운동선수들이 유니폼의 등번호에서 13번을 기피하는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13을 불길하게 생각하는 관습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그러면 13을 불길한 숫자로 보는 것은 미신은 왜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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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목차

  1. 예수의 최후의 만찬
  2. 템플 기사단
  3. '13일의 금요일'에 관한 구체적 기록은 19세기에 나타난다.
  4. 13에 대한 인식은 '이집트 신화'에서 시작되었다.
  5. 13번째 달은 불길하게 여겨졌다.

1. 예수의 최후의 만찬

 널리 알려진 13 공포증의 유래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12제자를 더한 수가 13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13번째 사람, 즉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공포증 미신이 등장한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일이 바로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을 아주 불길한 날로 여기는 미신의 유래도 예수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아래의 그림은 이탈리아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919)'가 1495년부터 1497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예수가 자신의 최후를 예언하는 말을 하고, 이를 들은 12명의 제자가 놀라는 장면을 묘사했다. 르네사스 전성기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성당에 그려져 있다.

최후의 만찬

2. 템플 기사단

 '13 공포증'의 유래로 알려진 사건이 또 하나 있다. '템플 기사단'의 파멸이다.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은 1119년쯤에 조직된 가톨릭 군사 조직으로, '템플 기사단'의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Poor Knights of Christ and of the Temple of Solomon)'이라는 소박하고 긴 이름이었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1307년 10월 13일의 금요일 새벽에 '템플 기사단'의 기사들을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템플 기사단의 기사들은 그 후로도 체포와 고문과 화형 등 큰 박해를 받았다 템플 기사단은 결국 1312년쯤에 해체되었다고 한다.

 14세기의 템플 기사단 사건은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드뤼옹(Maurice Druon, 1918~2009)'이 1955년에 발표한 '저주받은 왕들'이라는 역사 소설에서 언급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템플 기사단 이야기'는 미국의 유명 스릴러 작가 '댄 브라운(Daniel Gehard Brown, 1964~)'이 2003년에 발표한 소설 '다빈치 코드'를 통해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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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3일의 금요일'에 관한 구체적 기록은 19세기에 나타난다.

 '13공포증'과 '금요일 공포증'의 유래가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수난'이라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고 해서, '13일의 금요일 공포증'도 예수의 행적에서 유래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13일의 금요일에 관한 구체적 영문 기록은 19세기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헨리 에드워즈(Henry Sutherland Edwards, 1828~1906)'는 1869년에 '로시니의 삶'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로시니(Gioachino Antonio Rossini)'는 1868년 11월 13일에 사망한 이탈리아 작곡가다.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로시니'도 금요일이 불길한 날이며 13이 흉한 숫자라고 여겼다면, 그가 13일의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그 후 13일의 금요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13일의 금요일 공포증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작가 '토머스 로슨(Thomas William Lawson, 1857~1925)'은 1907년에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그 소설에서는 이기적인 한 증권 브로커가 '13 공포증'과 '금요일 공포증'을 이용해 13일의 금요일에 '월스트리트(Wall Street)'를 공황에 빠뜨린다. 13일의 금요일 공포증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1980년에 개봉한 미국의 공포영화 '13일의 금요일'이다. 이 영화는 그 후로도 여러 편 더 제작되어 세계인들의 마음속 깊숙이 13일의 금요일 공포증을 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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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3에 대한 인식은 '이집트 신화'에서 시작되었다.

 '미신(Superstition)'의 사전적 의미는 '과학적·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대부분의 미신처럼 '13 공포증'이나 '금요일 공포증' 또는 '13일의 금요일 공포증'도 명확한 근거나 유래를 찾기가 어렵다. 미신의 특성상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곳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지고 바뀌며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수난', '템플 기사단 이야기'도 이들 미신의 형성과 유행에 한목 서들 수는 있었겠지만 그 자체가 명확한 유래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있다. 숫자 13을 껄끄럽게 여기는 관습은 예수의 활동 시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다음의 옛 이집트 신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보자.

4-1. 태양신 '라' 이야기

 '라(Ra)'는 이집트의 태양의 신이자 세상을 다스리는 최고의 신이었다. 그런 '라'에게도 두려움은 있었는데, 그것은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라'는 '누트(Nut, 하늘의 여신)'가 '게브(Geb, 땅의 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다. '라'는 '하늘의 여신'과 '땅의 신'이 낳은 아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도 있을 거라면 걱정했다. '라'는 어떻게 해서든 누트가 아이를 낳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에 '라'는 크게 분노하며 '누트는 1년 360일의 어느 날에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라고 선포했다. 그때 이집트 달력의 1년은 360일이었다. 아이는 뱃속에 있는데, 어느 날에도 애를 낳을 수 없다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트'는 지혜의 신 '토트(Thoth)'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꾀가 많은 신인 '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년 360일 중 어느 날에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새로운 날을 만들어야 할 거요. 그건 해의 신 라와 달의 신 콘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내가 콘수를 만나 수를 내 보겠소."

 '콘수(Khonsu)'는 '라(Ra)'와 견줄 만큼 막강한 신이었다. 하루를 결정하는 것은 해이지만, 한 달을 결정하는 것은 달이지 않은가? 따라서 '라(Ra)'뿐만 아니라 '콘수(Khonsu)'도 날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었다. 토트는 콘수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콘수 님의 달빛은 라 님의 햇빛 못지않게 밝습니다. 그건 콘수 님이 라 님에게 견줄 만큼 위대한 신이라는 뜻이지요. 콘수님이 저에게 내기를 허락하신다면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기면 그저 달빛을 조금 주시면 됩니다. 제가 지면 콘수 님이 원하시는 걸 모두 들어드리지요." 토트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콘수'는 내기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무리 달의 신이라고 해도 지혜의 신 '토트'를 당할 수 없었다.

 번번이 내기에서 진 콘수는 닷새를 더 비출 수 있는 달빛을 내주었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아주 기뻐했다. 이제 1년 360일에 속하지 않는 날이 닷새가 더 생겼기 때문이다. '누트'는 닷새 동안 하루에 한 아이씩 모두 다섯 아이 '오시리스(Osiris)', '세트(Seth)', '이시스(Isis)', '네프티스(Nephthys)', '호루스(Horus the Elder)'를 무사히 낳았다. 그러자 '라'는 자신을 농락한 '누트'가 아주 괘씸했다. 그래서 '누트'와 '게브'가 영원히 만날 수 없도록 떼어놓기로 했다. '라'는 '누트'의 아버지이자 대기의 신인 '슈(Shu)'에게 명령했다. '슈'는 땅에 발을 딛고 두 손으로 하늘을 받쳐 '누트'와 '게브'를 갈라놓았다.

 아래는 기원전 10세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슈(대기)'는 '누트(하늘)'와 '게브(땅)'을 갈라놓고 있다. 그림의 가운데에서, 하늘을 들어 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이 대기의 신 '슈(Shu)'이다. 한편, 발가락 끝과 손가락 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 모습을 한 것은 하늘의 신 '누트(Nut)'이다. 그림 아래쪽에서 허리를 대고 누운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은 땅의 신 '게브(Geb)'이다.

'누트(하늘)'과 '게브(땅)'을 갈라놓는 '슈(대기)'

6. 13번째 달은 불길하게 여겨졌다.

 나일강 삼각주에서 농사를 짓고 살기 전의 옛 이집트 사람들은 1년을 360일로 정한 달력을 사용했다. 1년은 12달로 이루어져 있고 1달에는 각각 30일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이 달력의 1년은 실제의 1년보다 5.25일이 부족했다.

 옛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범람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나일강은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범람하면서 강바닥의 비옥한 토양을 농토에 뿌려 주었다. 범람에 따른 피해를 막고 풍성한 곡물을 거두려면,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런데 1년 360일 달력은 나일강의 범람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1년에 5일씩 날짜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날짜의 어긋남은 6년이면 무려 1달, 즉 30일이나 되었다. 나일강 삼각주에서 농사를 지면서 옛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좀 더 정확한 달력이 필요했다. 1년이 365일인 달력 말이다. 누트의 출산 신화는 옛 이집트 사람들이 360일에 5일의 '우수리 날(윤일)'을 더해 좀 더 정확한 달력을 만들었다는 신화 형식의 역사 기록이다.

 현대 달력에서는 1년 365일을 1달에 28에서 31일씩 12달에 적당히 배분한다. 하지만 옛 이집트 사람들은 그런 방식을 꺼려 했다. 그 대신에 5일의 우수리 날을 1년의 마지막 날과 이듬해의 첫날 사이에 끼워 13번째 달로 정하고 '에파고메나(Epagomena)'라고 불렀다. 1년을 12달로 나눈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당연히 여러 문화권에서 숫자 12는 완전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 12신', '동양의 12지신'은 물론 '이스라엘의 12지파', '예수의 12제자'도 모두 12에서 유래한다.

 30일로 이루어진 1달이 12개가 모여 만들어진 달력, 옛 이집트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신의 의지가 담긴 완전한 달력이라고 여겼다. 현실적 이유로 우수리 날 5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옛 이집트 사람들에게 '에파고메나(Epagmena)'는 12의 완전함을 깨는 불완전한 달이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축제와 제사를 지내며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13번째 달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13 공포증', '금요일 공포증', '13일의 금요일 공포증'은 이처럼 완전한 달력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옛사람들의 오랜 여정에서 부작용으로 나타난 미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