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뇌과학 (Brain Science)

'사고 실험'으로 뇌의 작동 방식 추론해보기

SURPRISER - Tistory 2022. 9. 18. 07:11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인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몇 가지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해보자.

0. 목차

  1. 우리의 기억은 순차적이다
  2. 우리의 뇌는 패턴을 인지하고 저장한다.
  3.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한다.
  4. 우리의 뇌는 계층적으로 기억하고 인지한다.

1. 우리의 기억은 순차적이다.

 일단 알파벳을 소리 내 암송해 보자. 이것은 어렸을 적부터 해온 일이기에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알파벳을 거꾸로 암송해 보자. 알파벳을 일부로 거꾸로 외워본 적이 없다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알파벳을 벽에 붙여놓은 교실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시각 기억'을 떠올린 다음 그것을 거꾸로 읽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지 전체를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알파벳을 거꾸로 외우는 것은 매우 단순한 임무다. 이미 외운 정보를 그대로 순서만 바꿔서 출력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소리내서 암송해 보자. 기억한다면 그것을 거꾸로 암송할 수 있는가? '학교종이 땡땡땡' 노래를 거꾸로 부를 수 있는가? 컴퓨터는 이 임무를 아주 쉽게 해낸다. 하지만 일부로 거꾸로 암기하지 않는 한, 인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의 기억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물론 정보를 글로 써놓은 다음 그것을 거꾸로 읽는다면,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구와 문자를 활용하여 생각의 한계를 보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문자는 매우 기초적인 도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구를 발명한 이유다. 도구는 우리 뇌의 단점을 보완해 준다.

 중간부터 기억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곡을 피아노로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대개 곡 중간 임의적인 지점부터 곧바로 시작하지 못한다. 물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몇몇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는 순차적 기억의 첫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구획 안에 있는 임의의 지점에서 시작하려고 하면, 순차적 기억이 그곳을 찾아낼 때까지 머릿속으로 악보를 그려야 한다.

 여기서 발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순차적이며 그 순서는 정해져 있다. 우리는 입력된 순서대로만 출력할 수 있으며, 기억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지 못한다.

1-1. 알 수 없는 자극에 의해 무언가 떠오를 수 있다.

 수년 전에 경험한 일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개 이런 기억은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경험일 것이다. 어쨋든, 잠재해있던 기억을 촉발한 자극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촉발된 생각의 꼬리가 결국 명백하고,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다다른 것이다 그전에는 그 기억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끈을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표현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억을 촉발한 자극은 대개 빠르게 잊히고, 따라서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샤워를 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떨 때는 그 기억이 어떤 자극으로 인해 갑자기 떠올랐는지 인식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비 오는 날 있었던 일이 떠오르는 것처럼 연관성이 있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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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의 뇌는 패턴을 인지하고 저장한다.

 이번에는 어제 나갔던 산책을 떠올려보자. 꼭 어제가 아니라도 상관없고 산책을 운전으로 바꿔도 좋다. 어쨌든 최근에 외출했던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했던 행위를 떠올려보자. 대부분 이러한 경험에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산책길에서 다섯 번째로 마주친 사람은 누구였는가? 단풍나무를 보았는가? 사거리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롯데리아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몇 가지 단서를 떠올려 이 질문에 답을 하나하나 되짚어낸다고 하더라도, 자세한 것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방금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구체적인 기억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기억한다고 해도 매우 적은 것만 떠오를 것이다.

 사실 '의식(Consciousness)'은 '기억(Memory)'과 다르지 않다. 마취하면 의식을 잃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산책하면서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산책을 하는 동안 '의식(Consciousness)'이 없었다는 의미일까?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심지어 산책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타당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산책에서 기억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자기 스타일의 매력적이 여성을 봤다면 기억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하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여자 사진 여러 장을 보여주며 뽑아보라고 한다면 그중에서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은 내 기억 속에 그녀의 외모에 대한 어떤 것이 남아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시각화하지 못할 뿐이다. 즉, 이것은 내 마음속에 이 사건을 기록한 사진이나 비디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경험에 관해 머릿 속에 존재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이번에는 한두 번 만났던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들을 분명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가? 화가처럼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연히 마주친 사람을 제대로 그리거나 시각화하지 못한다. 물론 몇 개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중에서 그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발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뇌에는 이미지, 비디오, 소리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장치가 없다. 우리 기억은 패턴의 나열로 저장되며, 자주 접근하지 않는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그래서 경찰은 몽타주를 작성할 때, 목격자에게 '범인의 눈썹은 어떻게 생겼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여러 개의 눈썹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것이다. 목격자의 기억 속에 저장된 패턴에 맞는 눈썹을 보는 순간, 잠재해있던 기억이 다시 튀어나오는 것이다.

2-1. 정보가 일부 왜곡되거나 손실되더라도 패턴을 명확하게 감지해 낸다.

 아래의 그림을 알아볼 수 있는가? 부분적으로 지워지거나 왜곡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진이 '블랙핑크(BLACKPINK)'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지능력의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정보의 일부분만 인지하거나 정보가 일부분 변형되더라도, 우리의 인지 능력은 패턴의 특징을 명확하게 감지해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무수한 변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캐러커처(Caricature)'나 인상주의 그림과 같은 특정한 형태의 명백한 왜곡이 일어나도 그 이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이유 역시, 패턴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인간의 인지 시스템을 활용해 왔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마찬가지여서, 몇 음절만 듣고도 전체 멜로디를 인지해낼 수 있다.

블랙핑크(BLACKPINK)

2-2. 의식적인 인지 경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어떻게 보이는가? 이 이미지는 '토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오리'로 해석될 수도 있다. 튀어나온 부분이 토끼의 귀로 해석될 수도 있고, 오리의 부리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둘 중 하나로만 인지될 확률이 높지만,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다른 해석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 해석에 고정되어버리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힘들어진다. 이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 뇌가 경험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즉, 우리의 의식적인 인지 경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오리-토끼 착시

3.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한다.

 "우리는 __ 싶은 것을 본다." 여기까지 글을 읽던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쉽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빈칸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냥 자신이 기대했던 내용을 확인하고는 바로 넘어갔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앞으로 무엇을 경험할지 가정한다. 이러한 기대는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사실 우리 뇌의 주요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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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의 뇌는 계층적으로 기억하고 인지한다.

 셔츠를 입는 것처럼 틀에 박힌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동안, 우리의 행동은 어느 정도까지 같은 단계를 반복할까? 우리는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할 때 어떤 행동이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행동하는 과정은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셔츠를 입는 나의 행동이 언제나 똑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조금 다른 스타일의 셔츠를 입을 때에도 다른 셔츠를 입을 때와 똑같은 순서로 행동하고, 마지막에 새로운 임무 하나만 덧붙이는 식이다.

 이러한 행동 단계의 리스트는 우리 마음속에 계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을 자러 가기 전에 반드시 이를 닦으러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이 행동은 다시 작은 단계로 쪼갤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화장실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칫솔에 치약을 짜는 것이다. 칫솔에 치약을 짜는 단계는 더 세부적인 단계로 쪼갤 수 있다. 일단 치약을 들어야 하고, 뚜껑을 열어야 하고, 칫솔을 들고, 치약의 몸통을 짜 누르고, 치약 뚜껑을 다시 닫아야 한다. 치약의 몸통을 누르는 과정도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적절한 양의 치약을 짜내기 위해, 치약 몸통의 두툼한 부분을 찾아야 하고, 치양 몸통을 압력을 조절해 적절한 양만 짜내야 한다. 이처럼 행동을 계속 세분화하는 것은 매우 미세한 운동까지 계속해서 분할할 수 있다. 결국 잠자기 전에 하는 행동은 수천가지의 작은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 했던 산책에서 본 사소한 것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에 하는 이 무수한 단계의 행동 리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게다가 이러한 행동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전혀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수천 단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긴 리스트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적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계층을 활용한 패턴인식은 '행동'뿐만 아니라 '인지'에도 적용된다.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떄도, 우리는 얼굴 안에 눈, 코, 입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계층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패턴을 무한하게 재활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눈, 코, 입 같은 개념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대상이나 상황을 인식할 때 우리는 길게 나열된 리스트가 아니라, 정교하게 포개어진 계층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