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모형'은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뇌과학의 역사에서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새로운 '두뇌 모형(Brain Model)'이 등장했다. '두뇌 모형'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0. 목차
- 호문쿨루스 두뇌 모형
- 기계장치 두뇌 모형
- 증기기관 두뇌 모형
- 전화교환기와 같은 두뇌 모형
- 컴퓨터 두뇌 모형
- 인터넷 두뇌 모형
- 주식회사 두뇌 모형
1. 호문쿨루스 두뇌 모형
최초의 두뇌 모형은 아마도 '호문쿨루스(Homunculus)'일 것이다. '호문쿨루스'는 '뇌 속에 살면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작은 인간'을 뜻하는데, 인간의 몸 안에 인간이 또 있으면 그 작은 인간의 뇌를 또 문제 삼아야 함으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뇌과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기계장치 두뇌 모형
단순한 역학적 기계장치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인간의 두뇌를 '바퀴와 기어로 이루어진 시계 같은 기계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비롯한 과학자와 발명가들은 역학적 장치로 작동하는 인조인간을 설계하기도 했다.
3. 증기기관 두뇌 모형
1800년대 말에는 증기기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증기기관 두뇌 모형'이 제시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모형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두뇌 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는 인간의 내면에 '에고'와 '이드(id)', '슈퍼에고(superego)'라는 세 가지 힘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에고(ego)'는 '이성적 자아'를 말하고, '이드(id)'는 '억눌린 욕망'를 말하고, '슈퍼에고(superego)'는 양심을 '관장하는 초자아'이다. 또 이들이 서로 충돌하여 심리적 압박이 커지면 뇌 기능이 저하되거나 시스템 전체가 와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모형은 매우 정교하면서 독창적이지만, 뉴런 단위의 자세한 분석이 없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 프로이트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게다가 이 분석은 거의 100년 이상 걸리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4. 전화교환기와 같은 두뇌 모형
20세기 초에는 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전화교환기와 비슷한 두뇌 모형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두뇌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연결된 일종의 전화망아며, 인간의 의식은 거대한 계기판 앞에 일렬로 앉아 전화선을 연결하거나 차단하는 교환원 무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두뇌 모형으로는 여러 메시지가 두뇌 안에서 하나로 종합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5. 컴퓨터 두뇌 모형
그 후 트랜지스터가 최신 발명품으로 떠오르자, 컴퓨터에 기초한 두뇌 모형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컴퓨터 두뇌 모형'에서 '구식 개폐소(송전선을 연결하거나 끊는 장치)'는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박힌 마이크로 칩으로 대치되었으며, '인간의 마음'은 트랜지스터 역할을 하는 두뇌 조직인 '웨트웨어(wetware)'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하지만 '컴퓨터 두뇌 모형'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두뇌에서 진행되는 모든 연산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려면, 컴퓨터 크기가 도시 하나와 비슷해야 한다. 게다가 두뇌에는 프로그램도, 'CPU(중앙처리장치)'도 없고, MAC OS 같은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도 없다.
최신 CPU가 탑재된 개인용 컴퓨터는 연산속도가 매우 빠르긴 하지만, 모든 연산이 하나의 프로세서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병목현상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이것과 정반대다. 개개의 뉴런이 활성화되는 속도는 느리지만, 1000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작동하므로 병렬처리가 가능하다. 병렬처리 프로세서는 속도가 느려도 빠른 프로세서 하나보다 나을 수 있다.
6. 인터넷 두뇌 모형
수십억 개의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한 '인터넷 두뇌 모형'도 나왔다. '인터넷 두뇌 모형'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수십억 개의 뉴런이 하나로 종합되어 나타나는 기적 같은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혼돈 이론(Chaos Theory)'를 도입하여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7. 주식회사 두뇌 모형
지금까지 언급한 두뇌 모형들은 각기 부분적으로 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어떤 이론도 두뇌의 복잡성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에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두뇌를 거대한 주식회사에 비유한 모형을 제시하였다. 이 모형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에는 거대한 관료체계와 일련의 지휘계통이 존재하며, 방대한 정보들이 수많은 사무실 사이에서 수시로 교환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는 최종 결정권자인 CEO의 지시에 따라 처리된다.
7-1. 대부분의 정보는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정보는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다. 즉, CEO는 주식회사 안에서 유통되는 복잡다단한 정보를 모두 알 필요가 없다. 실제로 CEO의 책상 앞에 배달되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이며, CEO가 집무 역할을 하는 곳은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일 것으로 추정된다. CEO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혀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진화의 산물일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 지나치게 많은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울 것이고, 오랜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보 대부분을 잠재의식에서 처리하도록 진화해왔을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매 순간 수조 회의 연산을 수행하고 있지만, 다행히 의식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숲속에서 호랑이와 마주쳤을 대 자신의 위장이나 발가락, 머리카락 상태까지 일일이 감지할 필요는 없다. 이럴 때는 그저 '도망가야 산다.'라는 사실만 알면 충분하다.
7-2. '감정'이란 하위부서에서 속성으로 내리는 결정이다.
이성적 사고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비상시에 가동하기에 부적절하다. 이때는 하위부서에서 상황을 빨리 판단하여 CEO나 중간 임원의 결재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상책인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감정(emotion)'이다. 즉 '감정(두려움, 분노, 공포 등)'은 하위부서에서 들어 올리는 '경고용 적색 깃발'로서, 진화를 통해 얻은 능력이다. 우리는 감정을 발휘할 때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예컨대 많은 청충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뛰어난 과학 저술가 '리타 카터(Rita Carter)'는 자신의 저서 '뇌 맵핑마인드(Mapping the Mind)'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감정은 느낌이 아니라 육체에 기반을 둔 생존본능으로, 즉각적인 위험을 피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7-3. 모든 생각은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두뇌에서 내리는 결정은 하나의 프로세서를 통해 이루어지지 는다. 실제로는 지휘본부 안에 있는 다양한 지부들이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매끄럽고 연속적인 사고'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부서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온갖 불협화음이 양산되는 중이다. 모든 결정을 연속적으로 내리는 '나(I)'라는 존재감은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이며, 정보를 매끄럽게 처리하며 나름대로 타당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뇌 스캔을 통해 나타난 영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Heart)'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 개인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음의 집합체에 가깝다. 마음에는 다양한 하부구조가 존재하며, 각 구조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러면 이 복잡한 체계 안에서 어떻게 생각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의식이란 뇌 안에서 휘몰아치는 폭풍과 비슷하다. 보통 사람들은 '나(I)'라는 존재가 두뇌의 통제실에 앉아 모든 장면을 스캔하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겠하지만, 이 모든 느낌은 사실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은 뇌 전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사건의 소용돌이이며, 이 사건들은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큰 소리로 외치면, 두뇌는 거기에 합리적인 해석을 내림과 동시에 '하나의 자아가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7-4. 최종 결정은 지휘본부에서 CEO가 내린다.
두뇌 관료체제의 목적은 정보를 수집하고 조합하여 CEO에게 보고하는 것이며, CEO는 각 부서의 책임자하고만 접촉한다. 또한 CEO는 중앙 통제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가운데, 서로 상충하는 것들을 적절히 조정하여 딜레마를 피한다. 바로 여기가 두뇌의 최종 결정기관이며, 더 이상의 상부구조는 없다. 즉, '전전두피질'에 있는 CEO가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만, 유독 인간만은 다양한 정보 덩어리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변형한 후 더 고차원적인 결정을 내린다.
7-5. 정보의 흐름은 계층적이다.
'CEO에게 전달되는 정보'와 'CEO가 각 부서로 하달하는 정보'는 너무 방대해서 여러 분기점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형태를 취해야 한다. 즉, 인간의 두뇌는 중앙통제실이 맨 꼭대기에 있는 나무와 비슷하며, 아래로 갈수록 많은 분기점이 나타난다.
물론 '관료체제'와 '인간의 사고'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관료체제의 제1계명은 '체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도록 가능한 한 모든 공간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운영되어야 하므로, 에너지를 낭비할 여력이 없다. 우리의 두뇌는 20W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며, 이 값은 몸이 고장나지 않는 한 절대 증가하지 않는다. 만약 뇌에서 이보다 많은 열이 발생한다면, 뇌조직이 손상되어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두뇌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름길'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뇌는 긴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절차를 무시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장치'를 다양하게 개발해왔다. 물론 우리는 이런 장치가 가동되고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