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을 발견하는 방법
이론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순간 이동(Teleportation)'이나 '타임머신(Time Machine)'을 원리적으로 가능케 하는 '웜홀(Wormhole)'의 존재를 예언한다. '웜홀'이란 '벌레 먹은 구멍'이라는 의미이다. 사과를 관통하는 벌레 먹은 구멍이 있다면, 벌레는 표면을 타고 가기보다는 구멍을 통과해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론 물리학에서 다루는 웜홀은 공간적으로 떨어진 두 지점을 연결하는 샛길 내지는 터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웜홀이 실제로 존재할까? 그리고 웜홀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웜홀을 발견할 방법이 있을까?
일본 '나고야 대학교(Nagoya University)'의 '아베 후미오(阿部文雄)' 부교수는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웜홀을 망원경으로 발견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논문은 천문 학술지 'Astrolgical Journal' 2010년 12월 10호에 소개되었다. 이론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던 웜홀이 천문학의 대상으로 '승격'된 것이다. 과연 웜홀이란 무엇이고, '웜홀을 발견하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0. 목차
- '웜홀'은 '칼 세이건'의 SF 소설을 계기로 고안되었다.
- Exotic Matter은 존재하는가?
- 웜홀이 만들어내는 천문 현상은 알려져 있지 않다.
-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로 보이지 않는 천체를 찾을 수 있다.
- 기존의 관측 데이터에 웜홀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 약 4년간의 관측 데이터를 조사해 보았지만 웜홀의 흔적을 발견하진 못했다.
- 웜홀의 존재량에 제한을 두게 되었다.
1. '웜홀'은 '칼 세이건'의 SF 소설을 계기로 고안되었다.
웜홀의 존재를 예언한 사람은 '아인슈타인'과 그의 공동 연구자인 '네이선 로젠(Nathan Rosen, 1909~1995)'이었다. 그래서 '웜홀'은 '아인슈타인-로젠의 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당초에 알려진 이런 웜홀은 존재한다고 해도 바로 '찌부러져' 블랙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웜홀은 존재하더라도,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킵 손(Kip Thorne)' 박사 등이 '통과할 수 있는 웜홀'을 실현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밝혔다. 손 박사 등은 논문에서 웜홀을 사용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음을 제시했기 때문에, 당시 매스컴에서도 이 내용을 크게 다뤘었다.
'킵 손' 박사의 저서 '블랙홀과 시공의 휘어짐'에 따르면,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친구인 천문학자 '칼세이컨(Carl Sagan, 1934~1996)'이 소설 설정에 관해 상담을 요청한 일이었다고 한다. 칼 세이건 박사는 SF 소설 '콘택트(Contact)'를 집필 중에, 지구에서 26광년 떨어진 항성 '베가(Vega)' 근처까지 순식간에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킵 손' 박사와 논의했다. 그래서 '킵 손' 박사가 생각한 것이 '통과할 수 있는 웜홀'이었다. 손 박사는 웜홀이 찌부러지지 않도록 '이그조틱 물질(exotic matter)'로 보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그조틱 물질(exotic matter)'이란 '음(-)'의 에너지를 가지며, 공간을 확장하는 반중력적인 작용을 갖는 이론상의 물질을 가리킨다.
2. Exotic Matter은 존재하는가?
인간이 통과할 수 있는 웜홀이 보강할 수 있는 '이그조틱 물질(Exotic Matter)'이 실제로 우주에 존재하는지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로서 'Exotic Matter'은 어디까지나 웜홀을 통과할 수 있게 하려고 이론상 도입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Exotic Matter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는 것이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주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1930년 무렵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반중력 작용을 하는 '암흑 에너지'가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우주 팽창이 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암흑 에너지'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Exotic Matter과 같은 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이론적인 예측도 있다. 다만 '암흑 에너지'가 Exotic Matter이라고 하더라도, 암흑 에너지를 웜홀을 보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3. 웜홀이 만들어내는 천문 현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블랙홀(Black Hole)'은 태양보다 25배 이상 무거운 항성이 생애의 마지막에 '초신성 폭발(supernova explosion)'을 일으킨 다음, 중심에 남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항성의 중심부가 자신의 중력으로 단숨에 수축된 결과, 블랙홀이 생긴다. 한편, 현재의 우주에서 웜홀을 자연적으로 만들어 내는 천문 현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우주가 탄생한 '빅뱅(Big Bang)' 때, 웜홀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물리학자들도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지금의 우주에도 웜홀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웜홀이 정말로 우주에 존재하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관측을 통해 그것을 검증하려는 과학적 태도는 중요하다. 그리고 만약 관측을 통해 웜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도, 웜홀의 우주에서의 존재량에 제한을 둘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웜홀의 관측에 실패하더라도, 예컨대 웜홀의 '밀도의 상한값' 등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로 보이지 않는 천체를 찾을 수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물체' 옆에는 그 중력에 의해 빛의 진행 방향도 휘어진다. 아주 먼 우주에 천체 A가 있고, 지구와 천체 A 사이에 다른 천체 B가 있다고 하자. 이때, 천체 A에서 오는 빛은 천체 B의 영향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천체 A의 상이 휘어지거나 분열되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중력 렌즈 효과(Gravitatinonal Lens Effect)'라고 하며, 이 경우 천체 B를 '렌즈 천체'라고 한다.
'렌즈 천체'가 가벼운 경우에는 뒤쪽에 있는 천체의 상이 휘어지거나 분열될 정도는 아니지만, 렌즈 천체가 볼록렌즈처럼 빛을 모아 멀리 있는 천체의 밝기가 증가되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Gravitational Micro Lens Effect)'이다. 지구와 멀리 있는 천체 사이를 '렌즈 천체'가 통과하면, 멀리 있는 천체는 일단 밝아졌다가 원래의 밝기로 돌아간다. 렌즈 천체 자신이 어두워서 관측할 수 없어도, 이런 관측 데이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렌츠 천체'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아베 후미오(阿部文雄)' 부교수의 원래 전문 분야는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Gravitational Micro Lens Effect)'를 이용한 태양계 밖의 행성 탐색 등이었다고 한다. '아베 후미오' 부교수는 이런 방법을 써서, 어두워서 직접 관측하기 어려운 태양계 밖의 행성들을 탐색해 왔다.
5. 기존의 관측 데이터에 웜홀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일본 나고야 대학의 '아베 후미오(阿部文雄)' 부교수가 고안한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웜홀을 망원경으로 발견하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아베 후미오' 부교수는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Gravitational Micro Lens Effect)'를 사용해 어떤 재미있는 관측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관련 논문을 조사해 보다가, '엘리스 웜홀(Ellis Wormhole)'이라는 종류의 웜홀 옆에서 빛이 어떻게 휘어지는지에 대해 설명한 논문을 발견했다. '아베 후미오' 부교수는 이 연구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보통의 '렌즈 천체'가 일으키는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와 웜홀이 일으키는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를 구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보통의 천체'가 일으키는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는 항상 멀리 있는 천체를 밝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반면 '웜홀'의 경우, 지구 및 멀리 있는 천체와의 위치 관계에 따라 멀리 있는 천체가 원래 밝기보다 어둡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웜홀이 원래보다 어둡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웜홀에 가까운 빛은 크게 휘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력 마이크로 렌즈 효과'에 의한 별의 밝기 변화를 자세히 조사하면 '웜홀'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천체'와 '웜홀'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웜홀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6. 약 4년간의 관측 데이터를 조사해 보았지만 웜홀의 흔적을 발견하진 못했다.
'아베 후미오(阿部文雄)' 부교수는 일본과 뉴질랜드의 공동 관측인 MOA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MOA 그룹에서는 은하 주변의 '헤일로(Halo)'에 있는 '거의 빛을 내지 않는 천체'를 찾기 위해, '대마젤란은하(LMC: Large Magellanic Cloud)'와 '소마젤란은하(SMC: Small Magellanic Cloud)'를 관측하고 있다. 약 4년 정도의 관측 데이터에서 웜홀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그럴 만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관측을 계속해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해석이 진행될 예정이다.
7. 웜홀의 존재량에 제한을 두게 되었다.
일본 교토 대학 기초물리학연구소(당시)의 류철문 박사 등은 웜홀의 '중력 렌즈 효과(Gravitatinonal Lens Effect)'에 의해, 우주 먼 곳에서 생기는 '감마선 폭발(Gamma-ray burst)'의 스펙트럼에 휘어짐이 생기는 현상인 '펨토 렌즈(Femto Lens)'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형상은 관측되지 않았다. 따라서 1cm 정도로 작은 웜홀이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일본 '히로사키 대학(Hirosaki University)'의 '다카하시 류이치' 교수 등은 만약 수십 광년~수만 광년 정도의 거대한 웜홀이 존재한다면, 먼 은하의 모양에 비정상적인 '다중상(多重像)'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비정상적인 다중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거대한 웜홀의 존재량에 제한을 두게 되었다.
대략 정리하여 말하자면, 1cm 정도의 웜홀이 있었다고 해도, 명왕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의 10배 반지름 안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또 은하와 같은 정도의 크기의 웜홀이 있었다고 해도, 은하와 은하 사이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따라서 웜홀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좀처럼 눈에 띄지는 않을 것이다.
웜홀이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음이 알려지자, 새로운 검증 방법도 차례차례 제안되었다. 제안된 방법 중에는 '중력 렌즈 효과에 의해 생기는 외관상 별의 위치 차이나 상의 휘어짐을 이용하는 방법', '웜홀의 바로 옆을 통과하는 빛이 웜홀 주변을 회전함으로써 생기는 다중 고리를 관측하는 방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