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벳의 '자유 의지 실험' - 자유 의지는 환상인가?
어떤 행동을 할 타이밍을 노리다가 드디어 결심을 하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결심한 주체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의 행동'은 '나의 의지'에서 나왔다는 생각은 너무 당연하게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0. 목차
- 리벳의 '자유 의지 실험'
- 리벳 박사의 실험 이후
- 결론
1. 리벳의 '자유 의지 실험'
일부 연구자들은 '자유 의지(Free Will)'의 존재에 의심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 1916~2007)' 박사는 1983년에 동료들과 '자유 의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피험자가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타이밍으로 손가락 또는 손목을 움직이고, 그 전후의 뇌 활동을 기록하는 실험이다. 이들은 '뇌전도(EGG: Electroencephalogram)' 검사를 통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시계를 보도록 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는 동안에 손가락을 움직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실험 결과, 실험 참여자들이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버튼을 누르기 300~500ms 전에 손가락의 움직임과 관련된 뇌파가 나타났다. 피험자가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결정하기 전에, 뇌는 손가락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험자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려고 생각한 시각'을 '①', '뇌에서 운동의 지령 신호가 발생한 시각'을 '②', '실제로 손가락이 움직인 시각'을 '③'이라고 하자. 그러면 직감적으로는 ①→②→③의 순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②→①→③ 순서였다.
1-1. '자유 의지'는 없는가?
운동의 지령 신호는 피험자가 의지 결정한 시각의 약 0.35초 전에 발생했다. 피험자 본인이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결정한 순간보다 전에, 이미 뇌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준비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뇌 과학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을 불러왔다. 실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유 의지(Free Will)'의 존재가 부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실험 결과가 오히려 당연하다'는 견해도 있다.
만약 피험자의 의지 결정이 먼저 발생하고, 그에 따라 뇌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최초의 의지 결정을 내린 것은 '뇌(Brain)'가 아닌 셈이다. 그러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의지 결정이 최초에 있었다고 하면, 의지 결정은 뇌 활동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뇌와는 독립해서 존재하는 '정신(mind)'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생각인 '이원론(Dualism)'으로 이어진다. 오히려 직관적으로 더 받아들이고 싶어지는 '정신(mind)'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2. 리벳 박사의 실험 이후
이후에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 박사의 실험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으며, 리벳의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자유 의지'의 존재에 대해 여러 견해가 나왔지만,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이런 논란과 더불어, 리벳 박사의 실험과 비슷한 실험들도 많이 보고되었다.
2-1. 2002년 '대니얼 웨그너'의 주장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Daniel Merton Wgner, 1948~)'는 2002년에 발표된 저서 '의식적 의지의 착각(Illusion of Conscious Will)'을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의 의식과 의지는 마음과 뇌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며, 이러한 착각은 자신을 이해하고 책임감을 지각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또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조작(Manipulation)'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을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의식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직결되지 않으며, 이와 관련된 사례는 '점화(Priming)'을 사용한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1-1. 점화 효과(Priming Effect)
실제로 '사회 심리학(Social Psychology)'에서 수행되는 다수의 '점화 효과' 연구에서는,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과 무관한 외부적인 단서나 자극이 개인의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결과들을 보고하고 있다. '점화 효과(Priming Effect)'란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처리에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점화(Prime)'란 정보 처리 과정에서의 '예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로 사전 정보를 이용함으로써 자극의 탐지나 확인 능력이 촉진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사회심리학자 '존 바그(John A. Bargh, 1955)'와 그의 동료 '마크 첸(Mark Chen)', '라라 버로즈(Lara Burrows)'가 1996년에 발표한 한 실험에 의하면,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통한 '노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활성화'가 사람의 걸음걸이의 속도를 느리도록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존 바그'와 그의 동료들은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의 재학생들에게 다섯 단어를 조합해서 네 단어로 된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한 집단의 학생들은 '근심하는, 늙은, 회색의, 감삭적인, 현명한, 은퇴한, 주름진, 빙고게임' 등 노인을 묘사하는 단어 묶음을 받았다. 이 집단이 실험을 마친 뒤, 연구원들은 학생들이 복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몰래 측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노인을 묘사하는 단어로 문장을 만든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훨씬 더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이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어가 '노인'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했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걷는다'는 개념을 행동에도 적용한 것이다.
2-1-2. 책임 소재에 대한 감정
또 '아드리안 노스(Adrian C. North)', '데이비드 J. 하그리브(David J Hargreaves, 1948~)', '제니퍼 맥켄드릭(Jennifer McKendrick)'가 1999년에 발표한 공동 연구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와인 매장에서 울려 퍼지는 배경 음악이, 소비자의 와인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독일 음악을 틀었을 때는 독일 와인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고, 프랑스 음악을 틀었을 때는 프랑스 와인을 구매하는 행동이 증가함을 발견했다. 이 실험에서 구매자들에게 실험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 매장의 배경 음악이 와인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배경 음악이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부인하고, 오로지 자신의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으로 구매했다고 대답했다.
'대니얼 웨그너(Daniel Merton Wgner)'는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인 의지로 한다.'는 착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책임 소재에 대한 감정(emotion of authorship)'이라고 명명했다.
2-2. 2008년 '존 딜런 하네스'의 실험
2008년, 독일 베를린의 신경과학자 '존딜런 헤인즈(John Dylan Haynes, 1971~)'는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활용하여, 14명의 실험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리벳과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왼쪽 또는 오른쪽 버튼을 누르기 무려 10초 전에, 의사 결정과 관련된 '전전두엽(Prfrontal Cortex)'과 '두정엽(Parietal Lobe)'의 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러한 뇌 활성화를 통해, 실험 참여자가 왼쪽을 누를지 오른쪽 버튼을 누를지를, 약 60%의 확률로 예측할 수도 있었다.
2-3. 2011년 '이자크 프라이드' 등의 실험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의 '이자크 프라이드(Itzack Fried)', '로이 무카멜(Roy Mukamel)', '가브리엘 크레이먼(Gabriel Kreiman)'이 환자들의 뇌에 전극을 직접 이식함으로써 뇌 활성화를 측정했다. 이들의 실험에서도 환자가 버튼을 누르기 약 1초 전에 뇌 활성화가 확인되었고, 어느 버튼을 누를지를 약 80% 확률로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신경과학적 연구들은, '인간의 의식적인 선택'이 뇌로부터 통보받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3. 결론
'자유 의지(Free Will)'의 존재의 논쟁을 뒤로하고서라도,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뇌가 활동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의식은 우리의 행동이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사고, 행동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점검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오감(Five Senses)'의 정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현재'보다 조금 느려진다. 한편, 뇌는 우리가 의식하기 전에 결심을 향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는 느낌은 어쩌면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환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