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기원
오늘날 '공포(Horror)'는 '공포영화'에서부터 '지정학(Geopolitics)'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 숨어 있다. '공포(Horror)'라는 단어는 '직립하다(Stand on end)' 또는 '털이 곤두서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horrere'에서 왔다. 이 단어는 '메리 셸리(Mary Shelly)'의 1818년작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과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1820년작 '슬리피 할로우(Sleepy Hollow)' 같은 장르소설을 지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의 소설이나 '조지 로메로(George Romero, 1940~2017)', '웨스 크레이븐(Wes Craven, 1939~2015)'의 영화가 대표적인 공포물이다. 또한 '공포'는 우리가 두려움의 극단에서 경험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기도 하다. 즉, '공포'는 인간의 감정인 동시에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예술 장르를 뜻한다. 그렇다면 '공포'의 실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런 불쾌한 경험을 자발적으로 추구하기도 하는 걸까?
0. 목차
- '공포'란 무엇인가?
-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가?
- 인간은 '공포'의 감정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1. '공포'란 무엇인가?
사람이 공포를 느끼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는 분노하거나 공격할 때뿐만 아니라, 공포를 느끼거나 도망칠 때도 흥분 상태가 된다. 동물이 공포를 느끼거나 도망칠 때 '심장박동 증가', '혈압 상승', '근육으로의 혈류 증가', '내장으로의 혈류 감소'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는 싸움이나 도주를 준비하기 위나 소변 혹은 대변의 반사적 배설이 수반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공포를 느끼는 데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CRH:Corticotropin Releasing Hormone)', '코르티솔(Cortisol)', '아드레날린(Adrenaline)'이 공포와 관련된 호르몬이다. 과학자들은 호르몬을 조절하여, 포유동물이 더 많이 혹은 적게 공포를 느끼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험 쥐에게 CRH를 만드는 유전자를 주입하면, 평균 이상으로 겁이 많은 쥐를 만들 수 있다. 또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CRH)'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제거하여 호르몬 분비를 차단하면 극도로 겁이 없는 쥐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그 형태나 행동이 일반적인 포식자와 매우 다른 '괴상한 잡종 생물체'나 '신체 일부가 절단된 생물체'를 볼 때도 공포를 느낀다. 소설 '슬리피 할로우(Sleepy Hollow)'에서 '목 없는 기사(Headless Horseman)'는 자신의 머리를 찾기 위해 밤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목을 베어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카보드 크레인(Ichabod Crane)'은 과학적 수사를 강조하는 젊은 수사관으로, 의문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마을 '슬리피 할로우'에 파견되어 목 없는 기사의 정체를 파헤친다. '이카보드 크레인(Ichabod Crane)'이 머리가 없는 위협적인 인간과 마주쳤을 때 경험하는 공포는 '인지 불일치(Cognitive Mismatch)'로 설명할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 혼합된 괴물이 당신에게 달려드는 광경은 '당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따른 정신적 혼란을 일으킨다. 아마도 이런 인식의 혼란으로 마치 반사적으로 체액이 분비되는 것처럼 '공포(Horror)'가 촉발되는 듯하다.
2.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가?
2-1. 범주 교란(Category Jamming)
심리학자인 '도널드 올딩 헤브(Donald Hebb, 1904~1985)'와 '볼프강 슐라이트(Wolfgang Schleidt, 1927~)'는 각자의 실험을 통하여 동물이 느끼는 공포가 특정 포식자에 대한 공포로서 선천적으로 뇌 속에 배선된 것이 아니라 '인지 범주(Congnitive Category)'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는 것임을 알아냈다. 조류와 포유류는 자신과 외부 환경과의 '연관성(Association)'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유연한 범주 체계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렇나 '범주 체계(Category System)'는 출생 이후 신속하게 고착되어, 외부 세계를 해석하는 기본 방식이 된다. 어떠한 기본 범주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상한 존재'가 나타나면 동물은 흥분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낯선 상황(Strange Situation)' 실험에 의하면, 인간의 기본 범주는 생후 6개월 정도에 고착되며, 그 시기를 지난 아기들은 기이한 대상물에 훨씬 더 두려움을 느낀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포'와 '흥분' 상태를 유발하는 요인은 '불일치(Mismatch)'이다.
철학자 '노엘 캐럴(Noel Carroll, 1947~)'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분류법에 위배되거나, 생물과 무생물의 구별이 모호한 대상에 대한 경험을 뜻하는 '범주 교란(Category Jamm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런 견해는 '도널드 올딩 헤브(Donald Hebb)'와 '볼프강 슐라이트(Wolfgang Schleidt)'의 이론과도 잘 맞는다. '노엘 캐럴(Noel Carroll)'은 공포물에 등장하는 괴물의 대부분이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역겨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특히 '잡종'을 혐오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자신의 불일치 이론을 끌어냈다. 우리가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대상은 대체로 정상적 범주들 중간에 있는 불확정적인 존재다. 예를 들면 '피', '배설물', '침', '콧물', '토사물' 등은 모두 '나'와 '내가 아닌 것' 또는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는 범주를 흐리는 것들이다. 따라서 많은 괴물들은 '점액 같은 분비물', '젤리 비슷한 물집', '찐득찐득하고 꿈틀거리는 무시무시한 형태' 따위의 특징을 공유한다.
2-2. 위험에 대한 계통발생적 '기억'
영화 '에일리언(Alien)'의 '페이스 허거(Face-Hugger)'와 같이, 공포물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맞서 싸워야 했던 적들의 합성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뱀과 거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한 생물체로 합성하면 공포를 배가시킬 수 있다. '거미 공포증(Archnophobia)'는 인간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며 특히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미에 대하여 원초적 두려움을 느끼고 격력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가? 세상에는 '독해파리(Poisonous Jelley-Fish)', '왕통쏠치(Stonefish)', '파란 고리 문어(Blue Ringed Octopus)'와 같이 훨씬 더 위험한 생물체가 허다하지만, 사람들은 거미에 비하여 이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물학자 '팀 프리조프 플래너리(Timothy Fridtjof Flannery, 1956~)'는 '다윈의 진화론(Evolution Theory)'으로 인간의 '거미 공포증(Archnophobia)'을 설명하였다. '팀 플래너리(Tim Flannery)'는 선사시대에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출현했을 때 다양한 거미 종이 인류에게 환경적 선택압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이 독거미가 서식하는 환경에서 진화했다면 거미 공포증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며, 인구 집단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그런 형질이 출현하는 빈도도 더 증가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서부 및 남부에 서식하는 '여섯눈모래거미(Six-Eyed Sand Spider)'는 실제로 이런 주장을 잘 뒷받침한다. '여섯눈모래거미'는 게를 닮았으며,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잡기 위하여 뛰어오른다. 이 거미의 독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므로, 아프리카 환경에서 거미를 두려워하는 것은 생존에 대단히 유익하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거미 공포증'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았던 선사시대 인류의 유산일 수도 있다.
3. 인간은 '공포'의 감정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공포물'에 끌리기도 하는 것일까? 철학자 '노엘 캐럴(Noel Carroll)'은 우리가 공포영화나 소설에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거기에 끌리는 이유를, 괴물에 의하여 촉발되는 이러한 '인지적 미끄러짐(Cognitive Slippage)'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자발적으로 추구하는 이 역설은 '범주의 불일치'에서 생겨나는 흥분과 매혹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인지적이고 지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의 '파충류 뇌(Reptilian Brain)'의 가장 깊은 곳까지 충분히 내려가진 않는다.
공포의 문화는 두려움에 대한 생물학적 적응으로 생겨났지만, 이제 우리는 공포의 감정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인류는 이런 '생명문화적 감정 시스템(Biocultural Emotional System)'을 이용해 '정적(정치에서 대립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악마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한편, 공포의 문화는 우리가 진정한 두려움에 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작가 '스티븐 에드윈 킹(Stephen Edwin King, 1947~)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진정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하여 공포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