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저널리즘(Science Journalism)
0. 목차
- 과학 저널리즘
- 과학자는 왜 언론에 호의적이지 않은가?
- 과학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 언론은 과학의 진지한 비평가가 될 수 있는가?
- 또 다른 대안 '과학 커뮤니케이터'
1. 과학 저널리즘
대중은 반드시 과학을 알아야 할까?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기고 사람들은 각자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현대사회에서는 그럴 수 없다.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기기에는 과학은 우리의 삶 모든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 국방, 환경, 의학, 환경, 우주, 법률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스마트폰, 키오스크, 자동차, 섬유, 수돗물, 에어컨 등 세상 온갖 것이 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현대사회는 어느 때보다 과학의 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는 과학을 멀리할 수 없는 시대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기초적인 지식 외에는 과학을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교육계가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실패했다면, '과학계'와 '대중매체'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정보와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과학 문맹'을 퇴치할 이차 방어선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에 대한 정보나 오해가 이슈와 되면 TV, 라디오, 신문, 잡지,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해 문제를 확인하고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언론매체들의 막강한 재정 능력과 인적 자원, 그리고 과학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면 '과학 대중화'의 잠재력은 매우 높아 보인다. 학교가 실패한 과학 교육을 과학자와 언론이 틀림없이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학자들은 소통을 꺼리는 경향이 있고, 대중과학 교육에 큰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담배 회사, 석유회사, 커피회사 등 이익 집단들은 여러 과학 이슈와 논쟁들을 규명하고 평가하는 데 방해공작을 펼친다. 언론 내에도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방해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여러 라디오와 TV 토크쇼 진행자들은 단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 과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진행자들이 처음부터 과학 이슈를 배척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2. 과학자는 왜 언론에 호의적이지 않은가?
언론인은 정보 제공자가 필요하다. 그들은 과학자를 취재하지 않고는 과학에 대해 보도할 수 없다. 한편, 과학자는 업적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대중매체를 제외하고 과학자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또 있을까? 안타깝지만 전문 과학자의 관점에서 대중매체보다 중요한 그들만의 영역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동료들의 인정일 것이다. 이는 '동료 평가(Peer Review)'를 거쳐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에 출판하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과학자는 '동료 평가'를 통해 연구 지원금을 받고, '동료 평가'에 근거해 승진을 한다. 그리고 수학에는 '필즈상(Fields Medal)' 과학에는 '크라퍼드상(Crafoord Prize)', 물리학·화학·의학·경제학에는 노벨상을 받으면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과학계의 보상 시스템은 바깥 세상과의 소통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과학계에서는 전문적인 학문적 활동 이외에 시간을 쏟는 일이 학자의 경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코넬대학교 천문학과 교수였던 '칼 세이건(Carl Sagan)'은 과학을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데 큰 기여를 한 인기 작가였지만, 과학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미국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회원 자격을 한 번도 얻지 못했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은 '영국 '왕립협회(Royal Society)' 회원에 견줄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추측에 따르면, 그가 국립과학원의 인정을 받지 못한 이유는 책과 TV를 통해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는 데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저명한 과학자 중 상당수가 언론 활동을 대놓고 경멸하진 않더라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2-1. 과학자에게는 대중에게 과학을 알릴 동기가 없다.
대중이 어려운 과학 이슈들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는 수많은 사람이 지적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대학에 소속된 과학자들에게는 그들의 '보상 시스템'이 가진 속성 때문에 언론과 가깝게 지내야 할 동기가 없다. 승진을 위한 심사에서 대중과의 소통은 거의 무시된다. 중요한 것은 '발표된 논문의 수', '지도한 대학원생의 수', '확보한 연구 보조금 액수'같은 것들이다. 과학자들에게 대한 대학의 평가에서 과학의 대중화에 관한 폭넓은 이슈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렇듯 과학자에게는 대중에게 과학을 알릴 동기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언론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적절한 보상 시스템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언론에 친숙한 과학자를 육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과학자와 언론인의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스포츠 경기나 정치적 논쟁처럼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연구 업적을 매일같이 터트릴 수가 없다. 또 과학자들은 언론인처럼 촉박한 마감 시한을 지킬 필요도 거의 없다.
3. 과학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과학적 성과가 뉴스로 이어지는 경우 중 하나는 연구 결과가 학회에서 발표되거나 학회지에 실릴 때다. 하지만 어떻게 언론인이 매년 수천 개씩 쏟아지는 논문과 발표 중에서 중요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분명 '란셋(The Lancet)'이나 '미국 의학협회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또는 '지구물리학 저널(Journal of Geophysical)',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 읽기가 주 업무인 기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업무는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과 같다. 하지만 최근 대학·학회·저널 측에서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언론인을 과학자들과 이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계의 다수가 취해왔던 기존의 고립적 태도와 매우 다른 양상이다.
과학 저널은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다룰 때 대중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저널로는 영국의 '네이처(Nature)'와 '미국 과학 진흥회(AAAS: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가 발간하는 '사이언스(Science)'를 들 수 있다. 과학계의 수많은 독자가 애독하는 이 저널들은 매주 전 세계 저자들의 글은 15~20개 정도 싣는다. 두 저널 모두 매주 출간 전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일부 기사에 대해서는 사설을 통해 집중 분석하며, 언론이 더 자세한 내용을 취재할 수 있도록 과련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연락처를 제공한다.
3-1. 부족한 과학자들의 협력과 참여
이런 대학·학회·저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의 협력과 참여는 부족하다. 과학을 둘러싸고 있는 장막을 걷어야 하는 궁극적 책임은 현업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에게 있지 않을까? 그들은 과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언론인과 효과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대학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에게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항상 그들은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언론인과 협업하는 일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과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과학자들은 과학 이슈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건 아닌지 주의 깊게 살피고, 그들의 연구가 의미하는 바와 의미하지 않는 바를 명료하게 설명해야 한다.
언론인은 자료 외에도 통찰력을 얻기 위해 과학자가 필요하다. 기자가 과학 저널의 난해한 논문을 이해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논문과 중요하지 않은 논문을 구분하는 일'은 또 다르다. 역량이 되는 언론인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연구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업에 종사하는 연구자다. 동료 과학자의 평가와 심사를 통과한 논문만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는 '과학 저널'의 '동료 평가 시스템'이 바로 이런 방식을 따른다. '연구 지원금 선정'에도 '동료 평가 시스템'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연구 지원금을 지급하는 기관들은 제출된 연구 제안서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기 위해 과학자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과학자의 활발한 연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실험 데이터의 신뢰성을 평가하거나 어떠한 이론의 취약점을 발견하는 데 연구자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비과학자가 아무리 과학 문헌을 많이 읽고 분석하더라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구자를 결코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항상 마감 시한에 쫓기는 언론인들은 핵심을 짚어주는 과학자들에게 고마워한다. 언론인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미사여구를 분별할 능력이 있다. 또한 연구 결과에는 불확실성이 있기 마련인데, 언론인은 이런 불확실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과학자가 필요하다.
4. 언론은 과학의 진지한 비평가가 될 수 있는가?
과학계만이 과학계와 언론계의 긴밀한 협조를 방해하는 장벽을 세운 것은 아니다. 언론계가 만든 장애물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 인내심이 부족한 언론: 언론인들은 업무 특성상 시간과 인내심이 없기 마련이다. 언론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같은 사건과 주제들이 새롭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더디게 일어나는 기후변화가 반복해서 표면화되는 까닭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극적인 기후 현상이 지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회에서 종종 진행되는 '지구온난화' 토론은 새로울 것 없는 지겨운 이야기지만, 남극에서 스코틀랜드 정도 크기의 빙산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간 사건은 뉴스거리이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도자료에는 하품이 나오지만, 북극으로 향하는 쇄빙선이 북극해에서 어떠한 빙하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 책임을 회피하는 언론: 언론은 주로 과학의 내용보다는 논쟁을 흥미롭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마치 과학적 논쟁을 승자가 존재하는 스포츠 경기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게다가 언론인들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한다. 언론인은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싶어 하며, 자신이 과학적 사안을 분석할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상반되는 양쪽의 주장을 동등하게 기계적으로 제시할 뿐이다. 각각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으며, 그 결과 시시한 발표나 하찮은 논쟁이 과도하게 이목을 끌고 부당한 신뢰를 얻게 된다.
4-1. 언론은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언론인이 과학의 진지한 비평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언론인들도 수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면, 과학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배경지식과 식견을 쌓을 여력이 있는 언론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눈에 띄는 예외도 있다. 영국의 '런던타임스(The Times of London)'와 '가디언(The Guardian)', 캐나다의 '글로브&메일(The Globe and Mail)', 미국의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모두 과학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또한 많은 신문사에서 2001년 인간 유전체 지도의 완성을 화제의 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몇 페이지에 걸쳐 눈부신 과학적 성과가 미칠 의학적 영향과 다가올 윤리적 문제를 다뤘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화성 표면에 물이 흘렀음을 보여주는 화산 침식 지형, 새의 또 다른 진화적 기원을 암시하는 깃털 화석에 대한 재해석, 중성미자 입자의 발견, 유전자 검사의 사회적 영향 등 다양한 과학 기사를 거의 매달 1면에 실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다행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영국에서 '런던타임스'와 '가디언'을 구독하는 독자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고, 미국에서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를 구독하는 독자의 수는 더욱 적다. 또한 이 신문사들조차, 금융, 연예, 예술, 스포츠에 매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더군다나 언론사 대부분은 과학 전문 기자를 고용조차 하지 않는다. 지역 방송국 대부분은 주로 기상학을 전공한 기상 캐스터를 고용하고 있는데, 과학과 관련한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상 캐스터들이 보도를 담당한다.
안타깝지만 결론적으로는 과학 교육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바로잡는 데 기성 언론이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과학자와 언론인 모두 나름의 이유로 대중의 과학 인식을 바로 세우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과학자와 언론인에게 기대어 과학 교육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 또 다른 대안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이 과학의 훌륭한 전달자가 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은 없을까? 2010년대 이후 '유튜브(Youtube)'를 중심으로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직업군이 크게 떠올랐다. '크리에이터' 중에서 과학을 다루는 사람들을 흔히 '과학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cator)'라고 부른다. 한 번의 강연은 수십~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잘 만들어진 동영상 하나는 오랫동안 수백만 명에게 영향력을 미칠 힘을 가지고 있다. 또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과학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과학 문화를 창조해 나가려고 한다. 오늘날 '과학 크리에이터'들은 언론과 과학자들이 해내지 못했던 '과학의 대중화'에 커다란 역할을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