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테라피(Digital Therapy)
2020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치료를 위한 '디지털 테라피(Digital Therapy)'를 승인했다. 이 '디지털 테라피'는 특히 게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AHD뿐만 아니라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치매'와 같은 다양한 정신 질환의 과학적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이 질환들에 대해서도 '디지털 테라피'가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도 2020년 7월에 '우울증 디지털 치료법' 개발을 위한 연구 과제에 29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게임이 어떻게 ADHD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걸까? 한편에서는 약물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비대면 시대와 함께 떠오른 게임 기반의 '디지털 테라피(Digital Therapy)'가 무엇인지, 그리고 게임을 통해 어떻게 정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0. 목차
- 게임을 처방하는 의사
- ADHD 약물 치료의 문제
- 어떤 훈련을 해야 ADHD가 개선되는지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 인지 훈련의 게임화
- 약해진 기능을 다른 기능으로 보완한다.
1. 게임을 처방하는 의사
'코로나-19(COVID-19)' 시대 이전에 '디지털 의료 서비스'는 '환자 관리', '약 처방', '간단한 소통 서비스' 정도의 원격 의료 역할 정도만 했다. 물론 이 기능만으로 불필요한 병원 방문을 줄일 수 있어서 유용하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디지털 콘텐츠(Digital Contents)'가 치료제 역할까지 하기 시작했다.
2020년, FDA는 8~12세 사이 아이들의 ADHD 치료를 위해 게임형 디지털 테라피를 승인해 큰 주목을 받았다. ADHD는 주의 집중을 제어하는 시스템 중 일부의 기능 저하로 인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주의 집중을 통제하지 못하고 산만하며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질환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 따르면, 미국의 2~17세 아이 중 약 10%가 ADHD 진단을 받는다.
'보스턴(Boston)'에 위치한 '아킬리 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에서 치료를 위해 만든 '인데버알엑스(EndeavorRx)'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일반적인 다른 게임과 겉으로는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데버알엑스'의 캐릭터는. 우주선을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외계인을 잡기도 하고 날아오는 물체를 피하기도 한다. 캐릭터의 레벨이 올라가면, 새로운 게임 요소들이 등장한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움직여 우주선을 운전하는 걸 보고 있으면 꽤나 재미있어 보인다. 보통 일주일 중 5일, 하루에 25분 정도로 처방이 내려진다고 한다.
2. ADHD 약물 치료의 문제
흔히 사용되는 'ADHD 치료제'는 흔히 '공부하는 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공부를 잘하고 싶은 보통의 아이도 몰래 복용할 만큼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지속적인 약물 치료와 관련해서는 상당이 많은 논란이 있다.
약을 복용하면 당장 증상이 나아질지는 모르, '주의 집중'과 관련해 여러 뇌 기능과 영역이 관여하고 있어, 한 개인의 '주의력 장애'와 '과다 행동'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창 자라고 있는 뇌의 화학적 환경을 바꾸는 조치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더불어 ADHD 치료제 복용과 관련해 '공격성', '자살 관련 행동', '심혈관 질환', '수면 장애', '의존성', '시력 장애', '신경과민', '식욕 감퇴', '두통 및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ADHD뿐 아니라 여러 뇌 인지 질환의 경우, '신경 전달 물질'의 비정상적인 분비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인데버알엑스(EndeavorRx)'가 약물을 전적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지만, 증상이 심한 아이의 경우에는 대부분 복용량을 조절하며 약물과 병행하는 식으로 사용된다.
3. 어떤 훈련을 해야 ADHD가 개선되는지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아킬리 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에서 '인데버알엑스(EndeavorRx)'를 개발했다는 소식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개발이 이루어진 연구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인데버알엑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킬리 인터랙티브' 뒤에는 수년간 진행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신경 과학자 '애덤 개제일리(Adam Gazzaley, 1968~)' 교수의 연구와 검증이 있었다. 또한 '개제일리' 교수의 연구가 ADHD에 대한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인지 발달 신경과학', '소아정신과학', '교육학(Pedagogy)' 전문가들이 수십 년간 진행한 연구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더 큰 노력들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 연구에서 실험 설계의 핵심은 '개입 가능한 변인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는 '인지 심리학'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지 심리학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 최대한 단순한 실험을 통해 '고등 인지 기능'을 포착하고자 한다. 'ADHD 환자의 인지 장애를 측정하는 테스트'뿐 아니라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인지 훈련 과제'들은 일반인도 참기 힘들 정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며 재미도 없다. 예를 들어 '점점 늘어가는 격자에서 동그라미의 위치를 기억하기'나 '주어진 숫자나 단어 목록을 기억하는 연습을 반복하기' 같은 과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 덕분에 정확히 어떤 인지 능력이 취약해져서 ADHD가 나타나는지, 그리고 어떤 뇌 인지 네트워크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지, 어떤 훈련을 어느 정도 해야 이를 개선할 수 있는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애덤 개제일리' 박사는 이런 기존 연구에서 훈련 효과를 보인 '작업 기억'과 '집행 기능 훈련'을 게임 안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해서 주의를 분배해야 하는 다양황 상황들(예컨대 물체를 피하면서 스크린에 나오는 점의 색을 맞히기 등)'을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접목시켰다. 또 '인데버알엑스'를 하루 30분, 한 달 동안 처방한 사용량도 기존 실험의 인지 훈련 프로토콜과 동일했다. 사실 게임화는 인지 발달 연구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 위해 항상 써왔던 방법이다. 예를 들어 3~5세 ADHD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얼음땡과 같은 '행동 제어 게임'이나 '3 카드 몬테(Tree Card Monte)' 같은 시각 주의 게임을 활용하기도 했다. 활동적인 놀이를 활용하자, 어린아이도 훈련할 수 있었고 ADHD 증상도 줄일 수 있었다.
4. 인지 훈련의 게임화
'애덤 개제일리'의 전략은 이런 '심리학의 지식과 원리', 그리고 '게임화'라는 접근법을 디지털 게임 디자인에 통합하고, 실시간 사용자의 실력에 맞는 난이도와 보상을 조절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화된 학습 효과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ADHD 진단을 받았지만, 약물 치료를 하지 않은 아이들 총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시험에서 '인데버알엑스'를 한 달 동안 활용했을 때 피험자의 약 36%의 주의력 결핍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디지털 치료' 역시 '약물 개발'과 똑같은 절차를 밟아 승인을 받고 처방 없이는 디지털 치료 게임을 할 수 없다. 아마 이 정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러 건강 앱들은 별다른 승인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왜 디지털 테라피는 힘들게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임상 실험'을 하고, 무언가를 몸에 주입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처방을 받아야 할까? 그 이유는 '통제를 통한 정확한 효과 유도'와 '안전성에 대한 검증' 그리고 '의료진이 환자에게 치료를 의무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ADHD 개선보다는 게임 중독 또는 환각 경험과 같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날 위험이 있을 것이다. 또 '행동 교정'이나 '인지 훈련 치료'라고 해도 의사의 처방 및 디지털 된 모니터링으로 사용량을 조절한다면 더욱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다.
4-1. 게임화의 중요성
'인지 훈련의 게임화'는 아이에게만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기능성 게임(Serious Game)'은 오래전부터 '직업 훈련', '군사 훈련',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됐다. 게임화 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는 중요한 훈련에 게임의 보상이나 사회적 요소를 포함시켜 사용자의 몰입도와 사용자 경험을 증진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루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잘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Game)'이라는 단어 때문에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디지털 테라피'는 치료를 위해 쓴맛을 딸기 향신료로 감춘 딸기 맛 감기약처럼 반복적인 인지 훈련을 게임으로 감추고 있는 '뇌 인지 훈련'이다. ADHD 환자에게 게임화되지 않은 디지털 테라피를 처방하는 건 ADHD 환자에게 공부를 처방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다시 말해 디지털 테라피는 반복적인 인지 훈련을 '게임화'시켜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뇌 기능을 운동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게임화된 디지털 테라피가 모든 증상을 치료할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약물 치료 역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변화에 적응하는 뇌의 기능을 고려하여 사용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뇌의 중요한 기능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5. 약해진 기능을 다른 기능으로 보완한다.
우리의 뇌는 항상 변화한다. 우리의 뇌는 많이 쓰는 부분이 더 커지고 더욱 많이 활성화되는 반면, 많이 쓰지 않는 부분은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뇌세포와 뇌 부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한다. 역동적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 '뇌 가소성'은 필수 조건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신기하게도 '강화'뿐 아니라 '기능 대체'를 통해서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한다. 특정 문제를 푸는 데 주요한 뇌 기능은 반복을 하면 할수록 강화된다. 한편 그 기능이 효율적이지 않거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뇌는 다른 기능을 재구성에 새로운 방식으로 보완한다.
예컨대 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은 반려견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반려견은 처음에 여기저기 부딪히며 힘들어하겠지만, 다른 감각을 동원해 적응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반려견의 뇌에서는 공간 지각에 필요한 해마나 시각 감각보다 다른 감각 기관들의 연결을 강화하고, 그 감각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수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뇌의 보완 작용'을 활용해 약해진 기능을 다른 기능을 발달시켜 보완하는 것이다. 당연히 반려견은 의식적으로 이런 전략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테라피'를 활용해 약해진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기능을 미리 발달시켜 전체 행동을 유지하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렇게 뇌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훈련자가 꼭 어떤 '공부'나 '훈련'을 매 순간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중요한 건 '의식적 학습'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푸는 문제와 행하는 행위가 '어떤 뇌 인지 기능을 자극하느냐'이다.
'디지털 테라피' 기술은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예방 및 중재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센서(Sensor)'나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ble Device)'를 연동시켜 생체 신호와 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원격 모니터링과 개인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의료 서비스 모델이다. 앞으로 '뇌 인지 기능 장애'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각 환자의 뇌를 프로파일링 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고, 그에 맞춘 디지털 콘텐츠로 더욱 정확하게 '뇌 인지 훈련'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