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인간의 몸은 매우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 메커니즘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양한 병에 걸리며, 때로는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병을 피할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생물 진화의 자취를 살피거나, 왜 인간이 병에 걸리도록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려는 학문을 '진화 의학(Evolutionary Medicine)'이라고 한다.
0. 목차
- 진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 통풍(Gout)
- 괴혈병(Scurvy)
- 겸상 적혈구 빈혈증
- 고혈압
- 당뇨병
- 직립 이족 보행으로 생긴 약점들
- 결론
1. 진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진화 의학(Evolutionary Medicine)'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먼저 생물 진화의 메커니즘을 확인해 보자. 지구상 최초의 생명은 약 38억 년 전에 '단세포 생물(Unicellular Organism)'로 생겨났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모여 '다세포 생물(Multicellular Organism)'이 되고, 마침내 '척추동물'로 진화했다. 그들은 4억 년 전 무렵에 육상으로 진출했고, 다시 2억 몇천만 년 전에 '포유류'가 나타났다. 700만 년 전 무렵에는 영장류 가운데 침팬지와 인간의 조상이 갈라지고, 약 20만 년 전에는 현재의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탄생했다.
생물의 세포가 분열할 때는 유전 정보를 담당하는 DNA가 복제되는데, 일정한 확률로 '돌연변이(Mutation)'라는 복제 오류가 일어난다. 이런 돌연변이가 정자나 난자 같은 생식 세포에서 일어나면, 그 유전 정보의 변화가 자식에게 유전된다. 포유류 등의 경우에는 암컷과 수컷에 의한 '유성 생식'을 하기 때문에, 자식의 유전 정보는 양친의 유전 정보가 섞여 만들어지고 유전 정보의 다양성은 더욱 커진다. 이리하여 원래의 개체와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가진 자손이 탄생한다.
새로운 특징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경우, 그 특징을 가진 개체는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특징을 가진 개체의 수는 감소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유리한 특징을 가진 개체가 어떤 집단에서 대세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생물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진화해 왔다. 이러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한 진화 메커니즘은 영구의 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이 제창한 사고방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진화'에서 어떤 특징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가'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기후가 춥고 차가우면 따뜻한 모피가 유리하고, 먹잇감이 적으면 굶주림에 강한 개체가 살아남을 것이다. 주위에 존재하는 다른 생물도 영향을 미친다. 포식자가 있으면 도망칠 때 유용한 빠른 발이 필요할 것이고, 병원체의 위협에 대해서는 뛰어난 '면역 기능(병원체 등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작용)'이 요구된다. 이런 다양한 조건을 '선택압' 또는 '도태압'이라고 하며, '진화 의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진화'는 어떤 의지나 목적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돌연변이가 생길지는 전적으로 우연이며, 우연히 얻은 새로운 특징이 그 환경에 유리하면 그 결과로 진화로 이어진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때그때의 환경에 적응한 개체와 집단이 살아남는다.
2. 통풍(Gout)
2-1. 인간은 왜 '통풍'에 걸리는가?
'통풍'이라는 병은 발가락 관절 등에 급성 염증이 생겨 매우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혈액 속에 포함된 '요산'이라는 성분이 많으면 잘 걸린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런 상태를 '고요산 혈증(Hyperuricemia)'이라고 한다. '요산(Uric Acid)'은 '푸린체(Purine bodies)'라는 물질이 분해되어 생기는 것으로, 정상적인 경우는 혈액 속에 어느 정도 존재하고 남으면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푸린체' 동물의 간이나 어패류 등 다양한 음식물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신체의 '물질대사(Metabolism)' 과정에서도 생긴다.
어떤 이유로 인해 몸속에서 만들어진 '요산'이 많아지거나 배출하는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 속의 요산값이 높아진다. 그러면 요산이 녹아 끊어지지 않고 관절 등에서 결정화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로 인해 격렬한 통증이 생긴다. 통풍은 고기나 알코올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에게 잘 생긴다고 해서, 예전에는 '사치병' 또는 '제왕의 병' 등으로 불렸다. 현재는 '유전적인 이유'와 '생활 습관'이 얽혀 생긴다고 알려져 있으며, 식생활이 서양화되면서 많은 환자가 생겨나고 있다.
격렬한 통증을 동반하는 발작에는 '진통제(Anodynia)'나 '항염증제(Anti-Inflammatory Drug)'가 사용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식사 요법'과 '약물 투여' 등을 통해 '요산값'을 떨어뜨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요산 혈증' 그 자체에 자각 증상은 없지만, 방치하면 통풍 이외에 '신장(콩팥)' 질환 등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2-2. 인간은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드는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은 왜 병을 일으킬 정도로 혈액 속의 요산값이 높아질까? 대부분의 포유류는 인간보다 요산값이 낮아서 통풍이 생기지 않는다. 몸속에서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침팬지·오랑우탄 등은 이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원래 인간도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약 1500만 년 전에 일어난 돌연변이로 인해 그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 돌연변이가 불리한 것이었다면, 그런 개체는 벌써 사라져 버려 오늘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몸속에서 요산을 분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조상에게 어떤 이유에서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그 특징이 오래 남아 오늘날 우리에 전달되었다고 생각된다.
아래의 그림은 인간과 침팬지 등이 갈라지면서 진화해 온 과정과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시기를 나타낸 것이다. 돌연변이 A와 돌연변이 B는 인간 등의 조상과 긴팔원숭이의 조상이 갈라진 이후에 각각 따로 일어났지만,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의 유전자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같은 결과를 낳았다.
2-3. '높은 요산값'에 이점이 있다?
그러면 요산값이 높은 것에는 과연 어떤 이점이 있을까? 높은 요산값에는 '활성 산소(Oxygen Free Radical)'를 제거하는 '항산화 작용'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활성 산소'는 반응성이 높은 물질로 암, 노화, 동맥 경화 등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생명 활동으로 인해 몸속에서 자연적으로 생기지만, 자외선이나 흡연 등의 증가 등도 증가의 원인이다. 예전에 숲의 나무 위에서 살던 인간의 조상들은 '야행성'에서 '주행성'으로 바뀐 이유 등으로 많은 자외선을 받았다. 영장류는 수명이 길어, 몸속에서 생기는 활성 산소를 처리하기 위해 '요산'의 '항산화 작용'이 커다란 이점이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긴팔원숭이(Gibbon)'도 요산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조상'과 '긴팔 원숭이의 조상'이 갈라진 이후에 일어났다. 제각각 일어난 돌연변이로 인해 생긴 '요산을 분해할 수 없는 특징'이 각각의 종에서 모두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당시 그 특징이 유리하게 작용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인간의 조상은 '요산값을 높게 유지하는 이점'과 '통풍 등의 위험'을 바꾸어 갖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관계를 '트레이드 오프(Trade-off)'라고 하며, 진화 의학에서 흔히 볼 수 있다.
3. 괴혈병(Scurvy)
3-1. 인간의 조상은 비타민 C의 합성 능력을 잃었다.
'비타민 C'도 '항산화(Antioxidation)' 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대부분의 포유류와 달리, 인간 등 많은 영장류는 몸속에서 비타민 C를 합성하지 못해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인간의 조상은 5500만~3500만 년 전의 돌연변이를 통해 비타민 C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산의 항산화 작용'이 더욱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인간의 조상이 살고 있던 숲에는 과일 등이 풍부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음식을 먹기만 해도 비타민 C가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몸속에 비타민 C를 합성하는 기능을 잃은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해도 이점도 약점도 없었을 것이다.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특징은 우연에 의해 집단 전체에 퍼지는 경우가 있다. 몸속에서 비타민 C를 만들 수 없다는 특징도 우연히 우리 조상에게 널리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 후, 인간의 조상은 다른 돌연변이로 인해 혈액 속의 요산값을 높게 유지한다는 특징을 획득했다.
3-2. '괴혈병'은 진화와 환경의 부조화에 의한 병
그렇지만 인류의 문명이 크게 발전시키는 시대가 되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대항해 시대 당시, 많은 선원들은 몇 주일에서 몇 달에 걸쳐 여행에 나섰다. 그러자 극심한 피로와 빈혈을 호소하거나 잇몸이나 점막 등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사람이 속출하고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괴혈병(Scurvy)'이다. 마침내 레몬 등의 감귤류가 괴혈명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현재는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타민 C는 몸속에서 콜라겐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물질로, 부족하면 혈관이 약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예전의 선원들은 오랜 선상 생활로 인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섭취하지 못해 '괴혈병'이 걸렸지만, 현재는 거의 그런 일이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의 조상은 오래 살던 환경에 적응해 진화를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는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돌연변이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다른 조건에서는 갑자기 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비타민 C'와 '괴혈병'은 그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앞에서 말한 '통풍'도 진화와 환경의 부조화에 의한 병이다. 인간의 조상이 적응해 온환경과 다른 조건 아래에서는 예전의 이점마저 약점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인간 사회의 급격한 발전에 우리의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명병(Civilizational Disease)'이라는 것이 적지 않다.
4. 겸상 적혈구 빈혈증
생물의 진화에서 '트레이드 오프(Trade-off)'로 생각되는 예의 하나로, 보기에는 불리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돌연변이가 특수한 조건 아래에서 정착한 사례가 있다. 주로 흑인에게 나타나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유전성 병이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Cell Anemia)'은 특히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에 많다고 한다.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적혈구의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보통은 원반 모양인 적혈구가 가늘고 긴 낫과 같은 모양으로 변형되기 쉬워진다. 이런 낫 모양의 적혈구는 부서지기 쉽고, 모세혈관에 쌓이는 경우도 있어 환자는 심한 빈혈을 일으킨다. 중증인 경우는 치료하지 않으면 조기에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1세트씩 유전 정보를 받아 태어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같은 유전자를 2개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적혈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한쪽에 이러한 이상이 생겨도 다른 한쪽이 정상이면 정상인 적혈구를 만들 수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가볍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전자 양쪽에 2개 모두 이상이 있으면, 정상인 적혈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심각한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나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유전자를 적어도 1개 가진 사람의 비율이 30%를 넘는다고 한다.
이런 무서운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왜 도태되지 않고 계속 존재할까? 사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말라리아(Malaria)'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말라리아'는 고열 등을 일으키는 감염증으로, 걸리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가진 사람들의 혈액 속에서는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말라리아 원충'이 증식하기 어렵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말라리아의 만연이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따라서 '겸상 적혈구 빈혈증'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약점을 가져다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현재로 적지 않다는 사실은, 그만큼 말라리아 같은 감염증이 커다란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4-2. 이점과 약점의 미묘한 균형
하지만 이들 지역에서 모든 사람이 '겸상 적혈구 빈혈증' 유전자를 가진 것은 아니다. 이 유전자를 하나만 가진 경우는 생존에 유리하지만,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 그 다음 세대에서 양쪽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어린이가 많아져 오래 생존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이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어떤 일정 범위에서 안정되는데, 이런 현상을 '평형 선택(Stabilizing Selection)'이라고 한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의 약점'과 '말라리아로 사망할 위험을 피하기 쉬운 이점'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성립하는 것이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말라리아'는 약간 특수한 사례지만, 강력한 병원체의 존재가 진화의 커다란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화의 역사에서 생물은 아주 초기 단계부터 감염증에 노출되고 거기에 저항하는 면역 기능을 발휘해 왔다. 병원체 또한 면역 기능을 돌파하게끔 다양하게 '진화(Evolution)'했다. 이런 상호 작용을 '공진화(Coevolution)'라고 한다.
5. 고혈압
5-1. 생물이 육상에 진출한 영향이 우리 몸에 남아 있다.
현재의 인간의 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4억 년 전 무렵에 척추 동물이 바닷속에서 육상으로 진출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바닷속과 전혀 다른 육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생물의 몸이 엄청나게 개조되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폐호흡 획득: 공기 속의 산소를 이용하기 위해 '폐호흡을 획득한점'
- 심장 기능의 발달: 물속보다 커다란 중력이 작용하는 조건에서 몸속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해 '심장의 기능이 크게 발달한 점',
- 나트륨 등의 유지: 물속과 달리 육상생활에서는 나트륨 등이 부족하기 쉽기 때문에 '나트륨 등을 몸속에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발달한 점'
- 건조함에 견디는 피부: 어느 정도의 '건조함에 견딜 수 있는 피부'
- 체온 조절 기능의 획득: 육상에 대한 적을을 위한 '발한(땀을 내보냄)' 등에 의한 '체온 조절 기능의 획득'
이 가운데 '심장 기능의 발달'과 '나트륨 등의 유지'는 현재에도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활 습관병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고혈압'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동맥경화', '심장 발작', '뇌졸중', '신장 질환' 등 심각한 병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국에서는 30세 이상 남자 3명 중에 1명, 여자 4명 중에 1명은 고혈압이라는 통계가 있다. 고혈압은 '문명병'으로서의 측면이 크다. 우리의 몸은 다양한 이점의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로 고혈압이 발생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5-2. 고혈압이 발생하기 쉬운 이유
인간의 조상은 육상으로 진출하면서, 심장의 기능을 발달시켜 혈압을 높이도록 진화해 왔다. 어류의 혈압은 20mmHg 정도이며, 양서류의 혈압은 30mmHg 정도임에 비해 대부분의 포유류는 최고 혈압이 110~170mmHg에 이른다. 높은 혈압은 격렬한 운동이나 긴급 상태에 대처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몸은 다양한 이점의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로 고혈압이 발생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한편, 나트륨은 삼투압 등의 '체액의 성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신경의 정보 전달이나 근육의 운동에도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지만, 육상 생활에서 언제나 확보할 수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조상은 제한된 나트륨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적응한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조미료로 염분을 항상 섭취하게 되었다. 혈액 속의 나트륨 농도가 너무 높으면, 그것을 희석시켜 일시적인 상태로 돌리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해 몸은 수분을 요구하게 된다. 짠 음식을 먹으면 갈증이 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면 혈액의 양이 늘어나 혈관 내의 압력이 상승한다. 즉 고혈압이 된다. 현재도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면서 소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민족에게는 고혈압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단 인간의 몸에는 여분의 나트륨을 배출하는 기능도 있어, 염분을 과잉섭취해도 고혈압이 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몸속에 나트륨을 유지하기 어려운 유형의 유전자가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고혈압에는 '나트륨을 유지하기 쉽다'는 등의 유전적인 이유와 '염분을 과잉 섭취한다'는 생활 습관 양쪽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6. 당뇨병
생활 습관병의 대표격인 '당뇨병(Diabetes Mellitus)'은 '혈당값(혈액 속에 포함되 포도당의 농도)'가 너무 높아져 '손발의 저림'이나 '망막의 출혈', '신장 질환' 등을 일으킨다. 중증은 경우에는 목숨도 위협한다. '당뇨병'의 대부분은 '2형 당뇨병'이다. '2형 당뇨병'은 혈당값을 내려 주는 '인슐린(Insulin)'이 부족하든가, 부족하지 않아도 효과가 약하든가, 또는 그 두 가지 모두에 의해 발생한다. '비만'과의 관련도 크다고 하다. '당뇨병'이 생기는 메커니즘은 복잡해서, 유전적인 이유와 생활 습관 양쪽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1형 당뇨병'은 주로 면역 기능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여기에서 그냥 '당뇨병'이라고 말하면 '2형 당뇨병'으로 이해하면 된다.
6-1. 검약 유전자 가설
'당뇨병'과 관련해, 1962년에 미국의 유전학자인 '제임스 닐(James Neill, 1915~2000)'이 제시한 '검약 유전자 가설(Thrifty Gene Hypothesis)'이 잘 알려져 있다. '검약 유전자 가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찍이 인간의 조상은 항상 굶주림에 노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음식물을 입수한 경우에는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에너지원으로 몸속에 저장토록 하는 유전자인 '검약 유전자'가 진화를 통해 획득되었다. 그렇지만 문명화되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되자, 필요 이상으로 비만해지거나 혈당값이 지나치게 높아져 병이 늘어났다.
다만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인슐린의 효과가 약해지는 경향이 있는 점' 등 이 가설에 모순되는 사실도 있었다. '인슐린(Insulin)'은 근육이나 간 등이 혈액 속의 '포도당(Glucose)'을 받아들이도록 촉진하는 작용이 있어, 바로 사용하지 않을 포도당은 '글리코겐(Glycogen)'이나 '지방(Fat)'으로 바꾸어 저장한다. 따라서 인슐린의 효과가 약하다는 것은 에너지원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6-2. 발달 프로그래밍 가설
한편 '검약 유전자 가설(Thrifty Gene Hypothesis)'을 대신해서 새롭게 '발달 프로그래밍 가설(DOHaD 가설2)'도 주장되었다. '발달 프로그래밍 가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아기나 유아기에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에 놓이면 거기에 적응하도록 '프로그래밍(Programming)'된다. 이런 사람은 저체중으로 태어나며, 일반적으로 체격은 작지만 건강상 큰 문제는 없다. 한편, 태아기 등을 풍요한 환경에서 지낸 경우, 체격이 크고 근육도 발달해 결국 건강상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빈곤 환경에서 살도록 프로그래밍 사람이 갑자기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 비만이나 당뇨병 등을 일으키기 쉬워진다.
이런 프로그래밍은 '후성적(Epigenetic)' 변화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 유전자 그자체는 변하지 않고 그 작용을 작동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조절함으로써, 다양한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돌연변이로 일어난 진화와는 별개로 생물이 가지고 있는 적응 전략일 수 있다.
'발달 프로그래밍 가설'은 다양한 '역학 연구(집단을 대상으로 병의 원인을 탐색하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예컨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독일 점령하의 네덜란드에서 심각한 식량 위기가 있었다. 그 후의 보고에 따르면, 기아 이후에 태어난 아기는 그 이전에 비해 평균 200g 이상 출생 체중이 낮았다고 한다. 이런 어린이들을 추적 조사했더니,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많았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영국과 핀란드에서 실시된 조사해서도 저체중으로 출생한 어린이는, 나중에 당뇨병 등에 많이 걸렸다. 또 생쥐 등의 동물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7. 직립 이족 보행으로 생긴 약점들
인간의 조상은 진화의 과정에서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함으로써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도구의 이용으로 이어지는 등 많은 이점이 있었다. 반면 그 '트레이드 오프(Trade-off)'로 '직립 보행'을 통해 많은 이점을 획득한 반면 다양한 약점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우리가 '직립 보행'을 계속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약점보다 이점이 컸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진화 의학에서 병을 바라보는 하나의 예다.
예컨대 '트레이드 오프(Trade-off)'로 '직립 이족 보행'과 '요통(허리 부위에 생기는 통증)'이 있다. 인간의 조상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척추에 부담이 생기면서 '요통'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이 외에도 '직립 이족 보행'으로 생긴 약점에는 '고관절염', '치핵', '무릎 관절염', '난산', '현기증(기립성 저혈압)', '헤르니아(탈장)', '추간판 헤르니아(속칭 디스크, 요통)', '경부 척추증(척추 가운데 목 부분이 변형되면서 신경이 눌려 마비 등의 증상이 생기는 병)', '혈전성 정맥염(정맥 안에 혈액 덩어리가 생겨 염증을 일으키는 병)' 등이 있다.
8. 결론
지금까지 몇 가지 병의 성립에 대해 '진화 의학(Evolutionary Medicine)'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병'이란 단지 '귀찮은 것' 혹은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역사를 걸어온 우리 몸의 메커니즘의 일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현상'은 병원체의 활동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의 하나이며, 진화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병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급속히 문명화된 인간의 생활이 예전의 환경에 적응했던 자신의 몸과 부조화를 일으켜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