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논리
우리는 종종 '흑 아니면 백'이라는 식으로 사태를 확실히 구분하고 싶어 한다. 이런 논리를 '흑백 논리(Black and White Thinking)'라고 한다. 그러나 'A나 B밖에 없다는 사고는 '논리학(Logic)'에 근거해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흑백 논리는 완벽주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흑백 논리'의 배후에 있는 논리적 오류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0. 목차
- '찬성인가? 반대인가?'
- 유재석씨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4가지
- 'A나 B밖에 없다'는 논리적으로 오류이다.
- 세상은 흑백 논리로 넘쳐난다.
-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의할 점
1. '찬성인가? 반대인가?'
유재석씨 주변에는 최근 고층 빌딩 건설 계획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빌딩 건설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건물에 슈퍼마켓 등의 점포도 들어와 주민의 생활이 편리해질 것이라고 선전한다. 따라서 이 빌딩의 건설을 반기는 주민도 많다. 그러나 고층 빌딩이 세워지면 일부 주택은 햇빛이 가려져 낮 동안 음지가 되어버린다. 볕이 들지 않으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난방비가 늘어나거나 세탁물이 잘 마르지 않게 된다. 따라서 고층 빌딩으로 햇빛이 차단되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건설 중지를 요구하는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재석씨는 고층 빌딩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지역에 살고 있다. 지금 유재석씨는 고층 빌딩에 의해 햇빛이 차단될 때의 악영향과 고층 빌딩에 의해 생활이 편리해지는 이점을 저울질하여 '고층 빌딩 건설에 찬성과 반대 어느 입장에 설까?'를 고민하고 있다. 유재석씨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에 무언가 이상한 점은 없을까?
2. 유재석씨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4가지
유재석씨는 지금 '찬성, 반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양 극단의 성질을 가진 2개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흑백 논리(Black and White Thinking)'라고 한다. 사실 '흑백 논리'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실제로는 '찬성인가, 반대인가'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4개의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재석씨는 '건설에 찬성한다, 찬성하지 않는다'와 '건설에 반대한다, 반대하지 않는다'의 각각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유재석씨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것을 조합한 4가지임을 알 수 있다.
아래의 표에서 선택지 1은 '찬성한다, 그리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선택이고, 선택지4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대한다'는 선택이다. 이들은 양 극단의 성질으 가지고 있어, 흑백 논리에 빠져 있을 때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의 선택지이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은 선택지2와 선택지3이다. 선택지2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대하지 않는다'이다. 이것은 유재석씨가 고층 빌딩 건설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우임을 나타낼 수 있다. 선택지3은 '찬성한다, 그리고 찬성하지 않는다.'는 경우이다. 유재석씨는 건설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계획의 내용에는 반대하는 입장임을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빌딩의 높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면 건설을 중지하지 않아도 일조권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 | 건설에 반대하지 않는다. | 건설에 반대한다. |
건설에 찬성한다. | 선택지1: 건설에 찬성 | 선택지3: 건설 계획을 변경 |
건설에 찬성하지 않는다. | 선택지2: 무관심 | 선택지4: 건설에 반대 |
3. 'A나 B밖에 없다'는 논리적으로 오류이다.
그렇다고 해도 'A나 B밖에 없다'는 사고가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논리학의 언어로 자세히 설명해 본다.
'논리학(Logics)'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용어에 '명제'가 있다. '명제'란 일상 언어로 알기 쉽게 말하면,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를, 다시 말해 참·거짓을 판단하는 대상이 되는 문장을 가리킨다. 예컨대 '2 더하기 2는 4이다'라는 문장의 경우, '참'인 명제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3 더하기 3은 7이다.'라는 문장의 경우, '거짓'인 명제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유재석은 국민MC인가?'의 경우 의문문이므로 참·거짓을 판단하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재석은 국민MC인가?'는 명제가 아니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선택하라'는 명령문도 참·거짓을 판단하는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명제가 아니다.
논리학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용어를 하나 더 소개한다. 명제 P가 있을 때 'P 또는 P가 아니다.'는 명제를 '배중률(Principle of Excluded Middle)'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배중률'이란 '어떤 명제와 그것의 부정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참'이라는 법칙을 말한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의 판단이 모두 참이 아닐 수 없다는 원리이다. 따라서 '배중률'은 반드시 '참'이라는 성질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 '유재석씨는 건설에 찬성한다 또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유재석씨는 건설에 찬성한다'는 명제의 배중률이다. 배중률은 참이므로, 유재석씨가 택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은 '건설에 찬성한다'와 '찬성하지 않는다'의 두 가지 선택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들어맞는다.
- '유재석씨는 건설에 반대한다 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유재석씨는 건설에 반대한다'는 명제의 배중률이다. 배중률은 참이므로, 유재석씨가 택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은 '건설에 반대한다'와 '반대하지 않는다'의 두 가지 선택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들어맞는다.
결국 하나의 명제 '유재석씨는 건설에 찬성한다.'에 대해 참과 거짓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재석씨가 건설에 찬성한다'와 '유재석씨가 건설에 반대한다'는 2개의 명제가 존재하면, 각각의 참·거짓을 조합시킨 '참·참', '참·거짓', '거짓·참', '거짓·거짓'의 4가지 선택지가 생겨남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다시 '유재석씨는 건설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들여다보자. 지금까지의 설명에 근거해 생각하면, 이 명제가 거짓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명제에는 유재석씨가 건설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대하지 않는다.'와 '찬성한다, 그리고 반대한다'는 경우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세상은 흑백 논리로 넘쳐난다.
A나 B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흑백 논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좋든가 싫은가'나 '이길까 질까'도 흑백 논리이다. 흑백 논리에 빠지면 극단적인 선택지밖에 볼 수 없게 되어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따라서 사기의 수단으로도 '흑백 논리'가 자주 사용된다. 사기꾼은 언어를 교묘하게 사용해 상대로 하여금 마치 극단적인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예컨대 '내 강의를 듣지 않으면 취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강사 등은 상대에게 흑백 논리를 강요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특히 완벽주의자들은 흑백 논리에 빠져들기 쉽다고 한다. 예컨대 운동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흑백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노력도 보상받는다'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실패는 아니다.'라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세상의 일을 '선인가, 악인가'로 분류하려는 흑백 논리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세상에는 '선이기도 하고 악이기도한 일'이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일'도 있다.
5.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의할 점
'찬성인가, 반대인가?'를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고층 건물 건설로 인한 이득과 손실을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택일로 좁혀지고 있다고 느낀 경우에는, 다시 정말로 그 2개의 선택지에서 고르는 것이 올바른지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 'A인가 B인가'라는 2개의 선택지밖에 제시되지 않은 점이 논리적으로는 오류이다. 논리적으로 올바른 2개의 선택지는 'A인가 A가 아닌가'뿐이다. '세상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으며, 현실 세계에서는 찬성과 반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A인가 B인가' 이외의 선택지를 택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논리학에서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논리학이 말할 수 있는 것은 'A인가 B인가'라는 언어를 사용한 시점에서, 4개의 선택지가 생겨난다는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