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붕괴(Vaccum Decay)
2012년, 세계 최대의 가속기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를 이용한 실험에서 질량의 기원에 관련된 '힉스 입자(Higgs Particle)'가 발견되었다. '힉스 입자'의 성질을 꼼꼼히 살펴나간 결과, 진공 상태가 극적으로 변함으로써 물리 법칙이 바뀌는 '진공 붕괴(Vaccum Decay)'라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진공 붕괴'가 일어나면 은하와 태양을 비롯한 별들, 그리고 원자 하나하나까지 우주의 모든 구조가 붕괴할 수 있다. 진공 붕괴가 일어나면 우주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진공 붕괴를 막을 수는 없을까? 우주를 파멸로 이끄는 '진공 붕괴'에 대해 알아보자.
0. 목차
- 진공 에너지가 '진공 붕괴'의 열쇠를 쥐고 있다.
- '가짜 진공'에서 '진짜 진공'으로 변할 때 '진공 붕괴'가 일어난다.
- 확률은 낮지만 진공 붕괴는 어디서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 블랙홀 주위에서는 '진공 붕괴'가 발생하기 쉽다.
- 진짜 진공에서는 원자가 붕괴된다.
- 우주는 이미 진공 붕괴를 경험했는가?
1. 진공 에너지가 '진공 붕괴'의 열쇠를 쥐고 있다.
본래 '진공(Vaccum)'의 의미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밀폐한 공기나 미세한 먼지 등의 물질을 모조리 제거하면 그 공간을 '진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기체 분자나 먼지 등의 미세한 물질을 완전히 제거한 것만으로는 참된 의미의 진공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모든 물질을 제거해도 공간에는 빛이 들어오고 있다. '빛(Light)'은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라는 파동임과 동시에 '광자(Photon)'라는 '입자(Particle)'이기도 한다. 즉, 기체 등의 물질을 제거해도 광자와 같은 '물질이 아닌 입자'가 공간에 남는다.
실은 온갖 입자를 제거해서 진짜 진공이 실현될 수 있다고 해도 공간에는 에너지가 남는다. 더 이상 제거할 수 없는, 공간에 남은 에너지를 '진공 에너지(Vacuum Energy)'라고 한다. '진공 에너지'란 공간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진공 붕괴'라는 현상에도 '진공 에너지'와 크게 관계되어 있다. 공간에 남은 '진공 에너지'는 어떻게 해서 우주를 붕괴시키는 걸까?
2. '가짜 진공'에서 '진짜 진공'으로 변할 때 '진공 붕괴'가 일어난다.
2-1. 물이 상전이 하는 것처럼, 진공 상태도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예컨대 물은 온도에 따라 수증기나 얼음으로 변한다. 이처럼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Phase Transition)'라고 한다. 그런데 물의 상전이처럼, 진공 상태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물이 높은 장소에서 낮은 장소로 저절로 흘러가듯이, 우리의 세계에서는 온갖 물질이 에너지가 낮은 상태를 좋아한다. 물이 얼음이 되는 이유도, 0℃ 이하에서는 물 분자끼리 규칙적으로 이어져 얼음이 되는 편이 에너지가 낮기 때문이다. 실은 진공도 물과 마찬가지로 더욱 에너지가 낮은 상태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진공 상태가 변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2012년 스위스 제네바 교외에 있는 세계 최대의 가속기 'LHC(Large Hadron Collider)'에서 발견된 '힉스 입자(Higgs Particle)'이다. '힉스 입자'는 여러 가지 소립자의 질량에 관계하는 소립자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와 동시에 '진공'의 성질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소립자이다.
2-2. 진공의 상전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힉스 입자의 질량은 약 '126GeV(126기가전자볼트)'이다. ev는 에너지나 질량의 단위이며, 1GeV는 1eV의 10억 배이다. 실은 LHC의 실험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힉스 입자의 질량은 훨씬 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힉스 입자'의 발견 이후, 실제로 관측된 질량과 이론적으로 예상된 힉스 입자의 질량이 서로 다른 점이 정리되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진공 에너지'를 계산하자, 현재의 진공이 온갖 상태 가운데 가장 에너지가 낮은 진공이 아닐 가능성이 생겼다. 즉, 현재의 진공은 말하자면 '가짜 진공(False Vacuum)'이며, 더욱 에너지가 낮은 '진짜 진공(True Vacuum)'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물이 얼음으로 변하듯이, 진공 상태가 더욱 에너지가 낮은 '진짜 진공'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진공의 상태 변화가 '진공 붕괴(Vaccum Decay)'이다. 두 진공 사이에는 아래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처럼 큰 '에너지의 산'이 있다. 현재의 진공에 에너지를 가하면 에너지의 산을 넘어 에너지가 낮은 '진짜 진공'으로 이행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에너지의 산은 매우 높아서, LHC처럼 에너지가 높은 실험 시설을 사용해도 인위적으로 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진공 붕괴가 일어나 '가짜 진공'에서 '진짜 진공'으로 진공 상태가 변하면 물리 법칙이 바뀐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원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의 온갖 물질이 붕괴된다.
3. 확률은 낮지만 진공 붕괴는 어디서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3-1. 에너지의 산은 쉽게 넘을 수 없다.
'진공 붕괴'에 의해 '가짜 진공'에서 '진짜 진공'으로 상태가 변하려면, 두 진공 사이에 있는 '에너지의 산'을 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실은 LHC 건설 때도 실험에 의해 진공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LHC는 가속시킨 양성자끼리 충돌시켰을 때의 에너지를 이용해 여러 가지 입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때 생기는 에너지는 13TeV'에 이른다. '1TeV(1테라전자볼트)'는 '1eV(1전자볼트)'의 1조 배이다. 만약 예상 밖의 '진짜 진공'이 존재해 두 진공 사이에 있는 에너지의 산이 LHC의 실험에서 생기는 에너지에 비해 작으면, 진공 붕괴가 발생해 지구가 '진짜 진공'에 집어삼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되지 않았던 소립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해, 진공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하는 논문은 많다.
하지만 지구 주위에는 LHC의 실험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웃돌 정도의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Cosmic Ray)'이 대기에 포함된 기체 분자와 빈번하게 충돌한다. 이 정도로 높은 에너지 현상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구가 '진짜 진공'에 삼켜지지 않은 것을 볼 때, 적어도 LHC의 실험에서 생기는 에너지 정도로는 '진공 붕괴'가 발생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로 입자를 충돌시키는 LHC의 실험에서도 진공 붕괴를 일으키기에는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이상, 기존 실험 장치를 사용해 진공 붕괴를 일으킬 정도의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는 없다. 인위적으로 진공 붕괴를 발생시키려면 지구의 크기를 넘어서는 엄청나게 큰 가속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3-2. 에너지의 산을 빠져나가 진공이 붕괴된다.
두 가지 진공 사이에 있는 에너지의 산이 아주 높으면 '진짜 진공'의 상태가 존재한다고 해도 '진공 붕괴'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양자 역학의 '터널 효과(Tunnel Effect)'에 의해, 에너지의 산을 직접 넘지 못해도 진공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터널 효과에 의해 우주의 어느 장소에서 진공 붕괴가 일어나면, 그곳을 중심으로 '진짜 진공의 거품'이 생긴다. '진짜 진공의 거품'은 가속되면서 팽창해 최종적으로는 거의 광속으로 퍼져 나간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우주의 어딘가에서 진공 붕괴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현상이 관측될까? 진공 붕괴된 영역이 어떤 물리 법칙을 따르는지는 현 단계에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물리 법칙을 따르는 세계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물리 법칙이 서로 다르면, 애당초 우리는 진공 붕괴된 영역을 관측조차 못할 수도 있다.
단, '진공 붕괴된 영역'과 '진공 붕괴되지 않은 영역'의 경계는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가스나 먼지 등 아주 작은 입자가 높은 에너지를 가진 '벽'에 튕겨져 진공 붕괴된 영역과의 경계가 빛나 보일 수도 있다. 우주를 바라볼 때 거의 광속으로 확대되는 정체불명의 빛나는 영역이 있다면 혹시 '진짜 진공'이 다가오는 징조일지도 모른다.
3-3. 양성자보다 압도적으로 작은 '진짜 진공의 거품'이 우주를 붕괴시킨다.
'터널 효과(Tunnel Effect)'에 의해 '진짜 진공의 거품'이 발생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팽창하지 않고 곧 소멸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된다. 진공 붕괴는 진공 상태가 현재보다 에너지가 낮은 상태로 변하는 현상이다. 진공 붕괴된 영역은 확실히 에너지가 낮지만, 서로 다른 진공과의 경계는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갖는다. 그래서 터널 효과에 의해 처음으로 진공 붕괴된 영역이 지나치게 작으면, 진공 붕괴에 의한 에너지 저하보다 진공의 경계가 생기는 것에 의한 에너지 증가 쪽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진공 붕괴 영역을 유지하기보다 원래의 진공으로 돌아가는 쪽이 전체적으로는 에너지가 득이 되기 때문에 '진짜 진공의 거품'이 소멸된다. 진공 붕괴가 발생해 확대되어 나가려면, 대략적인 계산이지만 양성자보다 10자릿수 정도 작은 진공 붕괴의 거품이 발생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양성자의 반지름은 1mm의 1조 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렇게 작은 '진짜 진공의 거품'이 터널 효과에 의해 생기고 우주를 집어삼킬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현재 소립자 물리학의 기본적인 이론인 '표준 이론'을 바탕으로 계산하면,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범위의 우주에서 진공 붕괴가 발생하고, 그 후 우주가 삼켜질 확률은 10544억 년에 한 번 정도로 추정된다. 물론 큰 오차가 있지만, 현재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인 점을 생각하면 우주가 '진짜 진공의 거품'에 곧바로 삼켜질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표준 이론'도 우주에서 일어날만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니다. 즉 장래에 '표준 이론'을 넘어서는 소립자 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10544억 년에 한 번 정도라는 '진짜 진공'이 우주를 집어삼킬 확률의 추정도 크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4. 블랙홀 주위에서는 '진공 붕괴'가 발생하기 쉽다.
그런데 현재의 이론에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우주의 삼켜 버릴 듯한 '진짜 진공의 거품'이 발생할 확생할 확률은 크게 변하는 것 같다. 그 하나의 예로 초고밀도이며 거대한 중력원으로 알려진 '블랙홀' 주위에서는 '진공 붕괴'가 발생하기 쉬워진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제창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이란 '공간의 휘어짐'에 의해 생기는 힘이다. 즉 거대한 중력원인 블랙홀 주변에서는 공간이 크게 휘어진다. '진공 붕괴'는 잔에 따르는 탄산음료의 '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거품은 잔의 옆면이 아니라 잔의 바닥면에서 뿜어 나오는 것처럼 발생한다. 이는 잔의 옆면처럼 '평탄한' 곳 보다 바닥면처럼 구부러지거나 각지거나 휘어진 곳에서 거품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은 진공 붕괴도 평탄한 공간보다 휘어진 공간 주변에서 발생하기 쉽다고 생각된다.
진공 붕괴의 '씨'가 될 것 같은 '원시 블랙홀(Primordial Black Hole)'은 우주가 갓 탄생한 무렵에 형성되었으리라 생각되는 극소 블랙홀이다. 그런데 원시 블랙홀이 정말 존재하는지,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원시 블랙홀이 우주에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로써는 원시 블랙홀을 핵으로 한 '진공 붕괴'에 의해 어느 정도의 빈도로 우주가 삼켜질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5. 진짜 진공에서는 원자가 붕괴된다.
우주는 진공이라는 '토대' 위에 있는 여러 가지 입자에 의해 성립한다. 그러면 진공 붕괴에 의해 '토대'인 진공의 성질이 극적으로 바뀐다면 우주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알려진 진공 붕괴가 발생하면, '힉스장(Higgs Field, 힉스 입자의 바탕)'의 값이 현재의 약 1016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대략적으로 생각해 소립자의 질량은 '힉스장(Higgs Field)'의 값에 비례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질량이란 '물체의 움직이기 어려운 정도'를 말한다. 즉 '진공 붕괴'가 생겼을 경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질량을 가진 모든 소립자는 터무니없이 무거워져 이전처럼 움직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을 비롯해 온갖 물질은 기본적으로 무수한 '원자(Atom)'가 조합되어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중심으로 해서, 주위가 전자로 뒤덮여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3개의 '쿼크(Quark)'라는 소립자가 '강한 핵력'에 의해 결합됨으로써 그 모양을 유지한다. '힉스장'의 값이 극단적으로 커진 세계에서는 원자핵을 뒤덮는 전자의 질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전자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원자핵 주위에 분포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힉스장의 값이 극단적으로 증가했을 경우 '강한 핵력'의 영향이 약해지고, 그 결과 원자핵 자체가 모양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핵이 없으면 애당초 원자는 모양을 이루지 못한다. 진공 붕괴에 의해 원자 수준에서 모든 구조가 뿔뿔이 흩어진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공 붕괴 뒤의 세계에서는 각 소립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현재 세계와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진공 붕괴 뒤 세계의 소립자의 질량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각각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6. 우주는 이미 진공 붕괴를 경험했는가?
실은 우주가 탄생한 직후에도 '힉스장(Higgs Field: 힉스 입자의 바탕)'의 성질이 크게 변한 적이 있다. 어쩌면 우주는 이미 '진공 붕괴'를 경험했을 지도 모른다. 우주는 갓 탄생했을 무렵 매우 고온·고밀도이며, 온갖 소립자가 마구 섞인 복잡한 상태였다고 한다. 우리가 현재 '힉스 입자'라고 부르는 소립자도 우주 탄생 직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탄생 직후 순식간에 급팽창했다가 갑자기 식었다. 그리고 이때 '진공의 상전이'가 일어났으리라 생각된다. 소립자 물리학에서는 이 상전이를 '전자기력·약한 핵력 상전이'라고 한다. 이 상전이에 의해 힉스 입자를 포함한 여러 가지 소립자가 현재의 질량을 갖게 되었다.
'진공의 상전이'가 일어났다는 것은 바로 '진공 붕괴'가 일어났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진공 붕괴가 발생했을 경우, 우주 공간에는 터널 효과에 의해 지금까지의 우주와는 전혀 성질이 서로 다른 공간이 갑자기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우주 초기에 발생한 '진공의 상전이'에서는 조금씩 연속 적으로 진공 상태가 변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이런 평온한 변화는 '진공 붕괴(Vaccum Decay)'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 우주 초기에 발생한 진공의 상전이'가 '진공 붕괴' 였을 경우 현재의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양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소립자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주 탄생 초기에 발생한 '진공의 상전이'가 평온한 변화엿는지, 아니면 급격한 변화였는지, 즉 '진공 붕괴'였는지를 두고 현재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6-1. 진공 붕괴는 우주의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미 우주의 어디인가에서는 '진공 붕괴'가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고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바깥쪽에서도 우주 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먼 곳에 있는 우주 공간은 우리가 보기에 광속을 웃도는 속도로 멀어지는 셈이다.
우주의 넓이는 정확히 알지 못하며, 무한히 넓다고도 생각된다. 만약 우주가 무한하게 넓다면, 우리가 보기에 광속을 웃도는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의 어딘가에서 '진공 붕괴'가 발생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단, 진공 붕괴된 영역이 확대되는 속도는 광속을 웃돌 수는 없다. 그래서 광속을 웃도는 속도로 멀어지는 우주에서 진공 붕괴가 발생해도, 그 영역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일은 없다.
6-2. '진짜 진공'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세월이 지나거나 우주가 무한히 넓어지면 언젠가 반드시 '진공 붕괴'가 발생할까? 실은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위에서 설명한 '진공 붕괴가 생길 확률'은 어디까지나 표준 이론을 사용해 계산한 경우의 값이다. 표준 이론은 여러 가지 실험 결과와 모순되지 않는 정밀한 이론이라고 인정되지만, 표준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아직 몇 가지 있다. 그래서 소립자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표준 이론을 넘어서는 이론이 구축되고 있다. 예컨대 그 대표적인 후보로 '초대칭성 이론(Supersymmetry Theory)'이 있다. '초대칭성 이론'에서는 표준 이론에서 생각되던 소립자와 쌍이 되는 '초대칭성 입자(Supersymmetric Particle)'의 존재를 예측한다. 만약 '초대칭성 입자'가 정말 존재한다면, 진공 에너지를 계산할 때 초대칭성 입자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표준 이론'에 근거하여 예언되던 '진짜 진공'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나온다.
6-3. '진짜 진공'은 무수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초대칭성 입자'의 존재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만약 초대칭성 입자가 발견될 경우, 그 성질 때문에 지금까지 상정하지 않았던 '다른 진공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초대칭성 입자'가 존재할 경우, 예컨대 '힉스장(Higgs Field)'의 값이 약 1016배가 되는 '진짜 진공'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에는 초대칭성 입자의 질량에 의존해 진공보다 에너지가 낮아지는 '진짜 진공'이 존재할 가능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진공 붕괴의 발생률은 초대칭성 입자의 성질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초대칭성 입자가 발견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예상하기는 어렵다.
또 '초끈 이론'에 의하면, 성질이 다른 진공이 10500가지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진공의 성질이 서로 다르면 같은 소립자라도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다른 우주'라고 말한다면, 무수한 우주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무한하게 펼쳐지는 우주의 여기저기에 진공 붕괴가 생기고 있으며, 이미 무수히 서로 다른 우주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