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생물(Parasite)
지구에는 약 870만 종의 생물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다른 종의 생물과 '공생 관계'를 맺고 상호 작용하면서 생명을 영위하고 있다. '공생'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관계가 포함된다. 생물끼리의 상호 관계는 크게 다음의 다섯 가지로 나뉜다.
- 경합(Competition): 다른 종끼리 같은 자원을 이용하는 관계
- 소비자-자원(Consumer-Resource) 등: 어떤 종이 일방적으로 다른 쪽 종을 먹는 등의 관계
- 상리 공생(Mutualism): 다른 종끼리 서로 도우며 서로 이익을 얻는 관계
- 편리 공생(Commensalism): 한쪽의 종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 종에는 이익도 불이익도 없는 관계
- 편해 공생(Amensalism): 한쪽의 종에 불이익을 주고, 다른 쪽 종에는 이익도 불이익도 주지 않는 관계
'소비자-자원'과 같은 관계 가운데, 한쪽 종이 다른 쪽 종을 일방적으로 이용하지만, 보통은 직접 죽이지 않는 관계를 '기생(Parasitism)'이라고 한다. 위에서 말한 버섯처럼 영양과 이익을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얻는 쪽을 '기생체(기생자)'라고 하고, 좀비 개미처럼 기생당하는 쪽을 '숙주'라고 한다. '숙주'로서 한 종의 생물만 사용하는 기생체도 있고 복수의 생물을 전전하는 기생체도 있다. 후자의 경우, 성장하기 위한 숙주는 '중간 숙주', 산란하기 위한 숙주는 '최종 숙주'로 정의된다. 흔히 기생체는 숙주보다 작으며, 세균·진균·바이러스·기생충이 알려져 있다. 현재 종으로 기재되어 있는 수백만의 생물종 가운데 약 40%가 일생 동안 어딘가에 기생생활을 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것은 '궁극적 기생'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이다. 위 다섯 가지의 분류로 말하면, '소비자-자원(Consumer-Resource)'관계의 일부라고 파악할 수 있다. 기생체는 숙주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을 진행하고, 효율적으로 자손을 남기고 분산시키며, 알이나 번데기를 보호한다는 이익을 취한다. SF에서는 인체를 탈취하는 기생체나 좀비도 드물지 않지만, 자연계에는 SF보다 더 괴기한 기생 생물 세계가 존재한다. 기생 생물이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너무나도 이상한 '기생 생물(Parasite)'의 세계를 소개한다.
0. 목차
- '버섯 무리'에게 기생된 좀비 개미
- 달팽이를 조종하는 '로이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 흡충
- 물고기를 조종하는 '갈락토소뭄 속' 흡충
- 물을 무서워하게 되는 '광견병 바이러스'
- 톡소플라스마
- 숙주를 하천에 뛰어들게 하는 '연가시'
1. '버섯 무리'에게 기생된 좀비 개미
'좀비 개미'라는 개미가 있다. 버섯 무리가 기생해서, 버섯에 증식에 적합한 장소와 시간대에 죽음에 이르는 개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버섯은 경련을 일으키는 특수한 화학 물질을 분비해 개미를 단계적으로 마비시킨다. 그리고 습도가 높고 기온이 25℃ 정도인 정오 무렵, 지상 약 25cm 높이의 나무나 풀에 개미가 달라붙어 죽게 한다. 개미의 몸은 나무나 풀에 단단히 고정되어, 버섯이 성장·증식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 며칠 뒤 개미의 머리와 목을 뚫고 버섯 자루가 솟기 시작하며, 몇 주일 후에는 갓이 형성되어 흩어진다. 아래의 사진은 버섯 무리에 기생당해 몸을 빼앗긴 개미의 모습이다. 머리 부근에서 버섯의 '자루(Stipe)'가 뻗어 나왔다.
2. 달팽이를 조종하는 '로이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 흡충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이자 동물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는 저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에서 '로이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Leucochloridium paradoxum)'이라는 흡충에 기생된 달팽이를 예로 들었다. 이 흡충에게 기생당한 달팽이는 보통 때는 피하는 '빛이 잘 드는 장소'로 기어 나와 일부러 새에게 먹히기 쉽게 한다. 더구나 많은 흡충의 애벌레로 가득 찬 줄무늬 모양의 주머니가 달팽이의 뿔 안에서 꿈틀거린다. 이 모습은 새가 가장 좋아하는 나비나 나방의 애벌레를 똑 닮아서, 기생당한 달팽이는 새에게 바로 잡아먹힌다. 달팽이가 새에게 잡아먹히면, 흡충은 달팽이에서 새로 숙주를 바꾸어 새의 소화 기관에서 성장하여 성체로 성장하고 알을 낳는다. 생겨난 알은 새의 배설물과 함께 흙으로 떨어져 애벌레가 되어 다시 달팽이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3. 물고기를 조종하는 '갈락토소뭄 속' 흡충
물고기의 뇌에 들어가 똑바로 헤엄치지 못하게 해서, 새에게 쉽게 잡아먹히도록 조종하는 기생체도 있다. 그중 하나가 멸치나 방어 등에 기생하는 '갈라토소뭄 속(Galactosomum 속)' 흡충이다. '갈라토소뭄 속(Galactosomum 속)' 흡충은 우선 알의 상태로 최초의 중간 숙주에 들어간다. 단, 최초의 중간 숙주의 생물종은 특정되어 있지 않다. 이후 1mm가 채 안 되는 공 모양을 한 애벌레의 모습으로, 두 번째 중간 숙주가 되는 어류의 뇌에 기생한다. 마지막은 최종 숙주인 바닷새인 '괭이갈매기(black-tailed gull)'의 소화관에서 3~5mm 정도 길이의 가늘고 긴 어른벌레가 되어 생식한다.
기생당한 물고기는 무리를 이루지 않고, 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 수면 근처의 선회 유영을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유영은 어부들에게는 잘 알려진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물고기는 '괭이갈매기'의 몸속으로 이동하면 애벌레에서 어른벌레가 되어 알을 낳는다. 알은 배설물과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기생충 입장에서는 숙주를 바닷새로 바꾸어 지리적으로 떨어진 지역으로 옮겨가므로, 서식처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4. 물을 무서워하게 되는 '광견병 바이러스'
사실 '숙주를 좀비처럼 바꾸는 기생체의 존재'는 2000년 이상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중에는 '물을 무서워하게 된다.'고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된 '광견병 바이러스'가 있다.
4-1. 광견병 바이러스로 생기는 이상 행동
'광견병(Rabies)'은 개, 고양이, 미국너구리, 박쥐 등을 비롯해 모든 포유류와 인간을 감염시키는 '인수 공통 감염증'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를 보유한 동물이 다른 동물이 물어 감염시키면, 바이러스는 먼저 근육 속에서 증식한다. 그 후 하루에 몇 mm에서 몇 cm씩 이동하며 천천히 신경·척수·뇌로 침입한다. 개는 감염 10~80일 후에 바이러스가 뇌에 들어가 다시 증식해 증세를 나타낸다. 증세가 나타난 동물은 신경이 극도로 과민해지고 흉악해지면서 다른 동물을 물게 된다. 그리고 서 있을 수 없고, 삼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뇌에서 먼 부분부터 가까운 부분으로 마비가 진행되다가 최후에는 100% 사망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에서 광견병에 대해 '비육식성 동물마저도 '광견병 바이러스'에 걸리면 사납게 물게 된다. '평소에는 해롭지 않은, 과일을 먹는 박쥐에 물려 발병한 사람의 증상도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경우는 물지는 않지만, 감염 1~2개월 후에 먼저 감기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이어 '지각 이상', '흥분', '불안감 증대', '착란, '환각', '공격성 증대', '물을 무서워하는 등의 이상 증세'가 일어난다. '물을 무서워하는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물을 삼키는 자극이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죽음에 이르는 점은 야생 동물과 같다. 인간용 백신은 있지만,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계속 발병이 이어지고 있다. 광견병이 근절되었다고 알려진 일본에서는 2006년에 해외에서 감염되어 귀국 후에 감염이 판명된 예가 2건 발생한 적이 있다. 아직까지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감염증이라고 할 수 있다.
5. 톡소플라스마
고대부터 알려졌고, 최근에 이르러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보고가 이어지는 기생체도 있다. '원충(원생동물)'의 일종인 '톡소플라스마(Toxoplasma)'이다. '원충'은 약 5~7μm로, 초승달 같은 가늘고 긴 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나 조류를 감염시키는 아주 흔한 원충으로, 전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감염되어 있다는 추정도 있다.
5-1. 톡소플라스마는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 '라이프 사이클(다음 세대의 개체를 만들기까지의 사이클)'은 매우 독특하다. 일생 동안 몇 차례나 형태를 바꾸며, '무성 생식'과 '유성 생식'을 통해 증식한다. 다만 '유성 생식'이 가능한 것은 고양이 무리의 소화관 안으로 국한된다. 고양이 무리의 소화관 안에서는 암컷과 수컷의 생식 세포가 융합함으로써 '오시스트(Oocyst)'라는 타원 형태의 자손이 생겨난다. '오시스트'는 배설물 함께 배출되어 흙이나 물속으로 들어가 먹이나 물과 함께 포유류나 조류의 입으로 들어간다. 고양이 이외의 숙주의 몸속에서는 소화관에서 세포 안으로 침입해, 초승달 모양의 '타키조이트(Tachyzoit)'라는 형태로 모습을 바꾸고 무성 생식으로 증식한다. 그리고 숙주의 면역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추 신경이나 근육 속으로 이동해, 딱딱한 껍질로 덮인 '시스트(Cyst)'라는 구조를 만들어 숨는다. '톡소플라스마'는 이처럼 아주 재빠르게 형태를 바꾸는데, 라이프 사이클의 어떤 단계에서나 감염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될 수 있다. 인간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고기를 제대로 가열하지 않은 채 먹으면, 인간의 몸에 들어간 톡소플라스마는 평생 동안 몸에 남는다. 임신했을 경우 '유산' 또는 '사산'하거나, 태아의 뇌·시력·간·혈액 등에 이상이 생길 위험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HIV(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면역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되면 치명적인 뇌염에 걸리기도 한다. '타키조이트(Tachyzoit)'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약은 있지만, 껍질에 싸인 '시스트(Cyst)'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약은 없다. 다만 건강한 사람은 감염되어도 위중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쥐나 인간에게 '공격적이 된다.'거나 '공포심이 없어진다' 등의 '행동 이상'이 나타난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쥐는 천적인 고양이를 본능적으로 피하지만,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되 쥐는 고양이를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인간의 경우에는 이 같은 경향과 함께 '자살이나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성', '조현병이나 파키슨병 등 정신이나 뇌신경계 질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5-2. 톡소플라스마의 숙주 조종 메커니즘
'톡소플라스마'의 백신 개발 등을 추진하는 일본 오비히로 축산대학 원충병 연구센터 생체방어학 분야 교수인 '니시카와 요시후미' 박사는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쥐의 뇌 조직에서 어떤 유전자의 작용이 변하는지를 조사해 두 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하나는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숙주에서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뇌에 염증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뇌신경의 기능을 관장하는 유전자의 작용이 변해, 기억이나 인지 등의 고차원 뇌 기능을 관장하는 영역에 장애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또 스웨덴의 연구팀은 쾌락 등을 제공하는 '도파민(신경 전달 물질의 일종)'의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톡소플라스마'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톡소플라스마'에게 뇌를 빼앗긴 쥐는 고양이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진 탓인지, 쾌락마저 느끼면서 스스로 고양이에게 먹히게끔 행동하는 것 같다. 그러면 톡소플라스마는 다시 고양이의 소화관으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감염된 인간의 뇌 안에서도 '신경 전달 물질'이나 '호르몬' 등의 상태에 변화가 생겨, '인지 기능'이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
6. 숙주를 하천에 뛰어들게하는 '연가시'
이번에는 물속에서 생식 활동을 하기 위해, 보통 때는 물가와 인연이 없는 곤충을 하천으로 뛰어들게 하는 '연가시(Nematomorpha)'에 대해 알아보자. '연가시'는 짧은 것은 약 5cm, 긴 것은 1m에 이르는 아주 가느다란 생물이다. 표면은 약간 딱딱한 껍질로 덮여 있으며, 구불구불 구부러진 모습 때문에 '철사 벌레', 또는 '철선충'이라고도 불린다. 연가시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은 대략 다음과 같다.
6-1. 연가시의 라이프 사이클
하천에 있는 '끈과 같은 상태'는 성체로 암컷과 수컷이 있다. 서로 구불구불 헤엄치고 있느 사이에 만나면 암컷은 수컷에게서 '정포(정자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받아 알 덩어리를 낳는다. 수정란은 약 2개월 만에 끝에 톱과 같은 구조를 지닌 애벌레 모야의 '유체(幼體)'로 변한다. 유체는 물속을 떠다니는 동안 물속에 사는 '하루살이(Gnat)'나 '날도래(Caddis-fly)' 등의 곤충의 애벌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장관(큰 창자와 작은 창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도달하면 '톱'을 사용해 장관을 뚫고 들어가 껍질로 둘러싸인 구조 '시스트(Cyst)'를 만들고 휴면에 들어간다.
수생 곤충이 '우화(번데기가 변태하여 성충이 되는 일)'해 숲으로 들어가 꼽등이나 사마귀 등의 육상 곤충에게 잡아먹히면, 연가시는 숙주를 갈아탄다. 그리고 육상 곤충의 배 안에서 시스트의 껍질을 녹이고, 끈 모양의 연가시로 모습을 바꾼다. 연가시가 크게 성장하면서 곤충의 배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사마귀에 기생하는 것은 몇 개월에 걸쳐 약 30cm까지 성장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곤충은 물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입수 자살'이라고 생각되는 이런 행동은 연가시가 기생하지 않는 곤충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곤충이 물속으로 뛰어들면 숙주인 곤충의 '총배설강(Cloaca)'에서 연가시가 나온다. 곤충에 따라서는, 나오기 전에 물고기에게 먹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에는 물고기 입이나 아가미를 통해 연가시가 살아 있는 그대로 나오게 된다. 곤충으로부터 탈출한 연가시는 물속에서 교배를해, 암컷은 물속에서 산란해 다음 세대가 탄생한다. 연가시는 자신의 의도대로 산란 장소인 하천으로 돌아오고, 이용되고 버려진 곤충은 생식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물고기에게 먹혀 버린다.
6-2. 곤충이 입수 자살하는 이유는?
최근 들어 숙주의 행동 연구 만이 아니라, 유전자나 단백질 해석 등을 통해 '기생체에 의한 숙주 조종'에 대한 다양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기생체가 '신경 전달 물질(Neurotransmitter)'같은 단백질을 만들어 숙주의 뇌에 작용한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그리고 '기생체의 유전자의 작용'이 숙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분자 수준의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연가시에 대해서도, 행동이 조종되고 있을 때의 곤충의 행동 분석과 함께 곤충의 뇌 안에서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것이 곤충의 신경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이 '분자 수준'에서 연구되고 있다.
프랑스의 연구팀이 진행한 '행동 실험'을 통해, 물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귀뚜라미는 100% 물로 뛰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쩌면 반짝반짝 빛나는 수면이 신호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이번에는 물이 없는 상태에서 기생된 귀뚜라미에 빛을 비추는 실험을 해 보았다. 그러자 예상대로 빛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귀뚜라미는 빛에 반응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다양한 상태의 귀뚜라미, 즉 '연가시에 기생되지 않은 귀뚜라미', '기생되었지만 아직 행동이 조종되지 않은 귀뚜라미', '기생당하고도 행동을 조종하는 귀뚜라미', '기생당하고 행동도 조종됐지만 연가시가 이미 몸 밖으로 나간 귀뚜라미' 등 여러 상황의 귀뚜라미의 안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비교하는 연구도 진행되었다.
결과를 정리하면, 뛰어들기 직전의 귀뚜라미의 뇌에서만 '빛에 대한 반응과 관련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프랑스의 연구팀은 연가시가 제1단계로 곤충의 뇌 신경계의 작용을 교란시켜 이상 행동을 일으키고, 제2단계로 빛에 대한 반응을 변화시켜 물가에 접근하면 뛰어들게 한다고 보고했다.
6-3. 연가시가 생태계에 미치는 많은 영향
일본의 생태학자 '사토' 박사는 '연가시가 숙주의 행동을 조종함으로써 하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 먼저 하천의 물고기가 초가을에 꼽등이를 먹는 빈도만 조사해 발표하자, 그 데이터만으로 연가시의 숙주 조종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두 가지 조사를 병행해 보았다. 하나는 '숲에 있는 곤충이 지닌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 또 하나는 '하천에 있는 물고기의 소비 에너지를 추정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 '칼로리미터(Calorie Meter)'라는 장치로 태워 열량을 측정해 보았다.
얻은 결과는 추정한 바와 같았다. 사토 박사팀이 조사한 일본 '나라 현'의 작은 하천에서는, 가을이 되면 하천으로 뛰어드는 꼽등이 등의 곤충을 통해 '곤들매기(Dolly Varden trout)'가 소비하는 연간 추정 에너지의 약 90%가 공급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 가을에만 국한하면 약 90%가 공급되고 있었다. 하천으로 뛰어드는 곤충이 하천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측을 통한 이 결과는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나아가 사토 박사는 가을에만 하천가에 방충망을 설치해 연가시에 기생당한 꼽등이가 물에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물고기는 수생 곤충을 먹게 되어 수생 곤충은 3분의 1까지 격감했다. 한편, 수생 곤충이 먹던 수초 무리는 크게 늘어나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방충망을 철거한 후 상황을 급속히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연가시'는 '삼림'과 '하천 생태계' 사이의 에너지 흐름을 한 부분을 맡고 있었으며, '연가시'는 생태계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