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오류(Cognitive Error)
2017년도 2월의 한 신문 기사는 한국인 10명 중 9명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근거 없이 생각하는 '인지 오류의 습관'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실었다. 또 이러한 인지 오류들로 인해, 한국인이 일상생활을 넘어 인생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기사에서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한국인의 10명 중 9명이 '인지 오류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 걸까?
0. 목차
- 인지 오류의 습관
- '인지 오류'는 매우 일반적이다.
- '인지 오류'가 일어나는 이유
- '사회적 인지 편향'의 양면성
- 한국인의 인지 습관
1. 인지 오류의 습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6년 말에 출시한 '한국 국민의 건강행태와 정신적 습관의 현황과 정책대응'에서는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인지 오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였다. 설문 조사 항목 중 '인지 오류'는 다섯 문항으로 측정되었는데, 그 문항들은 다음과 같았다.
- 임의적 추론 평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사람들이 내 의견을 묻지 않았다면, 그것은 나를 무시하는 행동인가?
- 개인화 평가: 내가 다가가자 사람들이 하고 있던 이야기를 멈췄다면, 그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인가?
- 선택적 추상화 평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생각하는가?
- 이분법적 사고 평가: 세상 모든 일이 옳고 그름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가?
- 파국화 평가: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가?
설문 조사는 각 항목을 '습관 없음(0점)'~ '매우 강함(10점)'으로 측정하였고, '0점'이 아닌 모든 응답을 '인지 오류의 습관'으로 분류하였다. 다시 말해서 실험 참가자 중 위의 다섯 문항에 '0점'이라고 평가한 9%를 빼고 나머지 91%를 '인지 오류의 습관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한 것이다. 세부 결과를 보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조금 더 많았고,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이 현저히 많았다. 그래서 이 보고서는 이 집단들이 우울 등 불안 장애에 더 취약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전체 응답자의 평균 점수는 6점 미만이었기 때문에 '0점'이라고 자기 자신을 평가한 사람을 뺀 모든 사람이 '인지 오류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는 어떻게 다른지', '5점 미만인 사람과 5점 이상인 사람의 차이는 몇 명이나 되는지', '주관적 설문조사가 아닌 객관적 인지 편향 테스트를 한다면 결과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지' 등을 더 알 수 있으면 덜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2. '인지 오류'는 매우 일반적이다.
심리학에서 '인지 오류'는 지각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반응할 때 정보가 부족하거나 불확실해서 나타나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은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동을 경제적 의사 결정 관점에서 연구하여 2002년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 손실회피(Loss Aversion): '대니얼 카너먼'이 보여준 가장 유명한 '인지 편향' 중 하나는 '손실회피(Loss Aversion)'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득보다 손실에 약 두 배 이상 큰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서 100만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는 기쁨보다 100만 원짜리 벌금을 낼 때 드는 속상한 마음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 확률로 5만 원을 받겠습니까?, 50% 확률로 10만 원을 받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전자를 고르는 사람이 많지만, '100% 확률로 5만 원을 내겠습니까?, 50% 확률로 10만 원을 내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확실한 5만 원의 손실을 피하려고, 10만 원의 손실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 또 하나의 흔한 이지 오류는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으로부터 일어난다.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84 대 1이고,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는 확률은 10000 대 1이다. 반면,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많지만, 차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확률 계산에는 약하지만, 비행기 추락 사고나 폭발 사고처럼 충격이 큰 사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런 이유로 실제 위험한 상황을 위험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은 사건을 심하게 두려워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인지 오류'는 매우 일반적이다. 우리는 그런 편향들을 접하면,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또한 오류일 수 있다.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지 오류'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다. 환경과 정서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해도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인지 오류' 현상이 나타나고,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에서도 비슷한 패턴들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인지 오류'에 대한 뇌과학 및 생물학적 근거도 함께 연구되고 있다.
3. '인지 오류'가 일어나는 이유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오류가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진화에 있다. '지능'이란 동물들의 행동을 궁극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유도한다는 특징 때문에, 수억 년의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되어온 것이다. 지각을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어떠한 행동 반응을 산출할지 결정하며, 그 행동을 통해 개체들을 조금 더 오래 살고 번식하게 하는 것이 인지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정보가 의사결정과 같은 고등 지능 수준까지 가기 훨씬 전에, 지각 수준에서부터 인지 과정은 오류투성이다. 병아리를 비롯한 많은 새끼 동물은 얼굴 템플릿처럼 세 개의 점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찍혀 있거나, 움직임이 복잡한 물체를 어미나 살아 있는 개체를 잘못 인식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고체에 대한 뚜렷한 직관과는 달리 양과 움직임에 대해 전혀 예측을 못하기도 하며,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눈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가 시각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분명히 직관들은 틀렸지만, 급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이나 예측을 하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인지의 본래 목표는 사실을 밝히는 게 아니다. 인지는 사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때로는 정신적 행복과는 상관없이 불안감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 요소를 피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예컨대 '손실회피(Loss Aversion)'는 보수적인 사고를 통해 우리들의 행동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하고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위협적인 상황들을 자동적으로 피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지 편향'이란 본능적인 정보처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 오류'는 본능이니 어쩔 수 없고, 바꿀 수 없다는 생각 또한 '인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4. '사회적 인지 편향'의 양면성
우리의 인지 편향은 사회적인 상황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사회적 인지 편향' 또한 이간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자. 내가 휴게실에 들어가자, 직장 동료들이 하고 있던 이야기를 멈추고 조용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동료들이 나와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나 나의 뒷담화를 했을 수 있고, 두 번째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내가 휴게실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가 끝난 것일 수 있다. 만약 후자가 사실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전자가 사실이라면 사회적으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아웃사이더(Outsider)'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이런 상황에서 한 번 화를 내고 동료들과 친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작은 부족을 이루고 사는 우리의 조상들은 서로의 도움 없이 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식량·안전·육아에 도움을 못 받는 사회적 '왕따'는 생사가 걸린 아주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손실회피적인 반응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따돌림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유발된 감정, 예컨대 '섭섭함', '슬픔', '화', '질투' 등은 강한 동기가 되어 당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생존 능력이 그들보다 훨씬 높다면 싸워서 이기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빨리 그들에게 다시 인정받고 '인사이더(Insider)'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인사이더(Insider)'라는 개념이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회적 인지 편향'의 하나인 '내집단 편향(In-group bias)'는 '내집단과 외집단(In-group & Out-group)'을 나누고, '내집단'에게는 협조적이고 이타적이지만 '외집단'에게는 일단 경계하고 의심하는 적대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내집단(In-group)'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주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런 가능성이 보이면, 불안해하고, 창피해하고, 섭섭해하고, 때로는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그만큼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고, 사회적 실패가 그만큼 생존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높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매일 많은 공을 들이고 신경을 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가치에 대해 불안해하며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5. 한국인은 '인지 오류의 습관'을 많이 갖고 있고, 더 부정적인가?
그러면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인지 오류의 습관'을 많이 갖고 있고, 한국인이 더 부정적이라는 것은 사실일까? UN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그다지 낮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인지 오류'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인의 '인지 오류'는 신문 기사나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경제적 상황' ,'정치적 상황', '정신 건강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에 앞서 무작정 부정적으로만 해석한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