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Science)/물리학 (Physics)

'진공'이란?

SURPRISER - Tistory 2021. 8. 10. 23:47

 미시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야 할 진공에서도 '소립자(elementary particle)'가 튀어나온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소립자는 무수히 존재하며, 분주하게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진공에 대한 물음을 끝까지 파고들면 '물질은 무엇인가?', '우주는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와 같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진공(Vacuum)'이란 무엇일까?

0. 목차

  1. '진공'은 정말 비어있을까?
  2. '진공'에 관한 실험들
  3. 인공적인 진공의 한계
  4. 원자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가?
  5. 진공에서 소립자 만들기
  6. 쌍생성과 쌍소멸
  7. 빅뱅을 일으킨 에너지의 근원
  8. 진공의 여러가지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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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공'은 정말 비어있을까?

 우주 공간은 공기가 없는 진공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진공(眞空)'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비어있는 것',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진공이라고 해서 텅 비어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진공 팩이나 보온병 등에 있는 '진공'도 실제로는 텅 빈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기가 없는 공간'이 아니라, '공기가 희박한 공간'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는 완전한 진공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보통 10⁻³㎜Hg 정도 이하의 저압을 '진공(Vacuum)'이라 한다.

 '공기'란 '질소'나 '산소' 등의 분자가 날아다니고 있는 상태이다. 대기압(1기압)에는 1cm³당 10¹⁹개 정도의 분자가 있다. 그런데 공기의 농도를 비교할 때, 이러한 엄청난 수의 분자의 수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공기 농도의 비교에는 일반적으로 '기압'을 사용한다. 밀폐된 용기 안에 있는 공기의 기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용기 안의 기체 분자는 활발하게 벽에 충돌해 그 벽을 밀고 있다. 하나하나의 분자가 벽을 미는 힘은 미약하지만, 많은 수의 분자가 미는 힘을 모두 합치면 큰 힘이 된다. 이것이 바로 '기압(Atmospheric pressure)'이다. 기압은 공기의 '온도'와 '부피'가 일정한 상태에서는, 공기가 희박해질수록(기체 분자의 수가 적을수록) 기압도 내려간다. 반대로 기체 분자의 수가 많을수록 기압이 올라간다.

 자연계에서는 '상공(上空)'으로 올라갈수록 기압이 내려가고, 점점 '진공'에 가까워진다. 제트기가 날아다니는 상공 10km 부근은 0.2기압 정도가 된다. 또 '우주 왕복선'이 지구 주위를 도는 선회 궤도는 고도 400km인데, '우주 왕복선'의 주위를 보면 극히 희박하기는 하지만 실은 공기가 존재한다. '정지 위성'은 고도 약 36000km의 '정지 궤도'를 날고 있는데, 이 정도 거리로 올라와도 희박하지만 대기가 존재한다. 이 부근은 1000조 분의 1기압 정도이다.

36000km의 '정지 궤도'를 날고있는 국제우주정거장 - ISS

2. '진공'에 관한 실험들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도 진공의 존재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 세상은 반드시 어떤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 진공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는 진공의 존재를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논란의 결론을 맺지 못했다.

2-1. 토리첼리의 수은주 실험

그로부터 2000년쯤 지난 1643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가 진공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먼저 '수은(Hg, 원자번호 80번)'을 넣은 그릇을 채우고, 한쪽 끝을 막은 유리관에도 수은을 채웠다. 그리고 유리관의 열린 쪽을 그릇의 수은에 댄 채 수직으로 세우자 유리관의 위쪽에 '빈 공간'이 생겼다. 원래 수은으로 채워졌던 공간에 빈 공간이 생긴 것이므로 그곳은 진공일 것이다.

2-2.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

 토리첼리의 실험 뒤, 독일의 물리학자 '게리케(Otto von Guericke, 1602~1686)'도 '진공'에 관한 재밌는 실험을 했다. 실험의 이름은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이다. 먼저 지름이 약 40cm인 금속제의 반구를 합쳐 공으로 만들고, 그 안의 공기를 빼서 진공으로 만들었다. 공기의 누설을 막기 위해 두 반구 사이에는 기름에 적신 가죽도 끼웠다. 그러면 두 반구는 꽉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힘은 생각보다 매우 강해, 좌우 양쪽에서 여덟 마리의 말이 잡아당겨서야 겨우 떨어졌다고 한다. 구의 단면적은 약 1300cm²이었으므로, 구를 갈라놓는데 필요한 힘은 약 1300kg의 물체를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힘과 같은 크기가 된다. 당시 사람들은 진공이 감추고 있던 힘에 매우 놀랐을 것이다. 이리하여 진공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

2-3. 실제로는 정말 비어있는 진공은 아니다.

 하지만 '토리첼리의 수은주 실험'과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도 정말로 비어있는 진공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유리관 속의 빈 공간에는 수은 증기 등이 있었을 것이고, 반구 안에도 공기가 남아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실험에서의 진공은 '공기가 희박하다'라는 의미에서의 진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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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공적인 진공의 한계

 그러면 '완전한 진공'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분자를 제거해도, 차츰 분자가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용기의 벽 표면만 해도 다양한 분자와 원자가 붙어 있다. 또 그것이 없더라도 용기의 벽 속에도 다양한 원자가 뒤섞여 있다. 이들이 벽에서 나와 용기 속의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근소한 양이지만 펌프의 접속 부분 등을 통해서도 바깥쪽의 공기가 들어간다. 즉,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용기의 누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완전한 진공에 다가갈수록, 이들의 영향은 더 커진다. 인공적인 진공의 한계는 1000조 분의 1기압 정도라고 생각된다. 이보다 10분의 1 정도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수준까지 이르면, 그 기압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그리고 '배기(exhaustion: 기체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를 중단하면, 단번에 진공이 '악화'되어 버린다.

3-1. 진공을 만들어내는 펌프

 진공을 만들어 내는 데는 다양한 펌프가 이용된다. 필요한 진공의 정도에 따라 다른 펌프를 사용한다. 가장 손쉬운 '수류 펌프'는 수도꼭지에 물을 흐르게 하기만 해도 1/100기압 정도의 진공을 만들 수 있다. 또 발전기를 회전시켜 공기를 밀어내는 '기름 회전 펌프'에서는 그것의 1만 분의 1정도의 기압까지 배기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공기의 흐름이 있는 기압의 범위 안에서 사용되는 펌프이다.

 하지만 기압이 더 내려가면 이제는 기체의 흐름이 없어진다. 이 이상의 진공을 얻으려면 '잠복형 펌프'가 필요하다. 예컨대, 기체 분자와의 반응성이 높은 '티타늄(Ti, 원자 번호 22번)' 등의 금속판으로, 끈끈이처럼 기체 분자를 붙잡는 '게터 펌프(getter pump)'등이다. 또 진공 상태로 만들려는 용기가 클수록 작업이 더 어려워진다.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에서 운영하는 소립자 실험용 가속기 'B팩토리(B Factory)'에서도 보수할 때 이외에는 실험 중일 때도 언제나 '게터 펌프'로 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B팩토리'의 '빔 파이프'과 '게터 펌프실'은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체 분자는 자유로이 날아다니다가 운연히 게터 펌프실로 들어온다. 펌프는 화학적 활성이 높은 금속(티타늄 등의 혼합물)로 되어 있어, 끈끈이처럼 기체 분자가 붙도록 해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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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주 공간에는 '완전한 진공'이 존재하는가?

 그러면 우주에는 분자나 원자가 전혀 없는 곳이 있을까? 사실은 우주 공간에도 매우 적지만 가스와 먼지들이 떠돌고 있다. 별이 태어나는 것은 이들 가스가 스스로의 중력으로 서로를 잡아당겨 압축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은 약 4.37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α Centauri)'이다. 태양과 '알파 센타우리' 사이의 우주 공간에는 1cm³당 1개의 1원자가 존재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은하(Milkyway Galaxy)' 바깥은 어떨까? '우리은하(Milkyway Galaxy)'에서 '안드로메다 은하(Andromeda Galaxy)'까지의 거리는 약 230만 광년이다. 그 사이의 공간에는 1m³당 1개의 원자가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즉, 인공적으로 '완전한 진공'을 만들 수 없었던 것처럼, 아마 자연계에도 '완전한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은하와 은하 사이에는 1m³당 1개의 원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1m³안에 원자가 하나 존재한다면, 그 주위의 공간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원자 주위의 공간은 '완전한 진공'일까? 또 원자 속의 공간도 불가사의하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 이것 이외에 원자를 구성하는 요소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원자핵을 반지름 1m의 공으로 비유하면 원자는 반지름 100km의 거대한 공이 된다. 즉, 원자의 속은 거의 비어 있어 휑하다. 그러면 원자 속의 공간도 역시 '완전한 진공'이 아닐까?

 분명히 이들 공간에는 분자나 원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완전한 진공'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물리학에서는 이런 공간에도 '소립자(Elementary Particle)'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립자 수준에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어야 할 원자 주위나 원자 속에는 '전자(Electron)'나 '광자(Photon)'등의 소립자가 돌연 튀어나오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다. 게다가 이 소립자들은 무수히 태어났다가 한순간에 사라지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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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공에서 소립자 만들기

 그러면 소립자는 어디서 나타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반입자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반입자(Antiparticle)는 어떤 주어진 입자(Particle)에 대하여 '질량(Mass)'과 '스핀(Spin)'이 같고 '전하(Electric Charge)' 등의 내부 양자수가 반대인 입자이다. 따라서 모든 입자는 그에 해당하는 반입자가 있다. 예컨대, '전자(Electron)'의 '반입자는 양전자(Positron)'이다. 하지만 전기적으로 중성인 입자는 그 자신이 반입자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광자(Photon)'의 반입자는 '광자' 자신이며, '힉스(Higgs)'의 반입자는 '힉스' 자신이다.

 가속기의 소립자 실험에서는 '전자(Electron)'와 '양전자(Positron)'를 충돌시킨다. 전자와 양전자는 서로 '반입자'로, 쌍둥이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소립자 실험에서는 '양전자'를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질량(Mass)'과 '에너지(Energy)'는 서로 변환될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를 가해 양전자를 진공에서 만들면 된다. 우선 가속시킨 '전자'를 금속 덩어리 안에 처넣는다. 그러면 금속 원자 안의 공간에서 전자는 고에너지의 전자기파 '감마선(γ선, Gamma Ray)'을 방출한다. 이 금속에서 방출하는 감마선에서 전자와 양전자가 쌍으로 탄생한다.(쌍생성)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전자와 양전자를 진공에서 주워온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소립자가 진공에서 탄생한다. 아마 진공은 모든 소립자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진공 속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근본적인 답은 아직 모른다.

표준 모형(Standard Model)

6. 쌍생성과 쌍소멸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속기에서 에너지를 가함으로써 진공에서 소립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면 모든 소립자를 제거하고, 나아가 에너지도 가하지 않으면 완전히 비어 있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기대는 깨어진다. 소립자 이론에서 '공간'은 '장(Field)'으로 채워져 있다으며, 이 '장'이 진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그 결과, 진공에서 제멋대로 입자가 탄생하고 사라진다.

 '장'은 공간의 모든 곳에서 항상 진공하고 있다. 그리고 '장'이 크게 진동하는 순간은 바로 에너지를 외부에서 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 순간 진공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쌍으로 태어난다. 이처럼 에너지가 질량을 가진 입자로 변환되는 과정을 '쌍생성(Pair Creation)'이라고 한다. 단, 이런 쌍의 존재가 허용되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전자와 양전자의 경우라면 10²²분의 1초 정도의 시간이다. 가속기처럼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한 것이 아니므로, 진공에서 갑자기 태어난 소립자가 계속 존재한다면 물리학의 대원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깨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쌍생성 다음의 순간 두 입자는 서로 부딪쳐 에너지를 방출하고 사라진다. 이처럼 소립자와 그 반입자가 결합하여 동시에 소멸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을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장'의 에너지양은 원래의 기준점으로 되돌아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유지된다. 소립자의 쌍이 존재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상 입자(virtual particle)'라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진공을 '들끓는 진공' 등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원자 주위나 원자의 내부도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북적이고 있다. 물질이 있든 없든, 모든 공간에서는 무수한 '가상 입자'가 쌍생성과 쌍소멸을 되풀이하고 있는 듯하다.

쌍생성(Pair Creation)

6-1. 쌍생성과 쌍소멸의 실증

 그러면 진공이 들끓고 있다는 증거가 있을까? 진공이 들끓고 있다는 증거는 이미 존재한다. 바로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이다. 이 현상은 쌍생성과 쌍생성의 증거이며, 이것은 진공이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두 장의 금속판을 1000분의 1mm까지 정도까지 접근시키면, 금속판이 서로 잡아당긴다. 금속판 사이의 공간에는 특정 파장을 가진 '가상 입자'의 파동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한정된 '가상 입자'만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판 사이의 가상 입자의 수는 적어진다. 그러면 금속판 바깥쪽에 있는 진공 에너지가 커지므로 금속판은 바깥쪽에서 밀려 서로 끌어당겨진다. 이 '가상 입자'의 수 차이가 진공 에너지의 크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시미르 효과'이다. 카시미르 효과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헨드릭 카시미르(Hendrik fCasimir, 1909~2000)'에 의해 예언되고 1997년에 증명되었다.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

7. 빅뱅을 일으킨 에너지의 근원

 그러면 빅뱅을 일으킨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기원은 '진공(Vacumm)'이다. 지금까지 진공 안에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빅뱅 이전의 진공에는 현재의 진공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채워져 있었던 듯하다. 진공이 '상전이(Phase Transition)'라는 현상을 일으키고, 그 에너지를 대량으로 방출해 빅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상전이(Phase Transition)'란 얼음이 물이 되는 등 온도 등의 변화에 의해 물질의 상태나 성질이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땀을 흘린 뒤 시원해지는 이유는 액체인 땀이 증발해 기체가 될 때 열을 빼앗고, 그 결과 몸을 식혀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증기가 물이 될 때는 대량의 열을 방출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이 우주 초기의 진공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즉, '진공(vacuum)'이 '상전이'에 의해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했다는 것이다. 방출된 진공 에너지는 빅뱅을 거쳐 소립자 등으로 변했다가 물질로 모습을 바꾸었다. 결국, 우리의 몸이나 은하를 만든 모든 물질의 근원을 추적하면 '진공 에너지(Vacuum Energy)'에 도달한다.

7-1. 공간이 상전이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주는 팽창하는 과정에서 공간의 성질이 바뀌는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일으킨다. 그러면 공간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컨대, 온도의 변화에 의해, 얼음이 물이 되거나 물이 수증기가 되는 것이 '상전이'이다. 우주에서도 매우 고온이 되어 다수의 입자가 탄생하면 요동의 성질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공간의 상전이라고 한다. 우주는 초기의 초고온 상태에서 현재까지 계속 식어 왔기 때문에, 그 사이에 몇 사례의 상전이를 경험했으리라 추측된다.

 물속과 얼음 속에서는 물체의 움직임이나 음파의 전달 방법 등이 아주 다르다. 이것을 생각하면 상상해 볼 수 있는데 상전이가 일어나면 공간의 성질이 바뀌기 때문에, 힘이 전달하는 모습도 바뀌게 된다.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라는 입자가 3개 모여 만들어져 있다. 현재의 우주에서는 쿼크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초기 우주에서는 상전이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존재했으리라 생각된다. 쿼크 사이의 힘의 작용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 우주와 현재 사이에는 각 입자의 질량이 크게 달라진 것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우주에서는 질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가속기에서도 만들어 내기 어려운 입자가 있다. 하지만 그런 무거운 입자라도 초기 우주에서는 가볍기 때문에 수없이 많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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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공'의 여러가지 응용

8-1. 형광등 속의 진공

 형광등의 양 끝에는 음극과 양극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전구처럼 필라멘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형광등이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형광등 안에는 10만 분의 1기압 정도의 수은 증기(기체)가 차 있다. 형광등은 수은 증기에서 '자외선(Ultraviolet Rays)'을 발생시키고, 이 자외선은 형광등의 내벽에 칠해진 형광체에 부딪쳐 가시광선으로 바뀌어 빛나게 된다.

자외선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음극에서 튀어나온 '전자(Electron)'를 일정 속도 이상으로 가속시켜 수은의 원자와 충돌시켜야 한다. 수은 증기의 기압이 지나치게 낮으면, 발생하는 자외선의 양도 적어져 충분히 빛나지 않는다. 반대로 수은 증기의 기압이 지나치게 높으면, 전자가 충분히 가속되기 전에 수은 원자와 충돌해 버려, 자외선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 없다. 때문에, 형광등 내부는 적당한 진공 상태여야만 한다. 물론 실제로는 수은 증기의 기압이 높아도 음극과 양극 사이의 전압을 높이면 전자가 쉽게 가속되기 때문에 점등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가정은 전압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한국의 경우 220V), 형광등 안의 수은 증기는 10만 분의 1기압 정도로 조정되어 있다.

8-2. 거대 전파 망원경

 '거대 전파 망원경(Giant radio telescope)'에는 형광등보다 훨씬 고도의 진공이 이용된다. 세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거대 전파 망원경 중에는 '스바루 망원경'이 있다. '스바루 망원경'은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광학 적외선 망원경으로, 지름 8.2m의 '주경(primary mirror)' 덕분에, 100억 광년 이상 떨어진 천체에서 오는 희미한 빛도 한 점으로 모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거울의 표면에 굴곡이 생기면 천체의 빛을 정확히 한 점에 모을 수 없어 상이 희미해진다. 거울의 역할을 하는 표면의 알루미늄 막이 울퉁불퉁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매끈한 반사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공 증착(vacuum plating)'이라는 기술이 쓰인다. '진공 증착'이란 '금속이나 비금속의 작은 조각을 진공 속에서 가열하여 그 증기를 물체면에 부착시키는 일'을 말한다. 스바루 망원경에서도 진공 상태의 가마 안에서 알루미늄을 가열하고 증발시켜, 이를 유리 표면에 달라붙게 해 균일한 막을 만들었다. 알루미늄을 증발시키는 필라멘트는 288개가 있는데, 균일한 막이 되도록 계산해서 배치했다. 이때 가마 안이 충분히 진공 상태가 되지 않으면, 증발한 알루미늄 원자가 공기 분자와 부딪치기 때문에 계산한 대로 거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바루 망원경의 막의 두께의 오차는 놀랍게도 100만 분의 5mm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이는 10억 분의 1기압이라는 고도의 진공 덕분이다.

8-3. 소립자 실험용 가속기

 소립자 실험용 가속기에는 10억 분의 1기압보다 더 저압의 진공이 이용된다. 소립자 실험에서는 1조 분의 1기압 이하의 진공이 요구된다.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진공이다.

  1.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는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입자 가속기이다. LHC는 2021년 기준 'CERN(유럽 원자핵 공동연구소)'이 관리하는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입자 가속기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 장치이다. LHC는 다른 방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입자들을 발견했다.
  2. B팩토리(B Factory): 일본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 기구'가 운영하는 소립자 실험용 가속기 'B팩토리'에서도 '1조 분의 1'기압 이하의 진공이 이용된다. 'B팩토리'는 둘레 약 3km인 빔 파이프 속에서 전자와 양전자를 반대 방향으로 서로 충돌시켜 소립자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장치이다. 빔 파이프 안에 방해가 되는 분자가 많이 남아 있으면, 애써 가속시킨 전자나 양전자가 방해되는 기체 분자와 충돌하여 사라진다. 'B팩토리'는 전자와 양전자와 각각 수백억 개의 덩어리로 만들어서 서로 충돌시켜, 소립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실험 장치다. 전자나 양전자는 매우 작기 때문에 충돌한 가능성이 낮으므로 그만큼의 수효가 필요하다. 파이프를 따라 움직이는 전자와 양전자를 가능한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려면, 진공이 필요하다. 즉, 진공은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8-4. 집적 회로 제작

 진공 증착(Vacuum Plating) 기술은 '컴퓨터용 집적 회로의 기판'을 만들 때도 꼭 필요하다. 초정밀 회로의 기판을 제작에는 방해가 되는 분자가 이물질로 섞이면 제작에 실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도의 정보화가 이루어진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진공(Vacuum)'이라고 할 수 있다.